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한나라 벼루의 크기와 모양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서론

잘 알려져 있듯이 한나라 사람들은 펜과 잉크가 아닌 붓과 먹물로 글씨를 썼습니다. 먹을 갈아서 먹물을 내기 위한 도구가 바로 벼루입니다.

흔히 벼루라고 하면 네모난 돌의 윗면을 파서 오목하게 만든 모양을 떠올립니다. 아래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간단한 벼루의 형태입니다.

네모난 벼루에 먹과 붓이 올려져 있다.
벼루, 먹, 붓.

과연 한나라 사람들도 이렇게 생긴 벼루를 썼을까요? 이 글에서는 다양한 유물을 참고하여 한나라 벼루의 모양을 알아보겠습니다.

한나라의 필기구: 죽간과 붓

우선, 한나라의 서적과 문서를 통해 필기구의 크기를 가늠해 봅시다. 아래의 그림은 전한시대 폐제 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형 거울의 뒷면에 그려진 공자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옷칠된 목판에 중국 고대 의상을 입은 두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른쪽 남자는 죽간을 펼쳐 들고 있다.
孔子徒人圖漆衣鏡(부분).

두 사람 중 오른쪽에 있는 자하가 펼쳐든 죽간은 오늘날의 책 크기와 비슷해 보입니다. 즉, 죽간의 길이는 현대인들이 읽는 일반적인 단행본의 세로 길이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죽간의 폭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간독(죽간과 목독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자료의 예시로 전한 선제 시대의 〈원강오년조서〉를 살펴봅시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목간에 한자가 적혀 있다.
元康五年詔書.
길이 23.4–24.1cm, 너비 1.5–1.8cm.

사진을 보면 폭 1.8센티미터짜리 목간에 2단으로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습니다. 참고로 현대 한국인이 쓰는 한자 공책에서는 글자 한 칸이 가로·세로 1.7센티미터입니다. 우리가 한자 공책 한 칸에 한 글자를 쓸 때 한나라 사람들은 같은 면적에 네 글자를 쓴 셈입니다. 이렇게 작은 글자를 쓰려면 붓도 가늘어야 합니다. 붓이 가늘다면 벼루도 클 필요가 없습니다.

한나라의 휴대용 벼루

한나라의 문관들은 붓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잠필이라고 하여 머리에 꽂고 다녔습니다. 머리에 붓을 꽂고 허리에 서도(간독에서 잘못 적힌 글자를 긁어내는 데 쓰는 칼)를 찬 하급 관리는 도필리라고 불렸습니다.

고대 중국 관리가 머리에 붓을 꽂고 손에 죽간을 들고 꿇어앉아 있다.
1954年山東沂南縣北寨村出土 東漢墓畫像石《簪筆圖》.

그런데 머리에 붓만 꽂고 다녀서는 글씨를 쓸 수 없습니다. 붓으로 글씨를 쓰려면 먹물을 묻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먹과 벼루 또한 휴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아래 그림과 같이 돈황 마권만 봉수 유적에서 붓과 함께 출토된 벼루를 보면 휴대가 가능한 크기입니다.

벼루와 붓.
敦煌馬圈灣烽燧遺址出土的毛筆和硯.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벼루에 비하면 앙증맞은 사이즈입니다!

전한시대의 유물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벼루는 네모난 칠기 케이스에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벼루는 그릇이 아니라 평평한 돌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칠기 벼루와 붓.
西汉彩绘漆盒石板砚.
길이 21.5cm, 너비 7.4cm, 두께 0.9cm.

위의 사진에 나온 벼루는 길이가 21.5센티미터였다고 하니, 죽간과 함께 말아서 가지고 다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의 사진 역시 칠기 벼루입니다. 사이즈에 관한 정보는 없으나, 아마 위의 벼루와 비슷한 크기였을 것입니다.

칠기와 돌로 이루어진 벼루.
전한시대 칠기 벼루.

한나라의 탁상용 벼루

후한시대의 벼루 유물은 주로 다리가 달린 오목한 그릇형입니다. 먹물을 넉넉하게 담아 쓸 수 있는 탁상용 벼루였을 것입니다.

아래 사진의 벼루는 키 모양 그릇 안쪽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키 모양 벼루. 안쪽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建初五年(80年) 石箕形灰陶硯.

더 흔한 것은 세 발과 뚜껑이 달린 원형 용기입니다. 뚜껑은 동물 모양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세 발 달린 벼루. 뚜껑에는 비둘기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雙鳩蓋三足石硯
고궁박물관 소장.
지름 14.8cm, 높이 15.7cm.

위의 벼루는 뚜껑에 비둘기 한 쌍이 조각되어 있고, 아래의 벼루는 뚜껑에 용 한 쌍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세 발 달린 원형 벼루. 뚜껑에 용 두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東漢雙龍鈕蓋三足石硯.

특히 귀여운 벼루로는 거북이 모양이 있습니다. 벼루의 뚜껑은 등껍질, 몸체는 다리가 달린 형태입니다.

거북이 등껍질 모양 벼루 뚜껑.
漢 銅鎏金龜硯蓋.
길이 14cm.
거북이 모양 벼루 몸체.
東漢至六朝 銅龜硯.
길이 13.8cm.

거북이 벼루는 한나라 때부터 발견되는데, 후대까지도 꾸준히 유행했습니다. 귀여우니까요.

결론

이렇게 한나라의 벼루는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은 편이었고, 기능적으로는 휴대용과 탁상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물을 통해 살펴볼 떄 휴대용은 칠기 케이스로, 탁상용은 동물 모양 뚜껑으로 주로 장식한 것 같습니다. 한나라 문관의 집무실을 묘사할 때 활용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