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또 하나의 청동 딜도와 대식(對食)

한나라의 레즈비언들?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또 다른 딜도의 주인, 중산 정왕 유승

앞서 〈청동 딜도의 주인은?〉이라는 포스트에서 전한시대 무제 유철의 형 강도왕 유비의 무덤에서 발굴된 청동 딜도를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제의 또 다른 형,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도 청동 딜도가 발견된 것입니다.

“왕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

강도왕 유비가 전투를 좋아했다면 중산왕 유승은 향락을 좋아했습니다. 유승은 이웃 제후국의 왕이자 어머니가 같은 형인 유팽조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형은 왕이 되어서 관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떠맡고 있어요. 왕이란 종일 가무와 섹스를 즐겨야죠. 「兄為王,專代吏治事。王者當日聽音樂聲色。」

사기》 〈오종세가

유승은 자기의 말을 충실히 실천해서, 생전에 120명이 넘는 자손을 보았을 정도였습니다. 그 많은 자손 중에 《삼국지》 유비의 조상이 있었던 덕에, “중산 정왕 유승”은 21세기 한국의 삼국지 독자들에게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여성간 동성애

딜도의 수상한 모양: 여성용 섹스토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중산왕 유승의 무덤에서 나온 딜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해 봅시다.

Liu Sheng's double dildo and two stone eggs.
https://dx.doi.org/10.13140/RG.2.1.3381.5926

놀랍게도 이 딜도는 쌍방향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쓰도록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그리고 ‘알’ 두 개와 같이 놓여 있습니다. 무덤에서 나온 음경 모형을 두고서 간혹 성적인 목적을 애써 배제하고 망자의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몸의 구멍을 막는 용도였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단순히 구멍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왜 하필 음경 모양으로 만들어야 했을까요?🤷), 중산왕의 양방향 음경 모형을 보고도 같은 해석을 고수하기는 어렵습니다. ‘작대기’의 모양과 각도를 볼 때 이것은 여자 두 명이 마주보고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식(對食): 한나라 궁녀들의 관계

여기에서 《한서》 〈외척전〉에 나오는 대식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대식’이란 전한시대 성제 시기, 황궁의 관비였던 도방과 조궁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합니다. 후한 말기의 학자 응소가 해당 부분에 주석으로 쓴 문장을 읽어봅시다.

궁인들이 서로 부부로 행세하는 것을 대식이라고 한다. 서로 심하게 질투하기도 했다. [宮人自相與為夫婦名對食, 甚相妒忌也。]

응소의 해석에 따르면 ‘대식’은 궁 안에서 이루어지던 여성간의 성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산왕의 무덤에서 나온 쌍딜도도, 중산국의 후궁에서 행해졌을 대식에 쓰이던 물건이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레즈비언 해석의 한계와 가능성

일단 전한시대 후궁에서 여자들끼리 관계를 맺는 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런 관계를 나라에서 엄격하게 금지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한서》에 나온 도방과 조궁도, 대식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관계가 마냥 자발적이고 자립적이고 자유로웠다고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조궁은 나중에 황제의 아기를 낳게 됩니다. 도방과의 ‘과거’는 조궁이 황제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 ‘결격 사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황제는 후궁 여자들 사이의 애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고, 그때문에 자신의 권력과 권위가 위협받으리라는 걱정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산왕의 쌍딜도도, 처음부터 여자들끼리 즐기라고 만든 물건이었을지는 의문입니다. 정말 그런 물건이었다면 애초에 왕의 무덤에 들어갈 일도 없었겠지요. 전한시대 황족들과 귀족들의 무덤에서 나온 다른 방중술 교본들의 내용과 연관지어 보면(Pfister 2016), 쌍딜도와 ‘알’은 평소에 여성의 성기 근육을 단련해서 남성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기술을 연마하기 위한 도구였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후궁의 여자들이 정말로 그렇게만 사용했을 리는 없지요(Venters 2024). 😉

참고 문헌

  • Pfister, R. (2016). On the Partonymy of Female Genitals in Chinese Manuscripts on Sexual Body Techniques. 10.13140/RG.2.1.3381.5926
  • Venters, L. (2024). Leftover peaches: Female homoeroticism during the Western Han dynasty. Journal of Lesbian Studies, 1–27. 10.1080/10894160.2024.2334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