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에 새겨진 아름다운 글자들, 무슨 내용이었을까요?
고대 중국의 청동기는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장엄합니다. 기물 자체의 모양도 그렇고, 기물에 새겨진 글자들이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 주는 것 같습니다. 주나라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금문(金文)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금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요? 한나라 청동기에는 또 어떤 글자가 적혀 있었을까요? 이 글에서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銘文)이 왕조마다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0. 세발솥의 무게를 묻는 것은 불경한 짓
대표적인 청동기로는 정(鼎), 곧 세발솥이 있습니다. 한자 ‘鼎’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아래와 같이 고양이를 닮은 모양도 있는데, 사실 고양이의 뾰족한 귀처럼 보이는 것은 솥의 손잡이고, 다리처럼 보이는 것은 솥의 발입니다.

솥은 음식을 익히는 조리 도구이기도 하지만, 실용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용도도 있었습니다.
주나라에서 세발솥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특히 주나라 천자의 세발솥은 구정(九鼎)이라고 불리며 가장 큰 권위를 나타냈습니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가 ‘문정경중’입니다. 《춘추좌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나라의 권위가 약화된 춘추시대에, 강대한 제후국인 초나라의 장왕은 주나라 천자의 사자에게 ‘구정’의 크기와 무게를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주나라 천자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같은 이야기의 《사기》 〈초세가〉 버전에서 장왕은 ‘우리 초나라에서는 부러진 낫의 끝부분만 모아도 구정을 만들고도 남는다’라고 좀 더 노골적으로 조롱하다가, 사자의 꾸짖음을 받고 머쓱해져서 물러났습니다.
이렇게 세발솥은 엄격한 권위를 나타내는 물건이었고, 신분에 따른 규격 차이도 현저했습니다. 주나라 천자는 구정을 소유했고, 제후들은 칠정, 사대부는 오정을 소유했습니다.
1. 주나라의 ‘대우정’
현재까지 발견된 서주 시대의 세발솥 중 가장 큰 것이 대우정(大盂鼎)입니다. ‘대우정’은 우(盂)라는 귀족이 주나라 왕에게 관직과 포상을 얻은 것을 기념해서 제작한 솥으로, 무게가 150킬로그램이 넘는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국가박물관에 소장 중인 대우정은 크기뿐만 아니라 아래의 사진과 같이 내부에 새겨진 아름다운 명문으로도 유명합니다.

대우정에 새겨진 글은 주나라가 천명을 받아 은나라를 토벌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우정 외의 다른 세발솥들도 이와 같이 군주가 신하에게 상으로 내린 것이고, 내부에 천명을 받은 군주의 덕과 신하의 공적을 기리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진 시황의 진나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2. 진나라의 도량형기
진나라에서도 임금이 금속으로 용기를 만들어서 신하에게 내려주었고, 용기에는 임금의 명령이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용기의 용도와 명령의 내용이 다릅니다. 주나라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그릇 내부에 소유자의 관직과 작위를 기록하여 제사를 잇는 자손에게 물려주게 했다면, 진나라에서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도량형 통일 공문을 겉면에 찍은 표준 용기를 전국의 관청에 배포하여 행정에 사용하게 한 것입니다.

이 조문은 본디 반포한 표준기의 공증성을 보증할 목적으로 새긴 것인데, 표준기의 사용자와 담당관서가 그 조문을 읽고 인지할 것을 전제로 기록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똑같은 용기라 할지라도 주술적·제사적 성격을 지닌 은나라와 주나라의 청동기 명문과 실용적·법제적 성격을 갖는 진나라의 조문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즉 은주 시대의 청동기 명문은 주로 청동기의 내면에 새겨져 있는 데 반해 진나라의 조문은 외면에 새겨져 있다. 도미야 이타루 지음. 임병덕 옮김. 《목간과 죽간으로 본 중국 고대 문화사》. 사계절. 2005.
그리고 한나라로 오면 주나라 스타일과 진나라 스타일이 절충됩니다.
3. 한나라의 ‘상림원’ 세발솥
아래 사진의 유물은 전한 시대에 출토된 황실의 기물로, 청동으로 만든 세발솥입니다. 주나라의 장엄한 세발솥보다는 무늬가 간소하고, 진나라의 도량형기처럼 글씨가 겉면에 적혀 있습니다.

처음에 이 사진을 보고 “와! 청동솥에 글이 새겨져 있다니 멋있네!”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해독을 시도해 보니, 제조 시기는 ‘신작3년’[神爵三年]으로 전한 선제 시기의 물건이고 무게는 ‘19근 6냥’[重十九斤六兩]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나라의 1근이 약 225그램이었으므로, 19.6근이면 4.41킬로그램입니다. 대우정에 비하면 앙증맞은 사이즈입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한나라 상림원 세발솥의 겉면에 무게가 적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천자의 기물이라도 주나라의 구정의 무게를 묻는 것은 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경한 일로 여겨졌는데, 한나라에서는 정반대로 황실 기물의 무게를 아예 겉면에 새겨 놓았습니다. 주나라 사람들이 세발솥의 권위를 신비한 천명에서 찾았다면, 진 시황의 시대를 거친 한나라 사람들은 세발솥의 권위를 표준화를 강제하는 권력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