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미녀를 혐오한 남자

미녀를 혐오한 남자

《열녀전》 창시자 유향의 취향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한나라에서 처음 나온 《열녀전》은 원래 여성 열전인 列女傳이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 “열녀전” 하면 바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烈女傳부터 떠올리기 쉬운데요, 이렇게 된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이중의 의미 왜곡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여자들의 전기를 나열했다는 열-녀-전(列女傳)이 가치판단이 부여된 열녀-전(烈女傳)으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원래 열녀(烈女)의 미덕이 용기, 지혜 등 다양하게 존재해 왔는데 후대에 정절 하나로 축소된 것입니다.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 싶어하는 남성 지식인들은 2천 년 동안 중국에도 많았겠지만, 적어도 “열녀전”의 왜곡에 있어서는 조선의 유교맨들이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열녀전》의 시초인 전한시대 유향의 저작에 집중해 봅시다. 《한서》 〈유향전〉의 서술에 따르면 유향은 성제가 조 황후(조비연), 조 소의(조합덕), 위 첩여 등 미천한 출신의 미녀들을 총애해서 음란하고 사치한 것을 깨우치려는 배경에서 《열녀전》을 썼습니다. 《열녀전》은 총 8개 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모의(母儀)
  2. 현명(賢明)
  3. 인지(仁智)
  4. 정순(貞順)
  5. 절의(節義)
  6. 변통(辯通)
  7. 얼폐(孽嬖)
  8. 속열녀전(續列女傳)

분류되지 않은 속편을 제외하면 《열녀전》의 여성 유형은 총 일곱 가지로, 여섯 가지 미덕과 한 가지 악덕으로 요약됩니다. 우선 여섯 가지 미덕 중 모의, 정순, 절의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미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머지 세 가지는 현명, 인지, 변통으로 통찰력, 지략, 언변을 가리킵니다. 즉, 유향이 높이 평가한 여자들의 절반은 지혜로 이름이 났습니다. 여기서 여성의 지혜가 미치는 범위는 단순히 가정 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 세 편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고 남편의 처신을 바로잡는 데 그치지 않고 군주 앞에서 국가 대사를 논하기까지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섯 가지 미덕에 해당하는 여자들 중에서는 미녀로 언급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변통〉 편에 등장하는 제나라 종리춘과 고손녀는 추녀입니다. 유향이 여자의 예쁜 얼굴에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유향은 여자의 예쁜 얼굴을 비난했습니다. 급기야 〈인지〉 편에서 진나라 숙희의 입을 빌어 “심하게 아름다운 면이 있다면 반드시 심하게 악한 면도 있는 법이다”[有甚美者,必有甚惡]라고 말하는 데 이릅니다.

《열녀전》의 미녀는 악덕에 해당하는 〈얼폐〉 편에 몰려 있습니다. 이 편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라 마지막 임금 걸왕의 왕비 말희입니다. 말희의 속성으로 제일 처음 언급되는 것은 “얼굴은 곱고 덕행은 얕다”로, 원문은 “美於色,薄於德”입니다. 이 구절을 “얼굴은 곱지만 덕행은 얕다”로 옮기면 저자 유향의 의도에 어긋날 것입니다. 《열녀전》 전반의 기조를 따르자면, 얼굴이 고운 속성과 덕행이 얕은 속성은 역접이 아니라 순접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둘 다 부정적인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유향의 여성관에서 “아름답고 현숙한” 여자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열녀전》 〈정순〉 편에 나오는 양나라 과부는 예외적인 인물로, 얼굴이 화사한 한편 덕행이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서 원문을 살펴보면 말희의 서술과 달리 “榮於色而美於行”라고 써서 두 속성을 而(이)로 연결했습니다. 而(이)는 순접으로도 해석할 수 있고 역접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순접이든 역접이든 두 가지 속성을 겸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아(雅)가 기능어 한 단어가 있는지 없는지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나라 과부의 결말을 살펴봅시다. 정절을 지키고 싶었지만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의 구애를 끝없이 받던 과부는 결국 거울과 칼을 꺼내 얼굴을 자해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미녀로 태어났다면, 이렇게 자기의 미모를 스스로 훼손해야 유향의 칭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점에서 말희의 미모 또한 악덕으로 꼽혔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유향은 왜 이렇게 미녀를 싫어했을까요? 유향은 일생 동안 학문에 몰두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황제에게 주목받고 황제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했습니다. 우선 청년 시절 선제에게 연금술을 영업했다가 실패해서 사형에 처해질 뻔한 뒤 선제의 뜻에 영합해서 춘추곡량전을 연구했고, 원제 즉위 초 탁고대신 소망지에게 발탁되어 황제를 보좌하는 위치에 올랐다가 환관들에게 쫓겨나 감옥에 갇히고 벼슬길이 막힌 이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유향은 노년기에 접어들었고, 성제가 그의 마지막 희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제는 유향의 말을 듣는 듯하다가도 외척 왕씨와 후궁 조씨·위씨를 아껴서 유향의 의견을 실제로 채용하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유향의 야심은 평생동안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중에서도 말년에 자기를 좌절시킨 가장 큰 원인을 조비연 등의 미녀에게 돌려서 《열녀전》을 썼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