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한대의 오(吳) 지역에 관하여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한대의 오는 《사기》 〈화식열전〉과 《한서》 〈지리지〉에서 손꼽는 장강 동쪽의 대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춘추 시대에는 오왕 합려, 전국 시대에는 초나라의 춘신군 황헐, 서한 때는 오왕 유비劉濞가 작정하고 전국에서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세력을 키웠던 것입니다. 바다에서는 소금이 나고, 장산에서는 구리가 나며, 세 강과 다섯 호수에서 풍부한 산물이 나오는 부유한 지역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중앙 정부에서는 이렇게 지역의 지배자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유방이 항우를 무찌른 뒤 회남왕이 된 영포—경형을 받아서 생긴 별명으로는 ‘경포’—가 반란을 일으킨 이후로는 더했습니다. 황제 유방은 영포의 반란을 토벌한 뒤에도 근심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오 지역 사람들이 경박하고 사납다고 여긴 유방은 지역 세력을 누르기 위해 강력한 왕을 세울 필요를 느꼈지만, 자기의 친아들은 다들 아직 어렸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시점에서 장성한 조카인 유비를 오왕으로 선택했습니다. 《사기》에서는 유방이 유비를 오왕으로 임명한 뒤에 유비의 얼굴에 모반의 상이 있다고 후회했다는 일화를 남기고 있습니다.

오·초 7국의 난

오왕이 된 유비는 구리 광산에서 찍어낸 돈으로 국고를 충당하여 세금을 면제하고, 다른 제후국이나 군에서 도망쳐 오는 망명객—주로 협객—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렇게 유비가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세력을 키우는 동안, 중원에서는 고제 유방이 죽고 여후의 통치가 지나간 뒤 유방의 서자인 유항이 황제로 옹립되었습니다. 이 문제 시기에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국의 왕태자(서한에서는 제후왕의 후계자도 태자太子라고 칭했습니다)가 수도 장안에 입조해서 황태자와 보드게임을 하다가 싸움이 붙어 황태자에게 맞아 죽은 것입니다. 이 일로 오왕 유비는 한나라 황실에 원한을 품게 됩니다.

이 황태자가 훗날의 경제가 되고, 경제는 황제로 즉위한 뒤 태자 시절부터 신임하던 조조鼂錯(晁錯)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후왕의 세력을 줄이기 위해 제후왕국의 영토를 깎기 시작합니다. 이때 제후왕들은 경제의 친동생 양왕을 제외하고는 이미 황실과 촌수가 멀어진 상태였으며, 영토를 삭감하는 정책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유비는 이런 제후왕들을 설득하여 간신 조조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중앙 정부에 대항하여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오·초 7국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자세한 전황을 생략하자면 이 반란은 대장군 주아부와 양왕의 활약으로 진압되었고, 이를 계기로 서한에서는 제후국의 세력이 더욱 위축되고 중앙 정부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낙후와 폄하

그러나 오 지역의 경우 제후왕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배권을 행사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기》 〈화식열전〉에 따르면 오 지역은 자원이 풍부했지만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하지는 않았고, 오는 장강 동쪽에서 가장 큰 도시였지만 중원에 비하면 인구 밀도가 낮았습니다. 이명화의 《중국 고대 오국사 연구》에서는 경제 이후 무제 연간에 오 지역의 경제가 급격하게 낙후되었다고 추측합니다. 서한 시대의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높아서 중국 동부의 해면이 지금보다 2m 정도 정도 높아서 치수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하필이면, 혹은 중앙 정부의 의도에 따라, 오·초 7국의 난 이후로 임명된 오 지역의 제후왕들은 대부분 문제가 많았습니다. 2대 강도왕 유건은 후궁을 잔인하게 학대하고 고문한 폭군이었고, 초대 광릉왕 유서는 성품이 난폭한데다 무당에게 빠져 황제를 저주한 죄로 자살했습니다.

오·초 7국의 난 이후로 《사기》와 《한서》에서 오 지역 출신으로 한대에 이름을 떨친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회계會稽 지역에서 몇 사람이 나오지만, 한 명을 제외하면 거의 부정적으로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주매신과 정붕입니다. 주매신은 무제 때 어사대부 장탕을 모함해서 죽였고, 정붕은 원제 때 황제의 스승 소망지를 모함해서 죽였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간신배들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서술하는 《사기》와 《한서》의 저자들의 태도를 조금 더 살펴봅시다. 사마천은 주매신에 관해 서술할 때, 반고는 정붕에 관해 서술할 때 이들이 초나라 남자[楚士]로서 원한을 품었다고 명시했습니다. (오나라가 아닌 초나라인 이유는 오·월 지역이 전국 시대에 초나라에 점령당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악당에게는 붙지 않은 지역 차별 발언입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오 지역은 춘추·전국 시대부터 자원이 풍부했고, 강력한 지도자가 있을 때는 중원을 위협할 만한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중원에서는 오·초 7국의 난을 겪으면서 이 위협을 해소했으나, 이후 오 지역을 잘 통치하기보다는 방치했습니다. 오 지역에 대한 중원의 차별과 편견은 《한서》의 저자 반고가 활동하던 후한 초까지도 남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