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3년상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Tag 6년상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Tag ChatGPT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Claude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Gemini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Han blue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Han purple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Python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she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thumbs-up

👍 ‘따봉’, 엄지척이 중국 전통에도 있었을까?

현대 한국에서 격식을 덜 차리는 상황의 경우 상대를 칭찬할 때 “따봉!”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따봉”이라고 불리는 엄지척 동작의 유래를 동아시아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 우선 “따봉”이라는 말 자체의 기원은 명백합니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로 “좋아!”를 의미하는 “Está bom!”의 축약형 “Tá bom!”입니다.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배경이 브라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브라질산 오렌지로 만든 주스의 텔레비전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광고에 나온 “Tá bom!...

Tag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彼女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5. 조조의 손 씻기[盥] [🔒 무료 미리보기]

관盥이라는 한자는 정말 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릇[皿]에 담긴 물[水]에 양손[臼]을 넣은 모양입니다. 후한 때 나온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손을 씻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 글자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건안 21년 2월 위공 조조가 업으로 귀환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魏書》에 나옵니다. 조조는 2월 갑자일 사당[廟]에 봄 제사[春祠]를 지내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몸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데, 여기에 손 씻기가 나옵니다.

Tag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Tag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Tag 葡萄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蒲陶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가가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Tag 가기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가난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Tag 간독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감금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감녕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Tag 감송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Tag 갑골문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갑관요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강도왕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Tag 강사부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강승회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강아지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강유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강표전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Tag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거거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Tag 거벽

👍 ‘따봉’, 엄지척이 중국 전통에도 있었을까?

현대 한국에서 격식을 덜 차리는 상황의 경우 상대를 칭찬할 때 “따봉!”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따봉”이라고 불리는 엄지척 동작의 유래를 동아시아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 우선 “따봉”이라는 말 자체의 기원은 명백합니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로 “좋아!”를 의미하는 “Está bom!”의 축약형 “Tá bom!”입니다.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배경이 브라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브라질산 오렌지로 만든 주스의 텔레비전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광고에 나온 “Tá bom!...

Tag 거여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Tag 거연한간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거짓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건안칠자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Tag 건염이래조야잡기

👍 ‘따봉’, 엄지척이 중국 전통에도 있었을까?

현대 한국에서 격식을 덜 차리는 상황의 경우 상대를 칭찬할 때 “따봉!”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따봉”이라고 불리는 엄지척 동작의 유래를 동아시아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 우선 “따봉”이라는 말 자체의 기원은 명백합니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로 “좋아!”를 의미하는 “Está bom!”의 축약형 “Tá bom!”입니다.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배경이 브라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브라질산 오렌지로 만든 주스의 텔레비전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광고에 나온 “Tá bom!...

Tag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검소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Tag 격강투지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Tag 격려

10.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라 [強食, 強飯, 彊食, 彊飯] [🔒 무료 미리보기]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을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한나라 사람들은 남을 격려할 때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Tag 견부인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Tag 결혼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Tag 경기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경방

《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Tag 경비견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경수창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경제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경포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계례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Tag 계몽주의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Tag 계설향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고금주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Tag 고기

11. 고깃살 [魚肉] [🔒 무료 미리보기]

어육魚肉은 한국어 단어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짓밟고 으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고상하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제시하는 예문도 그렇습니다. 50대 아저씨가 복식호흡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왜적의 손에 나라 땅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어육이 되어…. 박종화, 《임진왜란》 ❡ 한번 나라를 그르치니 대(代)를 이은 충신의 집이 어육이 나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하지만 한나라 사...

Tag 고깃살

20. 돌사람, 나무 인형 [石人, 木偶人] [🔒 무료 미리보기]

아래의 예문은 서한 무제 때 황태후 왕씨가 아들인 황제에게 왜 자기 동생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남들이 모두 내 동생을 깔아뭉개니, 만약 내 백 년 뒤가 되면 모두 고깃살로 만들겠구려. 게다가 황제는 어떻게 돌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사기》 〈위기무안후열전〉

11. 고깃살 [魚肉] [🔒 무료 미리보기]

어육魚肉은 한국어 단어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짓밟고 으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고상하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제시하는 예문도 그렇습니다. 50대 아저씨가 복식호흡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왜적의 손에 나라 땅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어육이 되어…. 박종화, 《임진왜란》 ❡ 한번 나라를 그르치니 대(代)를 이은 충신의 집이 어육이 나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하지만 한나라 사...

Tag 고려사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고려사절요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Tag 고손녀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Tag 고양이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Tag 고우영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고조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고증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Tag 고증오류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Tag 고지책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Tag 곡량전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곡식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Tag 곡영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곡영전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공무원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Tag 공문서

8. 죽음을 무릅쓰다 [昧死] [🔒 무료 미리보기]

아래 글은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의 재상들이 황제의 공적을 돌에 새기자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왼쪽 상단에 빨간 색으로 표시한 두 글자가 매사昧死, 즉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입니다. ❡ 《사기》나 《한서》나 《후한서》나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전기를 찾아보면 황제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는 모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 정말 비장했구나! 아니면 정말 두려워했구나!”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황제에게 글을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

Tag 공성계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Tag 공손홍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공양전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공자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공주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곽가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Tag 곽거병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Tag 곽광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2. 《한서》 〈곽광전〉을 열심히 읽은 조조 [🔒 무료 미리보기]

첫 번째는 조조가 영천에서 황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제남상, 동군태수가 되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중평(184–189) 연간에 기주 자사 왕분과 남양 사람 허유, 패국 사람 주정 등이 호걸들과 결탁하여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하려고 모의하면서 조조에게도 알렸습니다. 《삼국지》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조조가 어떻게 거절했는지를 상세하게 실어 놓았습니다.

Tag 곽사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곽성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곽여왕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Tag 곽우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곽재식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관도승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관도장공주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관상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Tag 관용표현

20. 돌사람, 나무 인형 [石人, 木偶人] [🔒 무료 미리보기]

아래의 예문은 서한 무제 때 황태후 왕씨가 아들인 황제에게 왜 자기 동생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남들이 모두 내 동생을 깔아뭉개니, 만약 내 백 년 뒤가 되면 모두 고깃살로 만들겠구려. 게다가 황제는 어떻게 돌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사기》 〈위기무안후열전〉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18. 반쪽짜리 [半通] [🔒 무료 미리보기]

반통半通. 통通이 온전한 하나를 뜻하고, 앞에 반半이 붙었습니다. 온전한 하나는 무엇이고 그 절반은 무엇일까요?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16.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食頃] [🔒 무료 미리보기]

식경食頃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며, 특히 무협이나 사극 용어로 빠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유래를 찾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면 마침 《사기》, 《한서》 등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부터 나옵니다. 《한나라 숙어 노트》에서 다룰 만합니다. ❡ 식경食頃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입말로 흔하게 썼겠지만, 글로 기록된 문헌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 죽을 죄를 짓다 ×2 [死罪死罪] [🔒 무료 미리보기]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러서 무거운 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쓸 것 같습니다. 과장이 좀 들어갔다고 해도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거나 남의 잘못을 탄핵할 때 할 법한 말입니다. 한나라에서도 물론 그렇게 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14. 머리 감기 [沐] [🔒 무료 미리보기]

오늘의 이야기는 춘추 시대의 일화입니다. 하지만 이 일화가 실린 《한시외전》이 서한 때의 책이니까, 춘추 시대의 사건이라도 한나라 사람들의 말로 기록된 셈이지요.

13. 배와 가슴 [腹心] [🔒 무료 미리보기]

우리는 똑똑한 사람을 두고 머리가 좋다고 하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두고 머리에 든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비유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지요. 현대인들에게는 머릿속에서, 더 자세하게는 두뇌에서 사고를 주관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뇌가 없다’,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었다’ 같은 상스러운 말에서도 이러한 전제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한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라 및 그 이전의 문헌에서 뇌腦를 검...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11. 고깃살 [魚肉] [🔒 무료 미리보기]

어육魚肉은 한국어 단어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짓밟고 으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고상하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제시하는 예문도 그렇습니다. 50대 아저씨가 복식호흡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왜적의 손에 나라 땅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어육이 되어…. 박종화, 《임진왜란》 ❡ 한번 나라를 그르치니 대(代)를 이은 충신의 집이 어육이 나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하지만 한나라 사...

10.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라 [強食, 強飯, 彊食, 彊飯] [🔒 무료 미리보기]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을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한나라 사람들은 남을 격려할 때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9. 주후혜문 [柱後惠文] [🔒 무료 미리보기]

서한 선제 때의 인물인 장창은 경조윤으로서 수도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후대에는 다른 일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인의 눈썹을 손수 그려 준 “경조화미”입니다. ❡ 오늘의 소재가 눈썹은 아니지만 몸의 외관을 장식하는 것과 억지로 관련지어 볼 수는 있습니다. 장창은 동생 장무가 양국의 상으로 임명되자 그를 불러서 양국을 어떻게 통치할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무는 형을 두려워해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눈썹을 예쁘게 그리는 남편이었지만 동생에게는 무서운 형이었던 모양입니다.

8. 죽음을 무릅쓰다 [昧死] [🔒 무료 미리보기]

아래 글은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의 재상들이 황제의 공적을 돌에 새기자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왼쪽 상단에 빨간 색으로 표시한 두 글자가 매사昧死, 즉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입니다. ❡ 《사기》나 《한서》나 《후한서》나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전기를 찾아보면 황제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는 모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 정말 비장했구나! 아니면 정말 두려워했구나!”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황제에게 글을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5.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듯 [如白駒過隙] [🔒 무료 미리보기]

사실 한나라 사람들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원래는 《장자莊子·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나온 문장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흰 망아지일까요?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욤. ❡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가듯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 ❡ 아무튼 《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4. 붉은 수레바퀴 [朱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의 수레는 바퀴가 큽니다. 바퀴를 색칠하면 눈에 잘 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퀴를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 일단 바퀴를 칠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나라 사람들이 수레를 어떻게 튜닝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럴 때 저는 서한 효소제 때의 염철회의를 각색한 《염철론》의 〈산부족〉편을 찾으러 갑니다. 여기에서 유학자인 현량과 문학은 당시 사람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수레에 대한 내용을 봅시다.

3. 바닷가 [海濱, 海瀕, 海濵] [🔒 무료 미리보기]

현대한국어에서 바닷가는 한자어로 해변海邊이라고 하지만, 상고한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해빈海濱·海瀕·海濵입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해변海邊이나 해빈海濱이나 바닷가는 바닷가지요. 육지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왜 《한나라 숙어 수첩》에서 굳이 다루게 되었을까요? ❡ 현대 한국에서 한국어 사용자가 생각하는 바닷가는 대개 여행지, 관광지, 휴양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바닷가에 가고 싶어합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혹은 일부...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1. 백 년 뒤 [百歲後] [🔒 무료 미리보기]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창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어미를 ‘하게’나 ‘하오’로 끝내고 한자어를 많이 넣습니다. 고사성어를 잘 인용하면 더욱 좋겠지요. ❡ 하지만 단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아둔한 사람! 머리를 써 보게!”나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저런 소인배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은 꼴을 보고 배가 아플 자도 많을 거요.” 같은 대사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 ‘배가 아프다’와 같은 말이 한국어의 관용구라는 것을 의식하고 나면 공연히 신경이 쓰입니...

Tag 관우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Tag 관운장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관자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Tag 광녀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Tag 광무군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Tag 광무제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광아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Tag 광이기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광지

6. 조조가 옷 속에 넣은 것 [🔒 무료 미리보기]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인용된 《광지廣志》에 따르면 조조는 이것을 옷 속에 넣었습니다.

Tag 광천왕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광형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교수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구리그릇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Tag 구속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Tag 구순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구온춘주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Tag 구익부인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Tag 구장산술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Tag 구황식물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Tag 국가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Tag 국어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군악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군행식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Tag 궁형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귀신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Tag 규람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Tag 그녀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그림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근심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Tag 금궤요략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금문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금병매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한대의 생일 파티 [🔒 무료 미리보기]

생일을 축하하는 풍습은 현대인에게 중요합니다. 덕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애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필수적인 행사이며, 생일파티는 써먹기 좋은 이벤트입니다. ❡ “동양풍”에서도 생일 파티가 어색하지 않은 듯합니다. 실제로 《금병매金瓶梅》와 같은 고전 소설에서도 생일 파티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금병매》는 명나라 때 나온 소설로, 한나라에 비하면 그렇게 오래된 옛날은 아닙니다. 초한지와 삼국지 등 한대에 걸쳐 있는 장르에서라면 어떨까요?

Tag 금옥장교

한나라의 황후들

—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

Tag 급급여율령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Tag 급취편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Tag 기녀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기린각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기이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Tag 기전체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길평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Tag 김구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김일제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깃발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Tag 깃털부채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Tag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Tag 나무그릇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Tag 나팔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낙양가람기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난대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난릉소씨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난초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Tag 남근숭배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남북조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남양공주훈의향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남자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Tag 납일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Tag 낭고상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Tag 낭야군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Tag 노래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Tag 노루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Tag 노숙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Tag 노예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Tag 논문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Tag 논어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논영회

‘논영회’의 그 대사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1

얼마 전부터 《삼국연의》를 처음부터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읽던 것은 아니다 보니 저자 나본(자: 관중)의 창작이나 전승보다는 기존 《삼국지》에 나온 장면에 살을 덧붙인 서술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대화에서 사용하는 호칭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요. ❡ 사서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이른바 ‘논영회’였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는 소설과 만화에서 많이 보았는데, 《삼국지》 본문의 호칭을 그대로 옮기자면 “천하의 영웅은 사군(使君)...

Tag 논형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뇌공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뇌량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Tag 단가행

조조 〈단가행〉 (중고한어 낭독)

조조가 지은 〈단가행〉을 중고한어 재구음으로 낭독했습니다. ❡ 朗读了曹操所作的《短歌行》中古汉语拟音版本。 ❡ Recited A Song of the Short Life by Cao Cao in reconstructed Middle Chinese pronunciation.

Tag 단수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Tag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달력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Tag 대관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대대례기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대명사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대사공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대사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대사마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대식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대우정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대원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도검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도겸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Tag 도고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도량형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도방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도요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Tag 도원결의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Tag 도장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18. 반쪽짜리 [半通] [🔒 무료 미리보기]

반통半通. 통通이 온전한 하나를 뜻하고, 앞에 반半이 붙었습니다. 온전한 하나는 무엇이고 그 절반은 무엇일까요?

Tag 도필리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독단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독초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Tag 돈황변문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Tag 돈황변문집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Tag 돈황한간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돌사람

20. 돌사람, 나무 인형 [石人, 木偶人] [🔒 무료 미리보기]

아래의 예문은 서한 무제 때 황태후 왕씨가 아들인 황제에게 왜 자기 동생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남들이 모두 내 동생을 깔아뭉개니, 만약 내 백 년 뒤가 되면 모두 고깃살로 만들겠구려. 게다가 황제는 어떻게 돌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사기》 〈위기무안후열전〉

Tag 동관한기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동성애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동승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Tag 동요

삼국지포켓북 6.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동월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동탁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동현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Tag 두기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두아원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Tag 두업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두연년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두자하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두주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두흠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딜도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Tag 따봉

👍 ‘따봉’, 엄지척이 중국 전통에도 있었을까?

현대 한국에서 격식을 덜 차리는 상황의 경우 상대를 칭찬할 때 “따봉!”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따봉”이라고 불리는 엄지척 동작의 유래를 동아시아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 우선 “따봉”이라는 말 자체의 기원은 명백합니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로 “좋아!”를 의미하는 “Está bom!”의 축약형 “Tá bom!”입니다.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배경이 브라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브라질산 오렌지로 만든 주스의 텔레비전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광고에 나온 “Tá bom!...

Tag 딸랑이북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레즈비언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렌즈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Tag 련예의향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로즈마리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마궁

《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Tag 마노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Tag 마무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마스크팩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Tag 마왕퇴한묘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Tag 마융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마초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만세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말희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망아지

5.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듯 [如白駒過隙] [🔒 무료 미리보기]

사실 한나라 사람들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원래는 《장자莊子·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나온 문장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흰 망아지일까요?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욤. ❡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가듯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 ❡ 아무튼 《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Tag 매듭

전국 시대 청동기·옥기 매듭 메모 [🔒 무료 미리보기]

월인공방의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대동은전 노리개를 보다가 매듭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중국 고대의 매듭에 관해 찾아보게 되었다. ❡ 전국시대에는 동그릇 위에 눈에 보이는 곳에는 모두 매듭의 모양을 남겼는데, 매우 정교하게 끈 하나를 이용하여 6개의 점을 이용하여 대칭을 만들어 냈다. 📖 이목성. (2010). 〈중국전통의 길상(吉祥)문양 디자인에 대한 연구: 매듭문양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포럼》, 22, 35-44.

Tag 매령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매복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매실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매실나무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매악의향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매예향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매지권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Tag 매현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매화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Tag 매화나무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매화의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맹달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Tag 맹자

👍 ‘따봉’, 엄지척이 중국 전통에도 있었을까?

현대 한국에서 격식을 덜 차리는 상황의 경우 상대를 칭찬할 때 “따봉!”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따봉”이라고 불리는 엄지척 동작의 유래를 동아시아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 우선 “따봉”이라는 말 자체의 기원은 명백합니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로 “좋아!”를 의미하는 “Está bom!”의 축약형 “Tá bom!”입니다.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배경이 브라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브라질산 오렌지로 만든 주스의 텔레비전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광고에 나온 “Tá bom!...

Tag 맹하후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머리장식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Tag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Tag 면류관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Tag 명나라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명부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명사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Tag 명아줏잎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Tag 명절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Tag 모개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모살기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모용덕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모용성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모용수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모종강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목욕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Tag 목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Tag 무기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무제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20. 돌사람, 나무 인형 [石人, 木偶人] [🔒 무료 미리보기]

아래의 예문은 서한 무제 때 황태후 왕씨가 아들인 황제에게 왜 자기 동생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남들이 모두 내 동생을 깔아뭉개니, 만약 내 백 년 뒤가 되면 모두 고깃살로 만들겠구려. 게다가 황제는 어떻게 돌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사기》 〈위기무안후열전〉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Tag 무현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묵향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Tag 문제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물갈이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Tag 물고기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Tag 미남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미녀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Tag 미부인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Tag 미용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Tag 미주랑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Tag 미질부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미질향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Tag 미질향부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밀크티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바다

3. 바닷가 [海濱, 海瀕, 海濵] [🔒 무료 미리보기]

현대한국어에서 바닷가는 한자어로 해변海邊이라고 하지만, 상고한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해빈海濱·海瀕·海濵입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해변海邊이나 해빈海濱이나 바닷가는 바닷가지요. 육지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왜 《한나라 숙어 수첩》에서 굳이 다루게 되었을까요? ❡ 현대 한국에서 한국어 사용자가 생각하는 바닷가는 대개 여행지, 관광지, 휴양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바닷가에 가고 싶어합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혹은 일부...

Tag 바닷가

3. 바닷가 [海濱, 海瀕, 海濵] [🔒 무료 미리보기]

현대한국어에서 바닷가는 한자어로 해변海邊이라고 하지만, 상고한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해빈海濱·海瀕·海濵입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해변海邊이나 해빈海濱이나 바닷가는 바닷가지요. 육지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왜 《한나라 숙어 수첩》에서 굳이 다루게 되었을까요? ❡ 현대 한국에서 한국어 사용자가 생각하는 바닷가는 대개 여행지, 관광지, 휴양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바닷가에 가고 싶어합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혹은 일부...

Tag 바둑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Tag 바질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바퀴

4. 붉은 수레바퀴 [朱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의 수레는 바퀴가 큽니다. 바퀴를 색칠하면 눈에 잘 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퀴를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 일단 바퀴를 칠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나라 사람들이 수레를 어떻게 튜닝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럴 때 저는 서한 효소제 때의 염철회의를 각색한 《염철론》의 〈산부족〉편을 찾으러 갑니다. 여기에서 유학자인 현량과 문학은 당시 사람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수레에 대한 내용을 봅시다.

Tag 박물지

4. 조조가 특히 좋아한 음악 장르는?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정사 《삼국지》 주석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조조의 음악적 재능은 당시의 명사 환담桓譚과 채옹蔡邕에 비길 만했으며, 《조만전曹瞞傳》에서는 가수와 배우들을 밤낮으로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요?

Tag 반 첩여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반고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반동탁연합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Tag 반려동물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Tag 반마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Tag 반복문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반소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반초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발효주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Tag

16.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食頃] [🔒 무료 미리보기]

식경食頃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며, 특히 무협이나 사극 용어로 빠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유래를 찾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면 마침 《사기》, 《한서》 등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부터 나옵니다. 《한나라 숙어 노트》에서 다룰 만합니다. ❡ 식경食頃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입말로 흔하게 썼겠지만, 글로 기록된 문헌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0.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라 [強食, 強飯, 彊食, 彊飯] [🔒 무료 미리보기]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을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한나라 사람들은 남을 격려할 때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Tag 방언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배소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백단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Tag 백문루

조조, 진궁, 백문루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 조조:...

Tag 백범일지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번역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2 [🔒 무료 미리보기]

(계속) 황제가 원앙전鴛鴦殿 휴게실에 있을 때 황제의 문서[簿]를 살폈다. 번예가 문서[簿]를 올리는 김에 진언했다. ❡ “비연에게 합덕이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얼굴과 몸매가 아름답습니다. 성품이 순수하고 믿음직하기로는 비연과 비길 수 없습니다.” ❡ 황제는 즉시 사인舍人 여연복呂延福을 시켜 봉황의 깃털 백 개로 장식한 가마[百寶鳳毛步輦車]로 합덕을 맞게 했다. 합덕은 사양했다. ❡ “귀인인 언니가 부르는 것이 아니면 감히 갈 수 없으니, [저의] 목을 베어 궁중에 알려주십시오.”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1 [🔒 무료 미리보기]

황후들의 일화에 관한 리퀘스트로 야사 《조비연외전》을 두 차례에 나누어 번역하고자 합니다. 문장이 어려워서 오역이 많을 수 있습니다. ❡ 조趙 황후 비연飛燕의 부친은 풍만금馮萬金이다. 조부 풍대력大力은 악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로 강도왕江都王의 협률사인協律舍人(음악을 담당하는 관원)이 되었다. 풍만금은 가업을 이으려 하지 않고, 노래를 익히고 소실된 악곡을 편찬했다. 손을 복잡하게 놀리며 슬픈 소리를 내는 기술로 스스로 범미凡靡의[모두가 쓰러지는] 음악이라고 했다. 듣는 사람들이 여기에 감동하였다. ❡ 강도왕의 손녀 고소姑蘇옹주...

Tag 범강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범엽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법경경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법구경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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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Tag 벼루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병사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Tag 보라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보라색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보석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Tag 보요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Tag 보임소경서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복날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Tag 복숭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Tag 복식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본기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봉거도위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봉상왕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봉신연의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부생육기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부채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불경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비누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Tag 비디오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Tag 비석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Tag 비위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비유

13. 배와 가슴 [腹心] [🔒 무료 미리보기]

우리는 똑똑한 사람을 두고 머리가 좋다고 하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두고 머리에 든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비유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지요. 현대인들에게는 머릿속에서, 더 자세하게는 두뇌에서 사고를 주관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뇌가 없다’,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었다’ 같은 상스러운 말에서도 이러한 전제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한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라 및 그 이전의 문헌에서 뇌腦를 검...

Tag 뽀뽀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사(蜡)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Tag 사군

11. 조조가 유비를 일컫는 말의 변화: ‘명사군’부터 ‘짚신가게 새끼’까지 [🔒 무료 미리보기]

역사책 이야기건 소설책 이야기건, 삼국지의 서사에서 주요한 축으로는 조조와 유비의 대립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정사” 의 본문과 주석에서도 조조가 유비를 칭하는 말을 뽑아 보면 조조가 유비를 대하는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조조는 유비를 잘 대접하면서 자사·주목에 대한 존칭인 ‘사군‘이라고 부릅니다.

Tag 사군자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사기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16.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食頃] [🔒 무료 미리보기]

식경食頃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며, 특히 무협이나 사극 용어로 빠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유래를 찾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면 마침 《사기》, 《한서》 등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부터 나옵니다. 《한나라 숙어 노트》에서 다룰 만합니다. ❡ 식경食頃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입말로 흔하게 썼겠지만, 글로 기록된 문헌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5.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듯 [如白駒過隙] [🔒 무료 미리보기]

사실 한나라 사람들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원래는 《장자莊子·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나온 문장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흰 망아지일까요?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욤. ❡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가듯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 ❡ 아무튼 《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1. 백 년 뒤 [百歲後] [🔒 무료 미리보기]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창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어미를 ‘하게’나 ‘하오’로 끝내고 한자어를 많이 넣습니다. 고사성어를 잘 인용하면 더욱 좋겠지요. ❡ 하지만 단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아둔한 사람! 머리를 써 보게!”나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저런 소인배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은 꼴을 보고 배가 아플 자도 많을 거요.” 같은 대사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 ‘배가 아프다’와 같은 말이 한국어의 관용구라는 것을 의식하고 나면 공연히 신경이 쓰입니...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사냥개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사람돼지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사마도지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사마의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Tag 사마천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사부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사슴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Tag 사시식제

10. 조조가 좋아한 음식은? [🔒 무료 미리보기]

남북조의 책 《안씨가훈》을 읽다가 뜬금없이 〈위무사시식제魏武四時食制〉라는 글이 인용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위무魏武’는 위 무제 조조를 가리키고, ‘사시식제四時食制’는 사계절의 음식 제도라는 뜻이니까 조조가 쓴 제철 음식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음식에 관한 글도 썼나 봅니다. 사실 놀랍지는 않습니다. 조조가 뭔들 안 썼겠어요… ❡ 혹시 〈사시식제〉가 책으로 남아 있는가 해서 《수서》 〈경적지〉에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이루어질 만큼의 분량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수대에 이미 소실되어 버렸던...

Tag 사죄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15. 죽을 죄를 짓다 ×2 [死罪死罪] [🔒 무료 미리보기]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러서 무거운 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쓸 것 같습니다. 과장이 좀 들어갔다고 해도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거나 남의 잘못을 탄핵할 때 할 법한 말입니다. 한나라에서도 물론 그렇게 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Tag 사치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4. 붉은 수레바퀴 [朱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의 수레는 바퀴가 큽니다. 바퀴를 색칠하면 눈에 잘 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퀴를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 일단 바퀴를 칠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나라 사람들이 수레를 어떻게 튜닝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럴 때 저는 서한 효소제 때의 염철회의를 각색한 《염철론》의 〈산부족〉편을 찾으러 갑니다. 여기에서 유학자인 현량과 문학은 당시 사람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수레에 대한 내용을 봅시다.

Tag 산발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Tag 산해경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살쾡이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Tag 살해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Tag 삼고초려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향香과 차茶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

Tag 삼공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삼국연의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황건적’ 말고 그냥 ‘황건’이라고 말해 보기

20년 전 아(雅)의 본체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론 중에 대략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악의 예시로 “황건적”을 거론한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건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황건기의’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하고 반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를 잘 알던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삼국지 덕후의 자질이 잠재했던 것 같습니다. ❡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황건”이라는 두 글자를 단독으...

Tag 삼국지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삼국지톡》 리뷰 한 조각 (1) 자(字)

— 자의 사용과 언급, 여성 캐릭터의 자에 관해

아雅가 옛날 글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나 타인을 가리키는 표현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가장 큰 관심이 간다. 한문이라면 자신을 가리킬 때 이름을 쓰는지 ‘소인小人’을 쓰는지, 남을 가리킬 때 자字를 쓰는지 관직명을 쓰는지 등등. 《한서》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고, 마침 아雅는 텍스트로 된 언어 자료에서 용례를 뽑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조금 익숙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낸 《한서》 동인지가 《자칭·호칭·지칭》이었고, 삼국지포켓북 시리즈 또한 《호칭어 가이드》로 시작했다. ❡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황건적’ 말고 그냥 ‘황건’이라고 말해 보기

20년 전 아(雅)의 본체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론 중에 대략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악의 예시로 “황건적”을 거론한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건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황건기의’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하고 반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를 잘 알던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삼국지 덕후의 자질이 잠재했던 것 같습니다. ❡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황건”이라는 두 글자를 단독으...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체장부인(體長婦人)의 수수께끼

— 원소는 도대체 어떻게 자랐나?

《삼국지》에서 찾을 것이 있어서 원문 검색 결과를 눈으로 빨리 훑어보려다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의 體長婦人(체장부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뭐라고? 체구가 여자 같았다고? 《사기》에 나오는 장량처럼 가녀린 미남인가? 애초에 《삼국지》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왜 지금까지 몰랐지?? ❡ 서둘러 문장의 주어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袁本初(원본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모위용(姿貌威容)으로 유명한 그 원소입니다. 원소는 당연히 몸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자모위용”과 “체장부인”이 양립할 수 있을까...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삼국지포켓북 6.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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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4. 육형 부활 논의에 관한 시론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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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3. 향, 새로운 감각의 개척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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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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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삼국지포켓북 1. 호칭어 가이드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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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향香과 차茶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조조, 진궁, 백문루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 조조:...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논영회’의 그 대사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1

얼마 전부터 《삼국연의》를 처음부터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읽던 것은 아니다 보니 저자 나본(자: 관중)의 창작이나 전승보다는 기존 《삼국지》에 나온 장면에 살을 덧붙인 서술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대화에서 사용하는 호칭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요. ❡ 사서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이른바 ‘논영회’였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는 소설과 만화에서 많이 보았는데, 《삼국지》 본문의 호칭을 그대로 옮기자면 “천하의 영웅은 사군(使君)...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Stop Procrastinating

장막이 진궁을 낚아챈 것이 아니라 진궁이 장막을 꼬드겼다는 소식에 조조는 더욱 분노했다. ❡ “장군將軍.” ❡ 분무사마奮武司馬 순욱이 조조를 다시 불렀다. ❡ “분무장군奮武將軍.” ❡ 조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욱도 이제 자기를 사군使君(주목, 주자사에 대한 경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차마 사군使君으로 칭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했다. 견, 범, 동아 세 개 성만 남은 지금 연주목으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기는 민망하다는 염치는 뜻밖에 조조에게도 있었다. ❡ “서주徐州를 다시 치러 가실 때가 아닙니다.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지...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5. 조조의 손 씻기[盥] [🔒 무료 미리보기]

관盥이라는 한자는 정말 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릇[皿]에 담긴 물[水]에 양손[臼]을 넣은 모양입니다. 후한 때 나온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손을 씻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 글자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건안 21년 2월 위공 조조가 업으로 귀환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魏書》에 나옵니다. 조조는 2월 갑자일 사당[廟]에 봄 제사[春祠]를 지내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몸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데, 여기에 손 씻기가 나옵니다.

4. 조조가 특히 좋아한 음악 장르는?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정사 《삼국지》 주석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조조의 음악적 재능은 당시의 명사 환담桓譚과 채옹蔡邕에 비길 만했으며, 《조만전曹瞞傳》에서는 가수와 배우들을 밤낮으로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요?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2. 《한서》 〈곽광전〉을 열심히 읽은 조조 [🔒 무료 미리보기]

첫 번째는 조조가 영천에서 황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제남상, 동군태수가 되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중평(184–189) 연간에 기주 자사 왕분과 남양 사람 허유, 패국 사람 주정 등이 호걸들과 결탁하여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하려고 모의하면서 조조에게도 알렸습니다. 《삼국지》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조조가 어떻게 거절했는지를 상세하게 실어 놓았습니다.

1.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는 조조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스무 살에 낙양 북부위가 되어 치안을 담당하던 시절 환관 건석의 숙부를 때려 죽인 사건이 유명합니다. 그 몽둥이의 색깔까지 궁금하지는 않은데, 《삼국지》 주석에 적혀 있어서 그만 알아 버렸습니다.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손끝의 감각

군법의 관례대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벌여 놓은 도끼와 받침대1를 치우고 교수대를 설치하는 동안 진궁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목을 매달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을 베어 달라는 진궁의 뜻대로 해 주기 싫다는 심술인지, 죽더라도 ‘온전한 몸’을 남기게 해 주려는 배려인지 조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처형 방법을 바꾼다는 핑계로 조조는 진궁을 잠시 더 살려 둘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조조가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궁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날붙이를 끈으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삼국지 조조전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삼국지톡

《삼국지톡》 리뷰 한 조각 (1) 자(字)

— 자의 사용과 언급, 여성 캐릭터의 자에 관해

아雅가 옛날 글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나 타인을 가리키는 표현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가장 큰 관심이 간다. 한문이라면 자신을 가리킬 때 이름을 쓰는지 ‘소인小人’을 쓰는지, 남을 가리킬 때 자字를 쓰는지 관직명을 쓰는지 등등. 《한서》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고, 마침 아雅는 텍스트로 된 언어 자료에서 용례를 뽑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조금 익숙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낸 《한서》 동인지가 《자칭·호칭·지칭》이었고, 삼국지포켓북 시리즈 또한 《호칭어 가이드》로 시작했다. ❡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Tag 삼국지통속연의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향香과 차茶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조조, 진궁, 백문루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 조조:...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논영회’의 그 대사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1

얼마 전부터 《삼국연의》를 처음부터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읽던 것은 아니다 보니 저자 나본(자: 관중)의 창작이나 전승보다는 기존 《삼국지》에 나온 장면에 살을 덧붙인 서술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대화에서 사용하는 호칭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요. ❡ 사서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이른바 ‘논영회’였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는 소설과 만화에서 많이 보았는데, 《삼국지》 본문의 호칭을 그대로 옮기자면 “천하의 영웅은 사군(使君)...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Tag 삼국지포켓북

삼국지포켓북 6.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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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4. 육형 부활 논의에 관한 시론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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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3. 향, 새로운 감각의 개척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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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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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포켓북 1. 호칭어 가이드 [🔒 무료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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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삼장법사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Tag 삽살개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Tag 상고한어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Tag 상상력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Tag 상아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Tag 상아젓가락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Tag 상역적제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상원절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상주문

8. 죽음을 무릅쓰다 [昧死] [🔒 무료 미리보기]

아래 글은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의 재상들이 황제의 공적을 돌에 새기자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왼쪽 상단에 빨간 색으로 표시한 두 글자가 매사昧死, 즉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입니다. ❡ 《사기》나 《한서》나 《후한서》나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전기를 찾아보면 황제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는 모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 정말 비장했구나! 아니면 정말 두려워했구나!”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황제에게 글을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

Tag 상한론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새해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조각번역] 후한 궁정의 새해맞이 행사

한 해의 첫날에는 조정에서 활쏘기 행사를 크게 열고 하례를 받는다. 그 의식에 따르면 밤의 물시계가 7각이 되기 전에 종을 울리고 하례와 예물을 받는데, 공·후는 옥구슬, 중2천 석은 새끼양, 1천 석과 600석은 기러기, 400석 이하는 꿩이다. 백관이 정월을 축하하고, 2천 석 이상은 윗전각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어전에서 술잔을 든다. 사공司空이 국을, 대사농大司農이 밥을 올린다. 식사를 거행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백관이 하사품을 받으며 술잔치로 크게 즐거워한다. 《태평어람》 〈시서부14〉 원일

Tag 색채어

흰색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로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희다’, ‘하얗다’, ‘허옇다’, ‘하야스름하다’, ‘희끄무레하다‘ 등 하나의 색깔을 가리키는 색채어 형용사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용사를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다는 번역의 한계 때문에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한다는 한탄도 종종 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적어도 20세기에는 이랬습니다. ❡ 하지만 한국어에 한국어만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모든 언어는 각기 고유한 특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색깔을 표현하는 ...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생강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Tag 생선

11. 고깃살 [魚肉] [🔒 무료 미리보기]

어육魚肉은 한국어 단어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짓밟고 으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고상하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제시하는 예문도 그렇습니다. 50대 아저씨가 복식호흡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왜적의 손에 나라 땅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어육이 되어…. 박종화, 《임진왜란》 ❡ 한번 나라를 그르치니 대(代)를 이은 충신의 집이 어육이 나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하지만 한나라 사...

Tag 생일

한대의 생일 파티 [🔒 무료 미리보기]

생일을 축하하는 풍습은 현대인에게 중요합니다. 덕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애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필수적인 행사이며, 생일파티는 써먹기 좋은 이벤트입니다. ❡ “동양풍”에서도 생일 파티가 어색하지 않은 듯합니다. 실제로 《금병매金瓶梅》와 같은 고전 소설에서도 생일 파티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금병매》는 명나라 때 나온 소설로, 한나라에 비하면 그렇게 오래된 옛날은 아닙니다. 초한지와 삼국지 등 한대에 걸쳐 있는 장르에서라면 어떨까요?

Tag 서경잡기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서상기제궁조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Tag 서왕모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Tag 서유기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석거각회의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석명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Tag 석색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Tag 석숭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석현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Tag 선령권서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선제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설문해자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흰색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로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희다’, ‘하얗다’, ‘허옇다’, ‘하야스름하다’, ‘희끄무레하다‘ 등 하나의 색깔을 가리키는 색채어 형용사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용사를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다는 번역의 한계 때문에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한다는 한탄도 종종 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적어도 20세기에는 이랬습니다. ❡ 하지만 한국어에 한국어만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모든 언어는 각기 고유한 특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색깔을 표현하는 ...

5. 조조의 손 씻기[盥] [🔒 무료 미리보기]

관盥이라는 한자는 정말 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릇[皿]에 담긴 물[水]에 양손[臼]을 넣은 모양입니다. 후한 때 나온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손을 씻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 글자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건안 21년 2월 위공 조조가 업으로 귀환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魏書》에 나옵니다. 조조는 2월 갑자일 사당[廟]에 봄 제사[春祠]를 지내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몸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데, 여기에 손 씻기가 나옵니다.

Tag 설선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설원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Tag 성별이분법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성별중립성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성씨

《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Tag 성제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2 [🔒 무료 미리보기]

(계속) 황제가 원앙전鴛鴦殿 휴게실에 있을 때 황제의 문서[簿]를 살폈다. 번예가 문서[簿]를 올리는 김에 진언했다. ❡ “비연에게 합덕이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얼굴과 몸매가 아름답습니다. 성품이 순수하고 믿음직하기로는 비연과 비길 수 없습니다.” ❡ 황제는 즉시 사인舍人 여연복呂延福을 시켜 봉황의 깃털 백 개로 장식한 가마[百寶鳳毛步輦車]로 합덕을 맞게 했다. 합덕은 사양했다. ❡ “귀인인 언니가 부르는 것이 아니면 감히 갈 수 없으니, [저의] 목을 베어 궁중에 알려주십시오.”

Tag 성차별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Tag 세발솥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세설신어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Tag 세설신어보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Tag 세수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5. 조조의 손 씻기[盥] [🔒 무료 미리보기]

관盥이라는 한자는 정말 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릇[皿]에 담긴 물[水]에 양손[臼]을 넣은 모양입니다. 후한 때 나온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손을 씻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 글자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건안 21년 2월 위공 조조가 업으로 귀환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魏書》에 나옵니다. 조조는 2월 갑자일 사당[廟]에 봄 제사[春祠]를 지내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몸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데, 여기에 손 씻기가 나옵니다.

Tag 세안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Tag 세정제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Tag 소관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소남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소망지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소자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Tag 소제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소하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속담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Tag 속죄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Tag 속한서

[조각번역] 후한 궁정의 새해맞이 행사

한 해의 첫날에는 조정에서 활쏘기 행사를 크게 열고 하례를 받는다. 그 의식에 따르면 밤의 물시계가 7각이 되기 전에 종을 울리고 하례와 예물을 받는데, 공·후는 옥구슬, 중2천 석은 새끼양, 1천 석과 600석은 기러기, 400석 이하는 꿩이다. 백관이 정월을 축하하고, 2천 석 이상은 윗전각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어전에서 술잔을 든다. 사공司空이 국을, 대사농大司農이 밥을 올린다. 식사를 거행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백관이 하사품을 받으며 술잔치로 크게 즐거워한다. 《태평어람》 〈시서부14〉 원일

Tag 손견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손권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Tag 손랑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Tag 손부인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Tag 손빈석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손사막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Tag 손책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송나라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송사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송회요집고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수갑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Tag 수경주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수굴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수레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4. 붉은 수레바퀴 [朱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의 수레는 바퀴가 큽니다. 바퀴를 색칠하면 눈에 잘 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퀴를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 일단 바퀴를 칠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나라 사람들이 수레를 어떻게 튜닝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럴 때 저는 서한 효소제 때의 염철회의를 각색한 《염철론》의 〈산부족〉편을 찾으러 갑니다. 여기에서 유학자인 현량과 문학은 당시 사람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수레에 대한 내용을 봅시다.

Tag 수서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9. 조조의 책 [🔒 무료 미리보기]

조조는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의 시대에 어떤 책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가장 가까운 시기의 정사로는 앞뒤로 서한의 《한서》 〈예문지〉와 수나라의 《수서》 〈경적지〉가 있습니다. 둘 다 당시에 수집된 도서 목록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아쉽게도 조조가 생존했던 시기를 다루는 《후한서》와 《삼국지》는 도서 목록을 수록하지 않아서, 조조와 관련된 책을 찾으려면 《수서》 〈경적지〉를 참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조조가 특히 치중한 장르를 알 수 있습니다.

Tag 수성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수신기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수신후기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수염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수학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숙어

20. 돌사람, 나무 인형 [石人, 木偶人] [🔒 무료 미리보기]

아래의 예문은 서한 무제 때 황태후 왕씨가 아들인 황제에게 왜 자기 동생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남들이 모두 내 동생을 깔아뭉개니, 만약 내 백 년 뒤가 되면 모두 고깃살로 만들겠구려. 게다가 황제는 어떻게 돌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사기》 〈위기무안후열전〉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18. 반쪽짜리 [半通] [🔒 무료 미리보기]

반통半通. 통通이 온전한 하나를 뜻하고, 앞에 반半이 붙었습니다. 온전한 하나는 무엇이고 그 절반은 무엇일까요?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16.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食頃] [🔒 무료 미리보기]

식경食頃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며, 특히 무협이나 사극 용어로 빠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유래를 찾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면 마침 《사기》, 《한서》 등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부터 나옵니다. 《한나라 숙어 노트》에서 다룰 만합니다. ❡ 식경食頃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입말로 흔하게 썼겠지만, 글로 기록된 문헌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 죽을 죄를 짓다 ×2 [死罪死罪] [🔒 무료 미리보기]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러서 무거운 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쓸 것 같습니다. 과장이 좀 들어갔다고 해도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거나 남의 잘못을 탄핵할 때 할 법한 말입니다. 한나라에서도 물론 그렇게 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14. 머리 감기 [沐] [🔒 무료 미리보기]

오늘의 이야기는 춘추 시대의 일화입니다. 하지만 이 일화가 실린 《한시외전》이 서한 때의 책이니까, 춘추 시대의 사건이라도 한나라 사람들의 말로 기록된 셈이지요.

13. 배와 가슴 [腹心] [🔒 무료 미리보기]

우리는 똑똑한 사람을 두고 머리가 좋다고 하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두고 머리에 든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비유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지요. 현대인들에게는 머릿속에서, 더 자세하게는 두뇌에서 사고를 주관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뇌가 없다’,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었다’ 같은 상스러운 말에서도 이러한 전제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한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라 및 그 이전의 문헌에서 뇌腦를 검...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11. 고깃살 [魚肉] [🔒 무료 미리보기]

어육魚肉은 한국어 단어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짓밟고 으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고상하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제시하는 예문도 그렇습니다. 50대 아저씨가 복식호흡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왜적의 손에 나라 땅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어육이 되어…. 박종화, 《임진왜란》 ❡ 한번 나라를 그르치니 대(代)를 이은 충신의 집이 어육이 나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하지만 한나라 사...

10.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라 [強食, 強飯, 彊食, 彊飯] [🔒 무료 미리보기]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을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한나라 사람들은 남을 격려할 때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9. 주후혜문 [柱後惠文] [🔒 무료 미리보기]

서한 선제 때의 인물인 장창은 경조윤으로서 수도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후대에는 다른 일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인의 눈썹을 손수 그려 준 “경조화미”입니다. ❡ 오늘의 소재가 눈썹은 아니지만 몸의 외관을 장식하는 것과 억지로 관련지어 볼 수는 있습니다. 장창은 동생 장무가 양국의 상으로 임명되자 그를 불러서 양국을 어떻게 통치할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무는 형을 두려워해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눈썹을 예쁘게 그리는 남편이었지만 동생에게는 무서운 형이었던 모양입니다.

8. 죽음을 무릅쓰다 [昧死] [🔒 무료 미리보기]

아래 글은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의 재상들이 황제의 공적을 돌에 새기자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왼쪽 상단에 빨간 색으로 표시한 두 글자가 매사昧死, 즉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입니다. ❡ 《사기》나 《한서》나 《후한서》나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전기를 찾아보면 황제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는 모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 정말 비장했구나! 아니면 정말 두려워했구나!”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황제에게 글을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5.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듯 [如白駒過隙] [🔒 무료 미리보기]

사실 한나라 사람들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원래는 《장자莊子·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나온 문장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흰 망아지일까요?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욤. ❡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가듯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 ❡ 아무튼 《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4. 붉은 수레바퀴 [朱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의 수레는 바퀴가 큽니다. 바퀴를 색칠하면 눈에 잘 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퀴를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 일단 바퀴를 칠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나라 사람들이 수레를 어떻게 튜닝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럴 때 저는 서한 효소제 때의 염철회의를 각색한 《염철론》의 〈산부족〉편을 찾으러 갑니다. 여기에서 유학자인 현량과 문학은 당시 사람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수레에 대한 내용을 봅시다.

3. 바닷가 [海濱, 海瀕, 海濵] [🔒 무료 미리보기]

현대한국어에서 바닷가는 한자어로 해변海邊이라고 하지만, 상고한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해빈海濱·海瀕·海濵입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해변海邊이나 해빈海濱이나 바닷가는 바닷가지요. 육지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왜 《한나라 숙어 수첩》에서 굳이 다루게 되었을까요? ❡ 현대 한국에서 한국어 사용자가 생각하는 바닷가는 대개 여행지, 관광지, 휴양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바닷가에 가고 싶어합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혹은 일부...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1. 백 년 뒤 [百歲後] [🔒 무료 미리보기]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창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어미를 ‘하게’나 ‘하오’로 끝내고 한자어를 많이 넣습니다. 고사성어를 잘 인용하면 더욱 좋겠지요. ❡ 하지만 단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아둔한 사람! 머리를 써 보게!”나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저런 소인배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은 꼴을 보고 배가 아플 자도 많을 거요.” 같은 대사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 ‘배가 아프다’와 같은 말이 한국어의 관용구라는 것을 의식하고 나면 공연히 신경이 쓰입니...

Tag 순령십리향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순우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순우제영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Tag 순욱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Stop Procrastinating

장막이 진궁을 낚아챈 것이 아니라 진궁이 장막을 꼬드겼다는 소식에 조조는 더욱 분노했다. ❡ “장군將軍.” ❡ 분무사마奮武司馬 순욱이 조조를 다시 불렀다. ❡ “분무장군奮武將軍.” ❡ 조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욱도 이제 자기를 사군使君(주목, 주자사에 대한 경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차마 사군使君으로 칭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했다. 견, 범, 동아 세 개 성만 남은 지금 연주목으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기는 민망하다는 염치는 뜻밖에 조조에게도 있었다. ❡ “서주徐州를 다시 치러 가실 때가 아닙니다.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지...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순욱유협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Tag 순유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Tag 순자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순채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Tag 술이기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승상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Tag 승상부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Tag 승상사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Tag 승여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Tag 시경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Tag 식사

10.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라 [強食, 強飯, 彊食, 彊飯] [🔒 무료 미리보기]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을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한나라 사람들은 남을 격려할 때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Tag 식소사번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Tag 신분제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신서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Tag 신추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Tag 십팔사략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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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Tag 쌀뜨물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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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Tag 아농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아농사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아동

삼국지포켓북 6.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아만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Tag 아명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Tag 아빠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안모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안씨가훈

10. 조조가 좋아한 음식은? [🔒 무료 미리보기]

남북조의 책 《안씨가훈》을 읽다가 뜬금없이 〈위무사시식제魏武四時食制〉라는 글이 인용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위무魏武’는 위 무제 조조를 가리키고, ‘사시식제四時食制’는 사계절의 음식 제도라는 뜻이니까 조조가 쓴 제철 음식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음식에 관한 글도 썼나 봅니다. 사실 놀랍지는 않습니다. 조조가 뭔들 안 썼겠어요… ❡ 혹시 〈사시식제〉가 책으로 남아 있는가 해서 《수서》 〈경적지〉에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이루어질 만큼의 분량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수대에 이미 소실되어 버렸던...

한대의 생일 파티 [🔒 무료 미리보기]

생일을 축하하는 풍습은 현대인에게 중요합니다. 덕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애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필수적인 행사이며, 생일파티는 써먹기 좋은 이벤트입니다. ❡ “동양풍”에서도 생일 파티가 어색하지 않은 듯합니다. 실제로 《금병매金瓶梅》와 같은 고전 소설에서도 생일 파티가 자주 나옵니다. 하지만 《금병매》는 명나라 때 나온 소설로, 한나라에 비하면 그렇게 오래된 옛날은 아닙니다. 초한지와 삼국지 등 한대에 걸쳐 있는 장르에서라면 어떨까요?

Tag 암살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애완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애제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Tag 애처가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Tag 야유사균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Tag 약법삼장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Tag 약분술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양고행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Tag 양동작전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양부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양서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양성군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양양기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Tag 양운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양원신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양정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어림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Tag 어원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언어

20. 돌사람, 나무 인형 [石人, 木偶人] [🔒 무료 미리보기]

아래의 예문은 서한 무제 때 황태후 왕씨가 아들인 황제에게 왜 자기 동생의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 지금 내가 살아있는데도 남들이 모두 내 동생을 깔아뭉개니, 만약 내 백 년 뒤가 되면 모두 고깃살로 만들겠구려. 게다가 황제는 어떻게 돌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이오! 《사기》 〈위기무안후열전〉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18. 반쪽짜리 [半通] [🔒 무료 미리보기]

반통半通. 통通이 온전한 하나를 뜻하고, 앞에 반半이 붙었습니다. 온전한 하나는 무엇이고 그 절반은 무엇일까요?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16.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食頃] [🔒 무료 미리보기]

식경食頃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며, 특히 무협이나 사극 용어로 빠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유래를 찾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면 마침 《사기》, 《한서》 등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부터 나옵니다. 《한나라 숙어 노트》에서 다룰 만합니다. ❡ 식경食頃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입말로 흔하게 썼겠지만, 글로 기록된 문헌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5. 죽을 죄를 짓다 ×2 [死罪死罪] [🔒 무료 미리보기]

죽을 죄를 지었다는 말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러서 무거운 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 쓸 것 같습니다. 과장이 좀 들어갔다고 해도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거나 남의 잘못을 탄핵할 때 할 법한 말입니다. 한나라에서도 물론 그렇게 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쓰인 것은 아닙니다.

14. 머리 감기 [沐] [🔒 무료 미리보기]

오늘의 이야기는 춘추 시대의 일화입니다. 하지만 이 일화가 실린 《한시외전》이 서한 때의 책이니까, 춘추 시대의 사건이라도 한나라 사람들의 말로 기록된 셈이지요.

13. 배와 가슴 [腹心] [🔒 무료 미리보기]

우리는 똑똑한 사람을 두고 머리가 좋다고 하며,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두고 머리에 든 것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이 비유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지요. 현대인들에게는 머릿속에서, 더 자세하게는 두뇌에서 사고를 주관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뇌가 없다’,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에 [뇌 대신] 우동사리가 들었다’ 같은 상스러운 말에서도 이러한 전제가 공유되고 있습니다. ❡ 하지만 한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나라 및 그 이전의 문헌에서 뇌腦를 검...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11. 고깃살 [魚肉] [🔒 무료 미리보기]

어육魚肉은 한국어 단어이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짓밟고 으깨어 아주 결딴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하면 고상하고 예스러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사전에서 제시하는 예문도 그렇습니다. 50대 아저씨가 복식호흡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 왜적의 손에 나라 땅은 결딴이 나고, 백성들은 어육이 되어…. 박종화, 《임진왜란》 ❡ 한번 나라를 그르치니 대(代)를 이은 충신의 집이 어육이 나는구나.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 하지만 한나라 사...

10. 억지로라도 밥을 먹어라 [強食, 強飯, 彊食, 彊飯] [🔒 무료 미리보기]

남의 안부를 물을 때 밥을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라면, 한나라 사람들은 남을 격려할 때 밥을 먹으라고 합니다. 먹기 싫어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까지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9. 주후혜문 [柱後惠文] [🔒 무료 미리보기]

서한 선제 때의 인물인 장창은 경조윤으로서 수도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후대에는 다른 일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인의 눈썹을 손수 그려 준 “경조화미”입니다. ❡ 오늘의 소재가 눈썹은 아니지만 몸의 외관을 장식하는 것과 억지로 관련지어 볼 수는 있습니다. 장창은 동생 장무가 양국의 상으로 임명되자 그를 불러서 양국을 어떻게 통치할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무는 형을 두려워해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눈썹을 예쁘게 그리는 남편이었지만 동생에게는 무서운 형이었던 모양입니다.

8. 죽음을 무릅쓰다 [昧死] [🔒 무료 미리보기]

아래 글은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의 재상들이 황제의 공적을 돌에 새기자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왼쪽 상단에 빨간 색으로 표시한 두 글자가 매사昧死, 즉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입니다. ❡ 《사기》나 《한서》나 《후한서》나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전기를 찾아보면 황제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는 모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 정말 비장했구나! 아니면 정말 두려워했구나!”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황제에게 글을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5.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듯 [如白駒過隙] [🔒 무료 미리보기]

사실 한나라 사람들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원래는 《장자莊子·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나온 문장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흰 망아지일까요?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욤. ❡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가듯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 ❡ 아무튼 《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4. 붉은 수레바퀴 [朱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의 수레는 바퀴가 큽니다. 바퀴를 색칠하면 눈에 잘 띄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퀴를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었을까요? ❡ 일단 바퀴를 칠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식이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한나라 사람들이 수레를 어떻게 튜닝했을지가 궁금해집니다. 이럴 때 저는 서한 효소제 때의 염철회의를 각색한 《염철론》의 〈산부족〉편을 찾으러 갑니다. 여기에서 유학자인 현량과 문학은 당시 사람들이 신분에 맞지 않게 사치를 일삼는다고 비판하면서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수레에 대한 내용을 봅시다.

3. 바닷가 [海濱, 海瀕, 海濵] [🔒 무료 미리보기]

현대한국어에서 바닷가는 한자어로 해변海邊이라고 하지만, 상고한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해빈海濱·海瀕·海濵입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해변海邊이나 해빈海濱이나 바닷가는 바닷가지요. 육지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왜 《한나라 숙어 수첩》에서 굳이 다루게 되었을까요? ❡ 현대 한국에서 한국어 사용자가 생각하는 바닷가는 대개 여행지, 관광지, 휴양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바닷가에 가고 싶어합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혹은 일부...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1. 백 년 뒤 [百歲後] [🔒 무료 미리보기]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창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어미를 ‘하게’나 ‘하오’로 끝내고 한자어를 많이 넣습니다. 고사성어를 잘 인용하면 더욱 좋겠지요. ❡ 하지만 단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아둔한 사람! 머리를 써 보게!”나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저런 소인배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은 꼴을 보고 배가 아플 자도 많을 거요.” 같은 대사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 ‘배가 아프다’와 같은 말이 한국어의 관용구라는 것을 의식하고 나면 공연히 신경이 쓰입니...

Tag 에기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여계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Tag 여름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여몽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여사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Tag 여사잠도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Tag 여성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Tag 여성혐오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Tag 여성화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여씨춘추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여아후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여자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체장부인(體長婦人)의 수수께끼

— 원소는 도대체 어떻게 자랐나?

《삼국지》에서 찾을 것이 있어서 원문 검색 결과를 눈으로 빨리 훑어보려다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의 體長婦人(체장부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뭐라고? 체구가 여자 같았다고? 《사기》에 나오는 장량처럼 가녀린 미남인가? 애초에 《삼국지》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왜 지금까지 몰랐지?? ❡ 서둘러 문장의 주어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袁本初(원본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모위용(姿貌威容)으로 유명한 그 원소입니다. 원소는 당연히 몸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자모위용”과 “체장부인”이 양립할 수 있을까...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여장

체장부인(體長婦人)의 수수께끼

— 원소는 도대체 어떻게 자랐나?

《삼국지》에서 찾을 것이 있어서 원문 검색 결과를 눈으로 빨리 훑어보려다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의 體長婦人(체장부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뭐라고? 체구가 여자 같았다고? 《사기》에 나오는 장량처럼 가녀린 미남인가? 애초에 《삼국지》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왜 지금까지 몰랐지?? ❡ 서둘러 문장의 주어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袁本初(원본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모위용(姿貌威容)으로 유명한 그 원소입니다. 원소는 당연히 몸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자모위용”과 “체장부인”이 양립할 수 있을까...

Tag 여태후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여포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Tag 역경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역법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Tag 역사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Tag 역사서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역사언어학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역전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열녀전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나라 때 여사女士의 기준은 어떠했나요? 남성 지식인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야 여사로 인정받았는지, 혹은 그보다 덜해도 ‘여자치고는 똑똑하네’라며 여사로 간주했는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사女士”라는 표현 자체는 한나라 때까지 흔히 쓰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나온 용례는 《시경·대아·생민지습》 〈기취〉의 마지막 구절인데, 이것은 훌륭한 아내를 주어 남자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여성 지식인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외의 경서나 제자백가 서적에서는 “여사”를 찾을 수 없고, 한...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Tag 열전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열후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염철론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Tag 영릉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영제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Tag 영포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예기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 한나라의 고양이를 찾아서

— 고대 중국 고양이의 아주 간략한 역사

중국사에서 눈에 띄는 고양이 붐은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시와 그림으로 고양이를 앞다투어 묘사했던 풍조입니다. 천 년 전의 고양이 그림을 구경해 봅시다. ❡ 이 블로그는 한나라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까, 11세기 송나라에서부터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양이에 대한 기록이나 유물로 눈에 띄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송나라 이전 당나라 때도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웠습니다. 중국에서 집고양이가 등장한 것이 이때부터라는 설도 있습니다. 《옥설玉屑》이라는 책에서는 아예 이전까지 중국에 고양이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서역 천축국에서 ...

총각머리의 실제 [🔒 무료 미리보기]

앞선 포스트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에서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상고시대 중국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총각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했을까요?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Tag 예문유취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8.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 무료 미리보기]

《통전》과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에서 조조와 향에 대한 일화를 다 털고 가겠습니다.

6. 조조가 옷 속에 넣은 것 [🔒 무료 미리보기]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인용된 《광지廣志》에 따르면 조조는 이것을 옷 속에 넣었습니다.

Tag 오나라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오두미도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Tag 오디오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Tag 오록충종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Tag 오매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오손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Tag 오예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오월춘추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오초7국의난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오컬트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Tag 오행지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오호대장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옥기

전국 시대 청동기·옥기 매듭 메모 [🔒 무료 미리보기]

월인공방의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대동은전 노리개를 보다가 매듭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중국 고대의 매듭에 관해 찾아보게 되었다. ❡ 전국시대에는 동그릇 위에 눈에 보이는 곳에는 모두 매듭의 모양을 남겼는데, 매우 정교하게 끈 하나를 이용하여 6개의 점을 이용하여 대칭을 만들어 냈다. 📖 이목성. (2010). 〈중국전통의 길상(吉祥)문양 디자인에 대한 연구: 매듭문양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포럼》, 22, 35-44.

Tag 옹주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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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왕개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왕돈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Tag 왕망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Tag 왕비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왕소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왕숙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왕승유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왕안석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Tag 왕옹수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왕자복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왕장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왕정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왕중옹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Tag 왕찬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Tag 왕회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Tag 왕후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외척

한나라의 황후들

—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

Tag 외척전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요시카와 에이지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Tag 용뇌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Tag 우길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Tag 우유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원상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Tag 원소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체장부인(體長婦人)의 수수께끼

— 원소는 도대체 어떻게 자랐나?

《삼국지》에서 찾을 것이 있어서 원문 검색 결과를 눈으로 빨리 훑어보려다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의 體長婦人(체장부인)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뭐라고? 체구가 여자 같았다고? 《사기》에 나오는 장량처럼 가녀린 미남인가? 애초에 《삼국지》에 그런 인물이 있었나? 왜 지금까지 몰랐지?? ❡ 서둘러 문장의 주어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袁本初(원본초)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모위용(姿貌威容)으로 유명한 그 원소입니다. 원소는 당연히 몸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요? 어떻게 “자모위용”과 “체장부인”이 양립할 수 있을까...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원소절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원술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원작고증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Tag 원제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Tag 원후전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월녀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월녀검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위나라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위략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Tag 위자부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한나라의 황후들

—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

Tag 위충현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위현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위현성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위황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유거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유건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Tag 유방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유비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11. 조조가 유비를 일컫는 말의 변화: ‘명사군’부터 ‘짚신가게 새끼’까지 [🔒 무료 미리보기]

역사책 이야기건 소설책 이야기건, 삼국지의 서사에서 주요한 축으로는 조조와 유비의 대립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정사” 의 본문과 주석에서도 조조가 유비를 칭하는 말을 뽑아 보면 조조가 유비를 대하는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조조는 유비를 잘 대접하면서 자사·주목에 대한 존칭인 ‘사군‘이라고 부릅니다.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논영회’의 그 대사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1

얼마 전부터 《삼국연의》를 처음부터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읽던 것은 아니다 보니 저자 나본(자: 관중)의 창작이나 전승보다는 기존 《삼국지》에 나온 장면에 살을 덧붙인 서술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대화에서 사용하는 호칭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요. ❡ 사서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이른바 ‘논영회’였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는 소설과 만화에서 많이 보았는데, 《삼국지》 본문의 호칭을 그대로 옮기자면 “천하의 영웅은 사군(使君)...

Tag 유비(劉濞)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유비(劉非)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Tag 유세군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Tag 유승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유안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유엽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Tag 유웅명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Tag 유제품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유클리드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유표성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유하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유향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Tag 유협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Tag 육개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육손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Tag 육형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삼국지포켓북 4. 육형 부활 논의에 관한 시론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윤리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Tag 은그릇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Tag 음모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음식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삼국지포켓북 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10. 조조가 좋아한 음식은? [🔒 무료 미리보기]

남북조의 책 《안씨가훈》을 읽다가 뜬금없이 〈위무사시식제魏武四時食制〉라는 글이 인용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위무魏武’는 위 무제 조조를 가리키고, ‘사시식제四時食制’는 사계절의 음식 제도라는 뜻이니까 조조가 쓴 제철 음식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음식에 관한 글도 썼나 봅니다. 사실 놀랍지는 않습니다. 조조가 뭔들 안 썼겠어요… ❡ 혹시 〈사시식제〉가 책으로 남아 있는가 해서 《수서》 〈경적지〉에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이루어질 만큼의 분량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수대에 이미 소실되어 버렸던...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Tag 음악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야유사균〉 “들판에는 죽은 노루”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野有死麕、 들판에는 죽은 노루 白茅包之。 흰 띠풀로 덮었어요 ❡ 有女懷春、 한 여자가 봄을 품어 吉士誘之。 미남자가 꾀었어요 ❡ 林有樸樕、 숲속에는 떡갈나무 野有死鹿。 들판에는 죽은 사슴 ❡ 白茅純束、 흰 띠풀로 싸맸으니 有女如玉。 구슬 같은 미녀에게 ❡ 舒而脫脫兮、 서두르지 말고서 가만가만히 無感我帨兮、 내 무릎 가리개에 닿지 않도록 無使尨也吠。 삽살개가 왈왈왈 짖지 않도록 《시경·국풍·소남》 〈야유사균〉(野有死麕) ❡ 작곡·노래: 주아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새 편곡 [멤버십 전용]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시경》 〈도요〉 “복사나무 소담하니” 상고한어 노래 영상

아래의 시 원문을 상고한어로 전사하고 멜로디를 지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灼灼其華。 찬란하게 꽃이 핀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室家。 온 집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有蕡其實。 주렁주렁 열매 연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室。 온 방안이 화목하다 ❡ 桃之夭夭、 복사나무 소담하니 其葉蓁蓁。나뭇잎도 우거진다 之子于歸、 이 아이가 시집가니 宜其家人。 온가족이 화목하다 《시경·국풍·주남》 〈도요〉(桃夭) ❡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4. 조조가 특히 좋아한 음악 장르는?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정사 《삼국지》 주석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조조의 음악적 재능은 당시의 명사 환담桓譚과 채옹蔡邕에 비길 만했으며, 《조만전曹瞞傳》에서는 가수와 배우들을 밤낮으로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요?

Tag 음악가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음양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음주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Tag 응소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응창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Tag 의관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Tag 의대조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향香과 차茶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Tag 의사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의인화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의학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의학서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Tag 의향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이각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이름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이릉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이복휴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이희재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인간돼지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인사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인수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Tag 인일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Tag 인장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Tag 일지매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임안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Tag 임첨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Tag 임파워링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Tag 잉어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Tag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자공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자살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자하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작두향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Tag 잔다르크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Tag 장공주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장난감

삼국지포켓북 6.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장달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장량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Tag 장료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Tag 장막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장무

9. 주후혜문 [柱後惠文] [🔒 무료 미리보기]

서한 선제 때의 인물인 장창은 경조윤으로서 수도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후대에는 다른 일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인의 눈썹을 손수 그려 준 “경조화미”입니다. ❡ 오늘의 소재가 눈썹은 아니지만 몸의 외관을 장식하는 것과 억지로 관련지어 볼 수는 있습니다. 장창은 동생 장무가 양국의 상으로 임명되자 그를 불러서 양국을 어떻게 통치할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무는 형을 두려워해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눈썹을 예쁘게 그리는 남편이었지만 동생에게는 무서운 형이었던 모양입니다.

Tag 장비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장소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장신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장안세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장익덕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장자

5. 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듯 [如白駒過隙] [🔒 무료 미리보기]

사실 한나라 사람들이 처음 쓴 말은 아닙니다. 원래는 《장자莊子·외편外篇》 〈지북유知北遊〉에 나온 문장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하필 흰 망아지일까요?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세욤. ❡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는 것은 흰 망아지가 틈새를 지나가듯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人生天地之間,若白駒之過郤,忽然而已。 ❡ 아무튼 《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 말을 쓰는 맥락이 재미있습니다.

Tag 장창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9. 주후혜문 [柱後惠文] [🔒 무료 미리보기]

서한 선제 때의 인물인 장창은 경조윤으로서 수도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후대에는 다른 일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인의 눈썹을 손수 그려 준 “경조화미”입니다. ❡ 오늘의 소재가 눈썹은 아니지만 몸의 외관을 장식하는 것과 억지로 관련지어 볼 수는 있습니다. 장창은 동생 장무가 양국의 상으로 임명되자 그를 불러서 양국을 어떻게 통치할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무는 형을 두려워해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눈썹을 예쁘게 그리는 남편이었지만 동생에게는 무서운 형이었던 모양입니다.

Tag 장천추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장탕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장탕전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장하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장화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Tag 장화홍련전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Tag 재귀함수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적방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적벽대전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향香과 차茶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

Tag 적벽회고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Tag 전4사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Tag 전거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전고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전국시대

전국 시대 청동기·옥기 매듭 메모 [🔒 무료 미리보기]

월인공방의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대동은전 노리개를 보다가 매듭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중국 고대의 매듭에 관해 찾아보게 되었다. ❡ 전국시대에는 동그릇 위에 눈에 보이는 곳에는 모두 매듭의 모양을 남겼는데, 매우 정교하게 끈 하나를 이용하여 6개의 점을 이용하여 대칭을 만들어 냈다. 📖 이목성. (2010). 〈중국전통의 길상(吉祥)문양 디자인에 대한 연구: 매듭문양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포럼》, 22, 35-44.

Tag 전당시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전론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Tag 전삼국문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Tag 전송사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전연년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전자책

삼국지포켓북 6.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5. 의사와 음악가의 공통점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4. 육형 부활 논의에 관한 시론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3. 향, 새로운 감각의 개척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삼국지포켓북 1. 호칭어 가이드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Tag 전족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Tag 전종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Tag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정변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정붕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정비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정사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정욱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Tag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정태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Tag 정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정혼전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Tag 제갈각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제갈량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Tag 제민요술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Tag 제사

5. 조조의 손 씻기[盥] [🔒 무료 미리보기]

관盥이라는 한자는 정말 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릇[皿]에 담긴 물[水]에 양손[臼]을 넣은 모양입니다. 후한 때 나온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손을 씻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 글자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건안 21년 2월 위공 조조가 업으로 귀환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魏書》에 나옵니다. 조조는 2월 갑자일 사당[廟]에 봄 제사[春祠]를 지내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몸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데, 여기에 손 씻기가 나옵니다.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Tag 조간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조건문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조광한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Tag 조궁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조기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조두

한나라 사람들의 세정제

그 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비누나 샴푸, 퐁퐁에 대응하는 물건으로 무엇을 사용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아雅가 세정제의 역사를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는 비누와 계면활성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나라 사람들은 몸이나 물건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어떤 물질을 사용했을까요? ❡ 우선 한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잘 씻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후한 말의 한자 사전 《설문해자》에서 물과 연관된 〈수부〉를 살펴보면,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표현을 다섯 개나 찾을 수 있습니다. ❡ 《설문해자說文解字》 권12 〈수부水部〉 ❡ 즉, 한...

Tag 조만전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4. 조조가 특히 좋아한 음악 장르는?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정사 《삼국지》 주석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조조의 음악적 재능은 당시의 명사 환담桓譚과 채옹蔡邕에 비길 만했으며, 《조만전曹瞞傳》에서는 가수와 배우들을 밤낮으로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요?

Tag 조비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조비연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한나라의 황후들

—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2 [🔒 무료 미리보기]

(계속) 황제가 원앙전鴛鴦殿 휴게실에 있을 때 황제의 문서[簿]를 살폈다. 번예가 문서[簿]를 올리는 김에 진언했다. ❡ “비연에게 합덕이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얼굴과 몸매가 아름답습니다. 성품이 순수하고 믿음직하기로는 비연과 비길 수 없습니다.” ❡ 황제는 즉시 사인舍人 여연복呂延福을 시켜 봉황의 깃털 백 개로 장식한 가마[百寶鳳毛步輦車]로 합덕을 맞게 했다. 합덕은 사양했다. ❡ “귀인인 언니가 부르는 것이 아니면 감히 갈 수 없으니, [저의] 목을 베어 궁중에 알려주십시오.”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1 [🔒 무료 미리보기]

황후들의 일화에 관한 리퀘스트로 야사 《조비연외전》을 두 차례에 나누어 번역하고자 합니다. 문장이 어려워서 오역이 많을 수 있습니다. ❡ 조趙 황후 비연飛燕의 부친은 풍만금馮萬金이다. 조부 풍대력大力은 악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로 강도왕江都王의 협률사인協律舍人(음악을 담당하는 관원)이 되었다. 풍만금은 가업을 이으려 하지 않고, 노래를 익히고 소실된 악곡을 편찬했다. 손을 복잡하게 놀리며 슬픈 소리를 내는 기술로 스스로 범미凡靡의[모두가 쓰러지는] 음악이라고 했다. 듣는 사람들이 여기에 감동하였다. ❡ 강도왕의 손녀 고소姑蘇옹주...

Tag 조상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조선왕조실록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조식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조아

후한 말 여성의 무장과 무예

후한 말의 시기에 여성도 호신도구(단검이라든지)를 갖고 다니거나 무술을 익히는 게 보편적이었나요? ❡ 한국에는 “은장도”로 유명한 장도粧刀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한나라에는 이 용도에 상응하는 물건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도와 비슷한 크기로 서도書刀라는 칼이 있었으나, 주로 남성 관리가 허리에 차고 다녔고 죽간에서 틀린 글자를 긁어내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도와 다릅니다. ❡ 서도를 허리에 걸고 다닌 한나라의 점잖은 지식인 남성의 경우, 대체로 여성이 무기를 소지하는 데 기겁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한 말의...

Tag 조예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조운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조자룡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조적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Tag 조조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조조 〈단가행〉 (중고한어 낭독)

조조가 지은 〈단가행〉을 중고한어 재구음으로 낭독했습니다. ❡ 朗读了曹操所作的《短歌行》中古汉语拟音版本。 ❡ Recited A Song of the Short Life by Cao Cao in reconstructed Middle Chinese pronunciation.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11. 조조가 유비를 일컫는 말의 변화: ‘명사군’부터 ‘짚신가게 새끼’까지 [🔒 무료 미리보기]

역사책 이야기건 소설책 이야기건, 삼국지의 서사에서 주요한 축으로는 조조와 유비의 대립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정사” 의 본문과 주석에서도 조조가 유비를 칭하는 말을 뽑아 보면 조조가 유비를 대하는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조조는 유비를 잘 대접하면서 자사·주목에 대한 존칭인 ‘사군‘이라고 부릅니다.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순욱은 조조의 ‘자방’이 되기를 싫어했을까?

순욱은 조조와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조조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특히 조조가 순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자방”이라고 말한 것이 유명합니다. 여기서 “자방”이란 한나라를 세운 고제 유방의 모사인 장량을 말합니다. 그러니 조조는 순욱을 장량에게 빗대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유방에게 빗댄 것입니다. ❡ 한나라의 신하인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황제에 빗대는 것은 반역의 뜻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를 편집한 청나라 사람 모종강도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 이것은 은연중에 자신을...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10. 조조가 좋아한 음식은? [🔒 무료 미리보기]

남북조의 책 《안씨가훈》을 읽다가 뜬금없이 〈위무사시식제魏武四時食制〉라는 글이 인용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위무魏武’는 위 무제 조조를 가리키고, ‘사시식제四時食制’는 사계절의 음식 제도라는 뜻이니까 조조가 쓴 제철 음식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음식에 관한 글도 썼나 봅니다. 사실 놀랍지는 않습니다. 조조가 뭔들 안 썼겠어요… ❡ 혹시 〈사시식제〉가 책으로 남아 있는가 해서 《수서》 〈경적지〉에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이루어질 만큼의 분량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수대에 이미 소실되어 버렸던...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조조, 진궁, 백문루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 조조:...

‘논영회’의 그 대사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1

얼마 전부터 《삼국연의》를 처음부터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읽던 것은 아니다 보니 저자 나본(자: 관중)의 창작이나 전승보다는 기존 《삼국지》에 나온 장면에 살을 덧붙인 서술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대화에서 사용하는 호칭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요. ❡ 사서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이른바 ‘논영회’였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는 소설과 만화에서 많이 보았는데, 《삼국지》 본문의 호칭을 그대로 옮기자면 “천하의 영웅은 사군(使君)...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Stop Procrastinating

장막이 진궁을 낚아챈 것이 아니라 진궁이 장막을 꼬드겼다는 소식에 조조는 더욱 분노했다. ❡ “장군將軍.” ❡ 분무사마奮武司馬 순욱이 조조를 다시 불렀다. ❡ “분무장군奮武將軍.” ❡ 조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욱도 이제 자기를 사군使君(주목, 주자사에 대한 경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차마 사군使君으로 칭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했다. 견, 범, 동아 세 개 성만 남은 지금 연주목으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기는 민망하다는 염치는 뜻밖에 조조에게도 있었다. ❡ “서주徐州를 다시 치러 가실 때가 아닙니다.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지...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9. 조조의 책 [🔒 무료 미리보기]

조조는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의 시대에 어떤 책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가장 가까운 시기의 정사로는 앞뒤로 서한의 《한서》 〈예문지〉와 수나라의 《수서》 〈경적지〉가 있습니다. 둘 다 당시에 수집된 도서 목록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아쉽게도 조조가 생존했던 시기를 다루는 《후한서》와 《삼국지》는 도서 목록을 수록하지 않아서, 조조와 관련된 책을 찾으려면 《수서》 〈경적지〉를 참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조조가 특히 치중한 장르를 알 수 있습니다.

8.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 무료 미리보기]

《통전》과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에서 조조와 향에 대한 일화를 다 털고 가겠습니다.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7. 조조가 가족들에게 금지시킨 것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무엇인가를 자기 옷 안에 넣은 일이 그렇게까지 가증스러운 이유는…

6. 조조가 옷 속에 넣은 것 [🔒 무료 미리보기]

《예문유취藝文類聚》에 인용된 《광지廣志》에 따르면 조조는 이것을 옷 속에 넣었습니다.

5. 조조의 손 씻기[盥] [🔒 무료 미리보기]

관盥이라는 한자는 정말 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릇[皿]에 담긴 물[水]에 양손[臼]을 넣은 모양입니다. 후한 때 나온 자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손을 씻는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 아무튼 이 글자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건안 21년 2월 위공 조조가 업으로 귀환했다는 기사의 주석에 인용된 《위서魏書》에 나옵니다. 조조는 2월 갑자일 사당[廟]에 봄 제사[春祠]를 지내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몸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데, 여기에 손 씻기가 나옵니다.

4. 조조가 특히 좋아한 음악 장르는?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정사 《삼국지》 주석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따르면 조조의 음악적 재능은 당시의 명사 환담桓譚과 채옹蔡邕에 비길 만했으며, 《조만전曹瞞傳》에서는 가수와 배우들을 밤낮으로 곁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조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요?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2. 《한서》 〈곽광전〉을 열심히 읽은 조조 [🔒 무료 미리보기]

첫 번째는 조조가 영천에서 황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제남상, 동군태수가 되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중평(184–189) 연간에 기주 자사 왕분과 남양 사람 허유, 패국 사람 주정 등이 호걸들과 결탁하여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하려고 모의하면서 조조에게도 알렸습니다. 《삼국지》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조조가 어떻게 거절했는지를 상세하게 실어 놓았습니다.

1.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하는 조조 [🔒 무료 미리보기]

조조가 스무 살에 낙양 북부위가 되어 치안을 담당하던 시절 환관 건석의 숙부를 때려 죽인 사건이 유명합니다. 그 몽둥이의 색깔까지 궁금하지는 않은데, 《삼국지》 주석에 적혀 있어서 그만 알아 버렸습니다.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손끝의 감각

군법의 관례대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벌여 놓은 도끼와 받침대1를 치우고 교수대를 설치하는 동안 진궁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목을 매달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을 베어 달라는 진궁의 뜻대로 해 주기 싫다는 심술인지, 죽더라도 ‘온전한 몸’을 남기게 해 주려는 배려인지 조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처형 방법을 바꾼다는 핑계로 조조는 진궁을 잠시 더 살려 둘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조조가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궁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날붙이를 끈으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조조(晁錯)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Tag 조조(鼂錯)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조조진궁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Stop Procrastinating

장막이 진궁을 낚아챈 것이 아니라 진궁이 장막을 꼬드겼다는 소식에 조조는 더욱 분노했다. ❡ “장군將軍.” ❡ 분무사마奮武司馬 순욱이 조조를 다시 불렀다. ❡ “분무장군奮武將軍.” ❡ 조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욱도 이제 자기를 사군使君(주목, 주자사에 대한 경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차마 사군使君으로 칭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했다. 견, 범, 동아 세 개 성만 남은 지금 연주목으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기는 민망하다는 염치는 뜻밖에 조조에게도 있었다. ❡ “서주徐州를 다시 치러 가실 때가 아닙니다.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지...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손끝의 감각

군법의 관례대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벌여 놓은 도끼와 받침대1를 치우고 교수대를 설치하는 동안 진궁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목을 매달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을 베어 달라는 진궁의 뜻대로 해 주기 싫다는 심술인지, 죽더라도 ‘온전한 몸’을 남기게 해 주려는 배려인지 조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처형 방법을 바꾼다는 핑계로 조조는 진궁을 잠시 더 살려 둘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조조가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궁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날붙이를 끈으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조조집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Tag 조창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조합덕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2 [🔒 무료 미리보기]

(계속) 황제가 원앙전鴛鴦殿 휴게실에 있을 때 황제의 문서[簿]를 살폈다. 번예가 문서[簿]를 올리는 김에 진언했다. ❡ “비연에게 합덕이라는 여동생이 있는데, 얼굴과 몸매가 아름답습니다. 성품이 순수하고 믿음직하기로는 비연과 비길 수 없습니다.” ❡ 황제는 즉시 사인舍人 여연복呂延福을 시켜 봉황의 깃털 백 개로 장식한 가마[百寶鳳毛步輦車]로 합덕을 맞게 했다. 합덕은 사양했다. ❡ “귀인인 언니가 부르는 것이 아니면 감히 갈 수 없으니, [저의] 목을 베어 궁중에 알려주십시오.”

[조각번역] 조비연외전 1 [🔒 무료 미리보기]

황후들의 일화에 관한 리퀘스트로 야사 《조비연외전》을 두 차례에 나누어 번역하고자 합니다. 문장이 어려워서 오역이 많을 수 있습니다. ❡ 조趙 황후 비연飛燕의 부친은 풍만금馮萬金이다. 조부 풍대력大力은 악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로 강도왕江都王의 협률사인協律舍人(음악을 담당하는 관원)이 되었다. 풍만금은 가업을 이으려 하지 않고, 노래를 익히고 소실된 악곡을 편찬했다. 손을 복잡하게 놀리며 슬픈 소리를 내는 기술로 스스로 범미凡靡의[모두가 쓰러지는] 음악이라고 했다. 듣는 사람들이 여기에 감동하였다. ❡ 강도왕의 손녀 고소姑蘇옹주...

Tag 조홍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족쇄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Tag 종리춘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Tag 종요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종회

정월대보름을 조심하세요, 당신이 조씨라면

— 《삼국연의》의 원소절

음력 1월 15일. 한국에 정월대보름이 있다면, 중국에는 원소절元宵節이 있습니다. 혹은 상원절上元節이라고도 합니다. 역사책 《삼국지》에서는 “원소절”이라는 명칭이 아직 없었지만,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저자 나본은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명절인 원소절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활용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원소절은 모두 세 군데에 나옵니다. 이 세 번의 공통점을 알아봅시다. ❡ 우선 초기에 의대조 사건에서 헌제의 후궁 동 귀비의 아버지인 동승은 원소절에 왕자복 등과 함께 조조를 죽이는 꿈을 꾸었습니다. ❡ 오늘 승상부에서 큰 연...

Tag 좌전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주건평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Tag 주구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주랑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Tag 주매신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Tag 주박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Tag 주상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Tag 주상구온주법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Tag 주색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주역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주유

‘손랑’과 ‘주랑’, 두 미인의 엇갈린 운명

— 주랑周郎의 변천사

삼국지 세계관에서 이름을 날린 이인조를 꼽는다면 ‘단금지교’로 유명한 손책과 주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총각지호’로 이들의 어린 시절 인연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손책과 주유는 재능과 인품뿐만 아니라 미모도 출중했습니다. 역사책 《삼국지》 본문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손책의 사람 됨됨이는 얼굴이 아름답고 유머감각이 뛰어났으며 활달한 성품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서, 병사든 민간인이든 일단 그를 만나면 백이면 백 진심을 다하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1 ...

삼국시대 음식의 지역별 차이

삼국지를 보면 출신지와 다른 곳에서 활동하거나 자리 잡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물갈이를 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했다는 기록이 있나요? 예를 들어, 탁군 출신인 유비는 매운 사천요리를 먹기 힘들어 했을까요? ❡ 우선 물갈이와 관련된 《삼국지》의 기록으로는 수토水土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권의 장수 주유는 적벽대전에 앞서 조조군에게 불리한 조건을 나열할 때 중원의 사병들이 장강의 ‘수토’에 익숙하지 않아 병이 들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 물과 풍토에 익숙하지 않아서 반드시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Tag 주자어류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Tag 죽간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죽음

8. 죽음을 무릅쓰다 [昧死] [🔒 무료 미리보기]

아래 글은 진 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그의 재상들이 황제의 공적을 돌에 새기자고 주장하는 말입니다. 왼쪽 상단에 빨간 색으로 표시한 두 글자가 매사昧死, 즉 죽음을 무릅쓴다는 말입니다. ❡ 《사기》나 《한서》나 《후한서》나 《삼국지》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전기를 찾아보면 황제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는 모습이 나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안심하셔도 괜찮습니다. “죽음을 무릅쓰다니 정말 비장했구나! 아니면 정말 두려워했구나!”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황제에게 글을 올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관...

1. 백 년 뒤 [百歲後] [🔒 무료 미리보기]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창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어미를 ‘하게’나 ‘하오’로 끝내고 한자어를 많이 넣습니다. 고사성어를 잘 인용하면 더욱 좋겠지요. ❡ 하지만 단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아둔한 사람! 머리를 써 보게!”나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저런 소인배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은 꼴을 보고 배가 아플 자도 많을 거요.” 같은 대사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 ‘배가 아프다’와 같은 말이 한국어의 관용구라는 것을 의식하고 나면 공연히 신경이 쓰입니...

Tag 중고한어

조조 〈단가행〉 (중고한어 낭독)

조조가 지은 〈단가행〉을 중고한어 재구음으로 낭독했습니다. ❡ 朗读了曹操所作的《短歌行》中古汉语拟音版本。 ❡ Recited A Song of the Short Life by Cao Cao in reconstructed Middle Chinese pronunciation.

Tag 중구역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Tag 중산왕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중산정왕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Tag 중성화

‘그녀’는 명예롭게 은퇴할 자격이 있다

21세기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은 3인칭 대명사로 여성을 가리킬 때 ‘그녀’를 피하고 모든 성별을 ‘그’로 통일해서 쓰거나 대명사를 아예 안 쓰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렇다. ❡ 또한 ‘그녀’를 안 쓰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어의 여성대명사(를 수입한 일본어의 彼女)를 번역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므로 애초에 불필요한 말이고 부자연스러운 한국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렇지 않다. ❡ 물론 ‘그녀’라는 대명사는 20세기 이전에 한국어에 없었다. 중국어와 일본어도 3인칭 여성...

Tag 중역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Tag 중장통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Tag 중추절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Tag 증류주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Tag 지겸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지명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Tag 지역차별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지존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Tag 지진기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진 후주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Tag 진경지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진궁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조조, 진궁, 백문루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 조조:...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달걀 먹기의 어려움

여포가 백문루에 올라가서 하비성을 포위한 군사들에게 외쳤다. ❡ “경卿들은 힘 빼지 마라! 내가 명공明公한테 가서 자수하겠다!”1 ❡ 진궁이 헐레벌떡 여포를 뒤쫓아와서 말렸다. ❡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씩이나 됩니까? 지금 항복하는 건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2 ❡ 이 촌극을 전해 들은 조조는 길길이 뛰었다. ❡ “거의 항복시킬 수 있었는데! 그 썩을 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 놓고 누가 누구한테 역적이란 거야?” ❡ 옆에 있던 곽가는 주인이 책상을 치며 성을 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낙서를 계...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Stop Procrastinating

장막이 진궁을 낚아챈 것이 아니라 진궁이 장막을 꼬드겼다는 소식에 조조는 더욱 분노했다. ❡ “장군將軍.” ❡ 분무사마奮武司馬 순욱이 조조를 다시 불렀다. ❡ “분무장군奮武將軍.” ❡ 조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순욱도 이제 자기를 사군使君(주목, 주자사에 대한 경칭)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차마 사군使君으로 칭하라고 명령하지는 못했다. 견, 범, 동아 세 개 성만 남은 지금 연주목으로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기는 민망하다는 염치는 뜻밖에 조조에게도 있었다. ❡ “서주徐州를 다시 치러 가실 때가 아닙니다. 고조高祖가 관중關中을 지...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손끝의 감각

군법의 관례대로 참수형을 집행하려고 벌여 놓은 도끼와 받침대1를 치우고 교수대를 설치하는 동안 진궁은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 목을 매달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까닭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을 베어 달라는 진궁의 뜻대로 해 주기 싫다는 심술인지, 죽더라도 ‘온전한 몸’을 남기게 해 주려는 배려인지 조조 자신도 알지 못했다. 어쨌든 처형 방법을 바꾼다는 핑계로 조조는 진궁을 잠시 더 살려 둘 수 있었다. ❡ 하지만 시간을 번다고 해서 조조가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진궁은 묵묵히 기다리기만 했다. 날붙이를 끈으로 ...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진림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Tag 진묘문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

Tag 진묘병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

Tag 진서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식소사번, ‘식소’의 진실

— 제갈량은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나?

삼국지 이야기에서 유비가 죽은 뒤, 특히 이른바 “북벌”에 돌입한 시기의 제갈량의 과로는 주로 “식소사번”, 즉 적게 먹고 많이 일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제갈량을 형용하는 “식소사번”이라는 네 글자는 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에서 처음 쓰였지만, 사마의가 제갈량의 식사량과 업무량을 묻고 제갈량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고 예측하는 일화 자체는 역사책 《삼국지》 〈제갈량전〉 주석과 《진서》 〈선제기〉 본문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 도대체 제갈량이 밥을 얼마나 적게 먹었기에 사마의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행히도 《진서》 버전에서...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Tag 진수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Tag 진시황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2. 죄 짓기를/처벌 받기를 기다리다 [待罪]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에서 공무원은 평생직장이 아니었습니다. 법령이 워낙 빡빡해서 관리들도 다 지키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점령한 뒤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다 폐지하고 세 가지만 남긴다는 “약법삼장”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결국 통일 후에는 진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심지어 백수십 년이 지난 효선제 때까지도 진나라의 적폐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 관리가 법령을 위반해서 쫓겨나는 정도면 다행이었습니다. 심하면 사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효...

1. 백 년 뒤 [百歲後] [🔒 무료 미리보기]

중국 고대를 배경으로 창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더 생생한 대사를 쓸 수 있을까요? 일단 어미를 ‘하게’나 ‘하오’로 끝내고 한자어를 많이 넣습니다. 고사성어를 잘 인용하면 더욱 좋겠지요. ❡ 하지만 단어를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이 아둔한 사람! 머리를 써 보게!”나 “화무십일홍이라 하나 저런 소인배가 하루아침에 권력을 잡은 꼴을 보고 배가 아플 자도 많을 거요.” 같은 대사가 아주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 ‘배가 아프다’와 같은 말이 한국어의 관용구라는 것을 의식하고 나면 공연히 신경이 쓰입니...

Tag 진씨향보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진아교

한나라의 황후들

—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

Tag 질곡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Tag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Tag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 차와 문화승리

—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향香과 차茶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

Tag 차거

3. 서역의 보석을 좋아한 조조(와 아빠의 보석을 탐낸 조비) [🔒 무료 미리보기]

서진 사람 최표崔豹가 쓴 《고금주古今注 권하卷下》 〈잡주제7雜註第七〉에 조조의 물건이 언급됩니다. ❡ 위 무제는 마노로 말 재갈을 만들고 차거로 술 사발을 만들었다. [魏武帝以瑪瑙石為馬勒,車渠為酒碗。] ❡ 마노와 차거는 모두 서역산 보석으로, 당시의 사전인 《광아廣雅》에 따르면 둘 다 옥에 버금가는 진귀한 돌이었습니다. 조조는 언제 어떻게 이것을 얻었을까요?

Tag 차천추

《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Tag 참좌지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 세 사람, 20세기 버전.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 “……순욱? 순 실장 맞나?” ❡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 “술을 좀 먹이려고.” ❡ 진궁은 의아해했다. ❡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 ...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외전. 은그릇과 콩잎장아찌

— 《전삼국문》의 조조 파트를 읽다가 어이가 없어져서…

진궁은 자기 앞에 놓인 밥그릇 바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밥알을 씹기만 했다. 조조가 보기에 오늘 진궁은 왠지 말을 많이 할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자기가 거기 맞추어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 “있잖아, 고孤가 구리 그릇으로 밥 먹는 거 본 적 있어?” ❡ 진궁은 약간 뜸을 들였지만, 조조의 뜬금없는 물음에 당황한 탓은 아닌 듯했다. 서두르지 않고 입안의 음식을 삼킨 뒤에 억양 없이 대답했다. ❡ “공公이 쓰시는 그릇 재질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겠는데요.” ❡ 조조는 뾰로통해졌다. ❡ “주인을 모시고 살면 관심...

개작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조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조조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진궁은 꿇었던 무릎을 세우고 일어났다. ❡ “이만 나가서 목에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 ❡ 조조도 그것이 정답임을 알았다. 하지만 정답을 순순히 따른다면 조조가 아니다. ❡ 때마침 조조의 머릿속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법을 밝히겠다면 왕도에서 형을 집행해야겠어.” ❡ 조조는 자신의 천재적인 발상에 만족했다. 진궁을 살려서 허도로 보낼 좋은 구실을 얻었다. ❡ ”궁宮이 듣기로 장수가 군대를 이끌고 나오면 임금의 명령도 안 들을 수 있다고 ...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개정 3-1. 물과 물고기와 선물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거기 지팡이 좀 줘 봐.” ❡ 여느 때라면 손에서 지팡이를 놓기 싫어하고 이유를 캐물었을 진궁이 웬일로 오늘은 말대답 없이 순순히 내놓았다. 조조는 주머니에서 장식품을 꺼내 지팡이 손잡이에 끼웠다. 동으로 만든 물고기 조각이었다.1 ❡ “선물이야.” ❡ 진궁은 눈을 깜빡이면서 물었다. ❡ “오늘 무슨 날이에요?” ❡ “그냥, 기분 좀 풀라고.” ❡ 조조가 보기에 진궁은 지난번에 몰래 들어온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한 뒤로, 좀 심하게 말하자면 넋이 나간 것 같았다. 허도許都에서처럼 업현鄴縣에 새로 지은 사공부에 별채를 내어 옮겼...

외전 2-2-1. 납일

— 건안7년 겨울 12월, 관도에서.

“이번 납일臘日에 궁宮한테 잠깐 들르시면 안 돼요?” ❡ “뭐하려고?” ❡ 조조는 진궁의 유혹에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었지만 짐짓 엄하게 물었다. 예전에 여름 복날伏日을 맞아 진궁에게 제사 고기를 보냈다가 봉변을 당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진궁에게는 여름 복날도 겨울 납일도 따로 챙겨 주지 않았다. 진궁도 굳이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 진궁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 “사蜡1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서… 형여刑餘의 몸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진 못해도 몰래 고양이를 부르는 것 정도...

외전 1-5-1. 낭고의 상

— 건안6년 봄 1월. 관도에서.

조조는 진궁을 앞에 앉혀 놓고 대뜸 말했다. ❡ “목 좀 뒤로 돌려 봐.” ❡ 진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조조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조조의 주문은 까다로웠다. ❡ “어깨는 틀지 말고 목만 돌리라니까.” ❡ “이 정도면 됐어요?” ❡ “더. 완전히 뒤를 볼 수 있을 만큼.” ❡ 진궁은 고개를 양 옆으로 한 번씩 돌려 보고는 말했다. ❡ “안 되는데요.” ❡ “이상하네. 경卿이 안 될 리가 없는데.” ❡ 조조는 두 손으로 직접 진궁의 머리를 잡고 힘껏 돌려 보았다. 목에서 뚝뚝거리는 소리가 났다. ❡ “안 아파?”...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3-8. 적벽 [완결]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나는 공公이 모르는 줄 알았어요.” ❡ 조조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다. ❡ “무슨 소리야?” ❡ “공公이 워낙에 뻔뻔스럽게 구니까, 형벌로 발목을 잘리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정말 모르는 줄 알았죠. 그 정도면 괜찮았어요. 나를 막 대하고 희롱하기는 하지만 그건 공公이 못돼먹었고 내가 공에게 반기를 든 전력이 있어서지, 내가 형여刑餘의 몸이라서 멸시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3-7. 손님 [🔒 무료 미리보기]

— 건안13년 봄 정월, 업에서.

진궁은 왜 뜰에 나와 있느냐고 조조가 캐묻기 전에 미리 말했다. ❡ “밖에서 향기가 나서 공公이 오신 걸 알았어요.” ❡ 조조는 기분이 좋아져서 받아 주었다. ❡ “사공부 후원에 매화가 많이 피었어.” ❡ 진궁도 열심히 호응했다. ❡ “궁금하네요. 꽃 붙은 가지라도 하나 보여주시면 안 돼요?” ❡ 하지만 조조는 펄쩍 뛰었다. ❡ “살아 있는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 오라니 경卿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소리를 할 수 있어?” ❡ 진궁은 할 말을 잃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면서 조조를 바라볼 뿐이었다. 조조는 정색을 하고 더 ...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 건안12년 봄 2월, 동무양에서.

이번 여정은 여러모로 평소와 달랐다. 일단 장료가 인솔하는 것부터가 예외적인 일이었다. ❡ 전날과는 상황이 정반대였다. 전사傳舍에 도착했을 때 사장舍長이 불편해하기는커녕 최고급 대사代舍1를 내어 주는 일은 처음이었다. 호송 문서를 훑어보는 사장의 얼굴에 비웃음이 비쳤던 듯도 했지만 장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 진궁이 수레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틴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그의 저항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장료는 이곳이 진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떠올렸다고 해도 그가 왜 수레 안에 처박혀 있으...

3-4. 자루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기

— 건안12년 봄 2월, 순우에서 업으로 가는 길에.

교섭에 실패하고 나온 장료는 진궁을 실은 수레로 다가가서 문을 살살 두드렸다. ❡ “선생, 료遼입니다. 잠시 열어도 괜찮겠습니까?” ❡ “이번에도 장군이셨나? 바람이 들게 해 주면 나야 고맙지.” ❡ 장료는 봉인을 뜯고 수레의 뒷문을 열었지만 다음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진궁도 평소의 루틴과 다른 점을 곧 눈치챈 것 같았다. 해가 져서 어두워졌으니 여느 때라면 병사 한 명이 즉시 그를 끌어내어 업고 전사傳舍1에서 정해 준 방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 “무슨 일 있구나?” ❡ “송구하지만…” ❡ “전사에서 나한테 줄 ...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 “공대, 경卿이 올해 몇 살이더라?” ❡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 “마흔다섯이요.” ❡ 조조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왜 경卿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 “공公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孤를 안 무서워...

3-2. 관찰과 계량에 근거한 예측

— 건안10년 겨울 12월, 업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불시에 들이닥쳐 진궁을 놀라게 했다면 업의 순유는 미리 기별해서 진궁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었다. 덕분에 진궁은 순유를 기다리는 내내 고통을 받을 수 있었다. ❡ 진궁은 처음과 똑같이 마루에 걸터앉은 채였다. ❡ 순유는 일단 얼굴을 트고 나자 더 친근하게 굴었다. ❡ “오늘은 마루 안에 들여보내 주세요. 선생도 겨울에 찬 데 계시면 발이 시리실 텐데.” ❡ 지난번보다 덜 침착해 보였지만 여전히 다정하고 아마도 끈질길 것이었다. ❡ “이 집 주인은 조 공이신데 포로가 감히 자기 마음대로 거절할 순 없죠....

3-1. 거울을 보는 사이에

— 건안10년 봄 정월, 업에서.

원담을 처형하고 기주를 평정한 후 업으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가 없는 동안 그가 안 하던 짓을 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늘 풀고 있던 머리를 올려서 건으로 싸매고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한참 쳐다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 “품고 싶으면 품어도 돼.” ❡ “뭐라고요?” ❡ “뭘 그렇게 놀라? 설마 고孤가 질투할 것 같았어?” ❡ “대체 무슨 소리예요?” ❡ 진궁이 모르는 척 둘러대는 것도 귀여웠으나 조조는 엄격함을 되찾았다. ❡ “고孤한테 차여 놓...

2-8.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

— 건안9년 가을 9월, 업에서.

진궁이 지내는 곳에서 모든 문은 바깥에서만 잠글 수 있게 만들어졌다. 조조가 들어와 있는 동안에는 대문 바깥의 빗장이 풀려 있었다. ❡ 원래부터 조조의 세력하에 있던 허도와 관도에서는 발이 잘린 후 산 채로 조조에게 능욕당하는 옛 반역자의 존재를 다들 알면서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조조가 방문할 때는 밖에서 지키는 사람을 물려도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원씨의 통치를 받다가 이번에 새로 점령된 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관서 근처에 갑자기 세워진 높은 담장의 정체가 낯설었고 곧 많은 이야깃...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2-6. 포상

—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2-5. 허리를 조심하세요

— 건안8년 겨울 10월, 허도에서.

조조는 마당까지 나온 진궁의 마중을 받으면서도 썩 기쁘지 않았다. 긴 옷자락이 지팡이에 걸려서 못 입겠다더니 잘도 입고 나왔다. 오른손으로 옷자락을 그러쥐고 왼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닷새 내내 저렇게 걷기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 진궁은 조조가 앞서가기를 기다려서 그를 뒤따라 당으로 올라갔다. 조조는 방에 들어가 앉자마자 신경질을 냈다. ❡ “고孤 앞에서는 좀 앉아 있으라니까.” ❡ 뜻밖에 진궁은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하게 듣고만 있었다. 조조는 말투를 좀 누그러뜨리고 물었다. ❡ “‘벌’은 어땠어?” ❡ 진궁은 겸연쩍은...

2-4. 징벌

— 건안8년 가을 9월, 허도에서.

“어제 보내준 옷은 왜 안 입었어?” ❡ 조조는 지난여름 진궁의 딸을 위한 혼수를 마련할 때 비단 몇 필을 따로 빼어 진궁에게 줄 옷을 짓게 했었다. 재단부터 자수까지 공들여서 몇 달이 걸렸는데 옷걸이에 걸려만 있는 것이 섭섭했다. ❡ “옷이 많이 길더라고요.” ❡ 당연한 일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옷자락과 펄럭이는 소매1가 우아한 차림의 기본이니까. 진궁의 불만은 엉뚱한 데 있었다. ❡ “걸을 때 자꾸 지팡이에 걸려서요.” ❡ 조조가 듣기에는 하찮은 핑계라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공대가 걸어 다닐 필요가 있어? 여기 가...

2-3. 복숭아나무 소담하고

— 건안8년 여름 5월, 허도에서.

접시를 덮은 천을 진궁이 걷어내자 반듯하게 잘린 복숭아 여덟 조각이 향을 뿜었다.1 ❡ “분수에 안 맞게 화려한 세팅이네요. 나한텐 그냥 안 썰고 껍질째로 던져 주시면 되는데.”2 ❡ 조조는 진궁이 예법을 들먹이는 것을 못 들은 척하고 말을 돌렸다. ❡ “먹기 전에 잠깐만. 복숭아 하면 떠오르는 시 없어?” ❡ “또 서왕모 나오는 시 쓰셨어요?”3 ❡ “말고, 고전 중에서 찾아봐.” ❡ “시부詩賦 잘 몰라요.”4 ❡ 조조는 즐겁게 알려주었다. ❡ “경卿도 알 만한 거야.” ❡ 진궁은 경계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 “갑자기 무슨...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 “어느 쪽이야?” ❡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 “두 번째.” ❡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

1-7. 욕심 많고 잔인한 사람

— 건안6년 가을 9월, 허도에서.

관도대전 후 한 해가 지나 가을이 다 끝날 무렵에야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자마자 불평부터 했다. ❡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다시는 순문약을 볼 생각도 하지 마.” ❡ 진궁은 태연했다. ❡ “당초에 볼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편지도 그쪽에서 보냈고, 여기도 그쪽에서 왔고, 그리고 다 공公이 허락한 일이잖아요.” ❡ “아무튼 둘이서 나 몰래 짠 건 맞잖아?” ❡ “우연히 목표가 맞아서 공公의 포로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지 보여드린 것뿐이에요. 공公이 참고하시라고요.” ❡ 고의가 분명한 비웃음을 지으며 덧붙...

1-6. 세 사람

—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

1-5. 관도

—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 “신작이에요?”2 ❡ “자세히 봐.” ❡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진공대에게. 순문약.4 ❡ “이번만이야.” ❡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

1-4. 갈 곳이 있는 사람

— 건안5년 여름 6월, 관도에서.

조조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진궁은 뜰에 나와서 걷고 있었다. ❡ “오늘 오실 줄은 몰랐어요.” ❡ 방 안에 있을 때와는 다른 차림이었다. 옷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도록 짧게 자른 겉옷을 입고1 소매를 걷어붙인 왼팔로 지팡이를 짚었다. ❡ 조조는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 “잠시 숨어 있으려고.” ❡ “숨기 좋은 곳이긴 하죠.” ❡ 조조가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도 육형을 받은 사람이 은거하는 곳에 가까이 오려는 사람은 없었을 터였다.2 ❡ “그런데 공公이 숨을 일이 있다는 건 뜻밖인데요.” ❡ 진궁은 다시 걷기...

1-3. 붉어진 얼굴

— 건안5년 봄 정월, 관도에서.

그날 아침은 웬일로 진궁이 시자侍者에게 말을 걸었다. ❡ “조공曹公은 별고 없으신가?” ❡ 이 말을 전해 들은 조조는 진궁이 자기에게 먼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두통도 한결 덜한 듯했다. ❡ ‘저녁에 공대에게 잠깐 들러야겠군.’ ❡ 저녁에 조조는 진궁을 찾아갔다.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면서. ❡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 “내가 알아도 되는 일인가요?” ❡ 조조는 잠시 망설였다. 진궁이 바깥세상과 접촉하는 것을 막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하지만 저렇게 겸손하게 묻는 것을 ...

1-2. 복날

— 건안4년 여름, 허도에서.

여름의 복일伏日은 겨울의 납일臘日과 더불어 한漢의 2대 명절이다. 이날에 사람들은 모여서 제사를 지내고 먹고 마신다. ❡ 복날이라고 사공부 속관들에게 휴가를 준 조조는 오늘은 때가 안 좋다는 순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진궁을 찾아갔다. ❡ 진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 ‘매일 뜰에 나와서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종일 그러고 있었어? 안 더워?” ❡ 속이 반쯤 비칠 만큼 얇은 여름 홑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여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 “일어나 봐. 세수 안 하고 머리 ...

1-1.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

— 건안3년 12월에 백문루에서 조조가 진궁을 살리는 데 성공한 이야기. 이른바 정사 《삼국지》 기반이지만 《사기》와 《한서》와 《진서》가 더 많이 들어간.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진궁이었다. ❡ “이만 나가서 칼을 받고 군법을 밝히겠습니다.”1 ❡ 조조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이를 악물고 대꾸했다.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 「請出就戮,以明軍法。」 “칼을 받고”는 륙戮의 의역이며, 사실 문장 전체를 더 공손한 말투로 옮기는 것이 맞습니다. ↩

Tag 창어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창작

《삼국지톡》 리뷰 한 조각 (1) 자(字)

— 자의 사용과 언급, 여성 캐릭터의 자에 관해

아雅가 옛날 글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나 타인을 가리키는 표현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가장 큰 관심이 간다. 한문이라면 자신을 가리킬 때 이름을 쓰는지 ‘소인小人’을 쓰는지, 남을 가리킬 때 자字를 쓰는지 관직명을 쓰는지 등등. 《한서》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고, 마침 아雅는 텍스트로 된 언어 자료에서 용례를 뽑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조금 익숙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낸 《한서》 동인지가 《자칭·호칭·지칭》이었고, 삼국지포켓북 시리즈 또한 《호칭어 가이드》로 시작했다. ❡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Tag 창조리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채염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채옹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9. 조조의 책 [🔒 무료 미리보기]

조조는 많은 책을 읽었고 또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의 시대에 어떤 책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가장 가까운 시기의 정사로는 앞뒤로 서한의 《한서》 〈예문지〉와 수나라의 《수서》 〈경적지〉가 있습니다. 둘 다 당시에 수집된 도서 목록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아쉽게도 조조가 생존했던 시기를 다루는 《후한서》와 《삼국지》는 도서 목록을 수록하지 않아서, 조조와 관련된 책을 찾으려면 《수서》 〈경적지〉를 참조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조조가 특히 치중한 장르를 알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 공대를 괴롭히는 데 사용한 재료들

Tag 처형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Tag 척부인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척희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천구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Tag 천세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천하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Tag 청동기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전국 시대 청동기·옥기 매듭 메모 [🔒 무료 미리보기]

월인공방의 텀블벅 프로젝트에서 대동은전 노리개를 보다가 매듭에 관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중국 고대의 매듭에 관해 찾아보게 되었다. ❡ 전국시대에는 동그릇 위에 눈에 보이는 곳에는 모두 매듭의 모양을 남겼는데, 매우 정교하게 끈 하나를 이용하여 6개의 점을 이용하여 대칭을 만들어 냈다. 📖 이목성. (2010). 〈중국전통의 길상(吉祥)문양 디자인에 대한 연구: 매듭문양 중심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포럼》, 22, 35-44.

Tag 체장부인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Tag 초사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Tag 초씨역림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초주

외전. Z의 역설

정월 첫째 날 새벽부터 등을 밝히고 종을 울리면서 힘차게 새해를 시작한 조조는 뭔가 허전했다. ❡ 신년을 맞이하면서 빠뜨린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손가락을 꼽아 가며 점검했다. 하나, 오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오신반도 먹었고, 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날계란 한 알도 삼켰고, 셋, 악귀가 못 들어오도록 복숭아나무 목판에 신도와 울루를 그려서 문에 거는 것도 큰애들에게 시켰고, 넷, 산조山臊1를 쫓아내기 위해 마당에서 폭죽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애들이 더 신났고… ❡ 엄지부터 하나씩 접으면서 검지, 중지, 약지까지 네 가지를 ...

Tag 초혼

초혼의 효과

하나. ❡ 많은 삼국지에서 순욱은 “아! 승상께선 이제 내가 필요없으시구나ㅠ!”하며 곱게 자결하지만, 글쎄… 나는에 나오는(수많은)죽은 사람들 중 유일하게 순욱만 악귀가 되었을 것 같다. 삼톡순욱은 그렇다. [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https://twitter.com/superpink89/status/1591833658553688071) ❡ 둘. ❡ 후한 시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두려워했지만 설마 순욱...

Tag 촉나라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총각

총각머리의 실제 [🔒 무료 미리보기]

앞선 포스트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에서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상고시대 중국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총각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했을까요?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Tag 총각머리

총각머리의 실제 [🔒 무료 미리보기]

앞선 포스트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에서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상고시대 중국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총각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했을까요?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Tag 최대공약수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추녀

미녀를 혐오한 남자

—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Tag 춘추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Tag 춘추공양전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춘추번로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춘추설제사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Tag 춘추좌씨전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치욕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칠기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Tag

외전. 달콤쌉쌀한 스몰토크

처음에 진궁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 “오늘따라 공한테서 특이한 향이 나네요.” ❡ “응?” ❡ “약초 비슷한 냄새가 나요.” ❡ 조조는 가슴께를 더듬었다. 평소에 품 안에 넣고 다니던 궁궁이풀이 오늘은 없었다. ❡ “고孤도 모르겠는데.” ❡ 진궁은 조조의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를 가리켰다. ❡ “여기서 나는 것 같아요.” ❡ 조조는 무심코 주머니를 열었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풀뿌리가 나왔다. ❡ ‘아차.’ ❡ 진궁은 목을 길게 빼고 물었다. ❡ “그거 뭐예요?” ❡ 조조는 왼손으로 진궁을 밀치고는 오른손으로 다급...

Tag 칭호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Tag 캉스푸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콩잎

17. 명아줏잎과 콩잎 [藜藿] [🔒 무료 미리보기]

명아줏잎과 콩잎은 먹을 수 있는 물건이었지만 먹을 만한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서한 후반 일상에서 흔히 쓰이던 글자를 모아서 엮은 《급취편急就篇》에서 채소를 언급할 때 아욱[葵], 부추[韭], 파[葱], 염교[䪥], 여뀌[蓼], 차조기[蘇], 생강[薑] 등을 나열하지만 명아줏잎과 콩잎은 나오지 않습니다. 후한 때 나온 책으로 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석명釋名》에서도 려藜와 곽藿을 찾을 수 없습니다. 식용 작물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구황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것을 먹는다는 말로 가난한 생활을 비유하게 되었습니다.

Tag 크리스마스이브

외전. 만다린 진저 티

— 화이트 크리스마스

진궁은 마루에 나와 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마당에 눈이 쌓이는 동안 그의 눈은 줄곧 외진 구석을 향했다. ❡ 그의 의지로 열릴 일이 없는 대문 쪽으로는 아예 시선을 돌리지 않는 것이 진궁의 버릇이었다. ❡ “공대, 오늘이 며칠이지?” ❡ “음… 12월 24일…” ❡ 무심코 대답하던 진궁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 “너… 군이 대체 무슨 일로 오셨어요?” ❡ 순욱은 진궁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시자가 준비한 방석에 앉았다. ❡ “날도 날이고 해서 확인 좀 하려고.” ❡ 진궁은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 “오...

Tag 탁문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탕장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태평광기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태평어람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10. 조조가 좋아한 음식은? [🔒 무료 미리보기]

남북조의 책 《안씨가훈》을 읽다가 뜬금없이 〈위무사시식제魏武四時食制〉라는 글이 인용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위무魏武’는 위 무제 조조를 가리키고, ‘사시식제四時食制’는 사계절의 음식 제도라는 뜻이니까 조조가 쓴 제철 음식 이야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음식에 관한 글도 썼나 봅니다. 사실 놀랍지는 않습니다. 조조가 뭔들 안 썼겠어요… ❡ 혹시 〈사시식제〉가 책으로 남아 있는가 해서 《수서》 〈경적지〉에서 검색해 보니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이루어질 만큼의 분량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수대에 이미 소실되어 버렸던...

8.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 무료 미리보기]

《통전》과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에서 조조와 향에 대한 일화를 다 털고 가겠습니다.

[조각번역] 후한 궁정의 새해맞이 행사

한 해의 첫날에는 조정에서 활쏘기 행사를 크게 열고 하례를 받는다. 그 의식에 따르면 밤의 물시계가 7각이 되기 전에 종을 울리고 하례와 예물을 받는데, 공·후는 옥구슬, 중2천 석은 새끼양, 1천 석과 600석은 기러기, 400석 이하는 꿩이다. 백관이 정월을 축하하고, 2천 석 이상은 윗전각에 올라 만세를 부르고 어전에서 술잔을 든다. 사공司空이 국을, 대사농大司農이 밥을 올린다. 식사를 거행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백관이 하사품을 받으며 술잔치로 크게 즐거워한다. 《태평어람》 〈시서부14〉 원일

Tag 태황태후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토덕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토사구팽

후한 말 학자들의 개 이야기

삼국시대에도 애완견/사냥개/경비견을 구분해서 활용했을 것 같은데, 페키니즈나 시추처럼 품종 개념도 있었나요? 개를 용도에 따라 전문적으로 훈련시키는 직업도 있었을까요? ❡ 우선 한나라에서는 경비견과 사냥개를 구별했습니다. 《예기》 〈소의〉에는 군자들이 수견守犬과 전견田犬을 선물하는 절차가 나옵니다. 복잡한 예의범절은 생략하고 당나라의 학자 공영달의 해설을 참조하면, 개는 집을 지키는 수견守犬, 사냥에 나가는 전견田犬, 그리고 고기를 얻기 위한 식견食犬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지키는 ‘수견’과 사냥에 나가는 ‘전견...

Tag 통역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Tag 통전

米는 rice가 아니다

— 삼국지 해석의 실수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는 팬이 워낙 많다 보니 해석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한문 원문을 잘못 해석해서 일어나는 실수도 적지 않습니다. 그중 하나가 ‘米’의 해석입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米’라는 한자는 ‘미’로 읽고 쌀을 뜻합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쌀이 주로 볍쌀(벼의 알곡, rice)이므로 米 또한 볍쌀로 해석하기 쉽지만, 한자 ‘米’와 한국어 ‘쌀’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을 찾아보면 세 가지 풀이가 나옵니다. ❡ 3번 풀이에서 알 수 있듯이, ‘쌀’이라는 말에는 이미...

8.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 무료 미리보기]

《통전》과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에서 조조와 향에 대한 일화를 다 털고 가겠습니다.

Tag 통천관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Tag 파군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Tag 파란색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파랑

7. 파랑과 보라 [靑紫] [🔒 무료 미리보기]

오늘 살펴볼 말은 ‘파랑과 보라’입니다. 마침 고대 중국에서 파랑색과 보라색으로 사용한 염료의 정체가 밝혀져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가운데가 Han Blue, 오른쪽이 Han Purple입니다. 예쁩니다. ❡ 그러면 이제 파랑과 보라라는 색깔의 명칭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Tag 파이선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파이썬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팬플루트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평강기사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Tag 평양공주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폐황후 허씨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포도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포박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Tag 포옹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폭력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

Tag 표유매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표준화

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

Tag 품화보감

👍 ‘따봉’, 엄지척이 중국 전통에도 있었을까?

현대 한국에서 격식을 덜 차리는 상황의 경우 상대를 칭찬할 때 “따봉!”이라고 말하면서 엄지손가락을 펴 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흔히 “따봉”이라고 불리는 엄지척 동작의 유래를 동아시아 고전 문헌에서 찾아보겠습니다. ❡ 우선 “따봉”이라는 말 자체의 기원은 명백합니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로 “좋아!”를 의미하는 “Está bom!”의 축약형 “Tá bom!”입니다. 포르투갈어인 이유는 배경이 브라질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기에 브라질산 오렌지로 만든 주스의 텔레비전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그 광고에 나온 “Tá bom!...

Tag 풍속통의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Tag 피부과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Tag 피휘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필터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Tag 하씨어림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Tag 하지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하후돈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하후승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Tag 하후승전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하후연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Tag 하후칭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한건녕궁중향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Tag 한관의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한기

체장부인(體長婦人)의 뒷이야기

— 원소의 남성성 흠집내기

이 블로그에서는 예전에 〈체장부인의 수수께끼〉라는 글을 통해 《삼국지》 주석에 나오는 체장부인體長婦人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해석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지》와 《진서陳書》에서 근거를 확충하고 ‘체장부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 우선 ‘체장부인’이 나온 문장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 원본초는 공경의 자제로 수도에서 태어나 여자처럼 자랐습니다. […] 창칼에 뛰어들어 적과 자웅을 겨루는 데는 명공의 적수가 아닙니다.1 ❡ 《삼국지》 위지16 〈정혼전〉 주석에 인용된 《한기》 ❡ 여기서 ‘...

Tag 한비자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Tag 한서

매화 향기는 저 멀리 남방에서

— 매梅의 분포와 매화 문화의 시작

지난 포스트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 중국에서는 삼국시대까지도 주요 문헌에 매화가 기록된 사례를 거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포스트에서는 그 까닭을 알아보고, 중국에서 매화를 꽃으로 즐기는 문화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정해 보겠습니다. ❡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방입니다. 《중국식물지中国植物志》 영문수정판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사천성 서부와 운남성 서부가 원산지라고 하며, 한·중·일 이외에 동남아시아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 북부에도 분포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남쪽으로 치...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손견이 땅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 畵地成圖, 땅에 지도를 그리는 행동의 의미와 평가

《삼국지》에서 손견은 “반동탁연합”에 참가해서 원술의 지원을 받아 동탁군과 싸웁니다. 손견은 전투에서 화웅의 목을 베고 큰 승리를 거두었지만, 원술은 손견을 모함하는 말을 듣고 군량 운송을 중단합니다. 다급해진 손견은 급히 원술을 찾아가서 직접 따집니다. ❡ 손견은 밤중에 달려와 원술을 만나서, 땅에 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세우며 말했다. ❡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분연히 나선 까닭은, 위로는 국가를 위해 역적을 토벌하고 아래로는 장군 가문의 사적인 원한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동탁에게 혈육을 잃은 원한도 없지만 싸우...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 강도왕 유비劉非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劉勝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劉彭祖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

순욱은 과연 병으로 죽었을까?

순욱의 죽음은 대개 “빈 찬합” 밈으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소설 《삼국연의》 61회에 나온 것이고, 역사적으로는 《후한서》 본문과 《삼국지》 주석 《위씨춘추》에서 순욱이 “빈 그릇”[空器]을 받고 음독자살했다고 기록된 데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 한편, “정사”에 따르면 순욱이 “병사”했다는 주장도 많이 보입니다. 정말일까요? “정사”를 살펴봅시다. ❡ 순욱은 병이 들어 수춘에 머무르다가 근심으로 인해 죽었다. [彧疾留壽春,以憂薨] 《삼국지》 위지10 〈순욱전〉 ❡ 위 문장을 보면 순욱이 수춘에 머무른 까닭은 병이 들었기 ...

순욱의 ‘기이한 겉모습’

《삼국지》는 《한서》의 전통을 이어받아 미남에 관한 기록이 풍부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미남을 표현하는 말도 더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기(奇)’와 ‘이(異)’입니다. ❡ 현대한국어에서도 ‘기이한 재주’와 같은 말은 종종 쓰지만, ‘기이한 용모’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까지 긍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남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특징이 크게 두드러지는 외모를 연상하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아래의 〈도겸전〉 주석을 읽고서 도겸을 미남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본 적이 있습니다....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승상부 사람들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아雅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사舍”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丞相府와 승상사丞相舍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소망지의 생애

소망지는 전한 왕조 선제–원제 시기의 저명한 유학자이자 정치가입니다. ❡ 소망지는 원래 대대로 밭일을 업으로 삼던 농민 출신이었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서 《시경》을 배우고 당시의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이었던 태학에 선발되어 태학에서도 뛰어난 실력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 이때 황제는 무제의 막내아들인 소제로 나이가 어렸고, 대장군 곽광이 정권을 잡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소망지는 동료 왕중옹을 비롯한 유생들과 함께 곽광에게 추천되어 출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곽광은 정적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외부인을 ...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양동작전의 수수께끼

—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그러데 이런 구도는...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외전. 운명의 화살

동현董賢은 환약을1 물고서 상上이 누운 침상 위로 몸을 포갰다. 약을 받아 먹은 상은 그대로 현의 입술을 핥고… 혀를… 빨았다…… ❡ “…….” ❡ “어서 다음 부분도 읽어.” ❡ 진궁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조조가 손가락으로 배를 꾹꾹 찌르며 채근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은 현을 놓아 주고 헉헉거렸다. 현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상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평소엔 이렇게 빨리 끝내신 적이 없었는데…… 정사를 보시느라 옥체가 많이 약해지셨나 봐요.” ❡ 진궁의 목소리도 약해졌다. 조조는 훌쩍거리며 말했다. ❡ “슬픈 대목이잖...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한서》에서 새로운 성씨를 만든 사례 [🔒 무료 미리보기]

앞서서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에서 춘추·전국 시대에 씨氏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한나라에서는 씨가 성과 통합되면서 굳어졌지만, 그래도 성씨를 바꾼 사례가 간혹 나옵니다. 우선 항백, 유경 등 한나라 개국 후 유방에게 유劉라는 성을 하사받은 인물들을 꼽을 수 있고, 서한 후반으로 가면 개인이 자의나 타의로 성씨를 새로 만들기도 합니다.

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

전투 중에 사용하는 악기의 변화 [🔒 무료 미리보기]

한나라 때 군대에서 사용하는 악기라고 하면 제일 먼저 북이 떠오르고, 다음이 징입니다. ❡ 군자는 징 소리를 들으면 무신을 생각한다. 북 소리를 들으면 장수를 생각한다. 《예기》 〈악기〉 ❡ 북과 징은 상징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군령을 내릴 때도 사용됩니다. ❡ 북 소리를 들으면 전진하고 징 소리가 들리면 후퇴하라! 《한서》 〈이릉전〉 ❡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군령입니다. 《삼국연의》에서도 일대일 대결 중에 갑자기 본진에서 징을 쳐서 장수를 돌아오게 하는 장면을 본 것 같습니다. ❡ 군대에서 소리가 크게 울리는 타악기를 사...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한서》에서 도(刀)와 검(劍)의 용례 [🔒 무료 미리보기]

잘 아시다시피 도刀는 한쪽이 날, 다른 쪽이 등으로 이루어진 칼이며 검劍은 양쪽 모두 날로 이루어진 칼입니다. 《한서》에서도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서술하며, 두 단어의 용례가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2. 《한서》 〈곽광전〉을 열심히 읽은 조조 [🔒 무료 미리보기]

첫 번째는 조조가 영천에서 황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제남상, 동군태수가 되었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중평(184–189) 연간에 기주 자사 왕분과 남양 사람 허유, 패국 사람 주정 등이 호걸들과 결탁하여 영제를 폐위하고 합비후를 옹립하려고 모의하면서 조조에게도 알렸습니다. 《삼국지》 주석에 인용된 《위서》에서는 조조가 어떻게 거절했는지를 상세하게 실어 놓았습니다.

19. 인끈이 늘어져 [綬若] [🔒 무료 미리보기]

오늘 밝힐 도장 끈의 비밀에 대한 단서는 《한서》 〈영행전〉에 나오는 민가 가사입니다. ❡ 뇌가야 석가야 오록씨 문객들아 [牢邪石邪,五鹿客邪!] 인장이 쌓였네 인끈이 늘어졌네 [印何纍纍,綬若若邪!] ❡ 이것은 서한 원제 때 중서령中書令 석현石顯, 중서복야中書僕射 뇌량牢梁, 소부少府 오록충종五鹿充宗 세 사람을 풍자하는 노래입니다. 낯선 이름이 잔뜩 나오네요.

16. 밥 한 그릇 먹을 동안 [食頃] [🔒 무료 미리보기]

식경食頃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며, 특히 무협이나 사극 용어로 빠지지 않습니다. 이 말의 유래를 찾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면 마침 《사기》, 《한서》 등 한나라 때의 문헌에서부터 나옵니다. 《한나라 숙어 노트》에서 다룰 만합니다. ❡ 식경食頃이라는 말은 틀림없이 일상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입말로 흔하게 썼겠지만, 글로 기록된 문헌에서는 주로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9. 주후혜문 [柱後惠文] [🔒 무료 미리보기]

서한 선제 때의 인물인 장창은 경조윤으로서 수도 장안의 치안을 바로잡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후대에는 다른 일화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인의 눈썹을 손수 그려 준 “경조화미”입니다. ❡ 오늘의 소재가 눈썹은 아니지만 몸의 외관을 장식하는 것과 억지로 관련지어 볼 수는 있습니다. 장창은 동생 장무가 양국의 상으로 임명되자 그를 불러서 양국을 어떻게 통치할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장무는 형을 두려워해서 대답을 못 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눈썹을 예쁘게 그리는 남편이었지만 동생에게는 무서운 형이었던 모양입니다.

6.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나 [戴盆何以望天] [🔒 무료 미리보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보겠어? 《한서》 〈사마천전〉 ❡ 기록상 이 말은 《사기》를 쓴 사마천이 곧 사형을 받게 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처음 나옵니다. 사마천이 창작했을 수도 있지만 아마 당시의 속담이었겠지요. 이것은 사마천이 처음 벼슬을 받았을 때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그래서 관직을 얻자마자 지인들과의 연락을 싹 끊고 집안일도 내팽개쳐 놓은 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라를 위한 충성! “백성”을 위한 사명감! …이라면 멋있을 뻔도 했지만 사마천은 솔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와 가까워지고[親] 황제...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한서팸플릿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한대의 수갑과 족쇄의 형상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3 《포박과 감금》에서 다양한 포박 방식을 소개했는데, 당시에는 각각의 방식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자료를 찾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청나라 때 발간된 한대의 비석·화상석 모음집인 《석색石索》을 보다가 수갑과 족쇄를 찬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 일단 한나라 때의 형구로는 발에 채우는 질桎, 한 손에 채우는 곡梏, 양손에 채우는 공拲이 있었습니다. 이 ‘질’과 ‘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단서를 후한 시기 “효당산 화상석” 제7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아래 그림에서는 두 사람이...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한시외전

중역(重譯)의 환상

중역(重譯)이란 A언어의 말을 B언어로 바로 옮기지 않고 도중에 다른 언어를 거쳐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한자어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 중국 전한 시대 중반에 나온 《한시외전》과 《사기》에서 이미 ‘중역’이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현대의 한국어 독자들에게는 중역이 뭔가 아쉬운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동아시아와 영미권을 제외한 외국의 문화는 한국에 직접 들어오기보다 일단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되어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중역은 시대의 한계를 의...

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

14. 머리 감기 [沐] [🔒 무료 미리보기]

오늘의 이야기는 춘추 시대의 일화입니다. 하지만 이 일화가 실린 《한시외전》이 서한 때의 책이니까, 춘추 시대의 사건이라도 한나라 사람들의 말로 기록된 셈이지요.

Tag 한신

한나라의 붉은 깃발에는 과연 “漢”이라는 글자가 있었을까?

한나라를 나타낼 깃발을 고민하다가,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서 나온 칠기 무늬를 바탕으로 君幸食(군행식)이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한나라를 상징한다고 하면서 왜 漢(한)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아(雅)가 한나라에 그런 깃발이 있었다고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전국시대나 삼국시대 등을 배경으로 한 고장극에서는 군대의 깃발에 나라 이름이나 장수의 성을 커다랗게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깃발의 모습이 과연 당시의 실제 상황에 부합했을까요? ...

2-7. 끈질긴 사람들

— 건안9년 봄 2월, 업 근처에서.

진궁은 침상에서 배를 바닥에 대고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어 조조에게 인사했다. 조조가 진궁을 나무랐다. ❡ “공대, 그게 주인을 맞는 태도야?” ❡ 진궁은 찡그리며 대답했다. ❡ “허리가 너무 아파서요.”1 ❡ 그런 변명을 들어줄지 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위 영공이 총애한 미자하가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주고 영공의 수레를 몰래 탄 것이 처음에는 죄가 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죄가 되었던 것처럼.2 그리고 조조의 눈에 진궁은 아직 귀여웠으므로 변명을 들어주기로 했다. ❡ “의학서를 보니까 자주 엎드려 있으래요.”3 ❡...

Tag 한영

한서팸플릿4 〈미남전〉 서문

주아周雅가 말한다: ❡ 아! 나는 일찌기 서한西漢 사람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을 읽다가 선비의 다섯 가지 덕목을 논하는 데 이르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영嬰은 ‘용모가 아름다운 자로서 그 아름다움을 조정을 통솔하고 백성을 돌보는 데 쓰지 않고 도리어 여자들을 유혹하고 욕망을 좇는 데 쓰는 사람’을 꾸짖었으니, 이는 실로 여자들을 유혹하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은 것이다. 영은 《시詩》를 연구하여 명성을 얻고 태학太學에서 그의 학문을 전수하는 박사博士관이 설치될 만큼 일가...

Tag 한자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Tag 할아버지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Tag 항아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2-2. 상아

— 건안7년 가을 8월, 관도에서.

진궁은 대개 해가 지면 곧바로 침상에 누웠다. 책이라도 읽자고 방을 밝히기 위해서는 시자를 시켜 불을 가져오게 해야 했다. 일단 불을 켜면 시자는 등을 지키면서 떠나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고의로 화상을 입고 나서부터 특히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더욱 불편했다. 그냥 휘장을 치고 일찍 자는 편이 나았다. ❡ 조조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에 불을 켤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잠이 꽤 깊게 들었던 모양이다. 이 인간이 하다 하다 못해 이제는 자는데 찾아와서 덮치려고까지 하나 싶어서 한숨이 나오는데 조조는 입을 활짝 벌...

Tag 항아선자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항우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해동악부

생성형 AI의 한시 해설 실력은?

— 天陰不雨, 하늘이 어둡되 비는 오지 않을 때

다들 잘 아시다시피 동아시아 고전 문학에서는 경서나 고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이런 인용문을 전거典據 혹은 전고典故라고 합니다. 전고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고전 문학의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관동별곡〉입니다. ❡ 淮회陽양 녜 일홈이 마초아 ᄀᆞᄐᆞᆯ시고 汲급長댱孺유 風풍彩ᄎᆡ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 정철, 〈관동별곡〉(1580) ❡ 여기에 등장한 “급댱유汲長孺”는 급암汲黯이라는 인물의 자字입니다. 급암은 《사기》 권120 〈급정열전〉과 《한서》 권50 〈장풍급정전〉에 나오는...

Tag 해변

3. 바닷가 [海濱, 海瀕, 海濵] [🔒 무료 미리보기]

현대한국어에서 바닷가는 한자어로 해변海邊이라고 하지만, 상고한어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는 해빈海濱·海瀕·海濵입니다. 한자가 다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해변海邊이나 해빈海濱이나 바닷가는 바닷가지요. 육지 한가운데도 아니고 바다 한가운데도 아닙니다. 그러면 이 단어를 왜 《한나라 숙어 수첩》에서 굳이 다루게 되었을까요? ❡ 현대 한국에서 한국어 사용자가 생각하는 바닷가는 대개 여행지, 관광지, 휴양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되면 기꺼이 바닷가에 가고 싶어합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보러, 여름에는 해수욕을 하러, 혹은 일부...

Tag 해혼후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Tag 행군교수

professor는 왜 교수(敎授)가 되었을까?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국어에서 한자어로 된 직업명이라고 하면 ‘화가’의 가家, ‘변호사’의 사士, ‘교사’의 사師, ‘가수’의 수手 등 접미사로 끝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이 ‘교수’는 한자로 어떻게 쓸까요? ‘교’는 예상할 수 있듯이 가르친다는 의미의 敎입니다. 그렇다면 ‘수’는 무엇일까요? ‘가수’와 같은 手일까요? ❡ ‘교수’라는 단어를 이루는 한자는 바로 敎(가르치다)와 授(주다)입니다. 둘...

Tag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13.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 (+ 조조의 향 금지령) [🔒 무료 미리보기]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등에서 보았듯이, 조조는 향에 관해서 매우 복잡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조조의 후계자 조비도 조조 못지않게 향에 관한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조비의 미질향 파티에 관해 알아봅시다. ❡ 당나라 때 나온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는 조비, 조식, 왕찬, 응창, 진림 다섯 명이 쓴 〈미질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다섯 작품은 각기 산발적으로 나온 것이기보다는 아마도 저자들이 같은 시기에 모여서 함께 썼을 것입니다. ❡ 발단은 조비의 미질향 파티입니다. 미질향은 서역에서 온 ...

삼국지포켓북 3. 향, 새로운 감각의 개척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역사/시대 고증은 창작에 필요한 상상력을 방해하는가?

아(雅)는 조조가 향을 싫어해서 금지했다는 《태평어람》의 기록을 몹시 좋아합니다. 그 까닭은 조조가 향을 좋아했다고 상상하기가 아주 쉽기 때문입니다. ❡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는 대체로 술과 노래 등 자기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받아들였을 것 같은 캐릭터로 여겨지는 만큼, 후각을 만족시키는 향도 즐겼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조조는 순욱과 함께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를 각별히 신뢰했고 순욱은 《양양기》에 나오는 향의 일화로 유명합니다. 그러니 조조가 순욱의 영향을 받아서라도 향을 ...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8. 아직도 끝나지 않은 향 이야기 [🔒 무료 미리보기]

《통전》과 《예문유취》와 《태평어람》에서 조조와 향에 대한 일화를 다 털고 가겠습니다.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Tag 향낭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향로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Tag 향부자

향 빌런이 된 황제 조비

앞서 발행한 조맹덕의 TMI 열세 번째 이야기 〈로즈마리를 키운 오관중랑장 조비와 건안칠자 문인들〉에서 조비가 오관중랑장 시절 미질향 재배에 성공하고 이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조비가 향에 관심을 가졌다는 단서는 역사책 《삼국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일화를 살펴봅시다. ❡ 《삼국지》 오지2 〈오주전〉 주석에 인용된 《강표전》에 따르면, 위나라 황초2년(221) 황제 조비는 오왕 손권에게 사자를 보내서 여러 가지 귀중한 보물과 희귀한 동물을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나열된 보물 중에...

Tag 향승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허광한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허브

2-1. 바질 향기

— 건안7년 여름 5월, 관도에서.

조조도 처음에는 진궁이 마루에 엎드려 화분에 몰두한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거의 1분1이 다 되도록 자기가 온 것을 알아차릴 기미가 없자 슬슬 심술이 났다. 조조는 손짓으로 시자를 불러서 몰래 지시를 내리고는 진궁을 불렀다. ❡ “공대.” ❡ 진궁은 그제야 조조의 존재를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 조조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 “그게 그렇게 좋은가 보지? 고孤가 온 줄도 모르고 말이야.” ❡ 진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나륵羅勒2을 처음 키워 봐서...

Tag 허평군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2)

— 4년 뒤의 보충

허평군, 곽성군, 왕정군, 탁문군 등 ‘군’이 붙은 여성 이름인명은 당대 유행인가요, 혹은 일종의 존칭처럼 인명 뒤에 ‘군’이 따로 붙은 것인가요? 한 무제의 이부 누이 수성군은 봉호가 확실한 듯한데 왕정군은 이름이 정군이라 해서 헷갈려 여쭤봅니다. 조금 더하자면 이것이 현대 중국 가수 등려군과 관련이 있을까요? ❡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에서 《한서》의 여성 인명과 《후한서》의 여성 인명을 비교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한서》에서 군君으로 끝나는 인명의 사례를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 탁왕손의 딸 문군文君, ...

Tag 헌제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

향로 위의 약속

유협은 번쩍이는 황금 향로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보았다. 조조의 눈에도 저렇게 일그러지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겠지. ❡ 황제의 문구와 서류를 정리하던 시중侍中 순욱이 황제의 시선을 눈치챈 듯 물었다. ❡ “신臣이 향을 피워 드릴까요, 폐하?” ❡ 입안에 계설향雞舌香이 들었을 텐데도1 그의 발음은 또렷했다. 유협은 떨지 않으려고 애쓰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향은 경卿이 차고 있는 주머니에서 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 “황공합니다. 신臣이 폐하의 코를 어지럽혔습니다.” ❡ 순욱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 “어떻게 천한 ...

Tag 헤어스타일

외전. 《한서》 〈유림전〉에서 〈왕식전〉을 보세요

진궁은 조조가 뇌까린 말을 못 들은 듯했다. 조조는 소리를 조금 높여 다시 말했다. ❡ “마음에 안 들어…” ❡ “네?” ❡ “마음에 안 든다…” ❡ 진궁은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 “뭔진 모르겠지만 공公의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잘된 일이네요.” ❡ “마음에 안 든다고…” ❡ “그럼 이참에 좀… 아야.” ❡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한 꼬집 집고 당겼다. ❡ “이 머리카락 말이야…” ❡ 진궁은 머리를 잡힌 채 되물었다. ❡ “내 머리는 몇 년째 이 모양인데 뭐가 문제예요?” ❡ 조조는 머리카락을 잡은 손을 흔들었다. ❡ “바...

총각머리의 실제 [🔒 무료 미리보기]

앞선 포스트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에서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상고시대 중국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총각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했을까요?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Tag 현대인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Tag 현미

12. 현미밥을 먹다 [糲食] [🔒 무료 미리보기]

려糲를 “현미”라고 번역했지만, 진한 시대에는 벼를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에서 주로 먹었던 벼가 중원의 주식이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므로, 조나 수수였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표제어 “쌀”의 세 번째 풀이로 해석하면 됩니다. ❡ 볏과에 속한 곡식의 껍질을 벗긴 알을 통틀어 이르는 말. 쌀, 보리쌀, 좁쌀 따위가 있다. ❡ 그러니 고대중국어 미米도 현대한국어 “쌀”도 반드시 벼로 해석되지만은 않습니다. ❡ 고대 중국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겉곡식을 속粟, 껍질을 벗긴 속곡식...

Tag 현실고증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Tag 현중기

🐶 강아지 이름 짓기

예전에 이런 트윗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 기린+파랑, 바람+까망, 번개+빨강, 용+밤색, 서리+하양, 사자+누렁처럼,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비유+색깔 패턴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 《서경잡기》에 서한 문제의 명마 이름으로 자연류紫燕騮[제비+검붉은 말], 녹리총綠螭驄[용+희푸른 말]이 나오네요. https://t.co/ZeeogmnL2I https://twitter.com/chiclix/status/1256753239980044288 ❡ 당시에는 《서경잡기》에 나온 여러 이름을 보고 추...

Tag 형벌

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宮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Tag 형초세시기

외전. 천구(天灸)

— 혹은 동상이몽. 어느 가을 8월 14일.

팔월 십사일 민간에서 모두 주묵(朱墨)으로 어린아이 이마에 점을 찍어 천구(天灸)라 부르며 역질을 막는다. 종름, 《형초세시기》, 상기숙 옮김(지만지). ❡ 차갑고 축축한 감촉에 놀라서 눈을 뜬 진궁의 시선이 잠시 갈피를 못 잡다가 곧 조조의 오른손을 향했다. 새끼손가락 끝에 붉은 먹이 묻어 있었다. ❡ ”그걸 내 이마에 바른 거예요?” ❡ ”응.” ❡ 진궁은 천천히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중얼거렸다. ❡ “이제 와서 새로 이럴 필요는 없잖아요.1” ❡ 조조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가락을 닦으면서 말했다. ❡...

외전 1-2-1. 평화로운 사람의 날

— 건안5년 정월 7일 경신일, 관도에서.

조조는 각반도 안 풀고 쿵쾅거리며 마루로 올라왔다. 초봄에 어울리지 않는 쉰 땀 냄새가 풍겼지만 진궁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 마루 바깥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조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아직 일중日中1도 안 됐어요.” ❡ 일찍 왔다고 불평하는 기색은 아닌 것 같아서 조조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 “평단平旦2에 등산3을 갔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 “여기선 밖이 안 보여서 몰랐는데 근처에 높은 산이 있었나 봐요.4 아침부터 힘드셨겠어요.” ❡ 조조가 올라갔던 곳은 산...

Tag 혜제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Tag 혜초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호제법

《구장산술》, 유클리드 호제법, 파이선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아雅가 종종 하는 말은 《한서》에는 아雅의 학위논문만 빼고 모든 것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서》에서 온갖 것을 찾아대던 시절이었습니다. 갑자기 한나라에 프로그래밍에 상응하는 것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다가 《구장산술》이 떠올랐습니다. ❡ 《구장산술》이란 어떤 책일까요? 《구장산술》은 제목 그대로 9장으로 이루어진 산술에 관한 책입니다. ❡ 유클리드의 기하원본에 견줄 정도로 막강한 고전이 동양산학에도 있다. 이름하여 ‘구장산술’이 그것이다....

Tag 호칭어

‘맹하후’의 선례

— 장애인 차별에 대처한 두흠

삼국지 이야기에서 조조의 친척이자 휘하 장수로 유명한 하후돈은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로 인해 ‘맹하후’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사실 또한 역사책 《삼국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별명이 생긴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삼국지》에 배송지가 단 주석을 살펴봅시다. ❡ 이때 하후연과 하후돈 두 사람 모두 장군이 되었다. 군대에서는 하후돈에게 ‘맹하후盲夏侯’라는 별명을 붙였다. 하후돈은 그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을 볼 때마다 화를 내며 곧바로 거울을 땅에 던졌다. ❡ 《삼국지》 위지9 〈하후돈전〉 주석 《위략》 ❡ 여기에...

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 아雅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

《삼국지톡》 리뷰 한 조각 (1) 자(字)

— 자의 사용과 언급, 여성 캐릭터의 자에 관해

아雅가 옛날 글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나 타인을 가리키는 표현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가장 큰 관심이 간다. 한문이라면 자신을 가리킬 때 이름을 쓰는지 ‘소인小人’을 쓰는지, 남을 가리킬 때 자字를 쓰는지 관직명을 쓰는지 등등. 《한서》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고, 마침 아雅는 텍스트로 된 언어 자료에서 용례를 뽑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조금 익숙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낸 《한서》 동인지가 《자칭·호칭·지칭》이었고, 삼국지포켓북 시리즈 또한 《호칭어 가이드》로 시작했다. ❡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

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

삼국지포켓북 1. 호칭어 가이드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포켓북》 시리즈에서는 후한 말~삼국~서진 시대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리고 있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1차 및 동인 창작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소하지만 의외로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실을 발굴해서 영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도 각 소책자는 창작과 무관하게 그냥 읽어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지포켓북》에서는 아래와 같이 기존 삼국지 창작물에서 찾기 어려운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에도 읽는 데 큰 장벽...

12. 조조의 아명 아만(阿瞞)의 의미는 거짓말쟁이다? [🔒 무료 미리보기]

이 포스트는 2019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고대 중국에서 지배계급에 속하는 개인의 이름으로는 대표적으로 명(名)과 자(字) 두 가지가 존재했습니다. 조선시대 위인들을 생각하면 본명과 자 외에 호(號)도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지식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호를 짓게 된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지난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 그런데 명, 자, 호 외에 또 다른 고유명사도 있었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 등을 살펴보면, 후한 이후에 살았던 인물의 이력을 소개할...

11. 조조가 유비를 일컫는 말의 변화: ‘명사군’부터 ‘짚신가게 새끼’까지 [🔒 무료 미리보기]

역사책 이야기건 소설책 이야기건, 삼국지의 서사에서 주요한 축으로는 조조와 유비의 대립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정사” 의 본문과 주석에서도 조조가 유비를 칭하는 말을 뽑아 보면 조조가 유비를 대하는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시기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고 조조에게 의탁했을 때, 조조는 유비를 잘 대접하면서 자사·주목에 대한 존칭인 ‘사군‘이라고 부릅니다.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거거’를 주로 쓴 사람은?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6

王霞(2017)1에 따르면 손위형제를 가리키는 ‘兄’(형)이라는 말은 당나라 때부터 입말에서 ‘哥’(가)로 교체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중첩한 ‘哥哥’(가가)는 금나라 때의 작품 《서상기제궁조》라는 작품에 처음 나타나고, 원대에도 계속 쓰였다고 합니다. ❡ 원나라 말기의 작품인 《삼국연의》에도 이 말이 쓰였을까요? 소설 원문에서 ‘哥哥’(가가)를 검색하면 총 30회가 나옵니다. (참고로 ‘大哥’(대가)나 ‘阿哥’(아가)는 좀 더 후대에 퍼진 말로, 14세기 사람 나본에게는 낯설었는지 《삼국연의》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적과 다른 역적들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5

예전에 ‘삼국지’를 기반으로 창작된 작품을 읽을 때 조조를 ‘조적’이라고 칭하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한자를 병기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조씨 성을 가진 역적[曹賊]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딱 보아도 연의에 나올 것 같은 표현이라서, 《삼국지》 원문을 읽기 시작할 때는 굳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안 나오는 말일 테니까요. (정말 안 나옵니다.) ❡ 그리고 한두 해쯤 지나서 결국 《삼국연의》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고… 마침내 본문을 검색해 보니 ‘曹賊’이 23건 나왔습니다. 옛날에 추측한 것이 맞...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조조, 진궁, 백문루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3

01호에서는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변형 없이 (하지만 좀 뜬금없이) 사용한 사례를 보았고, 02호에서는 같은 대사에서 호칭어 하나만 바뀐 사례를 보았습니다. 03호에서 살펴볼 사례는 좀 복잡해서, 나본 양반의 오리지널 대화로 시작해서 《삼국지》의 내용으로 이어지고,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호칭어가 일부는 변형되고 일부는 유지됩니다. 진궁이 하비에서 사로잡혀서 조조 앞에 끌려온 뒤에 나누는 대화입니다. ❡ 《삼국연의》 19회에서 해당 대화만 뽑아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앞부분은 연의에서 창작된 내용입니다. ❡ 조조:...

손책·손권 형제와 주유의 관계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2

앞서서 《삼국지》의 대사를 《삼국연의》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사례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는 대사를 변형한 경우, 특히 손책 형제와 주유의 관계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 우선 《삼국지》에서 주유가 군대를 이끌고 손책을 도우러 왔을 때 손책이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吾]가 경을 얻었으니까 일이 잘 풀릴 거야.” 중요한 장면이니까 나본 양반도 《삼국연의》에서 가져다 썼습니다. 그런데 손책이 주유를 부르는 말을 바꾸었네요. 《삼국연의》에서는 ‘경’이라고 하지 않고 주유의 자[公瑾]를 부릅니다. 《삼국지》의 시대에 ‘경’은 아랫사...

‘논영회’의 그 대사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1

얼마 전부터 《삼국연의》를 처음부터 조금씩 보고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읽던 것은 아니다 보니 저자 나본(자: 관중)의 창작이나 전승보다는 기존 《삼국지》에 나온 장면에 살을 덧붙인 서술에 더 관심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대화에서 사용하는 호칭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요. ❡ 사서 《삼국지》를 처음 읽을 때 가장 놀랐던 장면은 이른바 ‘논영회’였습니다.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그대와 나밖에 없다!”라고 하는 유명한 대사는 소설과 만화에서 많이 보았는데, 《삼국지》 본문의 호칭을 그대로 옮기자면 “천하의 영웅은 사군(使君)...

《세설신어(보)》의 호칭어 사용 양상 [🔒 무료 미리보기]

《세설신어》는 위진 시대 명사들의 일화를 방대하게 모은 책입니다. 조비가 왕찬의 장례식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 삼국지 인물들의 행적을 파악하는 자료로도 사용됩니다. 한편, 이번에 입수한 《세설신어보》는 《세설신어》를 본따 송대까지 확장한 《하씨어림》이라는 책의 내용을 추가한 버전입니다. ❡ 《세설신어》는 후한 말부터 서진 건국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삼국지》와 시대가 일부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그 이후인 서진과 동진의 인물을 다룹니다. 그리고 인물 사이의 대화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삼국...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Tag 홍루몽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Tag 화관색전

형제는 손발, 처자는 의복?

— “연의”가 진짜로 “왜곡”한 것

소설 《삼국연의》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유비·관우·장비 사이의 의리입니다. 특히 유비의 대사로 다음과 같은 말이 유명합니다. ❡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兄弟如手足,妻子如衣服。] 《삼국연의》 15회 ❡ 이 대사는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빼앗기고 유비의 아내를 잃은 죄를 자책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말리면서 나온 말입니다. 유비는 자기의 아내를 잃은 것은 의복이 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이지만 의형제인 장비를 잃는 것은 손발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중대한 일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 그런데 이...

Tag 화덕

삼국지 위·촉·오 의인화

— 그림 @ionzaion 님

갑자기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를 반영하여 위·촉·오 세 나라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져서 급히 믄놋(트위터 @ionzaion)님께 의뢰하여 제작한 그림입니다. ❡ 각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우선 세 캐릭터의 테마색은 각 나라가 내세운 오행의 덕을 따랐습니다. 촉은 후한 왕조의 화덕(火德)을 계승하여 염흥(炎興; 불꽃이 일어나다)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붉은색을 숭상했으며, 반면 위와 오는 화덕을 대신하는 토덕(土德)을 표방하여 황룡(黃龍; 누런 용) 등의 연호를 사용하고 노란색을 숭상했습니다. ❡ 다음으로는 캐릭터...

Tag 화상석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

한나라의 음주 풍경 [🔒 무료 미리보기]

한서팸플릿6 《사람들이 일은 게을리 하면서도 먹는 것은 반드시 때에 맞추어 먹습니다》와 삼국지포켓북2 《예의를 버리고 음식을 구하다》에서 서한 시대와 후한 말에 어떤 술이 있었는지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또한 당시의 술이 발효주로서 도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 한편으로 한때 트위터에서 《기묘한 중국사》를 인용하며 장비가 마신 술이 사실은 ‘호로요이’정도로 도수가 낮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여기에는 《기묘한 중국사》에서 처음부터 독자들이 오해하게끔 서술한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는 장비가 술을 마시는 장...

Tag 화씨벽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화장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Tag 화장품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Tag 화타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삼국지》의 떡[餅] 이야기

《삼국지》에서 병餅이라는 글자가 사용된 문장을 찾아서 살펴봅시다. 병餅은 밀가루를 물에 반죽해서 삶거나 찌거나 구운 떡을 말합니다. 서한에서 흔한 음식은 아니었으나, 후한에서는 떡을 먹는 일이 자주 등장합니다. 삼국지에서도 떡 이야기가 여섯 군데에 나옵니다. 그 중에 실제로 떡을 먹는 장면은 하나밖에 없고, 나머지 다섯 용례는 떡이라는 아이템이 당시 사회의 실생활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 위남현령 정비는 조조군이 마초군에게 쫓길 때 소와 말을 풀어 마초군의 시선을 끌고 조조가 무사히 도망치도...

Tag 화타신방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Tag 환유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Tag 환제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Tag 황건

‘황건적’ 말고 그냥 ‘황건’이라고 말해 보기

20년 전 아(雅)의 본체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론 중에 대략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악의 예시로 “황건적”을 거론한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건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황건기의’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하고 반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를 잘 알던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삼국지 덕후의 자질이 잠재했던 것 같습니다. ❡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황건”이라는 두 글자를 단독으...

Tag 황건기의

‘황건적’ 말고 그냥 ‘황건’이라고 말해 보기

20년 전 아(雅)의 본체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론 중에 대략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악의 예시로 “황건적”을 거론한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건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황건기의’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하고 반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를 잘 알던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삼국지 덕후의 자질이 잠재했던 것 같습니다. ❡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황건”이라는 두 글자를 단독으...

Tag 황건적

‘황건적’ 말고 그냥 ‘황건’이라고 말해 보기

20년 전 아(雅)의 본체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론 중에 대략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악의 예시로 “황건적”을 거론한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건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황건기의’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하고 반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를 잘 알던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삼국지 덕후의 자질이 잠재했던 것 같습니다. ❡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황건”이라는 두 글자를 단독으...

Tag 황금향로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Tag 황제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황제내경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Tag 황충

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 ...

Tag 황태자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Tag 황태후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황패

원소가 치른 “6년상”의 진상은?

고대 중국에서는 1년이라는 기간을 어떻게 인식했을까요? 우선 나이를 세는 방법을 알아봅시다. 중국에서 언제부터 나이를 만으로 세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한나라 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라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의 한국에서처럼 한 살로 태어났고 달력으로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을 먹었습니다. ❡ 왜 이런 방식으로 나이를 세었을까요? 나이를 만으로 세려면 태어난 날짜를 알아야 하고, 또 매년 그 날짜가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달력 보급 상황을 상상해 보면, 아마도 모든 사람이 자기 생일...

Tag 황후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한나라의 황후들

—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

한대 여성의 작위

한나라의 후궁, 여관, 명부 제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명부命婦의 시초라고 할 만한 것은 《예기》 〈곡례 하〉와 이를 인용한 채옹의 《독단》에 나옵니다. ❡ 하지만 이 체계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선 Chinese Text Project에서 유인孺人을 검색해 보면 오로지 이 규범의 형태로만 나오고, 다른 용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인婦人은 특정한 지위를 나타내기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태후도 그냥 부인婦人입니다. ❡ 이 글에서는 《한서》와 《후한서》에 실제로 나오는 여성들의...

Tag 회남자

‘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姮娥가 예羿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

외전 3-1-1. 너에게 죽은 새를 선물할게

— 건안10년 4월, 업에서.

진궁은 오늘따라 밥상 앞에서 말이 많았다. ❡ “여름이니까 꿩고기 육포 반찬은 어울리는데,1 국에까지 꿩이 들어갔네요. 꿩고기 소비 장려 운동이라도 시작한 거예요? 아니면 사공부司空府에 꿩이 떼로 날아왔어요?2 여기선 그런 거 안 보이던데.” ❡ 조조는 잘 되었다 싶으면서도 놀랐다. ❡ “언제부터 그렇게 식사 메뉴에 관심이 많았어?” ❡ “화초 키우기 말고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까… 날마다 변하는 거라곤 그것뿐이고…” ❡ 진궁은 조조가 말을 더 하기도 전에 혼자 풀이 죽었다. ❡ “그렇다고 형여刑餘의 몸이 반찬 투정을 하겠다거...

Tag 회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Tag 효경

총각머리의 실제 [🔒 무료 미리보기]

앞선 포스트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에서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상고시대 중국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총각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했을까요?

Tag 효경황후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Tag 후궁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

— 생산력 vs. 처녀성

이 글의 제목은 ‘한나라 황실의 비처녀 논란’입니다. ‘한나라 황실’과 ‘비처녀 논란’의 조합이라니 아雅가 써 놓고도 정말 어색합니다. (애초에 ‘비非처녀’라는 말부터 도대체 이게 뭔가 싶지요.) 하지만 서브컬처의 여성 캐릭터가 동정, 소위 ‘처녀’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논란씩이나 하는 남덕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남덕들은 남자가 동정인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남성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이 본능의 존재를 우주의 법칙처럼 받들기 마련이지요. 이런 남덕들에게 고대 중국 한나라를 상상해 보라고 한다...

인간돼지 사건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법

— 《사기》 〈여태후본기〉와 《한서》 〈외척전〉의 비교

이 포스트는 2017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인 고제 유방은 한왕 시절 정실부인 여씨의 아들을 태자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태자의 지위는 굳건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가장 사랑하는 첩인 척 부인이 밤낮으로 울면서 자기가 낳은 유여의를 후계자로 삼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태자가 유약하다고 못마땅해하던 유방은, 자기를 더 닮아 보이는 유여의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주창, 숙손통, 장량 등 여러 대신이 각고로 노력한 덕에 태자는 자리를 지켰고, 유방이 ...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Tag 후한서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포)와 萄(포도 도)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正史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정正’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

살해와 사죄

— VP以謝NP

어떤 사람을 죽임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사죄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나라 사람들은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 한문에서 ‘VP以謝NP’라고 하면 VP(동사구)라는 행위로써 NP(명사구)에게 사죄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패턴은 전한시대와 후한시대를 포함하는 여러 역사책에서 꾸준하게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표현의 용례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4사에서 ‘以謝’를 포함한 문장을 검색하여 사죄의 수단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을 뽑아 보았고, 살상...

고대 중국의 마스크팩

— 화타의 피부과 처방

삼국지 이야기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모두들 화타를 꼽을 것입니다. 소설 《삼국연의》 에서 관우의 팔을 수술하고 조조에게 뇌수술을 권한 화타는 실존 인물로, 중국 후한시대 말기에 활동하여 역사책 《삼국지》와 《후한서》에 전기가 수록되어 있지요. ❡ 그런데, 이 화타가 피부에 생기를 돋우는 마스크팩을 개발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 ❡ 바로 《화타신방華佗神方》이라고 하는 책에 크림팩을 만드는 방법이 실려 있는데요, 권14 〈화타피부과신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처방을 살펴볼까요? ❡ ‘화타면고신방’은 ‘화타/...

황제는 만세, 제후는 천세?

1909년 대한제국 시절, 김구는 자기에게 부르는 ‘만세’ 소리를 듣고 기겁했습니다. 김구에게 있어 ‘만세’란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황제의 신하인 군수는 웃으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도 만세를 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켰습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

면류관과 승여

— 후한시대에 황제를 상징한 사물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The Crown》은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crow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관입니다. 그런데 crown은 단순히 왕관이라는 사물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국왕의 지위, 혹은 국왕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 이런 용법을 환유법이라고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환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을 말합니다. 한국어의 경우 국회의원을 ‘금배지’라고 부르는 예를 꼽을 수 있고, ...

‘황건적’ 말고 그냥 ‘황건’이라고 말해 보기

20년 전 아(雅)의 본체가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들을 때의 일입니다.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토론 중에 대략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악의 예시로 “황건적”을 거론한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그때 “황건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낡은 관점이다, 중국에서는 ‘황건기의’라고 높여 부르기도 한다” 하고 반박했던 기억이 납니다. 삼국지를 잘 알던 때가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삼국지 덕후의 자질이 잠재했던 것 같습니다. ❡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어로 “황건”이라는 두 글자를 단독으...

장창과 반초

— 한나라의 애처가들

한나라 때 장창이 아내의 눈썹을 그려주었다가 다른 신하들의 탄핵을 받은 적이 있다고 압니다. 그 사유는 남자가 화장품 같은 여성적이라고 인식된 물건에 손을 대서인가요, 혹은 아내에게 지나치게 격의 없이 굴어서인가요? 후자라면 동아시아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도 그러했을 것 같은데 부부 사이 ‘과한’ 친밀함이나 애정 행각을 지양해서인가요? ❡ 한나라에서 남자가 화장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기》 〈영행열전〉에서는 고제 유방의 아들 효혜제 시기 황제의 시종들이 연지와 분을 바르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했다는 이야기...

보요(步搖)라는 머리 장식

마왕퇴 신추 부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인형을 보면 이마에 드리우는 머리장식을 쓰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 한대에 착용되던 장식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명칭은 무엇인가요? ❡ 마왕퇴한묘 1호 무덤에 묻힌 신추의 머리장식은 보요步搖라고 합니다. 머리에 금속 장식들이 달려 있고, 걸을 때마다 이 장식들이 흔들린다고 해서 보요步搖라고 불렸습니다. ❡ 우선 보요의 존재는 여러 전래문헌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후한서》에서 황후를 비롯한 귀부인들이 의식에 참여할 때 보요로 머리를 장식해야 한다는 규범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 다음으로 보...

“주색“ 넘치는 향연

양부전을 보면, 조홍이 잔치 자리에 무희들을 불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하자 양부가 ‘남녀가 유별한데 이런 건 부적절하다’라고 대놓고 지적한 일이 그의 강직한 성품을 반영하는 일화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한까지만 해도 드물었지만 현대엔 동양풍 하면 쉽게 떠올리는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 문화가 실제로 생겨나는 데에 조조와 조홍 등의 행태가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 우선 “기녀들이 술시중 드는 잔치”라고 하면, 대체로 기녀들이 평소에 관청이나 민간의 기방에 소속되어 있다가 연회가 생기면 불려 가서 흥을 돋우고 손님들의...

한나라 사람들의 인사와 신체 접촉 [🔒 무료 미리보기]

이 글에서는 한나라 시대의 역사를 포함하는 전4사(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 및 동시대 문헌에서 인사와 연관된 신체 동작의 쓰임을 수집했습니다. ❡ 일반적으로 윗사람 앞에서 공경의 뜻을 표하는 동작입니다. ❡ 가장 기본적인 인사법입니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격려하는 동작입니다. ❡ 남편이 부인에게 애정을 표시하는 동작으로, 역사책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행위입니다. 동성 간에 쓰인 예는 찾기 어렵습니다. ❡ 손을 잡는 동작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 우선 처음 만나는 사람의 손을 덥석덥석 잡는 ...

급급여율령, ‘여율령’의 원래 의미

— 동아시아 귀신은 처음부터 인간의 공권력에 복종했는가?

귀신을 쫓는 주문에 쓰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율령대로 신속히 처리하라’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율령대로’라는 의미의 여율령(如律令)은 원래 전한 시대 공문서를 끝내는 상용구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관료제의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귀신들이 관아의 공권력에 약하다는 해석이 종종 나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유명한 희곡 《감천동지두아원》, 또 조선 시대의 《장화홍련전》 등 여러 이야기에서 죄없이 살해된 여자 귀신이 인간 관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런 해석은 설...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한나라의 도장끈

아래 그림은 후한 시대의 화상석입니다. 이 그림에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림을 보고 세 사람의 지위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있을까요? ❡ 왼쪽부터 순서대로 A, B, C라고 할 때 그림에서는 A의 지위가 가장 낮고, C의 지위가 가장 높은 것 같습니다. 우선 C가 혼자 앉아 있고 나머지 두 사람 A, B가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으므로 C가 더 높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A와 B 중에서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일까요? B가 앞에 서 있으므로 A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겠습니다. ❡ 하지...

외전. 새벽 종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궁이 종 소리에 깨었을 때는 아직 사방이 컴컴했다. 본관에서 친 종1이, 구석에 떨어진 별채의 안방에까지 우렁차게 울렸다. 더듬거리며 지팡이를 찾아서 마루로 나가 보니 담장 너머로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에서 보일 정도라면 등을 수십 개도 더 켰을 것이다.2 ❡ 마루에 앉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찬 바람을 맞고 있자니 졸음이 가셨다. 조조가 벌이는 정단正旦 축하 파티가 금방 끝날 리 없었다. 안방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다시 청하기는 싫었다. 사람들의 어떤 회합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

전4사에서 지명(知名)의 빈도와 용례 찾기 [🔒 무료 미리보기]

진궁陳宮의 자字는 공대公臺이고 동군東郡 사람이다. 강직하고 장렬했으며, 젋은 시절 해내의 지명지사知名之士들과 모두 관계를 맺었다. 《삼국지》 〈장막전〉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어환의 《전략》 ❡ 知名(지명)을 말 그대로 해석하면 (남의) 이름을 안다는 뜻입니다. 이 앞에 所(소)를 붙여서 所知名(소지명)이라고 쓰면 피동 표현으로 (자기의) 이름이 알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예문에서는 피동 표지가 없이도 후자 같습니다. ‘知名’이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독자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요? ❡ 그래서 ‘知名’...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 무료 미리보기]

자字가 성인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언급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성년의 날” 문서에도 “‘자(字)’란 관례를 치른 남자가 갖는 이름이다.”라고 하고 있네요. 하지만 적어도 한나라 사람들이라면 남자만 자를 갖는다는 말을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 여성이 자를 가지는 것이 한나라에서 얼마나 보편적이었을까요? 중국 간쑤 성에서 출토된 거연한간 중에서는 편지의 수신인으로 유손幼孫·소부少婦 족하足下라고 남편과 아내의 자를 나란히 쓴 사례가 있습니다. 변방을 지키던 이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총각머리의 실제 [🔒 무료 미리보기]

앞선 포스트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에서 총각總角이라는 말이 상고시대 중국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총각머리를 하기 위해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했을까요?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

손책과 주유의 총각지호(總角之好)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한국어 총각總角은 ‘결혼하지 않은 성년 남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대 중국에서 ‘총각’은 훨씬 어린 나이였고,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머리 모양도 달랐습니다. 한국어에서 말하는 총각머리는 머리를 땋아 늘어뜨린 것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 ‘총각’이라고 하는 머리 모양은 머리카락을 양의 두 뿔[角]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경·제풍》 〈보전〉에서는 총각을 丱[관] 모양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매체에 자주 나오는 어린이의 머리 모양으로 쉽게 상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래...

Tag 훈패지향

매화의향(梅花衣香) 제작 방법

— 《향승》 권19 〈훈패지향〉 열두 번째 합향

이 블로그에서는 여러 해 전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라는 포스트로 《향승》 권19 〈훈패지향〉의 몇 가지 향을 소개했습니다. 나중에는 매화의향梅花衣香을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는데, 이후 《향승》을 더 상세히 읽고 향에 관해 더 조사해 본 결과 당시에 만든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매화의향을 제대로 만들고자 합니다. ❡ 우선 매화의향을 만드는 방법을 《향승》 권19 〈훈패지향〉에서 다시 복습해 봅시다. ❡ 영릉향零陵香, 감송甘松, 백단白檀, 회향茴香,...

송나라 사람들과 명나라 사람들은 향낭에 무엇을 넣었을까?

허리에서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풍기는 향낭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중요한 장식품이었고, 창작물에서도 매력적인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단순히 향낭이라는 아이템을 등장시킬 뿐만 아니라, 향낭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를 묘사할 수 있다면 더욱 즐거운 창작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 창작물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것은 매화 꽃잎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향낭에 어떤 향을 넣었을까요? ❡ 향낭에 한 가지 재료만 넣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실제로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부터 다양한 향료를 섞어서 사용했다는 것을 ...

Tag 휴가

한대의 여름 휴가 [🔒 무료 미리보기]

7월 17일 제헌절이 공휴일이 아닌 것이 슬퍼서 《한서》에 나오는 여름철 휴일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 대표적인 여름 휴일은 24절기에 속하는 하지夏至와 절기 바깥의 복날[伏日]로, 각각 겨울의 동지冬至와 납일臘日에 대응합니다. ❡ 하지夏至는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앞뒤로 이틀씩을 합쳐서 닷새 동안 군사들과 관리들을 쉬게 하는 큰 연휴입니다.

Tag 흉노

통역과 번역이 모두 ‘역’으로 끝나는 까닭

— 역(譯)의 의미 확장

한국어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역(通譯)과 번역(飜譯)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이지만, 역(譯)이라는 한자를 공유합니다. 두 작업 모두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유럽어에서는 ‘통역’이라는 말과 ‘번역’이라는 말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통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interpret’, 번역에 해당하는 동사는 ‘translate’입니다. 두 단어 사이에 겹치는 요소가 없습니다. ❡ 영어 단어 ‘interpret’(통역하다)와 ‘...

Tag 희공33년

매화? 그거 먹는 건가요?

— 고대 중국인들에게 매梅가 가졌던 의미

梅(매)라는 한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나무 전체? 열매? 꽃? ❡ 문인화의 주요 소재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중국어로는 국화와 대나무의 순서가 바뀌어 梅蘭竹菊)에서 매梅는 꽃을 가리킵니다. ‘묵매墨梅’의 매梅 또한 매화꽃입니다. ‘매향梅香’도 매화의 향기고, ‘탐매探梅’도 매화를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양풍” 분위기를 내는 소재로서 매梅는 열매보다 꽃의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매梅는 중국에서 처음부터 꽃으로 주목받았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글에서...

Tag 흰색

흰색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로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희다’, ‘하얗다’, ‘허옇다’, ‘하야스름하다’, ‘희끄무레하다‘ 등 하나의 색깔을 가리키는 색채어 형용사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용사를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다는 번역의 한계 때문에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한다는 한탄도 종종 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적어도 20세기에는 이랬습니다. ❡ 하지만 한국어에 한국어만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모든 언어는 각기 고유한 특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색깔을 표현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