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본명 이전의 이름: 아명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때 본명과 자 이외에 소자(少字)라는 것이 가끔 나옵니다. ‘소자’란 정식 이름을 받기 전 어렸을 때 불리던 아명을 말합니다.

조조의 아명, 아만: 거짓말쟁이?

《삼국지》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명은 아마도 위지1 〈무제기〉 주석에 인용된 《조만전》에 소개된 조조의 아만(阿瞞)일 것입니다. 아(阿)는 애칭을 이음절로 만들기 위해 앞에 붙이는 접두사고,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글자는 만(瞞)입니다. 당장 책의 제목도 《조아만전》이 아닌 《조만전》이라고 되어 있지요.

만(瞞)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현대 한국어에서 ‘기만(欺瞞)’이라는 단어에 이 한자가 사용됩니다. 네이버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속일 만’이라고 되어 있고 첫 번째 뜻이 ‘속이다’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아명의 한자가 남을 속인다는 뜻이라니 조조의 캐릭터와 잘 어울립니다. 실제로 왕샤오레이의 소설 《삼국지 조조전》 등 여러 창작물에서, 조조가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잘해서 이런 아명을 얻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雅)는 이 설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 글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1. 한자 ‘瞞’의 부수는 目[눈 목]인데, 남을 속인다는 뜻이 눈(eye)에서 파생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2. 현재 접근 가능한 한나라 문헌에서 ‘瞞’이 남을 속인다는 의미로 쓰인 예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 아예 이 한자 자체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아만 거짓말쟁이설에 대한 반박 1: 거짓말은 눈[目]보다 말[言]로 한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속이다’로 검색해 보면 상당수의 한자가 詐(사), 誣(무), 詭(궤), 譎(휼)처럼 言[말씀 언]을 부수로 삼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말이므로 이쪽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瞞(이체자 ‘瞒’)의 부수는 目[눈]입니다. 여기에서 瞞의 의미가 원래는 눈과 관련된 것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사전이 아닌 후한 말의 자전 《설문해자》 〈목부〉에서는 이 글자를 平目(평목), 즉 ‘평평한 눈’이라고 풀이했습니다. 또 이 글자는 전국시대 《순자》 〈비십이자〉에도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瞞瞞然(만만연)이 (육체적 쾌락을 접할 때) 눈을 감는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즉, 주요 문헌에서는 눈이 가늘다, 혹은 눈을 가늘게 한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아만 거짓말쟁이설에 대한 반박 2: 애초에 한나라 문헌에 瞞의 용례가 거의 없다

일단 후한 시대까지의 의미를 파악했을 때 瞞은 부수에 맞게 눈과 연관된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거짓말쟁이설을 고집해 봅시다. 가령, 瞞이 눈을 가늘게 뜬다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므로 대략 남의 눈을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거짓말이라는 의미가 파생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 추측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있을가요? Chinese Text Project(이하 CTP)에서 제공하는 한대까지의 문헌을 대상으로 瞒을 검색해 보면 단 열 건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어떤 주장을 하기에는 부족한 양입니다. 그나마도 2회 이상 나오는 사례는 수만(鄋瞞)이나 만성(瞞成)과 같은 인명밖에 없습니다.

중간 점검

결국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이 지어질 당시에 만(瞞)이라는 한자가 남을 속인다는 뜻을 가졌다는 결론은 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정사”에 따르면 조조의 아명은 거짓말쟁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기만(欺瞞)’이라는 단어의 등장

어쨌든 동아시아 현대에 瞞이 남을 속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런 의미가 생기게 되었을까요?

CTP에서 제공하는 한대 이후의 범위에서 瞒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우선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조만전》이라는 제목으로만 나옵니다. 다음으로 수·당 시대에는 아예 용례가 없습니다. 그리고 송·명 시대에 瞞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청대로 이어집니다.

송·명 시대의 문헌을 시대별로 세분화해 보면, 남송 시대 주희와 제자들의 어록인 《주자어류》에 기만(欺瞞)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CTP상으로는 이것이 가장 이른 용례로 보입니다(단, CTP에서 원문을 제공하는 한나라 이후 문헌이 제한된 것은 감안해야 합니다). 이후로 소설 《삼국연의》, 《서유기》, 《금병매》 등에서 瞞 한 글자가 단독으로도 남을 속인다는 의미로 아주 많이 쓰입니다.

아만 거짓말쟁이설 재검토

CTP에서 확인한 瞞의 의미 변화는 늦어도 남송 말의 입말에서 이미 일어나 있었습니다. CTP 밖으로 나가면 자료가 더 풍부합니다. 예를 들어 《서상기》와 같은 원대 잡극에서도 瞞이 남을 속인다는 의미로 많이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연의”에 등장하는 조조의 아명은 거짓말쟁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瞞의 의미는 대체 왜 바뀌었을까요? 사실 언어 변화의 원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아명과 연관지어 좀 더 상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