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톡》 리뷰 한 조각 (1) 자(字)
자의 사용과 언급, 여성 캐릭터의 자에 관해
목차
삼국지 창작물과 자(字)
아가 옛날 글을 읽는다면, 사람들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신이나 타인을 가리키는 표현을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가장 큰 관심이 간다. 한문이라면 자신을 가리킬 때 이름을 쓰는지 ‘소인’을 쓰는지, 남을 가리킬 때 자를 쓰는지 관직명을 쓰는지 등등. 《한서》를 팔 때도 마찬가지였고, 마침 아는 텍스트로 된 언어 자료에서 용례를 뽑아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조금 익숙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낸 《한서》 동인지가 《자칭·호칭·지칭》이었고, 삼국지포켓북 시리즈 또한 《호칭어 가이드》로 시작했다.
한자 문화권에서 삼국지를 즐긴다면 인물의 자라는 낯선 호칭어를 맞닥뜨리게 된다. 제갈량과 조운처럼 아예 ‘제갈공명’, ‘조자룡’으로 이름보다 자가 더 유명한 인물도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는 우연히 제갈공명과 제갈량이 같은 사람임을 알게 되며 삼국지에 스며든다. 그리고 삼국지에 관해 더 잘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 보면 어느 문서든 인물의 성명과 함께 자가 꼬박꼬박 나와 있다. 삼국지를 안다는 것의 시작은 인물의 자를 한두 개라도 아는 데 있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삼국지 창작물에서도 인물의 성명과 자를 함께 소개해 준다. “신삼국”으로 알려진 중국 CCTV 드라마 《삼국》(2010)에서는 인물이 새로 나올 때 “劉備 字 玄德” 대여섯 글자로 된 자막을 붙였다. 한국 웹툰 《삼국전투기》는 매화 표제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성명(생년~몰년). 자는 모모.”로 시작했고, 《모던픽션A》에서는 인물이 처음 등장할 때 “동탁 중영”처럼 성명과 자를 적은 박스를 띄웠다. 아가 본 삼국지 창작물이 많지 않아서 더 나열하지는 못하지만, 이들 작품이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는 아닌 것 같다.
아는 《삼국전투기》를 연재 당시에 실시간으로 읽었었다. 이 작품은 캐릭터를 패러디하고 전략을 상세히 묘사한 것이 주된 특징이었으며, 유비의 “공명양” 같은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인물의 성명만 사용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인물을 소개하는 칸에서는 반드시 자부터 썼다. 자를 모르면 “자는 불명.”이라고 적어 놓았다. 이렇게 자는 생략할 수 없는 정보였다. 당시에는 아가 삼국지를 파지 않아서 깨닫지 못했으나, 지금 보니 자라는 고유명사는 작중에서 실제로 사용되건 아니건 박스 안에라도 언급해 두면 존재 자체로 삼국지의 기운을 내뿜는 장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삼국지 창작물에 인물의 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여기에 어떤 특이한 점이 더 있을 수 있는가? 아는 대체 이 글을 왜 쓰고 있는가? 바로 웹툰 《삼국지톡》에서 자의 색다른 용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삼국지톡》에서 자를 활용하는 방식은 삼국지를 삼국지답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고, 특히 관도대전 파트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분명한 의도와 효과를 드러냈다. 이 점을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삼국지톡》 연재 초기의 자(字) 활용: 사용과 언급 사이에서
《삼국지톡》에서 인물의 이름을 표시할 때는 대개 검은 박스에 노란 글씨로 “조운 字 자룡”이라고 쓴다. 그런데 이 “성명 字 모모” 포맷이 처음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첫 화부터 정주행해 보니, 이 포맷은 2부 〈십상시의 난〉부터 시작되어 3부 〈반동탁연합〉에서 자리잡혔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삼국지톡》에서 자를 활용하는 양상이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 아는 자의 ‘사용’과 ‘언급’ 사이의 트레이드오프에 주목할 것이다. 여기에서 자의 사용이란 자를 대화 내에서 인물의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자의 언급이란 지문이나 박스 내에서 서술자가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의 추구
우선 1부 〈황건적의 난〉 첫 화에서는 유비를 처음 소개할 때 자를 언급한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에게 주어진 특혜다. 1부를 계속 읽어보면, 기본적으로 인물을 소개할 때 박스 안에 인물의 직함과 함께 성명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등장 횟수가 적은 추정과 유언은 물론이고, 삼국지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인 조조와 손견도 성명만 언급되고 자가 기재되지 않았다.
- 추정 [황건적의 난_14.이건 사기야]
- 유언 [황건적의 난_16.가슴이 뛴다]
- 노식 [황건적의 난_17.노식쌤 안녕하세요]
- 조조 [황건적의 난_19.조조가 지나간 자리]
- 손견 [황건적의 난_26.굶주린 늑대, 동탁]
그렇다면 《삼국지톡》에서는 캐릭터의 자를 아예 안 쓸 작정이었을까? 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에서 열거한 성명 목록에서 빠진 예외로 원소가 있기 때문이다. 〈황건적의 난_17.노식쌤 안녕하세요〉에서 처음 등장하는 원소를 소개하는 박스에는 “원소(자 본초)”라고 적혀 있고, 노식은 원소를 “본초 어린이”라고 자로 부른다. “본초 어린이”라는 대사로 짐작해 보자면, 저자가 적어도 처음에는 자를 인물 소개 박스 안에서 언급하기보다 작중 인물의 대화에서 실제로 사용하려고 한 듯하다.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조조다. 〈황건적의 난_30.지옥과 천국〉 시점까지 조조의 자는 한 번도 명시된 적이 없었으나, 플래카드 안에서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주석으로 언급되었다.
“조맹덕 제남상 환영합니다”
*조맹덕: 조조. 맹덕은 조조의 자(字)
황건적의 난_30.지옥과 천국
비슷한 사례로 조조가 원소를 자로 지칭하는 장면이 있다. 이 컷에서도 주석으로 ‘본초’가 원소의 자라는 설명이 담겼다.
‘본초?’
*본초: 원소의 자
황건적의 난_39.사냥은 타이밍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자를 자연스럽게 대사에 녹이고자 한 것 같다. 기존의 삼국지 팬에게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을 법하다.
언급의 시작
당연히, 자가 무엇인지 모르는 독자들도 적지 않다. 저자도 이런 독자들을 고려해서 위와 같이 주석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자가 무엇인지를 매번 주석으로 달자면 작가도 번거롭고 독자도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조맹덕 제남상 환영합니다” 이후로는 박스 안에 자를 넣기 시작한다.
- 조조(자 맹덕) [황건적의 난_33.그럴 돈 없거든]
- 원소 字본초 [황건적의 난_34.종놈, 원소]
- 원술 字공로 [황건적의 난_34.종놈, 원소]
- 하후돈 字원양 [황건적의 난_37.십상시를 죽여라]
그런데 박스에 적힌 내용을 자세히 보면 형식이 일정하지 않다. 자를 괄호 안에 넣기도 했고, “字”와 “본초”를 붙여 쓰기도 했다. 이 단계에서 저자는 자를 언급하는 방식을 탐색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성명” 띄우고 “字” 띄우고 “모모”를 쓰는 포맷은 2부 〈십상시의 난〉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3부 〈반동탁연합〉에서 검은 바탕에 노란 글씨를 쓴 박스가 자리를 잡고 완결 때까지 유지된다.
사용의 억제
3부 〈반동탁연합〉까지는 대체로 자의 사용과 언급이 공존했다. 특히 조조가 이 파트에서 주로 자로 불렸다. 동탁의 “조맹덕이”, 중모현 주민의 “조망떡이”, 진궁의 “조맹덕씨” 등등. 그러나 이후로 가면 갈수록 자가 작중 인물의 대사에서 사용되는 일이 드물어진다. 저자 자신도 트위터에서 직접 설명한 적이 있다.
하나, 서로 이름으로 부르기.
— 무적핑크(SuperPink) (@Superpink89) September 6, 2021
삼톡연재 초반에 제일 놀랐던 반응이 이것 : 원소 너무 좋아요! 그런데 원본초는 누구예요?
사람을 호/자/관직명 등등으로 부르는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캐릭터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나타난 것. 이때부터 작중에서 캐릭터들이 야 조조! 왜 유비! 하게 됨.
이렇게 해서 《삼국지톡》은 자의 사용을 억제하고 고유명사를 성명으로 통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를 버린 것은 아니다. 자의 사용은 줄어들었으나, 자의 언급은 양식화되면서 더욱 굳게 확립되었다. 《삼국전투기》에서 매화 표제 칸의 인물 소개에 자를 꼬박꼬박 명시했던 것과 비슷하게 수렴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지톡》 여성 인물의 이름과 자(字)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를 작중 대화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시도는 접었으나, 《삼국지톡》에서는 이후 색다른 방식으로 자를 활용하게 된다. 바로 유표의 부인 채씨, 원소의 부인 유씨 등 기존에 성씨로만 알려진 여성 인물에게 이름과 자를 붙인 것이다.
조심스러운 시작
사실 《삼국지톡》 연재 초기에는 여성 인물의 이름을 짓는 데만 해도 꽤 조심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어 작중에서 가장 먼저 성명으로 소개되는 여성은 ‘오국태’였다(황건적의 난_28.죽어도 안죽어). ‘국태’는 소설 《삼국연의》에 나온 오 부인의 칭호로, 《삼국지톡》에서는 이 칭호를 그대로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그 직후에 나오는 인물이 ‘하후선’이다(황건적의 난_29.불길은 잡았는데). 하후선의 경우는 아마도 가공의 인물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성명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기에는 아직까지 원작에 나오지 않은 이름을 새로 만들어 내는 데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영사황후는 “황후 하씨”로 이름 없이 성씨만 명시되었다(황건적의 난_40.파티를 시작하지).
여성 장수의 등장
3부 〈반동탁연합〉에 들어 “성명 字 모모”의 템플릿이 갖추어지고 나서는 점차 “황개 字 공복”(반동탁연합_29.호랑이의 감옥)과 “심평 字 건보”(군웅할거_22.폭주하는 공손찬)처럼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의 자가 언급되는 것이 관찰된다. 황개는 기존의 장수가 여성으로 설정된 첫 번째 사례로, 저자는 이후 4부 〈군웅할거〉로 가며 순심, 정욱, 여건, 악진 등 더욱 다양한 인물을 여성으로 등장시킨다. 한편 심평은 군의관으로 나오는 오리지널 캐릭터로, 당시에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활용한 언어유희로 성명과 자를 지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여성 인물의 존재감이 강화되고 있지만, 없어진 이름을 만들어내기는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이름을 얻은 부인들
그리고 5부 〈협천자〉에서 “미축 字 자중”(협천자_30.미축이 쏜다)을 여성으로 등장시키고부터 저자는 드디어 실존인물들에게 가공의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한다. 유비의 아내 미 부인과 감 부인은 ‘미영란’과 ‘감소혜’라는 이름을 얻었고(협천자_32.유부남 유비), 조조의 아내 정 부인과 변 부인은 ‘정영옥’(관도대전_23.조조 부부의 세계), ‘변영’(관도대전_24.정부인과 변부인)으로 나온다. 장수의 숙모 추씨도 ‘추교요’(관도대전_26.한 맺친 장수)가 되었다. 1부 〈황건적의 난〉에서 동 태후와 하 태후의 이름이 끝내 나오지 않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다.
자를 갖춘 부인들
위에서 살펴본 초기 부인들의 이름은 ‘영란’, ‘소혜’, ‘영옥’ 등 아무래도 현대 한국의 여성 인명과 닮은 모양새다. 기존 삼국지 등장인물들과 비교하면 약간 위화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6부 〈관도대전〉 파트 중반에서 분위기가 한 번 더 바뀐다. 유표, 원소, 공손찬 등 군벌들의 부인이 등장하는 장면마다 적극적으로 힘을 주고 지은 이름과 자가 폭발한다. “채륵 字 영규”는 남동생 “채모 字 덕규”와 자의 돌림자를 공유하고(관도대전_35.가후 vs. 조조), 원소의 부인 “유위 字 의경”은 원소와 같은 수준의 품격(?)을 보여주며(관도대전_41.틀어박힌 공손찬), 공손찬의 부인 “후자혜 字 견찬”은 불과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관도대전_72.불타는 역경). 사이사이에 원술의 부인 ‘진욱’과 딸 ‘원엽’, 대교 ‘교은낭’과 소교 ‘교은매’가 이름을 가지고 등장한다. 여기서 형성된 기조가 작품의 후반까지 이어져서 견복과 손상향에게는 자가 생겼고 곽여왕에게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마무리
《삼국지톡》에서 자는 처음에 인물의 대화 속에서 호칭어로 적극적으로 쓰이도록 기획된 듯하나, 예상 외의 독자 집단을 발견함에 따라 용도가 바뀌어 캐릭터의 속성으로 자리잡았다. 자는 캐릭터의 속성이 되면서 오히려 활용도가 높아졌다. 자를 실제로 부를 일이 없는 만큼, 더 자유롭게 변형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책에서 성씨로만 알려진 부인들에게 작중에서 이름과 자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여성 인물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자를 갖추고 등장한다는 것은 《삼국지톡》의 큰 특징이며 “딸에게도 읽힐 수 있는 삼국지”라는 저자의 의도에도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