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성(姓)과 씨(氏) 구별 [🔒 무료 미리보기]
송나라 때 나온 《통지通志》 〈씨족략氏族略〉에 따르면 상고시대 중국에서는 성姓과 씨氏를 구별했습니다.
삼대(하·상·주) 이전에는 성姓과 씨氏가 분리되어 서로 달랐다. 남자는 씨氏로 칭하고 부인은 성姓으로 칭했다. 씨氏를 통해 귀천을 구별하였다. 귀한 자는 씨氏가 있고 천한 자는 이름만 있었다. … 씨氏가 같고 성姓이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었지만 성姓이 같고 씨가 다르면 혼인을 할 수 없었다. 삼대 이후 성姓과 씨氏가 합쳐져서 같은 것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에서 아雅가 굵게 표시한 내용이 《사기》와 《한서》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같은 성끼리는 결혼을 할 수 없다
성姓은 혈통을 표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춘추 시대 진晉, 조曹, 정鄭 등 주周나라 왕실의 후손인 희姬성 제후들은 서로 동성으로서 같은 종족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진나라 공자 중이重耳가 모함을 받아 망명하여 각지를 떠돌아 다닐 때, 조나라와 정나라의 신하들은 중이가 같은 성의 사람이므로 잘 대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었습니다. (사기 진세가)
따라서 같은 성끼리 결혼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부계 기준의) 근친혼을 막았다는 의미입니다. 이 전통은 질기게 이어져서, 한국에서도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동본 사이의 결혼이 금지되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성과 씨가 구별되던 시절 대부분의 성이 희姬, 강姜, 영嬴, 요姚, 규媯 등 여성[女]을 포함한 글자인 것을 보면—성姓이라는 글자부터 여성[女]을 포함하고 있지요—원래는 모계 혈통을 가리켰다고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내용은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을 보세요. 📖
2. 부인은 성으로 칭한다
부인을 성姓으로 칭하는 것은 《춘추》에 기록된 여러 귀부인들의 칭호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많은 여성이 대체로 두 글자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두 글자라서 마치 성명 같지만 성명이 아닙니다. 두 번째 글자가 성이며, 첫 번째 글자는 출신국, 시호, 자매간 서열, 남편의 씨 등의 호칭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 채희蔡姬: 채蔡나라 종실인 희姬성
- 제강齊姜: 제齊나라 종실인 강姜성
- 목영穆嬴: 시호가 목穆인 영嬴성 (진秦나라 종실)
- 백희伯姬: 장녀인 희姬성 (노魯나라 종실)
- 하희夏姬: 하어숙의 부인 희姬성 (정鄭나라 종실)
여자는 기본적으로 성으로 불리며 그 앞에 개인을 구별할 수 있는 표지를 붙인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휘는 대문을 넘지 않는다는 말처럼, 위에 나오는 여성들의 이름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3. 남자는 씨를 칭하고 씨는 귀천을 구별한다
같은 혈통이라도 내부에서 적서, 빈부 등으로 권력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를 반영하여 다양한 계기로 가문이 분화되어 씨氏를 달리할 수 있습니다. 《사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례는 봉읍으로 받은 땅의 이름을 씨로 삼는 경우입니다.
- 여呂: 태공망 상尚은 원래 성이 강姜이지만 여呂 땅을 봉지로 받아 여씨를 칭하게 되었습니다. (사기 제태공세가)
- 상商: 전국 시대 진秦나라에서 변법을 시행한 것으로 유명한 상앙商鞅은 원래 위衛나라 종실 가문으로 희姬성 공손公孫씨였으나 진나라에서 상商 땅을 봉지로 받아 상씨로 불렸습니다. (사기 상앙열전)
일가에서 관직이나 직업을 되물려 받으면서 그 명칭으로 씨를 삼기도 합니다.
- 사마司馬, 태사太史 등: 관직 이름.
- 복卜, 도陶 등: 직종 이름.
한 성姓에서 여러 씨가 분화되는 예도 살펴봅시다.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장남 장공莊公의 세 남동생 경보慶父, 숙아叔牙, 계우季友는 각각 삼환三桓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사기 노주공세가)
- 맹孟: 경보의 후손.
- 숙叔: 숙아의 후손.
- 계季: 계우의 후손.
장공의 후계 쟁탈 과정에서 경보와 숙아는 살해당했지만 계우는 장공의 아들을 옹립하여 재상이 되었고, 결국 계우의 후손인 계씨가 가장 큰 권력을 가졌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계씨와 맹씨도 이들의 후손입니다.
다른 예로, 아래의 여러 씨는 모두 춘추 시대 진陳나라 종실 진씨에서 갈라져 나온 것들입니다.
- 전田: 진陳나라 공자 진완陳完이 제齊나라로 가면서 씨를 전으로 바꾸었습니다. (사기 전경중완세가)
- 왕王: 제나라가 망한 뒤 왕족 전田씨의 후예들이 왕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왕씨를 칭하게 되었습니다. (한서 왕망전)
- 호모胡母: 진陳나라 호공胡公의 후손이 모향母鄉을 봉읍으로 받으면서 조상의 시호와 봉지를 합쳐 호모씨를 창설했습니다. (풍속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