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손권과 동남아시아, 해상 실크로드

손권과 동남아시아, 해상 실크로드

로마 상인과 불교 승려를 만난 손권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잘 알려져 있듯이 손권의 오나라는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와 함께 《삼국지》의 한 주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나라의 대외관계도 위나라와 촉나라 두 나라 위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나라의 강력한 수군도 아무래도 적벽대전처럼 중국 대륙 내에서 활약한 사례 위주로 상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세계는 삼국지 게임 맵보다 더 넓습니다. 오나라는 바다와 접하고 있고, 오나라의 지배 영역에 속했던 교주는 현재의 베트남 북부 하노이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나라의 이웃을 꼽는다면 중국의 위나라와 촉나라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로 분류되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바다로 나가는 오나라

손권은 221년 위나라 황제 조비에 의해 오왕으로 책봉되었고, 이듬해 222년 독자적인 연호로 황무 원년을 칭했습니다. 황무 5년(226), 교주에서 수십 년 동안 교지군을 다스려 왔던 태수 사섭이 죽었습니다. 광주 자사 여대는 사섭의 아들 사휘를 비롯한 사씨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교주를 장악했습니다. 《삼국지》에 따르면, 교주 자사가 된 여대는 부하들을 남쪽 여러 나라로 보내 오나라를 영업했다고 합니다.

여대는 교주를 평정한 뒤 다시 구진군을 쳐서 베거나 사로잡은 것이 만 명 단위였다. 또 종사를 보내 남쪽으로 나라의 교화를 선전하자, 변경 바깥의 부남, 임읍, 당명의 여러 왕들이 각기 사신을 보내고 공물을 바쳤다. 손권은 여대의 공을 가상히 여겨 진남장군으로 승진시켰다.1

《삼국지》 오지15 〈여대전

부남은 인도차이나 반도 남부, 현재의 캄보디아와 베트남 남부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고, 임읍(Champa)은 현재의 베트남 중부 해안에 위치했던 나라입니다. 당명은 현재의 라오스에 위치했던 나라로 추정됩니다.

이 외교 활동은 남북조시대 남조의 역사서 《양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나라 손권 때, 선화종사 주응중랑 강태를 파견하였다. 그들이 거쳐가거나 전해들은 곳이 모두 백수십 나라로, 기록으로 남겼다.2

《양서》 〈제이전: 해남제국

《수서》 〈경적지〉 등을 참고하면 주응은 《부남이물지》, 강태는 《오시외국전》과 《부남전》을 지었다고 합니다. 강태의 《부남전》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대진, 즉 로마로 가는 항로까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강태가 《부남전》에서 이르기를: 가나조주에서 서남쪽으로 대만에 들어가 칠팔백 리쯤 가면 지호리라는 큰 강의 하구에 이른다.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가면 대진에 이른다.3

《수경주》 권1

홍콩의 학자 라오쭝이는 지호리 강을 갠지스 강으로 추정했습니다. 반면 한국의 학자 정수일은 《실크로드 사전》에서 가나조주를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Bandar Hism Ghorah로, 지호리 강을 티그리스 강으로 추정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오나라 사람들이 로마까지 가는 항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항해에 대한 관심은 손권의 시대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오나라에서는 전선교위라는 관직을 두어 건안군에서 선박을 만들고 관리하게 했습니다. 《민중연혁표》라는 책에 따르면 전선교위를 신설한 것은 오나라 영안 연간의 일이라고 합니다. ‘영안’은 손권의 아들 손휴가 사용했던 연호입니다. 《민중연혁표》가 현대에 가까운 청나라 시기의 저작이기는 하지만, 손휴가 전선교위를 설치했다는 설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습니다. 《삼국지》에서 손권의 손자 손호가 황제로 재위하던 시절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들을 건안군으로 보내 배를 만드는 노역에 종사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送建安作船]. 이렇게 오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해상 교류와 항해를 중시했습니다.

🧳 오나라에 들어온 외국인들

손권은 해외에 오나라를 영업하는 데도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오나라에 새로운 문물을 들여오는 해외 인사들에게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손권이 만난 외국인들은 주로 교지, 즉 오늘날의 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오나라의 수도로 들어왔습니다.

🤝 로마 상인 진론을 만난 손권

《양서》에 따르면 오나라 황무 5년(226)에 오왕 손권은 대진, 즉 로마에서 온 상인 진론을 만났습니다.

손권 황무 5년, 대진의 장사꾼으로 자를 진론이라고 하는 사람이 교지에 왔다. 교지 태수 오막은 진론을 보내 손권을 만나게 했다. 손권이 그 나라의 풍토와 민요와 습속을 묻자 진론은 모두 사실대로 대답했다. 마침 제갈각이 단양을 토벌하고 의 키 작은 사람들을 잡아오자 진론이 그들을 보고 말했다.
“대진에서는 이런 사람을 보기 드뭅니다.”
손권은 남녀 열 명씩을 주고 회계 사람 유함을 보내 진론을 전송하게 했다. 유함이 도중에 죽자 진론은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갔다.4

《양서》 〈제이전: 해남제국

🪷 불교 승려 강승회를 만난 손권

중국 후한시대에서 남북조시대까지 활동한 불교 승려들의 전기를 모아 놓은 《고승전》에도 손권이 등장합니다.

손권이 처음 만난 불교인은 중앙아시아 월지국 출신의 지겸입니다. 지겸은 박식하고 여러 언어에 능통했는데, 한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헌제 시기 전란을 피해 오나라로 갔습니다. 손권은 지겸의 재주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만나본 뒤 태자를 가르치게 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정식 승려는 중앙아시아 강거국의 후예 강승회입니다. 강승회는 천축에서 살다가 상인인 아버지를 따라 교지로 왔고, 부모를 잃은 뒤 승려가 되었습니다. 오나라 적오 10년(247) 불교를 전하기 위해 수도 건업에 온 강승회는 용모와 복색이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의 의심을 사서 손권에게 불려갔습니다. 손권이 강승회에게 불교의 영험함에 관해 묻자 강승회는 석가여래가 남긴 사리의 신령함을 선전했고, 손권은 사리를 얻을 수 있다면 탑을 세워 주겠지만 사리를 얻지 못하면 법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강승회와 제자들이 21일 동안 절박하게 기도한 끝에 사리가 나타났으며, 손권이 사리를 구리쟁반에 쏟자 쟁반이 부서졌습니다. 손권이 놀라자 강승회는 사리는 불꽃으로도 태울 수 없고 금강저로도 부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손권이 힘센 사람을 시켜 쇠망치로 사리를 내려치게 했더니, 모루와 망치만 움푹 파이고 사리는 손상을 입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손권은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강동 최초의 불교 사원이라는 의미로 건초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고승전》에 기록된 기적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나, 지겸과 강승회는 오나라에서 활동하며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불교 전파에 기여했습니다.


참고문헌

  • 석혜고 저, 변귀남 역. (2026). 《원서발췌 고승전》. 지식을만드는지식.
  • 정수일 편. (2013). 《실크로드 사전》. 창비.

주석

  1. 岱旣定交州,復進討九真,斬獲以萬數。又遣從事南宣國化,曁徼外扶南、林邑、堂明諸王,各遣使奉貢。權嘉其功,進拜鎮南將軍。 

  2. 吳孫權時,遣宣化從事朱應、中郎康泰。其所經及傳聞,則有百數十國,因立記。 

  3. 康泰扶南傳曰:從迦那調洲西南入大灣,可七八百里,乃到枝扈黎大江口。度江逕西行,極大秦也。 

  4. 孫權黄武五年,有大秦賈人字秦論來到交趾,交趾太守吳邈遣送詣權。權問方土謡俗,論具以事對。時諸葛恪討丹陽,獲黝、歙短人,論見之曰:“大秦希見此人。”權以男女各十人,差吏會稽劉咸送論。咸於道物故,論乃徑還本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