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의 삼공
A: 요堯는 순舜을, 탕湯은 이윤伊尹을, 주周 성왕成王은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을 삼공三公으로 삼았습니다.
B: 그런데 삼공은 뭐죠?
삼공三公이란 천자天子의 신하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킵니다. 마치 세 개의 직책이 먼저 있었고 그 직책을 통틀어 부르는 말로 ‘삼공’이 생겼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실제는 그 반대였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 가능한 기록으로는 전국 시대 이전에 삼공의 구성요소를 언급한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서한 때 정립된 책에 와서야 삼공이 어떤 관직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습니다.
- 《예기》 〈왕제〉에 따르면 천자는 3공, 9경, 27대부, 81원사를 둔다고 합니다.
- 《예기》 〈문왕세자〉에서는 4보와 3공을 설치하되 반드시 정원을 채울 필요는 없고 적임자가 있을 경우에만 임명한다고 합니다.
- 《대대예기》 〈보부〉에서는 태자의 스승인 보保, 부傅, 사師가 3공의 직책이라고 합니다.
- 《한시외전》 〈제8〉에서는 하늘을 주관하는 사마司馬, 땅을 주관하는 사공司空, 사람을 주관하는 사도司徒가 3공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서한의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삼공의 내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모양입니다. 3공-9경-27대부-81원사 체계를 보면 실제로 세 관직이 정해져 있었다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3의 제곱수가 쓰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서한 사람들은 진지했고 어떻게든 3이라는 명칭에 맞는 세 개를 채워 넣고자 했습니다.
서한의 삼공이라고 하면 대개 백관을 통솔하는 승상, 군무를 총괄하는 대사마, 감찰을 주관하는 어사대부 세 관직을 꼽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사기》와 《한서》에서 검색해 보면 서한 초 고제·여후·문제 시기에는 삼공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문제 다음에 황제가 된 경제 때부터 어사대부를 삼공으로 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이후 무제는 대사마 관직을 신설하고 위청과 곽거병을 임명했지만 이들을 삼공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무제의 증손자인 선제 때가 되어서야 대사마를 삼공으로 명시하며, 황제의 조서에서 삼공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서한 말까지도 삼공은 여전히 편의상의 명칭으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선제 이후로 주周의 제도를 부활해야 한다는 복고 바람이 불면서 삼공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는데, 이때 하무라는 인물은 승상이 삼공의 일을 혼자 다 맡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삼공이 대등한 세 명의 관계로 정립된 것은 성제 때입니다. 장군의 칭호에 덧붙이던 대사마大司馬를 독립적인 관직으로 만들고, 승상을 대사도大司徒로 개칭하고, 승상보다 아래에 있었던 어사대부를 대사공大司空으로 높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서한에서 어떤 사람들이 삼공이 되었는지를 알아봅시다. 서한 초에는 초·한 전쟁이나 오·초 7국의 난에서 군공을 세워 열후 작위를 받은 사람 중에서 승상을 뽑았습니다. 이 규칙이 깨진 것은 무제 때로, 아무 작위도 없던 공손홍을 승상에 임명한 파격적인 인사 이래로 일단 승상으로 임명한 후에 열후로 봉하는 패턴이 생겼습니다. 이로부터 서한 말에 이르기까지 날품팔이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번 광형, 계모가 신발 장수가 되어 학비를 댄 적방진 등 가난한 유생이나, 어렸을 때부터 관청의 심부름꾼으로 일한 설선과 주박 등 하급 관리 출신이 자수성가해서 어사대부→승상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후한 말 원소의 가문이 “사세삼공”으로 유명했지만, 서한에서는 이런 일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2대가 삼공이 되는 경우만 해도 승상 위현·위현성 부자, 어사대부 두주·두연년 부자뿐으로 극히 예외적이었습니다. 대사마는 주로 외척이 임명되었으므로 한 가문에서 여러 명이 나오는 일도 있었지만, 이것도 대를 잇는다는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황제가 바뀌면 외척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삼공의 업무는 많았지만, 서한 사람들은 서한 사람들답게 오컬트의 기능을 특히 중시했습니다. 선제 때의 승상 병길은 삼공이 자질구레한 일에 관여할 것이 아니라 음양을 조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으며, 같은 시기의 어사대부 소망지는 삼공이 적임자가 아니면 해·달·별 삼광三光이 빛을 잃는다고 말했습니다. 애제가 죽은 후에 대사마 동현을 면직시키는 책서도 “최근 들어 음양이 조화롭지 못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동현은 애제의 애인으로서 대사마가 되었지만 일단 삼공이 된 이상 음양의 조화에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외에 《한구의》 등 “한관6종”에서 삼공을 임명하는 예식 등을 찾을 수 있지만 문장이 어려워서 일일이 번역하지는 못했습니다. 아雅가 예전에 썼던 다른 블로그 포스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