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 차와 문화승리

🍵 차와 문화승리

남조와 북조의 자존심 싸움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동아시아, 특히 중국 전통 사회를 상상할 때 사람들이 차(茶)를 마시는 장면은 꼭 들어갑니다. 하지만 한나라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은 먼 훗날의 모습일 뿐입니다. 차가 중국 전역에서 기호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당나라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나라 이전 위진남북조 시대까지만 해도 차에 대한 선호도가 지역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특히 남쪽에서는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고, 북쪽에서는 차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이런 갈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1. 북조의 문화승리

먼저 소개할 것은 북조 사람이 쓴 《낙양가람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제에서 북위로 투항한 왕숙이라는 인물은 처음에 북조로 왔을 때 양고기와 유제품을 먹지 않고, 남조 사람의 입맛대로 붕엇국으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차를 한 번에 한 말씩 마셨기 때문에 북조 사람들은 그에게 “밑 빠진 잔”[漏巵]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뒤 황제의 연회에 참석한 왕숙은 양고기와 타락죽을 잘 먹었고 차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황제가 까닭을 묻자 왕숙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양은 땅에서 나는 것 중에서 제일 맛있고 생선은 물에서 나는 것 중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취향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우열을 따지자면 양고기는 큰 나라에 비유할 수 있고 생선은 작은 나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차는 락(酪)[유제품]에 비하면 종놈일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북조 황제는 크게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차는 낙노(酪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북조의 락이 남조의 차를 이긴 것입니다.

2. 남조의 문화승리

위의 일화는 북조 사람들에게는 통쾌하겠지만 남조 사람들은 싫어할 내용입니다. 대신 남조 사람이 쓴 《세설신어》에는 반대로 북쪽 사람이 남쪽에서 골탕을 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진 시대 임첨이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 총명하고 사랑스러운[원문이 可愛입니다!] 것으로 유명했고, 심지어 그림자까지 예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북방 출신인 그는 차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강남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하게 된 임첨은 차를 마시고 나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차(茶)인가요, 명(茗)인가요?

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차”와 “명”은 모두 차를 가리켰기 때문입니다. 임첨은 실수한 것을 알아차리고 수습하기 위해 말을 바꾸었습니다.

방금 제가 여쭤본 것은 이 음료가 뜨거운지[熱] 차가운지[冷]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더 이상한 말이 되었습니다.

후일담

이렇게 북조 사람들은 남조 사람이 마시는 차를 비하했고, 남조 사람들은 차를 못 마시는 북조 사람들을 조롱했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것은 북조를 기반으로 한 수나라였지만, 차는 당나라 때 육우라는 인물의 영업을 통해 인정을 받고 이후로 중국인의 생활필수품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결국 남조 사람들의 차가 이긴 셈입니다. (하지만 이후 영국인들은 차와 락을 섞어 밀크티를 만들어 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