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어린 조간은 과연 맏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나?

아옹(阿翁)의 해석 문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 조간(5세): 아옹(阿翁)!
😭 조비(34세): 나는 네 형밖에 안 된단다…

《삼국지》 위지20 〈조왕간전〉 주석에 인용된 《위략》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조간은 조조가 예순 살이 넘어서 슬하에 둔 아들입니다. 조조는 죽으면서 큰아들 조비에게 어린 조간을 잘 돌보아 주라고 유언을 남겼고, 조간은 나이 많은 형 조비를 아옹(阿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옹”은 한국어 삼국지 팬덤에서 대체로 ‘할아버지’로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현대한국어의 경우 (이제는 조금 낡은 용법이 되기는 했지만) 남성 노인을 ‘아무개 옹’이라고 칭하는 예가 많습니다. 그러니 대략 옹(翁) → 노년 남자 → ‘할아버지’ → 조부 순서로 연상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게다가 《세설신어》에서 어린 손자가 아버지 앞에서 할아버지를 “아옹”이라고 부르는 용례까지 있으므로, 조간은 30대였던 큰형 조비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해석하는 것은 완벽해 보입니다.

정말로 이렇다면 아(雅)는 대체 왜 이 포스트를 쓰고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옹”을 다르게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새삼스럽지만 한국어에서 ‘할아버지’의 쓰임을 다시 짚어 봅시다. 이 단어는 일차적으로 조부, 즉 어머니의 아버지나 아버지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친족호칭어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혈연 관계가 없는 노년 남성을 부르는 데도 쓰입니다. 이 2차적 용법에서 현대한국어 ‘할아버지’는 고대한어 옹(翁)과 의미를 공유합니다. 아(雅)가 주장하려는 바는, ‘할아버지’의 1차적 용법은 옹(翁)에 완벽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옹(翁)이 친족호칭어로 쓰인다면 ‘할아버지’보다 다른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봅니다.

‘할아버지’가 아니라면 친족호칭어로서 옹(翁)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아버지입니다. 옹(翁)이 부친을 가리키는 의미로 쓰이는 예는 많습니다. 특히 유명한 사례로는, 《사기》 〈항우본기〉에서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잡아 놓고 삶아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유방이 “내 애비가 곧 니 애비 ㅇㅇ” 하고 응수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애비’의 원문이 바로 옹(翁)입니다. 또 《한서》 〈김일제전〉에서 김일제의 어린 아들은 무제에게 “아빠가 화났어요.”라고 일러바치는데, 여기서도 옹(翁)이 쓰였습니다.

게다가 옹(翁)은 어머니를 가리키는 모(母)와 짝을 이룹니다. 《삼국지》의 경우 오지19 〈제갈각전〉에 인용된 《강표전》에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손권: 이 새는 뭐지?
제갈각: ‘백두옹’입니다.
장소: 제갈각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백두옹’이라는 새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갈각에게 ‘백두모’도 잡아오게 하십시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던 장소는 제갈각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 백두옹(白頭翁)이라는 말을 지어냈다고 생각했고, ‘백두옹’이라는 새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짝을 이루는 ‘백두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 것입니다. 여기에서 옹(翁)의 상대로 모(母)가 쓰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한 쌍을 이루기에 어색하므로, 옹(翁)을 아버지로 보고 ‘아버지와 어머니’로 해석하든지 모(母)를 할머니로 해석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해석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후한–위진남북조시대 사이의 다른 책에도 옹(翁)이 모(母)와 대등한 한 쌍을 이루는 사례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풍속통의 일문》의 《태평어람》 버전에는 부부가 다투다가 아내가 “네가 우리 옹(翁)을 때린다면 나는 너희 모(母)를 쳐 주마!”[揣我翁者搏若母矣]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손자산경》에서는 수탉을 계옹(雞翁), 암탉을 계모(雞母)로 표현했습니다. 이렇게 사람과 짐승을 가리지 않고 옹(翁)은 모(母)와 나란히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세설신어》에서 할아버지를 “아옹”이라고 부른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옹(翁)의 2차적 용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한시대 말의 학자 양웅이 쓴 《방언》에서는 나이든 사람을 존중할 때 공(公)과 옹(翁)을 모두 쓴다고 서술했습니다. 그러므로 할아버지를 높일 때 옹(翁)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친족을 “어르신” 비슷한 말로 부르는 것이 현대한국어 사용자로서 어색할 수 있겠지만, 고대한어어의 경우 친족호칭어가 제한적으로 사용되었고 친족을 부를 때 일반적인 호칭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부모를 대인(大人)이라고 부르는 사례가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에 걸쳐 꾸준히 나타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옹(翁)과 ‘할아버지’의 차이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고대한어 옹(翁)-모(母)

  1. 일차적 용법: 부친-모친 (친족호칭어)
  2. 이차적 용법: 나이든 남자-여자

현대한국어 할아버지-할머니

  1. 일차적 용법: 조부-조모 (친족호칭어)
  2. 이차적 용법: 나이든 남자-여자

조간이 조비를 부를 때 “아옹”이라고 한 것을 이차적 용법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문맥상 옹(翁)은 ‘아버지’이고 여기에 아(阿)가 붙었으니까 ‘아빠’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간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형인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안쓰러워서 울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