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삼국연의》에서 살펴본 차의 기능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과 차는 당대 이래로 문화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삼국연의》도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인 만큼, 당시의 지식인에 속하는 저자와 편자들도 (최소한 《삼국지》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보다는) 향과 차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소양은 《삼국연의》에서 열심히 싸우는 무관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연의에서는 문관 역시 등장하며,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모사들이 책략을 써서 전투의 향방을 결정하는 장면은 특히 신비롭게 묘사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제갈량이 사마의에게 사용했던 공성계를 들 수 있으며, 여기에서 제갈량은 향을 피우고 금을 뜯는 우아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아보고 나니, 차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연의를 읽으면서 ‘香’이라는 글자가 종종 눈에 띈 데 비해 ‘茶’라는 글자를 본 기억은 거의 없었지만,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 늘 읽는 https://ctext.org/sanguo-yanyi에서 ‘茶’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검색 결과를 살펴봅시다. 열네 건이 나와서 모두 나열해 보았습니다.

  1. 20회. 충집과 오석이 동승의 집에 찾아오자 동승은 두 사람을 서원으로 들였고, 자리를 잡고 차를 끝냈습니다[茶畢]. 그리고 나서 충집이 말을 꺼냅니다.
  2. 27회. 보정이 관 공에게 자기 거처에서 차를 대접하고자 하지만 관 공은 수레에 있는 유비의 두 부인에게 차를 먼저 바치게 한 후에 보정의 초청에 응합니다.
  3. 37회.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제갈량의 집에 찾아갔지만 제갈량은 없었고, 그의 동생 제갈균이 유비에게 차라도 잠깐 대접하겠다고 말합니다.
  4. 38회. 유비가 제갈량을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예를 다하고,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동자가 차를 가져왔고, 차를 마친 뒤에[茶罷] 제갈량이 말을 꺼냅니다.
  5. 39회. 유기가 제갈량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뒤채로 들입니다. 차를 마치고[茶罷] 유기가 말을 꺼냅니다.
  6. 43회. 손권이 제갈량을 맞이하여 예를 마치고 (중략) 차 대접을 마친 뒤에[獻茶已畢] 손권이 말을 꺼냅니다.
  7. 52회. 제갈량이 남군의 성문을 열고 노숙을 관서로 맞이하여 예를 마치고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차를 마치고[茶罷] 노숙이 말을 꺼냅니다.
  8. 54회. 유비가 여범을 들여 예를 마치고 앉을 자리를 잡습니다. 차를 마치고[茶罷] 유비가 말을 꺼냅니다.
  9. 54회. 유비가 교국로의 집에 방문합니다. 교국로가 유비를 들여서 예를 끝내고 차를 마치자[茶罷] 유비가 말을 꺼냅니다.
  10. 56회. 유비가 노숙을 맞이하여 예를 마치고 자리에 앉기를 권합니다. 노숙이 자기가 주인인 셈이라고 사양하지만 유비는 겸손할 필요가 없다면서 노숙을 앉힙니다. 차를 마치고[茶罷] 노숙이 말을 꺼냅니다.
  11. 69회. 경기와 위황이 김위를 방문하자 김위는 두 사람을 뒤채로 들여 자리를 잡습니다. (중략) 하인이 차를 가져오자 김위는 차를 바닥에 뿌려 버립니다.
  12. 75회. 관우가 자신의 군영에 화타를 들어오게 하여 예를 끝내고 자리를 주었습니다. 차를 마치고[茶罷] 화타가 관우의 어깨에 난 상처를 보고자 합니다.
  13. 76회. 관우가 제갈근을 맞이하여 예를 끝내고 차를 마치자[茶罷] 제갈근이 말을 꺼냅니다.
  14. 89회. 남만의 은자가 제갈량에게 측백나무 열매로 만든 차와 송홧가루로 만든 음식을 대접합니다.

결과는 향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14건 중에서 10건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예필禮畢 → 좌정坐定 → 차파茶罷라는 같은 패턴을 띠고 있습니다. 즉, 예를 끝내고, 좌석을 정하고, 차를 마친 뒤 본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차를 시작했다는 말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삼국연의》가 쓰인 당시의 문화인들의 방문 예절에서 자리를 잡은 뒤 일단 차를 대접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반드시 차 마시기를 마친 뒤에 용건을 꺼냅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은 일로 여겨진 것 같습니다. 현대인이 혹시라도 14세기에 떨어지게 되면 조심해야겠습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지역이 편중되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행하고 좌석을 정한 뒤 차를 다 마시는 것까지 성공한 10건 중에서 9건이 형주나 동오에서 일어났습니다. 조조의 세력에서 차가 언급되는 것은 69회의 단 한 건인데, 여기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차를 마시기도 전에 말을 시작하더니 결국 의견이 충돌하여 주인이 대접하려던 차를 바닥에 뿌려 버리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차 대접을 포함한 예절에 익숙한 것은 형주와 양주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삼국지》의 시대라면 쉽게 납득이 가지만, 《삼국연의》의 시대에는 차가 이미 전국적인 음료로 퍼져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이었습니다. 14세기라면 북방에서도 차를 마셨을 텐데, 그래도 중원 사람들에게는 장강 유역에서 차를 특히 잘 마신다는 인상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요? 어쩌면 나본 양반의 오해나 편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촉 지역에서 차를 마시는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만에서 대접받은 측백나무 열매 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이 아니니까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차를 마셨을 지역인데 뭔가 수상하지요. 한편 중원에서는 왠지 조조 암살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만 차를 마시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지금까지 《삼국연의》에서 차가 언급된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살펴본 향의 사용 방법처럼 다양하지는 않더라도 차도 방문 예절이라는 뚜렷한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맹세할 때 향을 태우고 점령군을 맞아 향을 피우는 것만큼 엄숙하거나 공손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만큼 차가 일상적인 물건이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공성계에서 차를 우리는 것보다는 향을 피우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였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