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작전의 수수께끼
중국 고대의 음양 개념 변천
최근 트위터에서 마사토끼 님의 만화를 보고 찔렸습니다.
이쪽인 것처럼 해 놓고 저쪽에서 공격한다, 이런 기만 전술을 [양동작전]이라고 하죠. … 기만전술을 일컫는 명칭에 어떻게 陽자를 붙입니까? https://twitter.com/masatokki/status/1763446972013568096
사실 아(雅)도 ‘양동작전’의 ‘양’이 兩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아무튼 양(陽)을 쓰는 데 놀라는 것도 일리가 있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음양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연상하는 것은 꽤 자연스러운 듯합니다.
- 양(陽): 밝음 → 좋음 → 정직함
- 음(陰): 어두움 → 나쁨 → 속임수
그러데 이런 구도는 원래부터 있던 의미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마침 독서 모임 “반소의 무리”에서 관련된 책을 두 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8장 〈음양 이론: 변화와 불변의 경계〉(이숙인 2005)와 《유교와 여성》 3장 〈음양, 젠더 특성, 그리고 상보성〉(로즌리 2023)을 통해 음양의 의미 변화를 알아봅시다.
음양의 원래 의미
처음에 양(陽)은 해가 비치는 곳, 음(陰)은 해가 비치지 않아 가려진 곳을 의미했습니다. 지리적으로 양은 하천의 북쪽과 산의 남쪽, 음은 하천의 남쪽과 산의 북쪽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화양(華陽; 화산의 남쪽) 및 화음(華陰; 화산의 북쪽) 같은 지명에 반영되어 있고, 《시경》의 《대아》 〈공류〉에 언급된 ‘음양’도 산의 음지인 북녘과 양지인 남녘을 나란히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시경》의 시대까지는 아직 음양에 어둠과 빛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가치가 깃들어 있지 않았습니다(이숙인 2005: 298–299).
음양의 자연법칙화: 춘추·전국 시대
춘추 시대로 오면 음양의 의미가 양지·음지라는 물리적 실체에서 자연 현상을 관장하는 추상적 개념으로 확장됩니다. 예를 들어 《춘추좌씨전》에서는 음과 양이 하늘의 여섯 가지 기운에 포함되었고, 《국어》에서는 지진이 일어난 까닭을 음양의 기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이숙인 2005: 299–301).
더 나아가서 전국 시대에는 음양 개념이 철학에도 활용되었습니다. 노자, 장자, 묵자, 관자 등 제자백가의 여러 학자들이 만물의 작용을 음양의 원리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단, 음양이 인간 사회까지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습니다. 《순자》에서는 음양의 조화가 자연의 법칙에 불과할 뿐 인간사에 시사점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숙인 2005: 301–305).
음양의 사회적 가치: 전한 시대
이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음양 구도의 단서가 나오는 것은 《역경》의 주석인 《역전》입니다. 《역경》, 즉 《주역》은 주 문왕 희창이 지었다는 전설과 같이 서주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오래된 책이지만, 《역전》은 후세의 유학자들이 지은 해설서로 전한 시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역전》에서 음양 개념으로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역》의 8괘 중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과 땅을 상징하는 곤(坤)땅을 각기 양과 음으로 규정함으로써 아래와 같은 가치 체계가 도출되었습니다(이숙인 2005: 305–306).
- 양(陽) = 하늘[乾(건)] = 높음[尊(존)] = 귀함[貴(귀)] = 움직임[動(동)] = 굳셈[剛(강)]
- 음(陰) = 땅[坤(곤)] = 낮음[卑(비)] = 천함[賤(천)] = 고요함[靜(정)] = 부드러움[柔(유)]
전한 시대의 유학자 동중서는 《춘추번로》에서 양은 존귀하고 음은 비천하다고 선언했습니다(로즌리 2023: 116). 동중서는 한나라 사람으로서 직전 왕조인 진나라를 부정하고 한나라를 긍정해야 했습니다. 전국 시대의 음양가 추연이 주창한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오행 중 수(水)의 덕을 표방한 진나라는 겨울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고 법률과 형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음에 해당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인 동중서는 음을 낮추고 이와 상반된 양을 한나라의 덕으로 높였습니다(로즌리 2023: 128–131). 여기에서 양을 긍정적으로, 음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성립된 것입니다.
이제 ‘양동작전’의 ‘양’이 왜 현대한국어 사용자에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유교 이외 전통의 흔적
하지만 한나라 이전 음양이 사회적 가치와 독립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던 이전의 전통도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전국 시대에 자연의 이치보다 군주의 권력에 관심을 쏟은 《한비자》에서는 ‘양’과 ‘음’을 각기 겉과 속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했습니다(이숙인 2005: 302–303). 양은 햇빛이 들어 눈에 잘 보인다는 점에서 겉을, 음은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속을 가리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의미 확장입니다. 이런 용례의 흔적은 오늘날 큰 행사의 개회사에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데서도 남아 있습니다. 이때 음으로 도왔다는 말은 뒷돈을 찔러 넣었다든가 하는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행을 남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으로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여기서 의미가 더욱 확장되면 겉면을 강조하는 양이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서》와 이후의 역사서에서 陽驚(양경)이라는 말이 이따금 나오는데, 이것은 자신의 속임수가 들통나려고 할 때 일부로 모르는 일인 척하며 거짓으로 놀라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 외에 미치광이를 가장하는 陽狂(양광), 술에 취한 척하는 陽醉(양취)도 있습니다. ‘양동작전’의 ‘양’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참고 문헌
- 이숙인. (2005).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 도서출판 여이연.
- 리-시앙 리사 로즌리 지음, 이환희 옮김. (2023). 《유교와 여성》. 필로소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