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정사(正史), 삼국지, 대정사시대

《수서》 〈경적지〉에서 말하는 ‘정사’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한국어 사용자가 삼국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 보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글자가 있으니 바로 ‘정사’입니다. 삼국지 팬덤 용어로 정사란 대체로 서진 사람 진수가 지은 역사책 《삼국지》를 가리키는데, ‘정사 삼국지’보다 그냥 ‘정사’가 더 활발히 쓰이고 있으니 마치 진수가 《정사》라는 책을 쓴 듯합니다.

삼국지 팬덤에서 정사는 ‘정사 삼국지’의 단순한 줄임말이 아니라 상당한 가치판단을 담고 있는 표현입니다. 특히 한자로 ‘바를 ’을 써서인지 ‘올바른 역사’ 비슷한 의미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연의(소설책 《삼국지통속연의》)와 대비되는,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진실’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라”에 불과한 연의를 버리고 억지로라도 정사를 읽어야 한다는 인식도 퍼져 있습니다. 😭

심지어 연의를 비롯한 소설이 “왜곡”과 “선동”이라고 믿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

왠지 모르게 (특히 역사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경우) 자기가 소설을 안 읽는다는 (그래서 선동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이들이 있는데요, 참고로 소설을 읽는 사람이야말로 비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추론에 더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2021년에 발표된 바 있습니다.

아무튼 정사는 정말로 ‘올바른 역사’일까요? ‘정사’의 올바른 역사는 대체 무엇일까요?

정사라는 용어는 수나라의 도서 목록을 담은 《수서》 〈경적지〉에서 비롯했습니다. 라는 대분류 아래에 정사, 고사, 잡사, 패사 등의 소분류를 둔 것입니다.

《수서》 〈경적지〉에서 소개하는 정사의 유래를 살펴보면 진수의 《삼국지》가 나옵니다. 《삼국지》는 황제의 〈〉와 신하의 〈〉으로 이루어진 기전체 역사서였습니다.

진나라 때 파서 사람 진수가 세 나라의 사적을 편집했다. 황제만 로 만들고, 위나라 공신들과 · 군주는 모두 으로 만들었다. 나라마다 인물을 유형별로 모아서 제목을 《삼국지》라고 지었다.
[晉時,巴西陳壽刪集三國之事,唯魏帝為紀,其功臣及吳、蜀之主,並皆為傳,仍各依其國,部類相從,謂之三國志。]

진수가 죽은 뒤 양주 대중정 범영이 그의 작업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황제는 하남윤과 낙양령에게 조서를 내려 진수의 집에 가서 《삼국지》를 필사해 오게 했다.
[壽卒後,梁州大中正范穎表奏其事,帝詔河南尹、洛陽令,就壽家寫之。]

황제의 명령으로 진수의 《삼국지》가 빛을 보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정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세간의 저술은 모두 반마—반고의 《한서》와 사마천의 《사기》—를 본받으며 정사라고 했고 글을 짓는 자가 아주 많았다. 왕조 하나의 역사가 수십 가지 버전으로 나올 정도였다.
[自是世有著述,皆擬班、馬,以為正史 ,作者尤廣。一代之史,至數十家。]

그야말로 ‘대정사시대’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위의 인용문을 다시 읽어 보면, 정사의 요건은 바로 《한서》와 《사기》를 본받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수가 《삼국지》를 기전체로 쓴 것도 《한서》와 《사기》를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수서》 〈경적지〉에서는 《사기》와 《한서》를 본받은 기전체 역사서를 정사, 《춘추》를 본받은 편년체 역사서를 고사로 분류했고, 정사와 고사의 우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진수의 《삼국지》가 ‘올바른 역사’로서 우월한 지위를 독점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진수는 《삼국지》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에게 “야, 너두 정사 쓸 수 있어.” 하는 깨달음을 주었으며, 남북조시대에 기전체 저술 붐을 일으킨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후한서》도 이 유행에 편승해서 여러 종 나왔고, 그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남조 송나라 사람 범엽의 책입니다. 범엽의 《후한서》는 심지어 후한시대 정부에서 직접 편찬한 역사책인 《동관한기》를 제치고 《사기》 및 《한서》와 나란히 ‘3’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권위를 얻었습니다.

정사의 범위는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고, 《삼국지》와 《후한서》 이후의 시대를 기록한 《진서》부터는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이전 왕조의 역사책을 편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사의 출발점에 있어서는,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역사책 《사기》와 당시의 유일한 기전체 단대사였던 《한서》의 독보적인 위치에 압도되지 않고 이들의 체계를 새로운 세 나라의 역사 서술에 적용한 일개인 진수의 《삼국지》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역사책으로서 《삼국지》가 《사기》와 《한서》만한 대작에는 못 미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국지》의 완성은 당시 사람들에게 기전체가 먼 옛날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서술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위진남북조시대의 개인들이 너도나도 기전체 역사서를 써 보며 축적된 ‘사찬사서’의 경험이 충분히 쌓여서 이후 당나라 때부터 국가에서 편찬하게 되는 ‘관찬사서’의 토양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