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와 《삼국연의》의 은애(恩愛)
진수, 나관중, 모종강의 관점 차이
이 글에서는 역사책 《삼국지》와 소설책 《삼국연의》에서 은애라는 말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은애하다”는 현대한국어 “동양풍” 로맨스에서 “사랑하다”를 대신하여 자주 쓰이는 단어입니다. 《춘향전》의 주인공들이 서로를 은애했다는 표현은 보지 못했으니, 아마도 한국 문학 전통보다는 현대중국어 恩愛(ēn’ài)에서 온 것 같습니다.
현대중국어 사전의 은애
중국어에서 恩愛는 어떤 의미일까요? 가장 권위있는 사전으로 중화민국 교육부에서 편찬한 《중편국어사전수정본》에서 이 단어를 어떻게 풀이했는지 살펴봅시다.
쌍방이 진실하게 서로 사랑하는 것. 부부 사이의 사랑을 가리킬 때가 많다.1
부부 사이의 사랑을 가리킬 때가 많다고 합니다. 좀 더 실용적인 자료로 위키사전 중국어판도 확인해 봅시다.
- (고어) 인애
- 반려 사이의 진실한 사랑2
여기서는 옛날의 뜻과 지금의 뜻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은애가 반려 사이의 사랑만을 가리키게 된 것은 현대의 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삼국지》의 은애
즉, 옛날의 은애는 오히려 연인들의 로맨틱한 애정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3세기의 역사책 《삼국지》만 해도 ‘恩愛’가 훨씬 다양한 의미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봅시다.
우선, 손권과 주연이 어린 시절 같은 책으로 공부하며 쌓은 우정도 은애라고 표현했습니다.
주연은 일찌기 손권과 같이 글을 배우며 은애를 맺었다.3
《삼국지》 오지11 〈주연전〉
또한, 제갈각은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도 은애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머니가 딸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은애가 지극합니다. 어머니가 딸의 귀를 뚫고 구슬을 달아 주는데 어짊에 무슨 손상이 있겠습니까?4
《삼국지》 오지19 〈제갈각전〉 주석 《제갈각별전》
이뿐만 아니라 황제가 신하를 존중하는 것도 은애라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이는 선제께서 존중하신 대신이니, 은애가 지극히 깊고 두터운 것입니다.5
《삼국지》 위지9 〈조상전〉 주석 《위서》
이렇게 《삼국지》에서 은애는 가족, 친구, 군신 등 여러 인간관계에서 두루 쓰이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니-딸, 군주-신하와 같이 수직적인 관계도 포함했습니다.
《삼국연의》의 은애
그렇다면 언제부터 은애가 로맨틱한 사랑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게 되었을까요? 뜻밖에도 소설 《삼국연의》의 편집 역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은애의 주인공은 위나라 명제 조예와 황후 모씨입니다. 역사책 《삼국지》의 기록을 먼저 살펴봅시다.
명도모황후는 하내군 사람이다. 황초 연간에 선발되어 동궁에 들어왔다. 이때 평원왕이었던 명제가 가까이 두고 총애하여 수레와 가마를 같이 타고 나들었다. 즉위한 후 귀빈으로 삼았다. 태화 원년에 황후로 옹립했다.6
《삼국지》 위지5 〈후비전·명도모황후〉
3세기 사람 진수는 《삼국지》에서 조예가 모씨를 총애해서 수레와 가마를 같이 탔다고 표현했습니다. 14세기 사람 나관중은 소설 《삼국연의》에서 이 부분을 가져오며 약간 축소했습니다. 수레와 가마 중에서 수레를 생략하고, 귀빈이라는 생소한 후궁 칭호를 삭제했습니다.
황후 모씨는 하내군 사람이다. 앞서 조예가 평원왕이었던 시절 가마를 같이 타고 나들었고, 황제로 즉위한 후에도 총애해서 후비로 삼았다. 태화 원년에 황후로 옹립했다.7
《삼국지통속연의》 〈권지이십일〉
이후 17세기 사람 모종강은 나관중의 소설을 편집하면서 해당 부분을 더욱 간략하게 줄였습니다. 여기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마를 같이 타고 나들었다는 표현을 삭제했다는 것입니다. 도학자 스타일이었던 모종강이 보기에는 예법상 부적절한 묘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조예의 황후 모씨는 하내군 사람이다. 앞서 조예가 평원왕이었을 때부터 서로 가장 은애했다. 황제로 즉위한 후 황후로 옹립했다.8
《사대기서제일종》 〈권오십삼·제일백오회〉
진수의 글과 나관중의 글에서는 조예가 모씨를 총애했는데[寵], 몇백 년 뒤 모종강의 편집을 거치면서 조예와 모 황후는 서로를 은애하게 되었습니다[相恩愛]. 일방적인 총애가 쌍방향의 은애로 바뀐 것입니다. 여기서는 명백히 로맨틱한 애정입니다.
3세기 삼국–서진 사람 진수는 황제 조예가 황후 모씨를 총애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14세기 원–명 사람 나관중은 이 기록을 거의 그대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청나라 사람 모종강에게 있어 이 관계는 은애로 표현 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 진수의 《삼국지》에서 은애는 많은 경우 일방적인 감정이었지만, 모종강의 《사대기서》 시리즈에서는 황후도 황제를 은애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 동아시아의 로맨스 장르에서 은애가 연인 사이의 애정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