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가, 아니면 존귀한가?
여성혐오의 두 가지 버전
얼마 전 〈한나라의 똑똑한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포스트에서 주나라와 한나라의 남성 지식인들이 각기 여성의 똑똑함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간단하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여기에서는 한나라 이후의 사례를 추가로 살펴보면서 한나라의 특징을 좀 더 상세히 파악해 보겠습니다.
아무래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여성혐오 패턴은 이것입니다.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하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는 비천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여성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의 지위가 낮아야 한다는 믿음은 여러 시대와 지역에 걸쳐 존재했겠지만, 아(雅)가 느끼기로는 무엇보다 근대 유럽의 냄새가 강하게 납니다. 특히 여성의 이성이 남성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서구의 남성 지식인들이 떠오릅니다.
중국에서도 여성의 능력을 남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전제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이 경우 여자의 미덕이 뛰어날 때 ”여자 같지 않고 남자 같다“라는 말로 칭찬했습니다. 예를 들어 송남 주희는 《주자어류》에서 여사(女士)를 ”사(士; 남자)의 덕행을 가진 여자“로 정의했고, 청남 심복은 《부생육기》에서 아내를 “남자의 마음을 지닌 여자”라고 추모했습니다. 이 남자들에게 있어 전형적인 여성의 미덕 벡터는 남성과 같은 방향이되 크기가 작았던 셈입니다.
그런데 한남 유향은 《열녀전》에서 말희를 비난하며 “여자가 남자의 마음으로 행동했다”라고 썼습니다. 즉, 훗날의 《부생육기》와 달리 《열녀전》에서는 “남자의 마음을 지닌 여자”가 칭찬이 아니라 비난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상적인 여성의 미덕은 남성과 아예 다른 방향으로 설정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雅)가 추측하기에 한나라 사람들의 여성혐오 패턴은 아래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남자는 존귀하고 여자는 비천하다]
전제: 여자는 원래 남자보다 비천한 위치에 있다.
결론: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보다 지성이 부족해야/부족해도 된다.
이 패턴에서는 여성의 능력이 남성 이상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미덕으로 권장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후한서》 〈황후기〉에서 화희황후 등수는 열두 살에 《시경》과 《논어》에 통달했고, 오빠들이 경전을 읽다가 어려운 내용이 나오면 동생인 등수에게 물어볼 정도로 학식을 인정받았지만, 어머니는 하라는 바느질은 안 하고 책만 읽는다고 등수를 꾸짖기만 했습니다. 또 훗날 등수의 스승이 되는 여성 학자 반소는 《여계》에서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설파했으며, 그 근본적인 이유로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보다 낮은 지위로 태어났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계》에서는 여성의 덕행, 언어, 용모, 기술이 남들보다 뛰어날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여성이 지켜야 할 규범이지, 태생적으로 뛰어나지 않다는 본성에 관한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한나라 사람들의 “남존여비”에는 남성의 능력이 우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남자가 무능하더라도 유능한 여자보다 태생적으로 존귀하므로 여자를 지배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가의가 《신서》 〈계급〉에서 “신발은 새 것이라도 베개 위에 올리지 않고 관은 낡은 것이라도 신발 밑에 깔지 않는다”라는 말로 신분제를 정당화한 것과 서로 통합니다. 한나라 유교맨들은 계몽주의자들과 달리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하거나 전제하지 않고서도 여자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한나라 유교맨들은 ‘남성은 존귀한 양이고 여자는 비천한 음’이라고 믿었고, 근대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은 ‘남성이 우월한 능력을 가졌고 여성은 남성의 열등한 버전’이라고 믿었습니다. 어느 쪽의 여성혐오가 더 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두 가지 믿음이 각기 통하는 세계는 모두 여성혐오적이지만, 여성혐오가 작동하는 방식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양상은 이렇게 다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