<?xml version="1.0" encoding="utf-8"?><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generator uri="https://jekyllrb.com/" version="4.4.1">Jekyll</generator><link href="https://zyahan.blog/feed.xml"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link href="https://zyahan.blog/"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lang="ko" /><updated>2026-07-15T08:20:23+09:00</updated><id>https://zyahan.blog/feed.xml</id><title type="html">미남과 오컬트와 자살</title><subtitle>《한서》 이야기를 합니다.</subtitle><entry xml:lang="ko"><title type="html">《삼국지》 단어 탐색기(Word2Vec)</title><link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2vec/"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삼국지》 단어 탐색기(Word2Vec)" /><published>2026-06-11T15:33:00+09:00</published><updated>2026-06-11T15:33: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sanguozhi-word2vec</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sanguozhi-word2vec/"><![CDATA[<h2 id="-삼국지-단어-탐색기-소개">🔎 《삼국지》 단어 탐색기 소개</h2>

<p>최근 “《삼국지》 단어 탐색기”라는 것을 만들어서 웹에 공개했습니다.</p>

<p><a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a></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a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img src="/assets/images/sanguozhi-word2vec-header.png" alt="《삼국지》 단어 탐색기 (버전 1.5.0)" /></a>
    
    
        <figcaption>《삼국지》 단어 탐색기 (버전 1.5.0)</figcaption>
    
</figure>

<p>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의 주석 한문 원문에 등장하는 한자와 고유명사의 쓰임을 컴퓨터에게 학습시킨 모델을 통해 특정 단어와 비슷한 단어를 찾아보는 도구입니다.</p>

<h2 id="-컴퓨터가-잡아낼-수-있는-단어의-의미">🤖 컴퓨터가 잡아낼 수 있는 단어의 의미</h2>

<p>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차茶”라는 단어와 “커피”라는 단어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둘 다 음료의 명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컴퓨터가 이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p>

<p>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차”와 “커피”의 사전적 의미를 모릅니다. 이들이 음료의 명칭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모릅니다. 사실 “음료”가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p>

<p>그렇다면 컴퓨터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컴퓨터에게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한 언어를 모아 놓은 자료를 주면, 컴퓨터는 “차”와 “커피”가 둘 다 “잔”, “마시다”와 함께 나오는 일이 많다는 패턴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패턴을 통해 컴퓨터는 “차”와 “커피”를 비슷한 단어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p>

<blockquote>
  <ul>
    <li><strong>차</strong>를 잔에 따라 마셨다.</li>
    <li><strong>커피</strong>를 잔에 따라 마셨다.</li>
    <li><strong>___</strong>를 잔에 따라 마셨다.</li>
  </ul>
</blockquote>

<p>사실 사람도 비슷합니다. 가령 “고사도”라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하더라도, “<strong>고사도</strong>를 잔에 따라 마셨다.”라는 문장을 접했을 때 고사도가 음료의 일종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사도”가 기존 음료 단어들처럼 “잔”, “마시다”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입니다.</p>

<p>바로 이런 패턴을 찾아내는 도구로 Word2Vec 모델이 있습니다. Word2Vec 모델은 각 단어가 어떤 문맥에서 나타나는지 학습해서 단어를 벡터로 표현합니다. 단어를 벡터로 표현하면, 두 단어의 의미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코사인 유사도’라는 척도로 계산할 수 있습니다.</p>

<p>《삼국지》 단어 탐색기는 이 코사인 유사도를 이용해서 《삼국지》에 나타난 단어들의 의미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든 도구입니다.</p>

<h2 id="️-두-단어-비교-예시-유비-vs-선주">⚖️ 두 단어 비교 예시: “유비” vs. “선주”</h2>

<p>《삼국지》 단어 탐색기를 활용해서 “유비劉備”와 “선주先主”를 비교해 봅시다. 아시다시피 이 두 단어는 모두 유비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삼국지》 텍스트에서 두 단어의 쓰임은 상당히 다릅니다. <a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task=compare&amp;cmpA=%E5%8A%89%E5%82%99&amp;cmpB=%E5%85%88%E4%B8%BB">아래의 결과</a>를 살펴봅시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a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task=compare&amp;cmpA=%E5%8A%89%E5%82%99&amp;cmpB=%E5%85%88%E4%B8%BB"><img src="/assets/images/sanguozhi-word2vec-example-1.png" alt="《삼국지》 단어 탐색기 예시: 유비劉備 vs. 선주先主" /></a>
    
    
        <figcaption>《삼국지》 단어 탐색기 예시: 유비劉備 vs. 선주先主</figcaption>
    
</figure>

<p>버전 1.5.0 기준으로, “유비劉備”와 “선주先主” 두 단어의 코사인 유사도는 0.492입니다. 참고로 코사인 유사도는 1에 가까울수록 두 단어가 비슷하다는 뜻이고, 0.492면 높은 값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sup id="fnref:1"><a href="#fn:1"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1</a></sup></p>

<p>《삼국지》 전체에서 “유비劉備”와 비슷한 단어 1위는 조조를 가리키는 “조공曹公”, 2위는 “손권孫權”, 3위는 “공손찬公孫瓚”입니다. 반면 “선주先主”와 비슷한 단어 1위는 익주목 유장의 이름 “장璋”, 2위는 오나라 손권의 이름을 가리키는 일이 많은 “권權”, 3위는 조조의 묘호 “태조太祖”입니다. 조조와 손권이 공통적으로 등장하지만, 유비와 마찬가지로 불리는 방법이 두 목록에서 각기 다릅니다.</p>

<p>이 결과를 통해 우리는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각기 다른 칭호들이 실제로 서로 다른 문맥에서 쓰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위진정통론’에 입각하여 조조와 그의 후예들을 황제의 일대기인 ‘기紀’에 실었고 유비와 손권의 경우 신하의 전기인 ‘전傳’에 실었습니다. 하지만 촉 출신이었던 진수는 유비를 손권보다 더 존중해서, 유비의 경우 이름을 쓰기보다 “선주”로 칭하기를 선호했습니다. Word2Vec 모델은 《삼국지》 텍스트에서 이 편향을 학습한 것입니다.</p>

<p>Word2Vec 모델에서 계산한 코사인 유사도 기준으로는 “유비”와 “조공”이 서로 비슷하고, “선주”와 “태조”가 서로 비슷합니다. 전자는 다른 진영에서 비교적 중립적으로 쓴 칭호고, 후자는 《촉지》와 《위지》 내에서 각기 유비와 조조를 개국 군주로 높인 칭호입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코사인 유사도 수치로도 드러나는 셈입니다.</p>

<h2 id="️-스파이-찾기-예시-주유노숙여몽육손-vs-제갈량">🕵️ 스파이 찾기 예시: 주유·노숙·여몽·육손 vs. 제갈량</h2>

<p>또 다른 예시로 “주유周瑜”, “노숙魯肅”, “여몽呂蒙”, “육손陸遜”, “제갈량諸葛亮” 다섯 단어를 비교해 봅시다. 주유, 노숙, 여몽, 육손은 모두 오나라의 도독이고, 제갈량은 촉나라의 승상입니다. 컴퓨터가 이들의 차이를 잡아낼 수 있을까요? <a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task=spy&amp;spy=%E5%91%A8%E7%91%9C%C2%B7%E9%AD%AF%E8%82%85%C2%B7%E5%91%82%E8%92%99%C2%B7%E9%99%B8%E9%81%9C%C2%B7%E8%AB%B8%E8%91%9B%E4%BA%AE">아래의 결과</a>를 살펴봅시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a href="https://zyahan.blog/sanguozhi-word-explorer?task=spy&amp;spy=%E5%91%A8%E7%91%9C%C2%B7%E9%AD%AF%E8%82%85%C2%B7%E5%91%82%E8%92%99%C2%B7%E9%99%B8%E9%81%9C%C2%B7%E8%AB%B8%E8%91%9B%E4%BA%AE"><img src="/assets/images/sanguozhi-word2vec-example-2.png" alt="《삼국지》 단어 탐색기 예시: 주유·노숙·여몽·육손 vs. 제갈량" /></a>
    
    
        <figcaption>《삼국지》 단어 탐색기 예시: 주유·노숙·여몽·육손 vs. 제갈량</figcaption>
    
</figure>

<p>세 개 이상의 단어를 넣으면, 컴퓨터는 각 단어 벡터의 평균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평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단어를 ‘스파이’로 간주합니다. 위의 결과에서는 “제갈량”이 스파이로 잡혔습니다. 《삼국지》 텍스트에서 오나라 도독들의 성명이 서로 비슷한 패턴으로 쓰였고 제갈량은 다른 문맥에서 주로 쓰였다는 사실을 컴퓨터가 잘 학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p>

<h2 id="️-주의사항">⚠️ 주의사항</h2>

<p>컴퓨터가 단어의 사용 패턴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단어가 자료에 충분히 등장해야 합니다. 단어가 《삼국지》 텍스트에 출현한 횟수가 매우 적은 경우 모델이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해당 단어의 유사도는 신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p>

<p>문의사항이나 오류 제보는 이 포스트에 댓글로 남겨 주세요.</p>

<hr />

<h2 id="주석">주석</h2>
<div class="footnotes" role="doc-endnotes">
  <ol>
    <li id="fn:1">
      <p>사실 절대적인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비교입니다. 위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아雅의 《삼국지》 Word2Vec 모델에서 “유비劉備”와 가장 비슷한 단어는 “조공曹公”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비劉備”와 “조공曹公”의 코사인 유사도는 0.727로, “유비劉備”와 “선주先主”의 유사도였던 0.492보다 훨씬 높습니다. 즉, “유비劉備”는 《삼국지》에서 “선주先主”보다 “조공曹公”과 더 비슷한 쓰임을 보였다는 뜻입니다. <a href="#fnref:1"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ol>
</div>]]></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한나라 설정집"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삼국지" /><category term="Word2Vec" /><category term="코사인 유사도" /><category term="유비" /><category term="선주" /><category term="조조" /><category term="태조" /><category term="조공" /><category term="주유" /><category term="노숙" /><category term="여몽" /><category term="육손" /><category term="제갈량" /><category term="호칭어" /><summary type="html"><![CDATA[《삼국지》 텍스트를 Word2Vec 모델로 학습시켜, 특정 단어와 유사한 단어들을 찾아보는 탐색기를 만들었습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spy-zhuge-liang.pn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spy-zhuge-liang.pn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후한 말 군벌들의 황제 흉내</title><link href="https://zyahan.blog/playing-emperor/"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후한 말 군벌들의 황제 흉내" /><published>2026-05-31T09:44:00+09:00</published><updated>2026-05-31T09:44: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playing-emperor</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playing-emperor/"><![CDATA[<p>《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말, 이른바 “<a href="/yellow-turban/">황건의 난</a>”이 일어나고 황제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군벌들이 독자적으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들은 명목상 목, 자사, 태수 등 지방관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나라 황제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기주목 한복과 발해태수 원소는 “반동탁연합” 끝에 헌제 대신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려고 했고, 원술은 참위설을 근거로 스스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p>

<p>하지만 황제의 권위를 침범한 군벌은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헌제를 핍박했다고 평가받는 조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포스트에서 소개할 내용은 익주목 유언이나 형주목 유표처럼 일견 (군벌치고는) 온건한 이미지를 가진 이들의 사례입니다. 
이들은 황제를 옹립하거나 자칭하지 않았지만, 황제 전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기 갖추었습니다.</p>

<p>우선, 익주를 다스린 유언은 승여乘輿, 즉 황제만 탈 수 있는 수레를 만들었습니다.</p>

<blockquote>
  <p>유언의 야심은 점차 커져서, 승여乘輿의 수레를 만들어 1천여 대나 갖추었다.<sup id="fnref:1"><a href="#fn:1"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1</a></sup></p>

  <p><cite> 《삼국지》 촉지1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vz2xjqw_197">유언전</a>〉 </cite></p>
</blockquote>

<p>승여는 예전에 〈<a href="/crown-and-carriage/">면류관과 승여</a>〉에서 설명한 대로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하는 기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승여를 만들었다는 것은 황제의 권위를 자기의 것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삼국지》 본문에서도 유언의 뜻이 점차 성대해졌다고[焉意漸盛] 명시하고 있습니다.</p>

<p>또한, 형주를 다스린 유표는 천자만 거행할 수 있는 제사인 교사郊祀를 지냈습니다.</p>

<blockquote>
  <p>유표가 하늘에 교郊를 지내고 땅에 사祀를 지낼 때 한숭이 바른 말을 올렸으나 채택되지 못했고 점차 거슬리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 <sup id="fnref:2"><a href="#fn:2"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2</a></sup></p>

  <p><cite> 《삼국지》 위지6 〈유표전〉 주석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tmdxlix_17">선현행장</a>》</cite></p>
</blockquote>

<p>조조는 이 일을 빌미로 유표의 별가종사 유선에게 유표의 죄를 물어 공격하겠다고[奉辭伐罪]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자신의 격과 신분에 맞는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맨들에게 있어 더없이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삼국지》 위지29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voofl16_177">두기전</a>〉에서 유표는 두기와 맹요에게 한나라 황실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아악을 정비할 것을 명령해 놓고 정작 자신의 뜰에서 아악을 연주시키려고 해서 두기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p>

<p>이렇게 유언은 황제 전용 하드웨어에, 유표는 황제 전용 소프트웨어에 각기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지배하는 지역에 설치하고자 했습니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황제를 바꾸려고 한 한복과 원소, 황제를 자칭한 원술, 황제를 핍박한 조조와 달리 “역적”이라는 인상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법을 중시한 유교 사회에서 황제 전용 기물을 만들고 황제 전용 제사를 지내는 참월은 역적의 행위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유언과 유표가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를 바꾸거나 한나라 황실을 뒤엎으려고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지역 내에서는 자신이 황제라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p>

<hr />

<h3 id="원문">원문</h3>
<div class="footnotes" role="doc-endnotes">
  <ol>
    <li id="fn:1">
      <p>焉意漸盛，造作乘輿車具千餘乘。 <a href="#fnref:1"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2">
      <p>表郊祀天地，嵩正諫不從，漸見違忤。 <a href="#fnref:2"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ol>
</div>]]></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한나라 설정집"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삼국지" /><category term="한복" /><category term="원소" /><category term="원술" /><category term="조조" /><category term="유언" /><category term="유표" /><category term="승여" /><category term="교사" /><category term="유언전" /><category term="유표전" /><category term="두기전" /><category term="황제" /><category term="참월" /><summary type="html"><![CDATA[익주목 유언과 형주목 유표는 《삼국지》의 군벌치고는 온건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황제의 권위를 침범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유언은 황제만 탈 수 있는 수레인 승여를 제작했고, 유표는 천자만 거행할 수 있는 제사인 교사를 지냈습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chariot.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chariot.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彘(돼지 체)는 과연 인간돼지 때문에 사라졌나?</title><link href="https://zyahan.blog/zhi-taboo-debunked/"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彘(돼지 체)는 과연 인간돼지 때문에 사라졌나?" /><published>2026-05-23T13:42:00+09:00</published><updated>2026-05-23T13:42: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zhi-taboo-debunked</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zhi-taboo-debunked/"><![CDATA[<h3 id="彘돼지-체에-관한-인터넷-커뮤니티의-정설">彘(돼지 체)에 관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정설”</h3>

<p>2026년 5월 현재, 한국어 웹에서 <a href="/human-swine/">인간돼지[人彘]</a> 사건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이 사건 때문에 돼지 체(彘)라는 한자가 사라졌다”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a href="https://twitter.com/eenmzj/status/2057486611613626799">바로 어제 트위터에 게시된 만화</a>에서 촉발된 여러 게시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p>

<blockquote class="twitter-tweet"><p lang="ja" dir="ltr">人彘 <a href="https://t.co/NSAPohI81R">pic.twitter.com/NSAPohI81R</a></p>&mdash; ZZUM (@eenmzj) <a href="https://twitter.com/eenmzj/status/2057486611613626799?ref_src=twsrc%5Etfw">May 21, 2026</a></blockquote>
<script async="" src="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 charset="utf-8"></script>

<p><a href="https://twitter.com/BIG_GONGSUNGMAN/status/2057531670228832627">이 만화를 인용한 한 트윗</a>에 따르면, 인간돼지 사건 전까지 중국에서 돼지를 가리키는 한자로 彘(체)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해당 트윗은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시점에서 960회 넘게 리트윗되었고 1,600개가 넘는 마음을 받았습니다.</p>

<blockquote class="twitter-tweet"><p lang="ko" dir="ltr">원문의 척부인 사건때 사용된 단어가 인체(人彘)인데.<br /><br />저 체(彘)자가 저 당시까지만 해도 &#39;돼지&#39;라는 생물을 표현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다가<br /><br />저 사건 이후로 원래는 새끼 돼지를 뜻하던 돈(豚)이나, 암퇘지만을 뜻하던 저(豬)로 대체되어서 옥편 구석으로 밀려난 벽자가 되었답니다... <a href="https://t.co/D71Sm58W2R">https://t.co/D71Sm58W2R</a></p>&mdash; 공성맨 (@BIG_GONGSUNGMAN) <a href="https://twitter.com/BIG_GONGSUNGMAN/status/2057531670228832627?ref_src=twsrc%5Etfw">May 21, 2026</a></blockquote>
<script async="" src="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 charset="utf-8"></script>

<p>또한, 이 만화를 퍼 간 루리웹 게시물 〈<a href="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5280120">자기 아들을 충격먹어 죽게 만든 일화</a>〉의 댓글을 살펴보면, 돼지를 가리키는 말로 彘(체)가 豚(돈), 豬(저)와 함께 쓰이다가 인간돼지 사건 때문에 한나라 때부터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댓글은 비추천 없이 12회의 추천만 받았습니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img src="/assets/images/human-swine-ruliweb-comments.png" alt="돼지 돈, 저 등 돼지 체도 원래 병용되어 쓰였으나 진짜 한나라 때부터 체 자는 거의 쓰지 않음.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더라" />
    
    
        <figcaption>루리웹 〈자기 아들을 충격먹어 죽게 만든 일화〉 댓글</figcaption>
    
</figure>

<p>이 “정설”의 뿌리에 관해서는 직전 포스트 〈<a href="/zhi-taboo-myth/">彘(돼지 체)와 인간돼지 괴담</a>〉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나무위키에서 〈<a href="https://namu.wiki/w/%EC%B2%99%EB%B6%80%EC%9D%B8">척부인</a>〉, 〈<a href="https://namu.wiki/w/%E5%BD%98">彘</a>〉 등의 문서에서 신빙성 없는 썰로 시작했고, 이후 여러 편집자들이 근거도 없이 “병용되어 활발히 사용”, “사용 빈도가 급감” 등 마치 학술적으로 근거가 있는 듯한 말투로 윤색해 주면서 그럴듯한 “정설”의 모양을 갖추어 루리웹, 에펨코리아 등으로 전파된 것입니다. 나무위키와 남초커뮤니티에서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출처를 애써 탐색하는 호의를 베풀어 주자면 2019년 1월에 《중앙SUNDAY》에 실린 <a h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3263613">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기자의 칼럼</a>에서 원형의 일부를 찾을 수 있지만, 이 칼럼 또한 문헌 증거가 없는 민간어원설일 뿐입니다.</p>

<h3 id="彘돼지-체의-쓰임-변화">彘(돼지 체)의 쓰임 변화</h3>

<h4 id="무엇을-밝힐-것인가">무엇을 밝힐 것인가?</h4>

<p>정작 이 “정설” 자체는 반박할 가치가 없습니다. 애초에 彘(체)라는 글자가 인간돼지 사건으로 인해 사라졌다고 주장한 쪽에 인과관계를 입증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워낙 “정설”로 퍼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고, 결정적으로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기 앞서 현상 자체를 서술하는 단계에서 잘못되어 있으므로 정정이 필요합니다.</p>

<p><a href="https://x.com/BIG_GONGSUNGMAN/status/2057531670228832627">앞서 인용한 트윗</a>의 경우, 크게 두 개의 명제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p>

<blockquote>
  <ol>
    <li>저 체(彘)자가 저 당시까지만 해도 돼지라는 생물을 표현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다가</li>
    <li>저 사건 이후로 원래는 새끼 돼지를 뜻하던 돈(豚)이나, 암퇘지만을 뜻하던 저(豬)로 대체되어서 옥편 구석으로 밀려난 벽자가 되었답니다…</li>
  </ol>
</blockquote>

<p>사실 명제라고 치기에는 “당시까지”와 “이후”가 매우 모호합니다. 당시까지라면 언제부터 彘가 돼지라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인지? 이후라면 언제부터 彘가 밀려났다는 것인지? 게다가 豬(저)가 암퇘지만을 뜻했다는 것도 금시초문으로, 적어도 《설문해자》, 《이아》, 《석명》 등 후한시대 자전에서는 관련된 풀이를 찾을 수 없습니다.</p>

<p>“정설”을 최대한 정비해 주자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p>

<ul>
  <li>전제(현상 기술): 고대 중국에서 彘라는 글자가 돼지를 가리키는 뜻으로 활발히 쓰였다가 인간돼지 사건 이후로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li>
  <li>주장(원인 분석): 彘가 사라진 까닭은 사람들이 인간돼지 사건의 잔인함을 꺼렸기 때문이다.</li>
</ul>

<p>이 글에서는 일단 “정설”이 전제하는 현상을 검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된 레퍼런스는 아래의 두 학술논문입니다.</p>

<ul>
  <li>王彤伟. 〈<a href="https://journal.scu.edu.cn/info/1109/13195.htm">“豕、彘、猪”的历时演变</a>〉. 《四川大学学报(哲学社会科学版)》, 2010(1), 74–79.</li>
  <li>胡琳·张显成. 〈“豕、彘、猪”的历史演替：基于出土简帛新材料〉. 《求索》, 2015(2), 164–168.</li>
</ul>

<p>두 논문에서는 고대 중국에서 돼지를 통칭하는 용어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豕(시), 彘(체), 豬(저) 세 글자의 쓰임이 어떻게 경합하고 교체되었는지를 실제 자료에 근거하여 고찰했으므로 참고하기에 적절합니다.</p>

<h4 id="彘체-vs-豕시">彘(체) vs. 豕(시)</h4>

<h5 id="춘추시대까지-돼지의-통칭은-彘체가-아니라-豕시였다">춘추시대까지 돼지의 통칭은 彘(체)가 아니라 豕(시)였다</h5>

<p>“정설”을 따르자면 인간돼지 사건 이전까지 한자 彘(체)가 돼지를 가리키는 의미로 시종일관 활발하게 사용되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전세문헌 텍스트를 살펴보면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王彤伟(2010; 75)에서 지적했듯이 《시경》, 《서경》, 《역경》, 《논어》 등 이른 시기의 고전에서 돼지 일반을 가리키는 말은 豕(시)였고, 彘(체)와 豬(저)는 한 번도 출현하지 않은 것입니다.</p>

<h5 id="彘체는-전국시대에-들어서야-돼지를-가리켰다">彘(체)는 전국시대에 들어서야 돼지를 가리켰다</h5>

<p>彘(체)가 돼지를 가리키게 된 것은 인간돼지 사건의 시점에서 의외로 최근의 일입니다. 글자 자체는 갑골문에 존재했지만, 갑골문의 시대에는 제사나 부족의 명칭과 같은 고유명사로만 쓰였습니다(王彤伟 2010; 74). 이후 서주시대와 춘추시대를 지나서 전국시대가 되어야 《맹자》와 《장자》에서 동물 돼지의 의미로 쓰인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王彤伟 2010; 75).</p>

<p>그렇다고 해서 彘(체)가 豕(시)를 대체해서 곧바로 돼지의 새로운 표현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닙니다. 전국시대 말 《순자》, 《한비자》, 《여씨춘추》로 가면 彘(체)의 사용 빈도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豕(시)에 비해서는 쓰임이 여전히 제한적이었던 것입니다(王彤伟 2010; 75). 彘(체)는 대부분 집돼지에 한정되었고, 문법적으로 “돼지고기”와 같은 합성어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즉, “정설”의 전제와 달리 彘(체)는 진나라의 통일 직전 여불위의 시대까지도 활발하게 쓰였다고 보기 어렵습니다.</p>

<h5 id="彘체는-한나라가-되어서야-豕시를-대체했다">彘(체)는 한나라가 되어서야 豕(시)를 대체했다</h5>

<p>彘(체)의 용법 제한은 《회남자》, 《사기》, 《한서》 등 전한시대 문헌에서 풀립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전 시기에 돼지를 가리키는 데 豕(시)를 썼던 문장을 인용할 때 彘(체)로 수정한 사례가 여러 차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王彤伟 2010; 75-76). 예를 들어 전국시대 《순자》는 개돼지를 “狗豕(구시)”로 표현했지만, 전한시대 《회남자》에서 이 문장을 인용할 때는 “狗彘(구체)”로 바꾸어 썼습니다.</p>

<p>참고로 《회남자》의 대표 저자인 회남왕 유안은 인간돼지 사건 이후의 인물입니다. 만약 “정설”에 따라 彘(체)가 인간돼지 사건 이후로 기피되었다면, 사건 뒤에 나온 《회남자》가 《순자》에 없던 彘(체)를 굳이 새로 끌어다 쓸 까닭이 없습니다. 설사 《순자》가 彘(체)를 썼더라도 《회남자》에서는 다른 글자로 고쳐 쓰는 편이 자연스러웠을 텐데, 실상은 정반대였던 것입니다.</p>

<h5 id="소결">소결</h5>

<p>王彤伟(2010)의 연구를 토대로 彘(체)의 용법을 豕(시)와 비교해 본 결과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p>

<ol>
  <li>彘(체)는 한나라 이전까지만 해도 돼지를 가리키는 말로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다.</li>
  <li>오히려 인간돼지 사건 이후에 彘(체)는 쓰임이 확대되기도 했다.</li>
</ol>

<p>즉, 彘(체)가 인간돼지 사건 때문에 사장되었다는 “정설”은 전세문헌 자료에 전혀 들어맞지 않습니다.</p>

<h4 id="彘체-vs-豬저">彘(체) vs. 豬(저)</h4>

<h5 id="인간돼지-사건-이후-彘체가-豬저로-대체되었는가">인간돼지 사건 이후 彘(체)가 豬(저)로 대체되었는가?</h5>

<p>어쨌든 한나라 이후의 텍스트에서 彘(체)라는 글자가 흔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豬(저)가 돼지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히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기에서 彘(체)가 인간돼지 사건 때문에 豬(저)에게 밀려났다고 볼 여지는 없을까요? 王彤伟(2010)의 전세문헌 연구만 본다면 豬(저)가 후발주자로 등장해서 彘(체)를 밀어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후 나온 胡琳·张显成(2015)의 연구에서 죽간 등의 출토문헌까지 검토한 결과를 참고하면 이것 또한 실상과 다릅니다.</p>

<h5 id="彘체는-통일-진나라의-표준어로-강제되었다">彘(체)는 통일 진나라의 표준어로 강제되었다</h5>

<p>豬(저)는 이미 《수호지진간》 등 전국시대 진나라 시기의 자료에도 나타났습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야진간》의 “毋敢曰豬曰彘(무감왈저왈체)”라는 구절입니다. 胡琳·张显成(2015; 168)에서는 이 구절을 “감히 豬(저)라고 하지 말고 彘(체)라고 하라”라고 해석했습니다. 진나라가 통일 후 언어를 통일하면서 豬(저)를 금지하고 彘(체)를 강제한 것입니다. 豬(저)를 굳이 금지했다는 것은 이 글자가 진나라 통일 당시 중국에서 그만큼 널리 쓰이고 있었다는 단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잘 쓰이지 않는 말이면 애써 공문서로 금지할 필요까지 없었을 것입니다.</p>

<h5 id="豬저는-전한시대-구어로-통용되었다">豬(저)는 전한시대 구어로 통용되었다</h5>

<p>豬(저)가 진나라 통일 당시 널리 쓰이고 있었다면, 서면어에서 금지되었다고 하더라도 구어에서는 보존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시의 언어 정책으로 인해 彘(체)가 보급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는 말에는 豬(저)가 남아 있었고, 이것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한시대 말 양웅의 《방언》에 단서가 있습니다. 《방언》은 양웅이 당시의 지역방언을 조사해서 편찬한 책입니다. 여기에서 돼지를 대표하는 말은 彘(체)가 아니라 豬(저)였습니다.</p>

<h5 id="소결-1">소결</h5>

<p>돼지를 가리키는 말로 彘(체)는 진나라 통일 시기에 이미 豬(저)와 경쟁하고 있었고, 국가의 정책에 힘입어 서면어에서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가 구어에서 豬(저)를 이기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p>

<h3 id="요약">요약</h3>

<p>지금까지 논의한 것을 세 단계로 요약해 봅시다.</p>

<ol>
  <li>고대 중국에서 춘추시대까지 돼지 일반을 가리키는 말은 彘(체)가 아니라 豕(시)였습니다.</li>
  <li>전국시대 새로운 말로 彘(체)와 豬(저)가 경쟁하다가 彘(체)가 통일 진나라의 지원으로 서면어 표준어의 지위를 획득했습니다.</li>
  <li>한나라에서 구어로 살아남은 것은 彘(체)가 아닌 豬(저)였습니다.</li>
</ol>

<p>나무위키발 커뮤니티 “정설”의 전제는 1단계와 2단계에서 이미 무너집니다. 여기서 굳이 3단계만 잡고 彘(체)의 패배에 인간돼지의 영향도 있지 않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면 믿음의 영역이니까 아雅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p>

<hr />

<h3 id="참고문헌">참고문헌</h3>

<ul>
  <li>王彤伟. 〈<a href="https://journal.scu.edu.cn/info/1109/13195.htm">“豕、彘、猪”的历时演变</a>〉. 《四川大学学报(哲学社会科学版)》, 2010(1), 74–79.</li>
  <li>胡琳·张显成. 〈“豕、彘、猪”的历史演替：基于出土简帛新材料〉. 《求索》, 2015(2), 164–168.</li>
</ul>]]></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한나라 설정집"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彘" /><category term="돼지" /><category term="인간돼지" /><category term="나무위키" /><category term="트위터" /><category term="루리웹" /><category term="민간어원설" /><category term="도시전설" /><category term="어휘변화" /><category term="豕" /><category term="豬" /><category term="시경" /><category term="서경" /><category term="역경" /><category term="논어" /><category term="맹자" /><category term="장자" /><category term="여씨춘추" /><category term="순자" /><category term="한비자" /><category term="회남자" /><category term="사기" /><category term="한서" /><category term="수호지진간" /><category term="이야진간" /><summary type="html"><![CDATA[나무위키에서는 彘(돼지 체)라는 글자가 원래 활발히 쓰이다가 인간돼지 사건 때문에 사라졌다는 설을 언급했으나, 여기에는 학술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jade-pig.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jade-pig.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彘(돼지 체)와 인간돼지 괴담</title><link href="https://zyahan.blog/zhi-taboo-myth/"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彘(돼지 체)와 인간돼지 괴담" /><published>2026-05-22T14:04:00+09:00</published><updated>2026-05-22T14:04: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zhi-taboo-myth</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zhi-taboo-myth/"><![CDATA[<p>한자 彘는 ‘체’라고 읽고, 돼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가장 유명한 용례는 《사기》 〈여태후본기〉에 나오는 인체人彘, “인간돼지”입니다. “인간돼지”란 한나라 고제의 황후 여씨가 후궁 척 부인의 신체를 잔인하게 훼손한 사건으로, 이 블로그에서도 〈<a href="/human-swine/">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a>〉이라는 포스트로 상세히 다룬 적이 있습니다.</p>

<p>한국어 웹에서 이 한자를 찾으면 나무위키 〈<a href="https://namu.wiki/w/%E5%BD%98">彘</a>〉 문서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 문서에서는 ‘돼지 체’ 彘 한자가 널리 쓰이지 않는 까닭으로 여 태후의 인간돼지 사건을 언급합니다. 2023-09-20 08:42:46에 편집된 r6 판부터 이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p>

<blockquote>
  <p>원래 해당 한자는 고대에 돼지 돈, 돼지 저와 달리 활발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고한이 들어서면서 한태조의 첩이었던 척부인이 여치에 의해 인간돼지 형벌을 받게되며, 민간에서 해당 한자를 꺼리게 되어 사문화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p>

  <p><cite>
<a href="https://namu.wiki/w/%E5%BD%98?uuid=b82f36ca-4b08-44a1-82c8-7dc265fab251">나무위키 - 彘 (r6 판)</a>
</cite></p>
</blockquote>

<p>“고한”, “한태조” 등 잘 쓰이지 않는 용어도 수상하거니와, 주장의 출처도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r6 판 이래로 지금까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彘〉 문서가 여러 차례 수정되어 왔지만, 이 주장은 삭제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살이 더 붙었습니다.</p>

<blockquote>
  <p>원래 해당 한자는 고대에 豚(돼지 돈), 豬(돼지 저), 豕, 豭(수퇘지 가) 등과 병용되어 활발히 사용되었으나, 한나라 왕조가 들어서면서 사용 빈도가 급감한다. 한태조의 첩이었던 척부인이 여치에 의해 인간돼지(人彘, 인체) 형벌을 받아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민간에 알려져 해당 한자의 사용을 꺼리게 되어 사문화되었다는 설이 있다.</p>

  <p><cite>
<a href="https://namu.wiki/w/%E5%BD%98?uuid=220d2d47-e619-424b-a232-8cf3934bdfdb">나무위키 - 彘 (r19 판)</a>
</cite></p>
</blockquote>

<p>〈彘〉 r19 판에서는 “병용되어 활발히 사용”, “사용 빈도가 급감한다”로 더욱 그럴듯한 표현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장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p>

<p>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나무위키에서 이 주장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아마도 〈<a href="https://namu.wiki/w/%EC%B2%99%EB%B6%80%EC%9D%B8">척부인</a>〉 문서의 r19 판인 듯합니다. 2021-08-30 22:41:36에 처음 삽입된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p>

<blockquote>
  <p>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인들이 돼지 체(彘)라는 글자를 꺼려했다고 하니 그 잔인함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능하다.</p>

  <p><cite>
<a href="https://namu.wiki/w/%EC%B2%99%EB%B6%80%EC%9D%B8?uuid=68005915-43b2-4a4a-8bbc-fd2055c87038">나무위키 - 척부인 (r19 판)</a>
</cite></p>
</blockquote>

<p>이 썰에는 출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썰이 나온 〈척부인〉 문서 r19 판의 <a href="https://namu.wiki/diff/%EC%B2%99%EB%B6%80%EC%9D%B8?uuid=68005915-43b2-4a4a-8bbc-fd2055c87038">편집 이력</a>을 보면, 출처가 없다는 문제는 사소해 보일 지경입니다.</p>

<figure>
    <img src="/assets/images/lady-qi-namuwiki-r18-r19.png" alt="나무위키 척부인 (비교) r18 vs r19" />
</figure>

<p>이 r19 판에서는 척 부인이 “태형을 받고” “우선 죄수들에게 던져 강간을 당하게 한 후” 인간돼지로 만들어졌다고 서술해 놓았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들은 이후의 편집 과정에서 차츰 삭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彘라는 글자를 꺼렸다는 썰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수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썰은 적극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026년 5월 22일 시점의 최신판을 읽어봅시다.</p>

<blockquote>
  <p>당시에는 돼지를 표기한 한자로 돼지 체(彘)를 사용한 비율이 지금보다는 높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이 인체 사건으로 인해 돼지 체(彘)보다는 돼지 돈(豚)이나 돼지 저(豬)의 비율이 늘어나 이후 체(彘)는 90년 후의 순체의 이름, 200여 년 후의 고구려 동천왕의 아명에서나 겨우 보이고, 지금은 옥편 귀퉁이에서나 볼 수 있는 벽자가 되었다.</p>

  <p><cite>
<a href="https://namu.wiki/w/%EC%B2%99%EB%B6%80%EC%9D%B8?uuid=be3bb499-5414-42ee-b871-a99aca72b2a6">나무위키 - 척부인 (r1748 판)</a>
</cite></p>
</blockquote>

<p>처음에 척 부인이 감옥에서 윤간을 당했다는 터무니없는 괴담과 같은 수준으로 등장했던 썰이,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이는 문장으로 윤색되어 한국어 웹에 전파된 것입니다. 실제로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a href="https://bbs.ruliweb.com/etcs/board/300781/read/59935241">루리웹</a>, <a href="https://www.fmkorea.com/7576371022">에펨코리아</a> 등 여러 남초커뮤니티에서 이 썰을 의심 없이 퍼 나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p>

<figure>
    <img src="/assets/images/lady-qi-google.png" alt="사람돼지 인체人彘가 된 척부인 얘기로 바뀐 한자 이야기, 너무 잔혹해서 단어까지 없애버린 중국 고문 - 미스터리/공포" />
</figure>

<p>이 썰이 성립하려면, 일단 한나라 초 인간돼지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彘라는 한자가 돼지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줄어들든지 사라지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위키의 숱한 편집자들 중에서, 전세문헌이든 출토문헌이든 인간돼지 사건 이전에 彘가 얼마나 등장했는지를 실제로 세어보거나 찾아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돼지를 표기한 한자로 돼지 체(彘)를 사용한 비율이 지금보다는 높았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정보량 없는 문장뿐입니다.</p>

<p>인간돼지 사건은 분명히 끔찍합니다. 彘라는 한자가 이 사건 때문에 꺼려졌다는 민간어원설이 어디선가 생겼을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인간돼지 사건에 대한 민간의 인식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썰이 彘의 분포 변화에 대한 유의미한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p>

<p>참고로 전국시대와 진한시대에 돼지를 가리키는 한자로 豕(시), 彘(체), 猪(저) 세 글자의 쓰임이 어떻게 경합하고 교체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미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내용이므로 다음 포스트 〈<a href="/zhi-taboo-debunked/">彘(돼지 체)는 과연 인간돼지 때문에 사라졌나?</a>〉에서 상세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p>

<ul>
  <li>王彤伟. 〈<a href="https://journal.scu.edu.cn/info/1109/13195.htm">“豕、彘、猪”的历时演变</a>〉. 《四川大学学报(哲学社会科学版)》, 2010(1), 74–79.</li>
  <li>胡琳·张显成. 〈“豕、彘、猪”的历史演替：基于出土简帛新材料〉. 《求索》, 2015(2), 164–168.</li>
</ul>

<hr />

<h3 id="썰의-출처에-관한-덧붙임2026-05-23-0427">썰의 출처에 관한 덧붙임(2026-05-23 04:27)</h3>

<p>이 포스트를 업로드한 뒤, 2019년 1월에 《중앙SUNDAY》에 실린 <a h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3263613">베이징 특파원 신경진 기자의 칼럼</a>에서 중국인이 인간돼지 사건으로 인해 돼지 체(彘) 사용을 꺼렸다고 언급한 것을 찾았습니다.</p>

<blockquote>
  <p>체(彘)는 큰 돼지다. 저와 돈을 섞어 쓰는 중국에 유독 체는 쓰지 않는다. 한(漢)을 세운 유방(劉邦)의 부인 여후(呂后)와 척부인(戚夫人)의 악연 때문이다. 척부인이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 한 데 앙심을 품은 여후는 유방이 죽자 척부인을 ‘인체(人彘)’로 만들었다. 산 채로 팔다리를 자르고 귀에 청동을 붓고 혀를 잘랐다. 말 그대로 ‘사람 돼지’를 만든 잔혹한 형벌이다. 이후 중국인은 돼지 체(彘) 사용을 꺼렸다.</p>

  <p><cite>
신경진. 〈[漢字, 세상을 말하다] 肥猪拱門&lt;비저공문&gt;〉. 《중앙SUNDAY》 617호 29면. 2019.01.05 00:20 입력. [<a h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3263613">기사 링크</a>]
</cite></p>
</blockquote>

<p>이 칼럼에서도 문헌 근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 칼럼은 그냥 돼지해를 맞아 돼지를 가리키는 한자와 관련된 잡담으로 민간어원설을 소개한 것뿐입니다. 나무위키에 이런 유형의 썰을 출처 없이 가져다 쓴 자는 정보의 층위를 구분하지 못했고, 이후 나무위키에서 해당 부분을 편집한 자들은 민간어원설을 그럴듯한 사실처럼 윤색하는 데 적극적으로 가담한 셈입니다. 이들의 윤색으로 인해, 아래의 트윗과 같이 인간돼지 사건 이전 ‘彘’가 돼지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많이 쓰였다는 허위 정보가 거침없이 통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p>

<blockquote class="twitter-tweet"><p lang="ko" dir="ltr">원문의 척부인 사건때 사용된 단어가 인체(人彘)인데.<br /><br />저 체(彘)자가 저 당시까지만 해도 &#39;돼지&#39;라는 생물을 표현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다가<br /><br />저 사건 이후로 원래는 새끼 돼지를 뜻하던 돈(豚)이나, 암퇘지만을 뜻하던 저(豬)로 대체되어서 옥편 구석으로 밀려난 벽자가 되었답니다... <a href="https://t.co/D71Sm58W2R">https://t.co/D71Sm58W2R</a></p>&mdash; 공성맨 (@BIG_GONGSUNGMAN) <a href="https://twitter.com/BIG_GONGSUNGMAN/status/2057531670228832627?ref_src=twsrc%5Etfw">May 21, 2026</a></blockquote>
<script async="" src="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 charset="utf-8"></script>

<p>공교롭게도, 《중앙SUNDAY》 해당 칼럼 말미에서 마오쩌둥의 어록을 인용하며 꼬집은 행태가 나무위키 편집자들에게 꼭 들어맞습니다. 😏</p>

<blockquote>
  <p>마오쩌둥(毛澤東) 어록에도 돼지가 등장한다. 1945년 4월 옌안(延安) 7차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다. 마오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훔치지 말고, 꾸미지 말고, 허풍떨지 말라(不偸·不裝·不吹)”고 강조했다. 특히 거짓 꾸밈을 경계해 “돼지코에 파 뿌리를 꽂고 코끼리인 척하는(猪鼻子里插葱 裝象)” 행태를 금했다.</p>

  <p><cite>
신경진. 〈[漢字, 세상을 말하다] 肥猪拱門&lt;비저공문&gt;〉. 《중앙SUNDAY》 617호 29면. 2019.01.05 00:20 입력. [<a href="https://www.joongang.co.kr/article/23263613">기사 링크</a>]
</cite></p>

</blockquote>]]></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잡담"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彘" /><category term="돼지" /><category term="인간돼지" /><category term="나무위키" /><category term="루리웹" /><category term="에펨코리아" /><category term="오류" /><category term="척부인" /><category term="사기" /><category term="여태후본기" /><summary type="html"><![CDATA[나무위키 彘(돼지 체) 문서에서는 이 글자가 여 태후의 인간돼지 사건 때문에 쓰이지 않게 되었다는 설을 언급합니다. 과연 믿을 만한 이야기일까요?]]></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haozhi-tu.jp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haozhi-tu.jp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삼국지》와 《삼국연의》의 은애(恩愛)</title><link href="https://zyahan.blog/enai-in-sanguo/"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삼국지》와 《삼국연의》의 은애(恩愛)" /><published>2026-05-21T17:35:00+09:00</published><updated>2026-05-21T17:35: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enai-in-sanguo</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enai-in-sanguo/"><![CDATA[<p>이 글에서는 역사책 《삼국지》와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은애恩愛라는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p>

<p>“은애하다”는 현대한국어 “동양풍” 로맨스에서 “사랑하다”를 대신하여 자주 쓰이는 단어입니다. 
《춘향전》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은애했다는 표현은 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한국 문학 전통보다는 현대중국어 恩愛(ēn’ài)에서 온 것 같습니다.</p>

<h3 id="현대중국어-사전의-은애恩愛">현대중국어 사전의 은애恩愛</h3>

<p>중국어에서 恩愛는 어떤 의미일까요? 가장 권위있는 사전으로 중화민국 교육부에서 편찬한 《중편국어사전수정본重編國語辭典修訂本》에서 이 단어를 어떻게 풀이했는지 살펴봅시다.</p>

<blockquote>
  <p>쌍방이 진실하게 서로 사랑하는 것. 부부 사이의 사랑을 가리킬 때가 많다.<sup id="fnref:1"><a href="#fn:1"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1</a></sup></p>

  <p><cite><a href="https://dict.revised.moe.edu.tw/dictView.jsp?ID=148266">恩愛 - 教育部《重編國語辭典修訂本》2021</a>.</cite></p>
</blockquote>

<p>부부 사이의 사랑을 가리킬 때가 많다고 합니다. 좀 더 실용적인 자료로 위키사전 중국어판도 확인해 봅시다.</p>

<blockquote>
  <ol>
    <li>(고어) 인애仁愛</li>
    <li>반려 사이의 진실한 사랑<sup id="fnref:2"><a href="#fn:2"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2</a></sup></li>
  </ol>

  <p><cite><a href="https://zh.wiktionary.org/wiki/%E6%81%A9%E6%84%9B">恩愛 - 维基词典</a>.</cite></p>
</blockquote>

<p>여기서는 옛날의 뜻과 지금의 뜻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은애恩愛가 반려 사이의 사랑만을 가리키게 된 것은 현대의 용법이라는 사실입니다.</p>

<h3 id="삼국지의-은애恩愛">《삼국지》의 은애恩愛</h3>

<p>즉, 옛날의 은애恩愛는 오히려 연인들의 로맨틱한 애정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3세기의 역사책 《삼국지》만 해도 ‘恩愛’가 훨씬 다양한 의미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봅시다.</p>

<p>우선, 손권과 주연이 어린 시절 같은 책으로 공부하며 쌓은 우정도 은애恩愛라고 표현했습니다.</p>

<blockquote>
  <p>주연은 일찌기 손권과 같이 글을 배우며 <strong>은애恩愛</strong>를 맺었다.<sup id="fnref:3"><a href="#fn:3"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3</a></sup></p>

  <p><cite>
《삼국지》 오지11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xs5duev_361?paragraphId=LS0004_1_2372">주연전</a>〉
</cite></p>
</blockquote>

<p>또한, 제갈각은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은애恩愛라고 표현했습니다.</p>

<blockquote>
  <p>어머니가 딸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strong>은애恩愛</strong>가 지극합니다. 어머니가 딸의 귀를 뚫고 구슬을 달아 주는데 어짊에 무슨 손상이 있겠습니까?<sup id="fnref:4"><a href="#fn:4"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4</a></sup></p>

  <p><cite>
《삼국지》 오지19 〈제갈각전〉 주석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yablhrv_388?paragraphId=LS0004_1_2666">제갈각별전</a>》
</cite></p>
</blockquote>

<p>이뿐만 아니라 황제가 신하를 존중하는 것도 은애恩愛라고 표현했습니다.</p>

<blockquote>
  <p>또한 이는 선제께서 존중하신 대신이니, 은애恩愛가 지극히 깊고 두터운 것입니다.<sup id="fnref:5"><a href="#fn:5"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5</a></sup></p>

  <p><cite>
《삼국지》 위지9 〈조상전〉 주석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tvolr20_37?paragraphId=LS0004_1_543">위서</a>》
</cite></p>
</blockquote>

<p>이렇게 《삼국지》에서 은애恩愛는 가족, 친구, 군신 등 여러 인간관계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니-딸, 군주-신하와 같이 수직적인 관계도 포함했습니다.</p>

<h3 id="삼국연의의-은애恩愛">《삼국연의》의 은애恩愛</h3>

<p>그렇다면 언제부터 은애恩愛가 로맨틱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게 되었을까요? 뜻밖에도 소설 《삼국연의》의 편집 역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p>

<p>은애의 주인공은 위나라 명제 조예와 황후 모씨입니다. 역사책 《삼국지》의 기록을 먼저 살펴봅시다.</p>

<blockquote>
  <p>명도모황후는 하내군 사람이다. 황초 연간에 선발되어 동궁에 들어왔다. 이때 평원왕이었던 명제가 <strong>가까이 두고 총애하여 수레와 가마를 같이 타고 나들었다</strong>. 즉위한 후 귀빈貴嬪으로 삼았다. 태화 원년에 황후로 옹립했다.<sup id="fnref:6"><a href="#fn:6"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6</a></sup></p>

  <p><cite>
《삼국지》 위지5 〈후비전·<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tht73uf_11">명도모황후明悼毛皇后</a>〉
</cite></p>
</blockquote>

<p>3세기 사람 진수는 《삼국지》에서 조예가 모씨를 총애해서 수레와 가마를 같이 탔다고 표현했습니다. 14세기 사람 나관중은 소설 《삼국연의》에서 이 부분을 가져오며 약간 축소했습니다. 수레와 가마 중에서 수레를 생략하고, 귀빈貴嬪이라는 생소한 후궁 칭호를 삭제했습니다.</p>

<blockquote>
  <p>황후 모씨는 하내군 사람이다. 앞서 조예가 평원왕이었던 시절 <strong>가마를 같이 타고 나들었고</strong>, 황제로 즉위한 후에도 총애해서 후비로 삼았다. 태화 원년에 황후로 옹립했다.<sup id="fnref:7"><a href="#fn:7"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7</a></sup></p>

  <p><cite>
《삼국지통속연의》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CADAL02111749/chapter/1lcu5iffoi2ba?paragraphId=7561444866773827593">권지이십일卷之二十一</a>〉
</cite></p>
</blockquote>

<p>이후 17세기 사람 모종강은 나관중의 소설을 편집하면서 해당 부분을 더욱 간략하게 줄였습니다. 여기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마를 같이 타고 나들었다는 표현을 삭제했다는 것입니다. 도학자 스타일이었던 모종강이 보기에는 예법상 부적절한 묘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p>

<blockquote>
  <p>그건 그렇고 조예의 황후 모씨는 하내군 사람이다. 앞서 조예가 평원왕이었을 때부터 <strong>서로 가장 은애했다</strong>. 황제로 즉위한 후 황후로 옹립했다.<sup id="fnref:8"><a href="#fn:8"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8</a></sup></p>

  <p><cite>
《사대기서제일종》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NA11031/chapter/1lmi8mmr34he7?paragraphId=7584725022657921059">권오십삼卷五十三·제일백오회第一百五回</a>〉
</cite></p>
</blockquote>

<p>진수의 글과 나관중의 글에서는 조예가 모씨를 총애했는데[寵], 몇백 년 뒤 모종강의 편집을 거치면서 조예와 모 황후는 서로를 은애하게 되었습니다[相恩愛]. 일방적인 총애가 쌍방향의 은애로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는 명백히 로맨틱한 애정입니다.</p>

<p>3세기 삼국–서진 사람 진수는 황제 조예가 황후 모씨를 총애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14세기 원–명 사람 나관중은 이 기록을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청나라 사람 모종강에게 있어 이 관계는 은애恩愛로 표현 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 은애恩愛는 많은 경우 일방적인 감정이었지만, 모종강의 《사대기서》 시리즈에서는 황후도 황제를 은애恩愛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동아시아의 로맨스 장르에서 은애恩愛가 연인 사이의 애정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입니다.</p>

<hr />

<h3 id="원문-및-주석">원문 및 주석</h3>
<div class="footnotes" role="doc-endnotes">
  <ol>
    <li id="fn:1">
      <p>彼此真切的相愛。多指夫妻間的愛。 <a href="#fnref:1"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2">
      <p>伴侶之間真切的愛 <a href="#fnref:2"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3">
      <p>然嘗與權同書學，結恩愛。 <a href="#fnref:3"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4">
      <p>母之於女，恩愛至矣，穿耳附珠，何傷於仁？ <a href="#fnref:4"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5">
      <p>斯亦先帝敬重大臣，恩愛深厚之至也。 <a href="#fnref:5"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6">
      <p>明悼毛皇后，河内人也。黄初中，以選入東宫，明帝時爲平原王，進御有寵，出入與同輿輦。及即帝位，以爲貴嬪。太和元年，立爲皇后。 <a href="#fnref:6"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7">
      <p>有皇后毛氏，乃河内人也。先年叡爲平原王時，出入同輦，及即帝位，寵爲后妃。太和元年，立爲皇后。 <a href="#fnref:7"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8">
      <p>却説曹叡之后毛氏，乃河内人也。先年叡爲平原王時，最相恩愛，及卽帝位，立爲后。 <a href="#fnref:8"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ol>
</div>]]></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삼국연의 읽기"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손권" /><category term="주연" /><category term="제갈각" /><category term="조상" /><category term="사마의" /><category term="조예" /><category term="명도모황후" /><category term="은애" /><category term="恩愛" /><category term="삼국지" /><category term="진수" /><category term="삼국지통속연의" /><category term="나관중" /><category term="모종강" /><category term="어휘변화" /><summary type="html"><![CDATA[한자문화권에서 은애(恩愛)는 원래부터 로맨틱한 감정을 가리키는 말이었을까요? 역사책 《삼국지》와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의 판본들에서 단서를 찾아봅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kissing-cats.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kissing-cats.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title><link href="https://zyahan.blog/meihua-yixiang/"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published>2026-04-02T14:22:00+09:00</published><updated>2026-04-02T14:22: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meihua-yixiang</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meihua-yixiang/"><![CDATA[<p>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a href="/song-ming-sachets/">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a>〉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a href="https://www.postype.com/@hanshu/post/14825048">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a>,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p>

<p>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HY1353/chapter/1kednyfpgkp3v">훈패지향</a>〉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img src="/assets/images/meihua-yixiang-xiangsheng.png" alt="매화의향(무). 영릉향, 감송, 백단, 회향 각 5돈. 정향, 목향 각 1돈. 이상의 재료를 거칠게 가루내어 용뇌를 소량 넣고 주머니에 담는다." />
    
    
        <figcaption>《향승》 권19 〈훈패지향〉에 나온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조법</figcaption>
    
</figure>

<p>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정향丁香, 목향木香, 용뇌龍腦가 필요합니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img src="/assets/images/meihua-yixiang-ingredients.png" alt="영릉향, 감송향, 백단향, 회향, 정향, 목향, 용뇌" />
    
    
        <figcaption>매화의향梅花衣香 재료</figcaption>
    
</figure>

<p>만드는 방법은 얼핏 보면 간단한 것 같습니다.
영릉향부터 목향까지 여섯 가지 재료를 거칠게 간 다음 용뇌를 추가하면 끝입니다. 
실제로 예전에 만들었을 때는 <a href="https://www.postype.com/@hanshu/post/14825048">용뇌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한 번에 믹서에 넣고 갈아 버렸습니다</a>.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우악스러운 방법입니다.</p>

<p>이 방법의 문제는 일단 각 재료의 물성을 고려하지 않고 한 번에 갈아서 가루 입자가 고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재료를 적절히 가공하지 않고 통째로 믹서에 넣었기 때문에 향이 제대로 우러나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매화의향에서는 목향木香이 두드러졌습니다. 
배합을 보면 전체의 1/22에 불과한 목향이 왜 이렇게까지 튀는지가 의아했지만, 매화의향의 진짜 냄새를 몰랐으므로 그냥 원래 목향의 향이 강한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습니다.</p>

<p>하지만 최근 텀블벅 프로젝트 《<a href="https://tumblbug.com/four-treaures-of-plum">매화사보: 소매 끝에서 풍기는 매화의 냉향</a>》을 준비하면서는 매화의향을 대강 만들 수 없었습니다. 
후원해 주신 분들께 제대로 된 향을 전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일단 믹서를 버리고 모든 재료를 손절구로 일일이 빻기로 했습니다.</p>

<p>애초에 믹서를 썼던 까닭은 영릉향과 감송을 손절구로 빻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잎을 쓰는 영릉향은 잎자루가, 뿌리를 쓰는 감송은 껍질과 잔뿌리가 질겨서 가루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릉향과 감송을 잘 빻을 수 있을지 검색해 보니, 애초에 영릉향과 감송을 통째로 빻으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strong>향을 만들 때 영릉향은 잎자루를 버리고 잎몸만 사용해야 하며, 감송은 껍질과 잔뿌리를 제거한 상태로 사용해야 했던 것입니다.</strong></p>

<p>약재상에서 영릉향을 구매하면 어디서 사든 잎자루가 잎몸에 붙어 있는 상태로 옵니다. 
심지어 향도 없는 잎자루의 양이 향이 있는 잎몸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니 잎자루를 포함한 상태로 계량해서 사용했을 때 실제로 향이 나는 부분은 절반도 안 되었던 것입니다. 
텀블벅 프로젝트에서는 영릉향 108그램이 필요했기 때문에, 잎자루가 포함된 상태에서는 200그램 이상을 손질해야 했습니다. 
잎에서 잎자루를 분리해 주는 기계가 없으므로 손으로 잎자루를 일일이 따서 버리고 잎몸만 남겼습니다.</p>

<table>
  <thead>
    <tr>
      <th style="text-align: center">영릉향 잎자루/잎몸 분리 후</th>
    </tr>
  </thead>
  <tbody>
    <tr>
      <td style="text-align: center"><img src="/assets/images/linglingxiang-after.jpeg" alt="영릉향이 잎자루와 잎몸으로 분리되어 있다." /></td>
    </tr>
  </tbody>
</table>

<p>다음으로 감송은 껍질과 잔뿌리가 제거된 형태로 파는 곳을 찾아서 새로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감송 뿌리 하나하나는 굵고 길고 질기기 때문에 손절구에 그대로 넣으면 분쇄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송 108그램도 손으로 하나하나 잘라서 작은 조각으로 만든 다음에야 빻았습니다.</p>

<table>
  <thead>
    <tr>
      <th style="text-align: center">손질 전</th>
      <th style="text-align: center">손질 후</th>
    </tr>
  </thead>
  <tbody>
    <tr>
      <td style="text-align: center"><img src="/assets/images/spikenard-before.jpeg" alt="감송 뿌리들이 접시에 통째로 쌓여 있다." /></td>
      <td style="text-align: center"><img src="/assets/images/spikenard-after.jpeg" alt="감송 뿌리들이 잘게 잘려 있다." /></td>
    </tr>
  </tbody>
</table>

<p>이렇게 손질을 끝낸 뒤 모든 재료를 따로따로 손절구로 빻았습니다. 
서로 다른 재료를 함께 빻으면 가루가 고르게 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img src="/assets/images/incense-kitchen.jpeg" alt="테이블 위에 저울, 절구, 향 재료 등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
    
    
        <figcaption>향 제작 작업대</figcaption>
    
</figure>

<p>원재료의 배합 비율을 유지하면서 총 17그램을 맞추기 위해 영릉향, 감송, 백단, 회향 각 3.75그램, 정향, 목향 각 0.75그램씩을 취해서 섞은 뒤 용뇌 0.5그램을 추가해서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이번에는 주재료인 영릉향과 감송의 향이 충분히 우러나와서 목향이 튀지 않고 조화로운 향기를 내게 되었습니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img src="/assets/images/meihua-yixiang-packed.jpeg" alt="작은 부직포 주머니가 가로와 세로 두 방향으로 늘어져 있다. 주머니 안에 향가루가 가득 담겨 있다." />
    
    
        <figcaption>매화의향梅花衣香 포장 완료.</figcaption>
    
</figure>]]></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잡담"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향" /><category term="향낭" /><category term="향승" /><category term="훈패지향" /><category term="매화의향" /><category term="영릉향" /><category term="감송" /><category term="회향" /><category term="백단향" /><category term="목향" /><category term="정향" /><category term="용뇌" /><summary type="html"><![CDATA[송나라 사람들이 옷에 향기를 입히는 데 썼던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겠습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spikenard.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spikenard.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title><link href="https://zyahan.blog/mei-in-wu-and-yue/"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published>2026-03-10T20:37:00+09:00</published><updated>2026-03-10T20:37: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mei-in-wu-and-yue</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mei-in-wu-and-yue/"><![CDATA[<p>지난 포스트 〈<a href="/mei-flower-or-fruit/">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a>〉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p>

<p>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a href="https://www.iplant.cn/info/Prunus%20mume?t=focn">《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a>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시경》의 시대에 장강 북쪽의 중원에서는 매화나무가 친숙한 토종 식물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국적인 매력을 풍겼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쨌든 매실을 따 먹을 수 있을 만큼은 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바로 이 애매한 거리감 때문에 매화나무를 감상하는 풍토가 충분히 자리잡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p>

<h3 id="매화나무의-땅-오월吳越-지역">매화나무의 땅, 오월吳越 지역</h3>

<p>앞서 〈<a href="/mei-flower-or-fruit/">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a>〉에서 세어본 것처럼 한나라 때까지의 문헌에서 梅(매)라는 글자는 총 132번 출현했습니다. 그중에서 인명이 27건, 지명이 13건이었습니다. 132건 중 40건이 고유명사였다는 것은 작은 비중이 아닙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고유명사로 표현된 인물과 지역이 (출신지가 명시되지 않은 상商나라 매백梅伯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국에서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오월 지방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 이상 출현한 고유명사를 하나씩 살펴봅시다.</p>

<h4 id="장군-매현의-활약">장군 매현의 활약</h4>

<p>《사기》 〈항우본기〉와 〈고제본기〉에는 파군番君 오예吳芮의 장수 매현梅鋗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오예는 원래 진秦나라 파양番陽의 현령이었다가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예의 장수 매현이 유방의 군대와 협력하여 함께 여러 성을 항복시켰습니다. 진나라가 멸망한 후 매현은 공로를 인정받아 십만 호의 식읍을 거느린 제후가 되었습니다.</p>

<h4 id="매령을-넘어">매령을 넘어</h4>

<p>다음으로 한자 梅(매)가 포함된 지명으로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사기》 〈동월열전〉의 매령梅領이라는 고개입니다. 
전한시대 무제는 영토를 확장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각지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동남쪽 이민족 동월東越을 침공하기 위해 먼저 이 매령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p>

<p>지도로 살펴보면 매령은 매현의 근거지였던 파양 인근에 위치해 있고, 매령의 ‘매’는 매현의 성씨 ‘매’와 같습니다. 성씨는 조상이 봉토로 받은 지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매梅 또한 지명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매화나무가 많은 지역이었을지도 모릅니다.</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img src="/assets/images/mei-map.png" alt="중국 지도. 장강 이남에 매령과 파양이 표시되어 있다." />
    
    
        <figcaption>매령梅領과 파양番陽의 위치</figcaption>
    
</figure>

<p>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지역은 장강 하류 이남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나라의 수도 장안과 낙양에서 동남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 매화나무가 많아서 매梅라는 지명이 붙은 것이라면, 매화나무는 중원 사람들보다 남방 사람들에게 익숙했을 나무입니다.</p>

<h4 id="선비-매복의-지조">선비 매복의 지조</h4>

<p>한나라 초까지 매현이 활동한 이래로 매씨 성을 가진 명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전한 말입니다. 《한서》 〈매복전〉에 나오는 매복梅福은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갔으나 여러 차례 조정에 글을 올려 정세에 대한 의견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한나라는 멸망했습니다. 왕망이 집권하자 매복은 처자식을 버리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왕망이 멸망한 뒤 후한이 들어선 뒤에도 매복은 회계군, 오군 등 오월 지역 등지에서 목격되었다고 합니다.</p>

<h3 id="남북조-시대-남방의-매화-문화">남북조 시대 남방의 매화 문화</h3>

<p>이렇게 고유명사로서 梅(매)는 중국 남방에서 주로 출현했습니다. 인명과 지명에 쓰인 梅(매)가 매화나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리라고 곧바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의 범위가 중원에서 남쪽으로 확대되는 시기 매화 문화가 함께 발달했다는 사실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p>

<h4 id="일지매-매화-나무-한-가지">일지매, 매화 나무 한 가지</h4>

<p>일지매一枝梅. 만화가 고우영의 작품에 나오는 의적의 활동명으로 유명하지만, 이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한시대 말에 활동한 학자 유향이 고금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엮은 《설원》에 월나라 사자가 양나라 왕에게 매화 나무 한 가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나라 신하 한 사람이 이 보잘것없는 선물에 격분해서 사자를 모욕했지만, 사자는 오히려 논리적인 언변으로 반격했습니다. 여기에서 한나라 사람들이 매화나무 가지를 오나라·월나라의 대표 아이템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p>

<p>이것은 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의 육개도 당사자로서 인정한 바입니다.</p>

<blockquote>
  <p>折梅逢驛使 매화를 꺾다가 우체부 만나<br />
寄與隴頭人 농서에 거하는 사람에게 부치네<br />
江南無所有 강남에 사는 자 가진 게 없어<br />
聊贈一枝春 그나마 봄날의 나뭇가지 보내네</p>

  <p><cite>육개陸凱, 〈증범엽시贈範曄詩〉.</cite></p>
</blockquote>

<p>오군 사람인 육개는 북방 출신 친구 범엽에게 강남에는 있는 게 없어서 매화나무 가지를 보낸다고 장난스럽게 말했습니다.</p>

<h4 id="남조-황실의-매화꽃-감상">남조 황실의 매화꽃 감상</h4>

<p>남북조시대 남조에서 매화 감상은 황족의 고급 취미로 격상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매화꽃으로 이마를 장식한 송나라 수양공주의 매화장梅花粧, 쌓인 눈을 뚫고 매화를 찾아나선 양나라 간문제의 여러 시 작품입니다.</p>

<p>남북조시대의 매화 문화에 관해서는 아래의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자세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p>

<div class="buy-button">
    <a href="https://tum.bg/hwEBJM" target="_blank">🌼 매화사보: 소매 끝에서 풍기는 매화의 냉향 </a>
</div>

<p>매화향을 오래 즐길 수 있는 네 가지 선물을 알아보세요!</p>

<figure class="image" style="text-align:center;">
    
        <a href="https://tum.bg/hwEBJM"><img src="/assets/images/meihua-4bo-new-merged.png" alt="녹악매, 매화의향, 매화 모양 동전, 매화 무늬 주머니" /></a>
    
    
        <figcaption>매화사보: 소매 끝에서 풍기는 매화의 냉향</figcaption>
    
</figure>]]></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잡담"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매화" /><category term="사기" /><category term="한서" /><category term="설원" /><category term="매현" /><category term="매령" /><category term="매복" /><category term="파군" /><category term="오예" /><category term="동월" /><category term="유향" /><category term="육개" /><category term="범엽" /><category term="일지매" /><summary type="html"><![CDATA[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red-plum-blossoms.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red-plum-blossoms.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title><link href="https://zyahan.blog/yuanxiao-in-sanguo-yanyi/"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published>2026-03-03T19:52:00+09:00</published><updated>2026-03-03T19:52: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yuanxiao-in-sanguo-yanyi</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yuanxiao-in-sanguo-yanyi/"><![CDATA[<p>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p>

<h3 id="원소절에-일어난-사건들">원소절에 일어난 사건들</h3>

<p>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p>

<blockquote>
  <p>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회를 열어 <strong>원소元宵</strong>를 경축할 테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승상부를 포위하고 돌입해서 조조를 죽인다면 온 백성도 도와줄 것입니다.<sup id="fnref:1"><a href="#fn:1"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1</a></sup></p>

  <p><cite>
《삼국지통속연의》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CADAL02111749/chapter/1lcu5faf5i2w4?paragraphId=7566220980486995977">권지오卷之五</a>〉
</cite></p>
</blockquote>

<p>당연히 “온 백성도 도와줄 것”이라는 요행에 기댄 허술한 계획은 실패했고, 조조는 동승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일가를 몰살했습니다.</p>

<p>그리고 조조는 더 큰 권력을 손에 넣어 (중략) 위공이 되고 말년에는 위왕이 되었지요. 
경기와 위황이 위왕 조조를 제거하고자 할 때 김위는 원소절에 벌이는 점등 행사를 활용해서 군영에 불을 지르고 거사한다는 계획을 제안했습니다.</p>

<blockquote>
  <p><strong>정월 15일</strong> 밤 성 안에서 등불을 잔뜩 켜고 <strong>원소元宵</strong>를 경축할 것입니다.<sup id="fnref:2"><a href="#fn:2"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2</a></sup></p>

  <p><cite>
《삼국지통속연의》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CADAL02111749/chapter/1lcu5h114x1yi?paragraphId=7568796130600157227">권지십사卷之十四</a>〉
</cite></p>
</blockquote>

<p>물론 이 계획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p>

<p>마지막으로 촉나라 황제 유선이 위나라 장수 등애에게 항복하자 촉나라의 강유는 위나라 장수 종회를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했는데, 이때 종회도 자신을 거스르는 장수들을 한꺼번에 죽여 버릴 기회로 원소절 축제를 이용했습니다.</p>

<blockquote>
  <p>내일 <strong>상원령절上元令節</strong> 고궁에서 등불을 성대하게 켜고 장수들을 초청하여 술잔치를 열어서, 따르지 않는 자들은 다 죽여 버리죠.<sup id="fnref:3"><a href="#fn:3"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3</a></sup></p>

  <p><cite>
《삼국지통속연의》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CADAL02111749/chapter/1lcu5iy39lhcj?paragraphId=7568796219561934891">권지이십사卷之二十四</a>〉
</cite></p>
</blockquote>

<p>이 계획 역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p>

<p>이렇게 보니 조씨 세력에 반기를 드는 모의가 원소절에 집중되어 있네요. 모두 실패로 끝났지만… 
《삼국연의》의 조조는 정월 15일이라면 치를 떨었을 것 같습니다.</p>

<h3 id="여담-원소병">여담: 원소병</h3>

<p>중국에서 원소元宵는 원소절이라는 절기의 이름이자, 원소절에 먹는 음식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원소병元宵餠이라는 음료가 있는데, 대한제국 시기 《부인필지》라는 책에 ‘하북의 원소가 먹던 떡이므로 부르기를 원소병이라 한다’라고 나와서인지 삼국지에 나오는 원소袁紹와 연관짓기도 합니다.</p>

<blockquote>
  <p>원소병의 유래로는 『규합총서(閨閤叢書)』에 북경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원소(元宵)라 하는데 정월대보름날에 달을 보며 먹는 떡이라 하여 원소병(元宵餠)이라 하였다고 하고,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의하면 중국 삼국시대의 원소(袁紹)가 즐겨 만들어 먹던 떡이라 하여 원소병(袁紹餠)이라 하였다고 하며, 작고 동그란 떡이라 하여 원소병(圓小餠)이라 불리었다고 한다.</p>

  <p>《국유정담》 2014년 02월호 〈<a href="https://www.kh.or.kr/short/RVcS">정월 대보름 음식 속에 숨겨진 과학과 지혜</a>〉</p>
</blockquote>

<p>하지만 먼저 나온 《규합총서》에 따라 원소병은 음력 1월 15일 정월 대보름인 원소절元宵節에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동그랗고 작은 떡이라는 뜻의 원소병圓小餠, 후한 말의 군벌 원소가 즐겨 먹었다는 원소병袁紹餠 등은 아무래도 한국어로 한자음이 같기 때문에 이후에 생겨난 썰이겠지요.</p>

<hr />

<h3 id="원문-및-주석">원문 및 주석</h3>
<div class="footnotes" role="doc-endnotes">
  <ol>
    <li id="fn:1">
      <p>乘今日府中大宴，慶賀元宵，不可失此機會，將府圍住，突入殺之，萬民亦相助矣。 <a href="#fnref:1"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2">
      <p>正月。十五日夜間，城中大張燈火，慶賞元宵。 <a href="#fnref:2"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3">
      <p>來日上元令節，於故宫大張燈火，請諸將飲宴，如不徔者，盡殺之。 <a href="#fnref:3"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ol>
</div>]]></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삼국연의 읽기"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삼국지" /><category term="삼국지통속연의" /><category term="삼국연의" /><category term="정월대보름" /><category term="원소절" /><category term="상원절" /><category term="조조" /><category term="동승" /><category term="왕자복" /><category term="경기" /><category term="위황" /><category term="종회" /><category term="강유" /><category term="암살" /><category term="정변" /><category term="음모" /><summary type="html"><![CDATA[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이 있습니다. 소설 《삼국연의》에 나타나는 원소절의 패턴을 알아봅시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lanterns.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lanterns.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title><link href="https://zyahan.blog/mei-flower-or-fruit/"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published>2026-02-28T19:46:00+09:00</published><updated>2026-02-28T19:46: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mei-flower-or-fruit</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mei-flower-or-fruit/"><![CDATA[<p>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p>

<p>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a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314">묵매墨梅</a>’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p>

<p>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한나라 및 이전의 문헌에서 한자 梅(매)가 어떻게 쓰였는지 찾아보고, 당시 사람들이 이 식물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p>

<p><a href="https://ctext.org">Chinese Text Project</a> 데이터베이스 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 보면 <a href="https://ctext.org/pre-qin-and-han">중국 한나라 때까지의 문헌을 통틀어</a> 梅(매)가 나온 것은 132회에 불과합니다. 
수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용례를 하나씩 확인하고 분류해 보았습니다.</p>

<table>
  <thead>
    <tr>
      <th>용례</th>
      <th style="text-align: right">건수</th>
    </tr>
  </thead>
  <tbody>
    <tr>
      <td>나무</td>
      <td style="text-align: right">46</td>
    </tr>
    <tr>
      <td>열매</td>
      <td style="text-align: right">38</td>
    </tr>
    <tr>
      <td>인명</td>
      <td style="text-align: right">27</td>
    </tr>
    <tr>
      <td>지명</td>
      <td style="text-align: right">13</td>
    </tr>
    <tr>
      <td>작품명</td>
      <td style="text-align: right">5</td>
    </tr>
    <tr>
      <td>의태어</td>
      <td style="text-align: right">2</td>
    </tr>
    <tr>
      <td>기타</td>
      <td style="text-align: right">1</td>
    </tr>
    <tr>
      <td><strong>합계</strong></td>
      <td style="text-align: right"><strong>132</strong></td>
    </tr>
  </tbody>
</table>

<p>심지어 132건 중 40건 이상이 인명과 같은 고유명사입니다. 
결국 梅(매)가 단독으로 식물 실물을 가리키는 것은 나무 46건, 열매 38건으로 84건뿐이고, 그나마도 꽃은 한 건도 없습니다. 
범위가 더욱 좁아졌으니 이제 시대와 장르별로 주요 문헌을 검토해 보겠습니다.</p>

<h3 id="진秦나라-이전의-매梅">진秦나라 이전의 매梅</h3>

<h4 id="자연물">자연물</h4>

<h5 id="-나무를-노래한-시인들-시경">🌳 나무를 노래한 시인들: 《시경》</h5>

<p>梅(매)라는 한자를 자세히 보면 왼쪽에 木(나무 목)이 들어있습니다. 
즉, 기본적으로 이 한자는 봄에 매화가 피고 여름에 매실이 열리는 나무 자체를 뜻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를 모은 《시경》에서 매梅가 나오는 시는 총 다섯 편인데, 이 가운데 네 편이 나무를 읊고 있습니다. 
한 구절씩 살펴봅시다.</p>

<blockquote>
  <p>종남산終南山에 뭐가 있나, 조條가 있고 <strong>매梅</strong>가 있지.<sup id="fnref:1"><a href="#fn:1"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1</a></sup></p>

  <p><cite>《시경詩經·국풍國風·진풍秦風》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zhong-nan">종남終南</a>〉</cite></p>
</blockquote>

<p>첫 번째 시 〈종남終南〉에서 언급하는 매梅가 매실나무가 아니라 남楠, 녹나무라는 설도 있습니다(<a href="https://ctext.org/wiki.pl?if=en&amp;chapter=95893#p23">《모시정의毛詩正義》 권6 〈6지4〉</a>). 
매실나무든 녹나무든 이 시에서 매梅가 종남산에서 자라는 나무를 가리키는 것은 확실합니다.</p>

<p><a href="https://ctext.org/wiki.pl?if=en&amp;chapter=191#p60">《모시정의毛詩正義》 권7 〈7지1〉</a>에 따르면 두 번째 시인 〈묘문墓門〉에 나오는 매梅 역시 녹나무일 수 있습니다.</p>

<blockquote>
  <p>무덤 문에 <strong>매梅</strong>가 있어, 부엉이가 모여드네.<sup id="fnref:2"><a href="#fn:2"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2</a></sup></p>

  <p><cite>《시경詩經·국풍國風·진풍陳風》<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mu-men">〈묘문墓門</a>〉</cite></p>
</blockquote>

<p>세 번째 시 〈시구鳲鳩〉와 네 번째 시 〈사월四月〉의 경우 매梅는 매실나무로 해석됩니다.</p>

<blockquote>
  <p>뻐꾸기는 뽕나무에 있는데 새끼는 <strong>매실나무</strong>에 있구나.<sup id="fnref:3"><a href="#fn:3"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3</a></sup></p>

  <p><cite>《시경詩經·국풍國風·조풍曹風》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shi-jiu">시구鳲鳩</a>〉</cite></p>
</blockquote>

<blockquote>
  <p>산에 아름다운 나무가 있으니 바로 밤나무와 <strong>매실나무</strong>로다.<sup id="fnref:4"><a href="#fn:4"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4</a></sup></p>

  <p><cite>《시경詩經·소아小雅·소민지습小旻之什》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si-yue">사월四月</a>〉</cite></p>
</blockquote>

<p>다섯 번째 〈표유매摽有梅〉는 《시경》 전체에서 매梅가 유일하게 열매를 가리키는 시입니다.</p>

<blockquote>
  <p><strong>매실</strong>이 떨어졌네, 일곱 알이 남았네.<sup id="fnref:5"><a href="#fn:5"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5</a></sup></p>

  <p><cite>《시경詩經·국풍國風·소남召南》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piao-you-mei">표유매摽有梅</a>〉</cite></p>
</blockquote>

<p>정리하자면 《시경》에서 매梅는 나무로 네 번, 열매로 한 번 쓰였고, 매화꽃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삼백 편에 달하는 시 중 매화를 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뜻밖입니다.</p>

<p>혹시 《시경》에서 매화뿐만 아니라 꽃 자체가 희귀했던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꽃을 뜻하는 華(화)로 검색해 보면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tao-yao">도요桃夭</a>〉의 복숭아꽃,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he-bi-nong-yi">하피농의何彼襛矣</a>〉에 나오는 채진목[당체唐棣] 꽃,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you-nu-tong-che">유녀동거有女同車</a>〉의 무궁화[순화舜華],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shan-you-fu-su">산유부소山有扶蘇</a>〉의 연꽃, 그 외에도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xi-you-chang-chu">습유장초隰有萇楚</a>〉,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huang-huang-zhe-hua">황황자화皇皇者華</a>〉,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chang-di">상체常棣</a>〉,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cai-wei">채미采薇</a>〉,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shang-shang-zhe-hua">상상자화裳裳者華</a>〉,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bai-hua">백화白華</a>〉, 
〈<a href="https://ctext.org/book-of-poetry/tiao-zhi-hua">초지화苕之華</a>〉 
등 여러 시에서 다양한 꽃이 등장합니다. 
그런데도 매화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고대인들은 매실나무를 보고 꽃보다는 다른 것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p>

<h4 id="오컬트-상징">오컬트 상징</h4>

<h5 id="️-겨울에-열린-열매-춘추-희공33년">❄️ 겨울에 열린 열매: 《춘추》 희공33년</h5>

<p>매실나무에 매실이 열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자연현상이 역사책에 특별히 기록된 적이 있습니다. 
공자가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역사를 편집한 《춘추》에 따르면, 희공 33년(기원전 627년) 겨울 12월 매실나무에 매실이 열렸다고 합니다.
《춘추》에 대한 주석서로 “춘추3전”이라고 알려진 《좌전》, 《곡량전》, 《공양전》에서 이 일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p>

<p>먼저 《좌전》에서는 《춘추》의 본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p>

<blockquote>
  <p>12월, […] 자두나무와 <strong>매실나무</strong>가 실實했다. <sup id="fnref:6"><a href="#fn:6"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6</a></sup></p>

  <p><cite>《춘추좌전春秋左傳》 〈<a href="https://ctext.org/chun-qiu-zuo-zhuan/xi-gong-san-shi-san-nian">희공33년僖公三十三年</a>〉</cite></p>
</blockquote>

<p>《곡량전》에서는 實(실)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풀이했습니다.</p>

<blockquote>
  <p>자두나무와 <strong>매실나무</strong>가 실實했다. ‘실’이라고 말한 것은 말 그대로 열매가 열렸다는 것이다. <sup id="fnref:7"><a href="#fn:7"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7</a></sup></p>

  <p><cite>《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a href="https://ctext.org/guliang-zhuan/xi-gong-san-shi-san-nian">희공33년僖公三十三年</a>〉</cite></p>
</blockquote>

<p>《공양전》에서는 더 나아가서 이 일이 《춘추》에 왜 기록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p>

<blockquote>
  <p>자두나무와 <strong>매실나무</strong>가 실實했다. 왜 이것을 글로 남겼는가? 이변을 기록한 것이다. 왜 이것을 이변으로 여겼는가? 때에 어긋난 것이다. <sup id="fnref:8"><a href="#fn:8"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8</a></sup></p>

  <p><cite>《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a href="https://ctext.org/gongyang-zhuan/xi-gong-san-shi-san-nian">희공33년僖公三十三年</a>〉</cite></p>
</blockquote>

<p>12월에 자두와 매실이 열린 것은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500여 년이 지난 뒤 한나라 유교맨들에게도 관심을 끌었습니다. 
동중서를 비롯한 한나라 유교맨들은 하늘과 인간이 서로 감응한다고 주장했고, 이들은 제철이 아닐 때 열매가 열린 것이 하늘이 인간에게 보내는 이변의 신호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 관한 해석이 《한서》 〈오행지〉에서 한 문단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전한시대 말기의 재이災異 전문가 유향이 꽃과 열매의 중요성에 차등을 두었다는 것입니다.</p>

<blockquote>
  <p>꽃이 먼저 피고 열매가 나중에 열리는데도 꽃을 글로 남기지 않은 것은 중요한 쪽을 거론한 것이다.<sup id="fnref:9"><a href="#fn:9"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9</a></sup></p>

  <p><cite>
《한서漢書》 〈<a href="https://ctext.org/han-shu/wu-xing-zhi-zhong-zhi-xia">오행지五行志 중지하中之下</a>〉
</cite></p>
</blockquote>

<p>즉, 유향은 매실나무에 꽃이 핀 것보다 열매가 열린 것을 더 중대한 이변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렇게 매화꽃은 제때에 피든 엉뚱한 시기에 피든 좀처럼 식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p>

<h3 id="한나라의-매梅">한나라의 매梅</h3>

<p>앞서 살펴본 《시경》과 《춘추》는 한나라 사람들에게도 이미 수백 년 된 고전이었습니다. 
한나라 사람들이 쓴 책은 어떨까요? 
매梅가 좀 더 많이 나올까요?</p>

<p>한나라 문헌에서 梅(매)가 식물 실물을 가리키는 경우를 살펴보면, 진나라 이전과 비교해서 두 가지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매실이 나무에 열려 있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점괘에서 매실나무와 매실이 상징적 소재로 쓰인다는 것입니다.</p>

<h4 id="식품">식품</h4>

<h5 id="-다양한-용도의-식재료-예기">🍒 다양한 용도의 식재료: 《예기》</h5>

<p>매실이 한나라 이전에도 중요한 식품이기는 했습니다. 
《춘추》보다도 오래된 《상서(서경)》의 〈<a href="https://ctext.org/shang-shu/charge-to-yue-iii">열명하說命下</a>〉에서 이미 맛있는 국을 끓이려면 소금과 매실로 간을 해야 한다[若作和羹，爾惟鹽梅]고 했고, 《<a href="https://ctext.org/yanzi-chun-qiu/jing-gong-wei-liang-qiu-ju">안자춘추</a>》에도 비슷한 말이 나왔습니다. 
고대 중국에서 매실은 식초가 보급되기 전 신맛을 내는 조미료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 속에서 이런 용례는 모두 조화의 미덕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였지, 진짜로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p>

<p>전한시대 중반에 편집된 《예기》 〈<a href="https://ctext.org/liji/nei-ze">내칙內則</a>〉은 이 점에서 이전 시기 문헌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내칙〉 한 편에서만 해도 매梅라는 글자가 세 번 나오는데, 3회가 각기 다른 세 종류의 음식을 가리킵니다.</p>

<ol>
  <li>도저桃諸와 매저梅諸: 가공식품</li>
  <li>복숭아[桃], 자두[李], 매실[梅] 살구[杏]: 과일</li>
  <li>들짐승 고기에는 매실즙을 쓴다[獸用梅]: 양념</li>
</ol>

<p>이 덕분에 우리는 한나라 사람들이 매실을 어떻게 섭취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p>

<h5 id="-황실의-과일-서경잡기">👑 황실의 과일: 《서경잡기》</h5>

<p>더 나아가서 황제는 매실을 품종별로 골라 먹는 사치까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a href="https://ctext.org/xijing-zaji/1">서경잡기</a>》에서는 황제의 동산 상림원上林苑에 심은 갖가지 과일나무의 목록을 소개했는데, 그중에서 7종이 매실나무였습니다.</p>

<ul>
  <li>매실나무 일곱: 주매朱梅, 자엽매紫葉梅, 자화매紫華梅, 동심매同心梅, 여지매麗枝梅, 연매燕梅, 후매猴梅.</li>
</ul>

<p>《서경잡기》에 따르면 여기 열거된 매실 중 동심매同心梅는 성제의 후궁 조합덕이 언니 조비연의 황후 책봉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는 예물이기도 했습니다. 
매실나무를 잎 색깔(자엽매), 꽃 색깔(자화매), 가지 모양(동심매, 여지매) 등으로 구별한 것을 보면 황제는 매실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나무를 감상하는 것도 즐겼나 봅니다.</p>

<h5 id="-약재-상한론-금궤요략">💊 약재: 《상한론》, 《금궤요략》</h5>

<p>한편 한나라 사람들은 매실을 약으로도 활용했습니다. 
후한시대 의학서인 《<a href="https://ctext.org/shang-han-lun/bian-jue-yin-bing-mai-zheng">상한론</a>》과 《<a href="https://ctext.org/jinkui-yaolue/19">금궤요략</a>》에는 환자가 회충으로 인해 회궐蚘厥이라는 병에 걸린 경우 오매烏梅를 복용하라는 처방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오매’는 ‘검은 매실’이라는 뜻으로, 매실을 연기에 쬐어 말린 약재입니다.
이렇게 한나라 서적에서 매실은 식품, 사치품, 의약품 등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납니다.</p>

<h4 id="오컬트">오컬트</h4>

<h5 id="-시적인-점괘-초씨역림">🔮 시적인 점괘: 《초씨역림》</h5>

<p>매실 먹기를 좋아한 한나라 사람들은 점을 치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고대 중국의 점술서로는 《주역(역경)》이 유명한데, 《주역》에서 사용하는 점술 기호는 아래 표와 같이 8개의 괘卦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기인 태극기에도 일부가 나옵니다.</p>

<table>
  <thead>
    <tr>
      <th style="text-align: center">이진수</th>
      <th style="text-align: center">괘상</th>
      <th style="text-align: center">명칭</th>
      <th style="text-align: center">상징</th>
    </tr>
  </thead>
  <tbody>
    <tr>
      <td style="text-align: center">7=111</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건乾</td>
      <td style="text-align: center">하늘</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6=110</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태兌</td>
      <td style="text-align: center">못</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5=101</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리離</td>
      <td style="text-align: center">불</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4=100</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진震</td>
      <td style="text-align: center">번개</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3=011</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손巽</td>
      <td style="text-align: center">바람</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2=010</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감坎</td>
      <td style="text-align: center">물</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1=001</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간艮</td>
      <td style="text-align: center">산</td>
    </tr>
    <tr>
      <td style="text-align: center">0=000</td>
      <td style="text-align: center">☷</td>
      <td style="text-align: center">곤坤</td>
      <td style="text-align: center">땅</td>
    </tr>
  </tbody>
</table>

<p>8괘 두 개를 위아래로 조합하면 64괘가 됩니다(8×8=64). 
그리고 이 64괘의 앞뒤 변화를 통해 모두 4096가지의 경우의 수가 나옵니다(64×64=4096). 
전한시대 중반의 유학자 초연수는 《<a href="https://ctext.org/jiaoshi-yilin">초씨역림</a>》이라는 책에서 주역점으로 나올 수 있는 4096가지 결과를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이때 먼저 시적인 비유를 사용한 뒤 의미를 풀이하는 것이 《초씨역림》의 패턴입니다. 
바로 이 패턴에서 梅(매)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p>

<ol>
  <li><strong>매실나무</strong>와 오얏나무가 겨울에 열매를 맺는도다. 나라에 도적이 많다. [梅李冬實，國多寇賊。]</li>
  <li><strong>매실나무</strong>가 뒤엉켜 가지가 꺾이는도다. 어머니와 이별하고 소식이 끊어져 알 길이 없다. [蟠梅折枝，與母別離，絕不相知。]</li>
  <li><strong>매실</strong>이 우박에 맞아 꼭지까지 떨어지는도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정신이 어지럽다. [雹梅零蔕，心思憒憒，亂我靈氣。]</li>
</ol>

<p>매실나무나 매실이 들어간 점괘는 왠지 모르게 모두 부정적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매실나무 가지가 꺾이고 매실 열매가 떨어지는 것을 매우 안타까운 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p>

<h3 id="결론과-광고">결론과 광고</h3>

<p>지금까지 한나라 및 이전의 문헌에서 梅(매)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고유명사와 의태어를 제외하고 식물 자체를 가리키는 용례를 살펴보았을 때, 나무와 열매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꽃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현대인인 우리는 매화를 “동양풍”에서 매우 중요한 소재로 여기지만, 적어도 한나라에서 책을 읽고 쓰는 사람들은 매화에 관해 기록할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p>

<p>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매화는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문화인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을까요? 
힌트는 오吳나라와 남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a href="/mei-in-wu-and-yue/">다음번 포스트</a>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p>

<p>양력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지금, 매화가 피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록 고대 중국인들은 매화에 관심이 덜했지만, 중세 이후의 중국에서, 또 한국에서 매화를 어떻게 즐겼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아雅가 “매화사보: 소매 끝에서 풍기는 매화의 냉향”이라는 텀블벅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현재 공개신청 중에 있으니 아래 링크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세요!</p>

<p>🌼 텀블벅 프로젝트 링크: <a href="https://tumblbug.com/four-treasures-of-plum">https://tumblbug.com/four-treasures-of-plum</a></p>

<hr />

<h3 id="원문">원문</h3>
<div class="footnotes" role="doc-endnotes">
  <ol>
    <li id="fn:1">
      <p>終南何有、有條有梅。 <a href="#fnref:1"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2">
      <p>墓門有梅、有鴞萃止。 <a href="#fnref:2"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3">
      <p>鳲鳩在桑、其子在梅。 <a href="#fnref:3"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4">
      <p>山有嘉卉、侯栗侯梅。 <a href="#fnref:4"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5">
      <p>摽有梅、其實七兮。 <a href="#fnref:5"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6">
      <p>十有二月，[…]李梅實。 <a href="#fnref:6"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7">
      <p>李梅實。實之為言，猶實也。 <a href="#fnref:7"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8">
      <p>隕霜不殺草，李、梅實。何以書？記異也。何異爾？不時也。 <a href="#fnref:8"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9">
      <p>先華而後實，不書華，舉重者也。 <a href="#fnref:9"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ol>
</div>]]></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한나라 설정집"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매화" /><category term="매실" /><category term="매화나무" /><category term="매실나무" /><category term="사군자" /><category term="시경" /><category term="소남" /><category term="표유매" /><category term="춘추" /><category term="희공33년" /><category term="좌전" /><category term="곡량전" /><category term="공양전" /><category term="한서" /><category term="오행지" /><category term="유향" /><category term="서경잡기" /><category term="조비연" /><category term="조합덕" /><category term="상한론" /><category term="금궤요략" /><category term="오매" /><category term="초씨역림" /><category term="주역" /><summary type="html"><![CDATA[사군자의 매梅는 원래부터 꽃이었을까요? 《시경》부터 《한서》까지, 고대 문헌 속 梅의 용례를 추적하면 의외의 답이 나옵니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white-plum-blossoms.jpe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white-plum-blossoms.jpe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entry xml:lang="ko"><title type="html">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title><link href="https://zyahan.blog/yuan-shao-raised-up-by-women/" rel="alternate" type="text/html" title="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published>2026-01-03T12:42:00+09:00</published><updated>2026-01-03T12:42:00+09:00</updated><id>https://zyahan.blog/yuan-shao-raised-up-by-women</id><content type="html" xml:base="https://zyahan.blog/yuan-shao-raised-up-by-women/"><![CDATA[<p>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a href="/yuan-shao-as-a-lady/">체장부인의 수수께끼</a>〉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p>

<p>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p>

<blockquote>
  <p>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span style="color:white;background-color:DarkOrange">여자처럼 자랐습니다</span>.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sup id="fnref:1"><a href="#fn:1"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1</a></sup></p>

  <p><cite>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4/chapter/1j7fnuumo09ix_82">한기</a>》 </cite></p>
</blockquote>

<p>여기서 ‘여자처럼 자랐다’라고 번역한 부분의 원문이 바로 ‘체장부인’입니다.</p>

<p>이전 포스트에서 일본어 웹과 중국어 웹을 검색해 보았을 때 체장부인體長婦人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p>

<ol>
  <li>몸집이 여자 같다 [體長: 몸집과 키(명사구)]</li>
  <li>여자의 손에서 자랐다 [體長: 몸이 자라다(동사구)]</li>
</ol>

<p>1번은 (아마도 오타쿠의 취향에 잘 맞아서인지) 일본어권에서 주로 나왔고, 2번은 중국어권에서 주로 나왔습니다. 
체장부인體長婦人 네 글자만 놓고 본다면 두 해석이 모두 타당한 듯합니다.</p>

<p>둘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한지를 따져 보기 위해서는 앞뒤 맥락을 더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체장부인體長婦人 앞에 나온 말은 생처경사生處京師입니다. 
경사京師, 즉 수도에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이 네 글자와 함께 본다면 2번 해석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한문에서 대구를 많이 활용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여덟 글자를 함께 읽어 봅시다. 
‘수도에서 태어났고 몸집이 여자 같다’보다는 ‘수도에서 태어났고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가 대구로서 더 적절합니다.</p>

<p>그런데 이 여덟 글자를 포함한 대화 전체의 맥락을 고려한다면 다시 1번 해석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어집니다. 
이 대화의 배경은, 관동에서 반동탁연합이 결성되었을 때 수도에서 정태라는 인물이 동탁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병력을 줄이기 위해 원소, 장막, 공융 등 반동탁연합의 핵심 군벌들을 일부러 깎아내리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아雅가 느끼기로는 아무래도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보다 ‘몸집이 여자 같다’가 더 치명적인 약점일 것 같단 말이죠.</p>

<p>과연 《삼국지》 세계관에서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는 것이 흠이 되었을까요?
《삼국지》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남자는 적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유비가 있습니다. 
유비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돗자리를 만들어 팔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또한 노숙은 할머니에게 양육되었고, 강유는 어머니에게 양육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적들이 이런 성장 배경을 약점으로 삼아 비하하는 장면은 찾을 수 없습니다. 
반면, 남자가 잘생긴 얼굴과 건장한 체격을 가진 것이 큰 장점으로 통하는 세계관에서 장수의 몸집이 여자 같다는 것은 확실히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p>

<p>그런데 여기에서 곧바로 1번, 몸집이 여자 같았다는 결론을 내리자니 왠지 모르게 찜찜해집니다. 
첫 번째 이유는, 《삼국지》에는 이미 원소의 외모를 형용하는 말로 유명한 자모위용姿貌威容이 있기 때문입니다. 
체구가 작다고 해서 꼭 위엄이 부족하리라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어색한 기분을 떨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삼국지》에 앞서 나온 역사책으로 《사기》와 《한서》에서 비슷한 표현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기》에서 장량을 묘사할 때 <a href="https://www.shidianguji.com/en/book/LS0001/chapter/1j755oidr6eyl_53">狀貌如婦人好女</a>, 《한서》에서 채의를 묘사할 때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2/chapter/1j7m8xnxycp4q_69">貌似老嫗</a>를 쓰기는 했으나 느낌이 다릅니다. 
결정적으로 체장부인體長婦人에는 如[같다]나 似[비슷하다]처럼 분명한 비교 표지가 없습니다.</p>

<p>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아雅는 2번, 원소가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는 해석을 채택하고자 합니다. 
결정적인 근거는 《진서陳書》 권6 〈후주기後主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역사책 《진서晉書》와 다른 책이라는 점에 유의합시다.</p>

<blockquote>
  <p>후주는 <strong>깊은 궁궐에서 태어나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strong>
나라가 이미 쇠망한 지경에 처했는데도 농민의 어려움을 몰랐다.<sup id="fnref:2"><a href="#fn:2" class="footnote" rel="footnote" role="doc-noteref">2</a></sup></p>

  <p>《진서》 권6 〈<a href="https://www.shidianguji.com/zh/book/LS0009/chapter/LS0009_14">후주기</a>〉</p>
</blockquote>

<p>여기에서 장부인지수長婦人之手는 명백하게 ‘여자의 손에서 자랐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生深宫之中，長婦人之手의 대구는 《삼국지》 주석에 나온 生處京師，體長婦人의 대구와 비슷합니다. 
특히 어디에서 태어나서 누구의 손에 자랐는지를 나란히 묘사하는 구조가 일치합니다. 
《진서陳書》는 남북조시대 남조의 마지막 왕조를 다룬 역사책으로 《삼국지》보다 훨씬 뒤에 쓰이기는 했지만, 생生과 장長을 나란히 쓰는 용법이 같은 만큼 의미도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p>

<p>체장부인體長婦人 단독으로는 비난이 성립하기 어렵지만, 생처경사生處京師와 합쳐졌을 때는 원소의 남성성을 흠집내는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정태는 변방에서 거칠게 자란 사나이 동탁과 서울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원소를 대비시켜서 동탁을 안심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p>

<hr />

<h3 id="원문">원문</h3>
<div class="footnotes" role="doc-endnotes">
  <ol>
    <li id="fn:1">
      <p>袁本初公卿子弟，生處京師，體長婦人；張孟卓東平長者，坐不窺堂；孔公緒能清談高論，嘘枯吹生，無軍帥之才，負霜露之勤；臨鋒履刃，決敵雌雄，皆非明公敵，三也。 <a href="#fnref:1"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li id="fn:2">
      <p>後主生深宫之中，長婦人之手，既屬邦國殄瘁，不知稼穡艱難，初懼阽危，屢有哀矜之詔，後稍安集，復扇淫侈之風。 <a href="#fnref:2" class="reversefootnote" role="doc-backlink">&#8617;</a></p>
    </li>
  </ol>
</div>]]></content><author><name>zya</name></author><category term="한나라 설정집" /><category term="정보" /><category term="삼국지" /><category term="체장부인" /><category term="원소" /><category term="동탁" /><category term="정혼전" /><category term="정태" /><category term="한기" /><category term="진서" /><category term="진 후주" /><summary type="html"><![CDATA[몸집이 여자 같다 vs. 여자 손에서 자랐다, 어느 쪽이 사나이로서 더 쪽팔릴 일일까요? 동탁이 본 원소의 약점을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summary><media:thumbnail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han-beau-figurine.jpg" /><media:content medium="image" url="https://zyahan.blog/assets/images/cards/han-beau-figurine.jpg" xmlns:media="http://search.yahoo.com/mrss/" /></entry></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