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은 현대 한국과 사정이 달랐습니다. 특히 한 무제 이후의 중국 황제들에게 중역은 대단한 로망이었습니다. 심지어 아홉 번의 통역을 거쳤다는 중구역(重九譯)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여기에서 9는 실제의 횟수가 아니라 큰 수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중역 로망의 원조인 한 무제 유철의 사례부터 살펴봅시다. 《사기》 〈대완열전〉에 따르면, 무제가 서쪽으로 파견한 장건은 도중에 흉노의 포로로 잡히는 등 여러 시련을 뚫고서 마침내 대완과 접촉하는 데 성공하고 돌아온 뒤 무제에게 서역 여러 나라의 정세를 소개했습니다. 장건의 보고를 받은 무제는 머릿속에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하는데… 그 내용은 바로 땅을 만 리 넓히고, 통역을 아홉 번 거치며, 특이한 풍속에 다다라서, 사해에 두루 덕을 떨치는 것이었습니다[廣地萬里,重九譯,致殊俗,威德遍於四海].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중역에 환상을 품었을까요? 그것은 이들이 ‘중화’였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오랑캐’가 여러 번의 통역을 거쳐 중국과 교통하기를 희망했다는 사실은, 한나라 황제가 그만큼 아득히 먼 외국까지 위세를 떨쳤다는 증거로 해석되었습니다.
중역으로 증명된 위세는 다시 중국 국내 정치에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가령,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전한의 섭정 시절 태평성대를 위장하기 위해 외국에 뇌물을 보내 중국에 중역으로 공물을 바치도록 로비를 벌였습니다. 이것은 주나라 시절 주공의 덕이 퍼져서 월상(越嘗·越裳)이라는 먼 나라에서 중역을 통해 흰 꿩을 바쳤다는 일화를 본뜬 행위입니다. 주공과 월상의 이야기는 한대 이전의 문헌에 보이지 않고 《한시외전》에 최초로 등장하는데, 아마도 한나라 유학자들이 무제에게 아부하려고 지어낸 동인설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나라의 덕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례가 한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동원되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차례의 중역을 거치면서 과연 원래의 메시지가 의도한 대로 잘 전달될 수 있었을까요?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전4사에서 ‘譯’의 용례를 검색하면, 외국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때 높으신 분들이 통역 오류를 탓하는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중역은 그 자체로 의의가 막대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중역을 거치면서 미묘한 의미가 왜곡되는 것은 문제 삼지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애초에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의지가 별로 없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