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장군 손권을 황제로 칭한 신하들
중국의 삼국시대(220–280)를 다룬 역사책 《삼국지》는 위지, 촉지, 오지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각국의 군주가 황제로 즉위한 것도 위(220), 촉한(221), 오(222)의 순서입니다. 이렇게 오나라의 손권은 세 나라 중 가장 늦게 황제를 자칭했습니다. 하지만 각 세력 내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손권은 유비는 물론이고 조조·조비 부자보다도 더 이른 시기에 부하 장수들에게 황제로 대접받았습니다.
아가 일찍이 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삼국지》에서 일부 오나라 장수들은 손권을 ‘국가’, ‘지존’, ‘주상’ 등으로 칭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와 관련된 정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손권에게 이런 호칭을 가장 먼저 쓴 인물이 누구인지를 찾고자 합니다.
오지9 〈노숙전〉 주석에 인용된 《오서》에서 손권의 사자 노숙은 형주의 영유권을 놓고 관우와 회담하던 중 이렇게 말합니다.
주상께서는 예주가 몸둘 데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主上矜愍豫州之身無有處所]
여기서 ‘예주’는 예주목이었던 유비를 가리킵니다. 문제는 ‘주상’이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호칭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노숙은 당시에 토로장군 겸 회계태수였던 손권을, 그것도 적진에 혼자 들어간 몸으로 ‘주상’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이 대담함은 관우를 압도할 정도였습니다.
혹시라도, 배송지가 주석에 인용한 《오서》에서 사후적으로 손권측에 유리하게 윤색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송지의 주석을 제외하더라도 진수의 《삼국지》 본문 곳곳에서 여러 장수들이 손권을 ‘국가’나 ‘지존’이라고 칭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지존’ 역시 황제 전용 호칭으로, 황제가 아닌 인물에게 쓴 사례는 《삼국지》를 통틀어서 오직 손권의 세력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가령 형주목 유표는 자신의 세력권 내에서 황제만 지낼 수 있는 교 제사를 거행할 만큼 참월했음에도 ‘국가’나 ‘지존’이라고 불리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한 원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국지·오지》 본문에서 손권을 ‘지존’이나 ‘국가’로 칭한 이들은 주로 주유, 노숙, 여몽, 육손으로 이어지는 ‘대도독’들이었습니다. 특히 주유는 손씨가 유씨를 대신하리라고 믿고 손책과 뜻을 함께했고, 노숙은 손권을 처음 만난 날에 황제를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건안13년(208) 11월 적벽대전 승전을 기점으로 손권을 ‘지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노숙(건안13년): 원컨대 지존께서는 위엄과 덕망을 사해에 더하시고… [願至尊威德加乎四海]
주유(건안15년): 원컨대 지존께서는 미래의 일을 먼저 염려하시고… [願至尊先慮未然]
《삼국지》 오지9 〈노숙전〉 본문
그런데 이들이 최초는 아닙니다. 적벽대전 이전에 이미 손권을 ‘지존’과 ‘국가’로 칭한 인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인물의 정체는 바로 감녕입니다. 오지10 〈감녕전〉을 보면 감녕은 손권에게 황조를 공격하러 몸소 출정할 것을 진언합니다.
지존께서 지금 가시면 반드시 그를 격파하실 수 있습니다. [至尊今往,其破可必。]
그 자리에 있던 장소가 이 작전에 반대하자 감녕은 장소까지도 비판합니다.
국가께서 소하의 임무를 군께 맡기셨는데… [國家以蕭何之任付君]
감녕은 손권을 ‘지존’으로 호칭하고 ‘국가’로 지칭하며 장소를 소하에 빗댐으로써 손권을 한나라 고제 유방에 빗대는 3단콤보를 달성했습니다. 손권이 황조의 목을 벤 것이 건안13년 초였으니 이 대화는 그 이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감녕은 손권에게 귀순한 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은 때에 과감한 발언으로 손권의 세력 전체에 충격을 준 것입니다.
이런 일화를 통해 손권 휘하의 장수들이 손권을 어떻게 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 손권이 위나라 황제 조비에게 일시적으로 몸을 숙이고 작위를 받을 때 부하들이 분통을 터뜨린 것도 당연합니다. 손권이 공식적으로는 삼국에서 가장 늦게 칭제했지만, 실질적으로는 14년 전에 이미 가장 먼저 황제의 꿈을 구체화해 놓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