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삼국지 인물들의 “당시 실제 발음”은 존재하는가?

삼국지 인물들의 “당시 실제 발음”은 존재하는가?

고대중국어, 그리고 재구 일반의 문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삼국지》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고대중국어(상고한어) 재구음으로 읽고 한글로 쓴 콘텐츠는 늦어도 2015년부터 꾸준히 존재해 왔고, 지금도 온갖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면 이런 콘텐츠는 주로 “실제 당대” 삼국지 인물들의 발음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상고한어 삼국지 실제 발음' 구글 검색 결과 1
'상고한어 삼국지 실제 발음' 구글 검색 결과 2
'상고한어 삼국지 실제 발음' 구글 검색 결과 3

상고한어 재구형의 발음을 한글로 쓰고 “실제 삼국지 시대의 발음”이라고 부르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 시대의 불일치

일단 상고한어 시기의 범위부터 살펴봅시다. 사실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상고한어 시기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마다 다릅니다. 왕력의 이론을 따라 기원후 3세기까지를 상고한어 시기로 본다면, 마침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시대와 위진 초기는 여기에 포함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바로 재구된 상고한어의 발음이 삼국지의 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를 반영한다는 것입니다. 상고한어의 시대적 범위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완전히 통일되지 않았지만, 상고음을 추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가 《시경》의 압운과 형성자의 성부 공유 두 가지라는 데는 모두가 의견이 일치합니다.1 즉, 어떤 두 한자가 《시경》의 시에서 라임을 이룬다면, 혹은 說과 悅처럼 성부가 같고 부수만 다르다면, 이 두 한자의 발음은 상고한어에서도 동일한 운을 가졌다고 추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경》은 한나라는 물론이고 진 시황의 진나라보다도 훨씬 오래된 문헌입니다. 기원전 11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지어진 《시경》에서 기원후 3세기의 《삼국지》로 오는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어의 발음은 상당한 변화를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상고한어 재구형을 “삼국지 시대”의 발음이라고 부른다면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 됩니다.

혹시 상고한어의 다음 단계로 알려진 중고한어(중세중국어)라면 괜찮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고음은 반대로 삼국지의 시대에서 3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흐른 뒤인 601년에 나온 책 《절운》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결국 상고음이든 중고음이든 작지 않은 시차가 있으니 삼국지 시대의 발음을 직접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대안은 있을까요? 악셀 슈슬러는 최소상고음(Minimal Old Chinese)을 한나라 이전인 기원전 3세기까지의 언어로 한정하고, 상고음과 중고음 사이에 기원후 2세기 무렵의 후한음(Later Han Chinese)이라는 별도의 층위를 설정했습니다. 여기에는 W. 사우스 코블린이 수집한 후한 시기의 성훈과 불교 용어 음역 등의 자료가 쓰였습니다.2 이런 점에서 후한음은 적어도 상고음이나 중고음보다는 “삼국지 시대”에 더 가깝습니다. 게다가 후한 시대와 삼국 시대 승려들은 산스크리트어 등 인도 언어로 된 불경을 중국어로 옮길 때 음역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앞서 상고음 재구에 사용된 《시경》 압운과 형성자 해성은 두 한자음이 서로 비슷하다는 정보를 주지만, 그 비슷한 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소리였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반면 불경 음역은 이미 알려진 원어의 발음과 대응하는 중국어 발음을 기록한 것이므로 그보다는 구체적인 소릿값을 제공합니다.

2. 재구에 대한 두 가지 관점

그러면 후한음을 쓰면 “실제 삼국지 시대의 발음”이 될까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랜 옛날에는 녹음기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사람들의 발음을 직접 듣지 못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이 자신의 발음을 직접 설명한 기록이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15세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ㄱ’ 등 낱소리의 발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나, 삼국지 시대의 중국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상고음이든 중고음이든 후한음이든, 모두 근대 이후에 재구(reconstruct)된 것입니다.

재구는 다시 짓는다는 뜻입니다. 재현이 아닙니다. 비교언어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서는 재구형을 실제로 존재했던 언어의 복원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재구형을 일종의 공식으로 간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후자의 입장을 따른다면 후한음 또한 특정 이론에 바탕을 둔 하나의 모형이지, 실제로 존재했던 발음의 정확한 재현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3. 재구형의 한계

전자의 입장을 취하면, 즉, 재구형이 당시 언어의 실제 모습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될까요?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상고음 자료로 쓰인 《시경》은 여러 세기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형성자 역시 갑골문 단계부터 전국 시대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이질적인 자료에서 하나의 정합적 체계를 뽑아내는 순간, 그 결과물은 어느 한 시점 어느 한 지역의 말이 아니라 여러 층위를 납작하게 누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재구형에는 실제 언어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지역, 사회 계층 등의 다양한 변이 요인이 모두 지워져 있습니다. 《삼국지》의 인물로 예를 들자면, 북방의 공손찬과 남방의 사섭이 같은 한자를 서로 다른 발음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4. 劉와 融의 사례

재구형에 적힌 음성 기호가 실제로 해당 시대의 발음을 정확히 반영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례가 있습니다. 상고음 등의 재구형에서 우리가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한자 劉(류)의 첫소리와 融(융)의 첫소리가 서로 달랐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두 소리를 각기 어떻게 발음했는지로 가면 학자들의 의견 차이가 작지 않습니다. 2015년의 한 게시물에서 인용한 여러 학자들은 劉의 첫소리를 *r, 融의 첫소리를 *l로 재구하고 있는데, 앞선 시대 학자인 이방계는 이와 반대로 劉를 *l, 融을 *r로 재구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면서 이론이 변화하고 두 소리의 음가 추정도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이렇게 재구는 학자들의 해석과 자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5. 재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재구가 쓸모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상고음 재구형을 “실제 삼국지 시대의 발음”이라고 단정해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재구를 이해할 때는 세 층위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1. 대응 관계의 요약. (예: 이 한자는 저 한자와 서로 라임이 맞다.) 이것이 가장 견고합니다.
  2. 대응 관계의 요약을 최소한의 대립 체계로 정리한 음운론적 해석. (예: 이 한자의 첫소리와 저 한자의 첫소리는 서로 구별된다.)
  3. 대립에 부여된 음성값. (예: 이 한자의 첫소리는 [l]이고 저 한자의 첫소리는 [r]이다.) 이것은 학자들이 간결성과 유형론적 개연성 등의 기준에 따라 추정한 값일 뿐입니다.

앞서 4절에서 본 劉와 融의 경우처럼 학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바로 이 3번 층위입니다. 삼국지 인물들의 이름에 이런 괴상한 소리가 들어있었다! 하고 웃음거리로 삼는 것은 3번 층위의 재구를 실제 발음과 착각해서 나오는 오류입니다.

아는 《시경》의 시 〈야유사균〉과 〈도요〉의 노랫말을 상고한어 재구형으로 전사하고 곡을 붙여 부른 영상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재구형은 백스터와 사가르의 2014년 체계를 썼습니다. 여기서 아는 재구된 상고한어를 특정 시기에 실제로 존재했던 자연언어로 간주하지 않고, 《시경》의 운율을 소리로 구현하기 위한 인공언어로 다루었습니다.

《시경》의 노랫말을 상고음으로 부를 때 실제로 들리는 것은 대부분 위에서 말한 1번 층위에 속합니다. 어떤 글자들이 서로 라임을 이루는가, 한 행이 몇 음절인가, 어느 자리에서 라임이 돌아오는가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 정보는 애초에 《시경》의 라임에서 뽑아낸 것입니다. 백스터&사가르가 아닌 다른 학자의 재구 체계를 쓰더라도 라임의 위치는 똑같고, 개별 자음이나 모음의 발음이 달라질 뿐입니다.

반면 삼국지 인물의 이름 두세 글자를 상고음으로 발음하는 데는 시가 지니는 라임이나 행 구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가장 유동적인 3번 층위, 즉 한자 하나하나에 부여된 소릿값뿐이고, 그것마저 한글로 옮겨 적은 대로 읽게 됩니다. 그러니 이것을 “당시 실제 발음”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주석 및 원문

  1. Handel, Z. (2015). Old Chinese phonology. In W. S-Y. Wang & C. Sun (Eds.), The Oxford handbook of Chinese linguistics (pp. 68–79). Oxford University Press. ↩

  2. Schuessler, A. (2009). Minimal Old Chinese and Later Han Chinese: A companion to Grammata Serica Recensa (ABC Chinese Dictionary Series). University of Hawai‘i 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