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흰색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흰색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어렸을 때 학교에서 배우기로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희다’, ‘하얗다’, ‘허옇다’, ‘하야스름하다’, ‘희끄무레하다‘ 등 하나의 색깔을 가리키는 색채어 형용사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용사를 다른 언어로 옮길 수 없다는 번역의 한계 때문에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이 세계에 알려지지 못한다는 한탄도 종종 들었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적어도 20세기에는 이랬습니다.

하지만 한국어에 한국어만의 특징이 있는 것처럼 모든 언어는 각기 고유한 특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색깔을 표현하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가령 고대중국어를 사용한 한나라 사람들은 흰색을 현대한국어와 다른 방식으로 풍부하게 표현했습니다. 이 사실은 후한 말에 나온 《설문해자》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문해자》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한자를 부수로 묶어서 뜻을 풀이한 자전입니다. 그중에서 권8 〈백(白)부〉에 수록된 한자의 목록을 통해 한나라 사람들이 흰색을 표현하는 말이 대상에 따라 다르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한나라 사람들은 흰색을 어떻게 정의했을까요?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희다’를 “눈과 우유의 빛깔”로 정의합니다.) 《설문해자》에서는 白(백)을 “서방색”(西方色)으로 풀이했습니다. 이것은 오색(다섯 색깔)과 오방(다섯 방향)을 대응시킨 것입니다. 한나라 유교맨들이 오행(五行)을 중시했다는 것이 여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일단 흰색을 정의한 다음에는 白이라는 부수를 가지는 한자를 나열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 皎(교): 달의 흰빛.
    • 《시경》 〈진풍·월출〉에서 달빛을 묘사하는 데 쓰였습니다.
  • 皢(효): 해의 흰빛.
    • 白 대신 日을 쓰는 曉(새벽 효)와 통하는 글자입니다.
  • 皙(석): 사람 얼굴의 흰빛.
    • 《한서》 〈곽광전〉에서 곽광의 미모를 묘사하는 데 쓰였습니다.
  • 皤(파): 노인의 머리카락의 흰빛.
  • 㿥(학): 새의 흰빛.
  • 皚(애): 서리와 눈의 흰빛.
  • 皅(파): 풀과 꽃의 흰빛.
  • 皦(교): 옥과 돌의 흰빛.

이렇게 대상에 따라 다른 서술어를 쓰는 만큼 섬세한 의미를 부여하기 좋고 현대의 창작물에서도 써먹기 편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중국어 사용자들도 소학교에서 한문의 다양한 색채어를 자랑스럽게 여기게 배웠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