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字 현덕”은 근본있는 표현인가? [🔒 무료 미리보기]
삼국지 이야기를 할 때 “유비 현덕”처럼 성과 이름과 자를 나란히 쓰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이므로 잘못되었다는 말이 꽤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한나라 때 존재하는 포맷이었고, 문어나 공문서에서 많이 쓰이던 표현이었습니다. 아마도 입말에서 쓸 일은 드물었겠지만, 《한서》 〈유림전〉과 《전론》 〈논문〉 등에서 학자나 관료의 명단을 만들 때 “탁군 탁현 유비 현덕”처럼 출신지, 성, 이름, 자를 나란히 쓴 기록이 확실히 존재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유비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처음 소개할 때나 제3자가 유비를 가리킬 때는 “유비 현덕”을 쓰는 것이 가능합니다. 단, 유비를 직접 “유비 현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합니다. 아무튼 이 조합의 기원이 일본어라는 주장은 명백하게 틀린 말입니다.
원래 아雅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까지라서, 현대 중국의 고장극 등에서 사람을 소개하는 자막을 넣을 때 “유비 字 현덕”이라고 쓰는 것이 항상 거슬렸습니다. 문헌 기록을 따져도 “유비 현덕”이면 충분한데 중간에 “字”라는 글자를 굳이 넣은 것이 불필요하고 오히려 어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나라 때 한나라 시절의 비석과 화상석을 집대성한 《석색》이라는 책을 보면서 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후한 시기에 “유비 字 현덕”처럼 성명과 자 사이에 “字”라는 글자를 삽입한 비석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후한 시대 비석은 고관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 많았고, 이 경우 으레 옛 제자와 부하들이 비석 건립에 돈을 보태고 뒷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때 출연자 명단을 작성할 때 “字”를 넣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유비 字 현덕”도 가능한 표현이었어요! 고장극 제작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한 때 “유비 현덕”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비석에서 “字”를 넣지 않고 성명과 자를 바로 이어쓴 것이 여전히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위나라 조비도 《전론》 〈논문〉에서 문인들을 소개할 때 성명과 자를 붙여 썼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 그림에서 첫 번째 비석의 첫 번째 열은 “故(전직) 중부독우(관직명) 도창(지명) 우충(성명) 字 정공(자)”로 성명과 자 사이에 “字”라는 글자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볼 수 있는 두 번째 비석의 경우 첫 번째 열이 “故 하비령(관직명) 동평릉(지명) 왕포(성명) 문박(자)”로 성명과 자가 바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성명과 자를 함께 쓰는 것은 일본어에서 비롯한 오류가 아니고 전한 시대에 이미 존재한 표현이었습니다.
- 후한 때는 “유비 현덕”과 “유비 字 현덕”을 모두 쓸 수 있었습니다.
한편 후한 시대 비석에서 사람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표현도 존재했습니다. 그림과 함께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