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 (보충 1)
3년 뒤의 보론
3년 전에 〈한대 여성의 이름과 자〉라는 포스트에서 밝혔듯이, 한나라에서는 자(字)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지배계급 여성들만 자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관비의 딸과 같이 낮은 신분의 여성들도 《한서》에 기재된 대화에서 자로 불리는 사례가 여러 건 있습니다.
이전까지 자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던 것이 여성이 역사 속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현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최근 한나라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특히 여성 창작자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를 만들 때 성명과 함께 자를 만들어 넣는 것도, (일단 이름과 별개로 자라는 고유명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타쿠의 취향을 자극하고 캐릭터 사이의 관계성을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여성이 남성과 대등하고 주체적인 존재이기를 희망하고 강조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2020년대 초에 한국어로 쓰인 고대 중국 배경의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의 자는 여성의 임파워링(empowering)과 완전히 떼어 놓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의 중국에서 여성이 자로 기억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의 중국은 일반적으로 한(漢)이라는 하나의 왕조로 묶이지만, 전한(기원전 202–기원후 8)의 역사를 다루는 《한서》와 후한(기원후 25–220)의 역사를 다루는 《후한서》에서 여성 인물을 가리키는 방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한서》에서는 여성 인물에 관해 서술할 때 주로 이름을 사용한 반면, 《후한서》 〈열녀전〉에서 여성 인물을 소개할 때 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한 시기보다 후한 시기에 여성을 더 존중했기 때문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기》 〈곡례 상〉의 규범에 따르면 남자는 20세에 관을 쓸 때, 여자는 혼인이 정해지고 비녀를 꽂을 때 자를 받는다고 합니다. 남아가 더 어렸을 때 자를 받은 일화가 적지 않으므로 실제로 이 규범이 아주 엄격하게 작동한 것 같지는 않으나, 유학을 배운 남성 지식인이 역사책을 쓰면서 인물의 칭호를 선택할 때는 이런 경서의 규범을 의식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여성이 자로 남았다는 것은 오히려 원래의 이름을 잃고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겨졌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자에 이런 역사가 있으므로 오늘날 쓰면 안 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자에 대한 현대인의 감각만 가지고서는 후한 시대에 존재했던 차별을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옛날이야기를 즐기면서 동시에 당시에 실제로 살았던 여성들을 존중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