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 딜도의 주인은?
이 포스트는 2018년에 작성했던 글을 수정하고 보충한 것입니다.
딜도의 주인, 강도왕 유비
인터넷에서 “한무제”로 검색하다가 무제의 무덤에서 동으로 만든 음경 모형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찾았습니다. 일단 역시 유철이라고 환호했습니다. 한참 웃고 나서 이 이야기의 출전을 뒤졌는데, “중국 장쑤 성 지역의 한무제와 유비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전한시대의 무제 유철이 삼국시대 사람 유비와 나란히 묻힐 수 없으며, 장안과 성도에 각각 있어야 할 이들의 무덤이 강소성에서 발굴될 리도 없습니다. 영어로 다시 검색해서 링크의 링크의 링크를 타다가 결국 중국어 기사에 도달해 보니, 청동 딜도는 2011년 발굴된 강소성 우이현 대운산 한묘의 부장품이었고, 무덤의 주인은 전한 경제 유계의 아들인 1대 강도왕 유비였습니다. 유철은 아니지만 역시 유철의 형이라고 바꾸어 다시 환호했습니다.
청동 딜도와 함께 묻힌 유비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유비는 튼튼하고 용맹한 인물이었습니다. 경제 3년 오·초 7국의 난이 일어났을 때, 황제의 아들 유비는 15세의 나이로 출전을 자청하여 장군의 도장을 받고 오나라 공격에 참여했습니다. 반란이 진압된 뒤 경제는 오나라의 옛 땅을 강도국으로 개칭해서 유비에게 봉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즐기는 성질은 중년이 되고서도 여전해서, 유비는 동생 유철이 황제로 즉위하고 흉노와 전쟁을 벌일 때도 출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기》와 《한서》에 나오는 유비는 힘을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사방의 호걸을 불러모았으며, 《서경잡기》에 따르면 운동을 잘해서 7척(161cm)짜리 병풍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청동으로 만든 딜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무덤에 딜도를 함께 묻은 것이 유비 자신의 의사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유비의 아들 유건은 부도덕하고 난잡한 인물이었습니다. 왕태자 시절에 이미 아빠의 후궁으로 들어갈 여자를 납치하고 여자의 아버지를 살해하기까지 했으며, 유비가 죽고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아빠가 총애하던 후궁 열 명을 불러서 성교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빠의 무덤에 딜도를 넣은 것이지요.
여담: 강도국의 뒷이야기
왕위를 계승한 뒤 유건의 악행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배를 일부러 전복시켜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보고 즐겼고, 후궁들을 갖은 방식으로 (특히 성적으로) 학대하여 무려 서른다섯 명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만으로는 끝내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건은 황제를 저주하고 무기를 마련하고 옥새를 만드는 등 모반에 해당하는 행위가 발각되고서야 대신들의 탄핵을 받고 자살했습니다.
한편 무제 유철은 유건의 딸 유세군을 공주로 삼아 서역으로 보내어 오손이라는 나라의 임금과 결혼시켰습니다. 이것이 중국 제국에서 황실 여성을 서역에 시집보내 화친을 도모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 유건 같은 자를 아버지로 두고 한 나라에서 사느냐, 아니면 고향을 멀리 떠나 언어와 풍습이 다른 나라에서 말도 안 통하고 연로한 남편과 사느냐, 이 두 가지 길만이 유세군에게 주어졌고, 그나마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오손으로 떠난 유세군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지었습니다. 훗날 남편이 죽고 남편의 아들이 유세군을 취하려고 하자 유세군은 황제에게 글을 올려 한나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유철은 유세군에게 “그 나라의 풍속을 따라라. 나는 오손과 함께 흉노를 칠 생각이다.”라고 명령했습니다.
2018-05-25 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