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 농, 아농(阿儂)에서 아농(我儂)까지
예전에 남북조 시대의 지역갈등이 차를 둘러싸고 불거졌던 이야기를 하면서 북위 사람 양현지가 쓴 《냑양가람기(洛陽伽藍記)》라는 책에 나온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북조 사람들이 남조 사람들의 차 마시는 습관을 비하하는데, 차를 낙노(酪奴), 즉 유제품의 종으로 깎아내린 것은 물론이고 더 심한 모욕까지 가합니다.
남조 양나라 사람 진경지가 북조 북위에 사자로 갔다가 술에 취해서 북위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중원의 명문 사족 양원신이 이를 반박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 진경지가 병으로 앓아 눕자 양원신이 그의 병을 고쳐 주겠다고 방문합니다. 양원신은 입에 물을 머금고 진경지에게 뿜으며 귀신을 쫓아내는 주문을 읊습니다.
오나라 사람의 귀신이여, 건강(建康)에 붙어서 사는구나. [吳人之鬼,住居建康。]
관이며 모자며 자그맣고, 만드는 옷들은 짤막하다. [小作冠帽,短製衣裳。]
자기를 부르길 아농(阿儂)이며, 말하는 족족이 아방(阿傍)이라. [自呼阿儂,語則阿傍。]
줄풀과 피[稗]로써 밥을 짓고, 차를 마시고 장(漿)을 만든다. [菰稗為飯,茗飲作漿。]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양원신은 순챗국, 게 요리 등 남방의 음식을 나열하면서 강남의 문화를 마음껏 비하합니다. 여기서도 남방의 괴상한(?) 음식 중 차가 먼저 꼽혔습니다. 남조 사람들은 차를 어지간히 많이 마신 모양이고 북조 사람들은 그것을 어지간히 조롱한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오나라 귀신”을 묘사하는 데 있어 의관에 이어 두 번째로 거론되는 언어입니다. 특히 오 지역 사람들이 자신을 “아농”이라고 칭한다는 것입니다.
“아농”의 해석에 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漢典》 등 여러 사전에서는 아농(阿儂)을 하나의 표제어로 실었는데, 이와 달리 아(阿)와 농(儂) 두 개가 각각 별개의 1인칭 대명사였다고 보는 설도 있습니다. “아농”을 한 단어로 치더라도, 위진남북조 시기 아(阿)는 애칭을 만드는 접두사로 주로 쓰였으므로 농(儂)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이 儂(농)이라는 한자는 한나라 때까지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삼국지》와 《세설신어》에도 나오지 않았고, 《진서》에서 동진 시기 인물의 대화에 한 번 쓰인 것이 가장 이른 사례입니다. 그 뒤로 남조 송나라와 제나라의 시가에서 “나”의 의미로 사용된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농(儂)은 시의 언어로 주로 쓰이게 된 것 같습니다. 당나라로 오면 《전당시》 내에서 총 80회나 발견되며, 장호, 온정균 등 중원이나 북방 출신의 시인들도 즐겨 썼습니다.
《낙양가람기》의 일화로 돌아오면 이 오나라 귀신 퇴치 사건은 남조 양 무제 때의 일입니다. 《진서》에 등장한 동진 사람 사마도자가 “농지농지(儂知儂知)” 한 뒤로 대략 100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진(晉) 왕조가 강남으로 옮긴 뒤에 쓰기 시작했으니 중원을 차지한 북조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말이었을 것이고, 남조의 괴상한 말버릇의 대표로 꼽힌 것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한편 남북조 이후 당나라와 송나라를 지나 원나라로 오는 동안 농(儂)의 의미와 쓰임이 접미사로 바뀐 것도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나라 사람 관도승의 작품 〈아농사(我儂詞)〉는 “니농아농(你儂我儂)”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니농(你儂)은 “그대”, 아농(我儂)은 “나”에 해당합니다. 남조 시기에 쓰이던 아농(阿儂)과 한자가 다르다는 데 유의합시다. 아농(阿儂)에서는 아(阿)가 접사고 농(儂)이 실질적인 의미를 가졌지만, 아농(我儂)의 경우 아(我)가 “나”라는 의미를 가지고 농(儂)은 접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나라 사람 고덕기가 쓴 《평강기사》에 나오는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손님: (똑똑똑)
주인: 누구인강? [誰儂?]
손님: 나당. [我儂。]
주인: (문을 열고) 너였구낭! [卻是你儂。]
(오늘날의 상하이 일부에 해당하는) 바닷가 마을에서는 이렇게 “나”, “너”, “누구” 등 온갖 인칭대명사에 농(儂)을 붙여 써서, 타 지역 사람들이 이 마을을 3농의 땅[三儂之地]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농(儂)을 쓰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풍습은 이렇게 양나라부터 원나라까지 천 년을 이어진 것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