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의 광녀(狂女)들
광녀(狂女)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미친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말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바로 《한서》입니다. 〈왕망전 중〉에는 신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된 왕망을 비난하는 ‘미친 여자’가 등장합니다.
이 해에 장안의 미친 여자[狂女子] 벽(碧)이 길에서 소리쳤다. “고황제[유방]께서 크게 노하셔서 내 나라를 돌려달라고 하셨다. 돌려주지 않는다면 9월에 너를 죽일 것이다!” 왕망은 그를 잡아 죽였다. 《한서》 〈왕망전 중〉.
이렇게 사회의 불안이 도래했음을 외치는 여자를 ‘광녀’로 기록한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광녀’를 주술사인 무녀(巫女)로 해석하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하라 모토코, 《환경으로 보는 고대 중국》, 243면).
재미있는 점은 ‘광녀’의 의미와 기준이 훗날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채널에서 전한 남자 유향이 쓴 《열녀전》 이야기를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송 남자 왕회가 지은 〈열녀전 서〉에 따르면, 유명한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왕안석은 친구 왕회가 《열녀전》을 파는 것을 놀리며 왜 “여러 광녀 이야기를 서술하여 만든 책”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일찍이 〈미녀를 혐오한 남자〉라는 포스트에서 소개했듯이, 《열녀전》에는 총 일곱 가지의 여성 유형이 나옵니다. 이 일곱 가지 중 여섯 가지가 긍정적인 내용이고, 나머지 한 가지가 유일하게 부정적인 내용입니다. 이를 보건대 《열녀전》의 저자 유향은 최대한 다양한 유형의 미덕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왕안석에게 있어 이들은 모두 ‘미친 여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혹시 왕안석이 부정적인 유형만을 찍어서 ‘미친 여자’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왕안석의 물음에 대한 왕회의 대답을 살펴보면 《열녀전》의 여자들은 악한 자[惡者]와 미친 자[狂者]로 분류되었고, 후자는 “비록 예의에 맞지는 않으나 한결같이 善에 뜻을 두어 행실을 규방에서 이루었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한 남자 유향은 《열녀전》에서 뛰어난 언변으로 작게는 가족을 살리고 크게는 나라를 구한 여자들을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북송 남자 왕회와 왕안석은 이들의 언행이 선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자가 자기 목소리를 낸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기고 이들에게 ‘미친 여자’라는 딱지를 붙인 것입니다.
즉, 한나라 남자들은 체제를 위협하는 여자들을 ‘광녀’라고 불렀지만, 송나라 남자들이 보기에는 아무리 체제에 순응하고 체제의 존속에 기여한 여자라도 일단 남자 앞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면 ‘광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