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형은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
목차
서론: 그놈의 궁형, 지겨운 고자 타령
고대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종종 두렵습니다. 대화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그놈의 궁형 타령, 지겨운 고자 이야기에 고여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책 《사기》를 언급하면 꼭 저자 사마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언급되면 꼭 궁형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안 좋습니다. 궁형이 언급되면 고추 달린 남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고추가 잘리는 궁형이 남성에게 있어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 열변을 토합니다. 이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궁형이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라는 말입니다.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궁형. 이 말은 일개 주장이 아니라 거의 중국사의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습니다. 혹시 이 “상식”을 의심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한나라의 역사책 《한서》를 토대로 검증해 보겠습니다.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이라는 신화
우선 구글 검색창에 ‘사형보다 치욕스러운’이라고 입력해 보면, 거의 궁형 이야기만 나옵니다. 이 수식어는 궁형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상위 검색 결과를 자세히 보면, 궁형이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은 유명한 작가들의 굵직한 작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우영의 만화에서는 사형 대신 궁형을 선택한 사람들의 치욕, 궁형 대신 사형을 선택한 사람들의 영예에 관한 일화를 지어냈습니다. 특히 궁형을 거부하고 사형을 당한 살인범이 “때깔을 빛내고” 있었다고 묘사했고, 구경꾼들은 “멋있어”, “역시 싸나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이에 반해 사형 대신 궁형을 받겠다고 말한 사마천은 군사들에게 “구역질” 나고 “더러운 종자”로 조롱받았습니다.
이희재의 만화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사마천이 “치사한 놈”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묘사가 대단히 참신하고 파격적인 예외로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시대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 “고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고우영과 이희재와 같은 거장의 연출로 우리에게 생생히 각인된 이 장면이 과연 역사적으로 얼마나 정확할까요?
우선, 궁형을 받는 것이 명예로운 일은 아닙니다. 수치스러운 일임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궁형이 사형보다 치욕적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리고 사마천이 사형을 궁형으로 바꾸었다는 이유로 세간에서 (남자의 자존심을 깎아먹은) “더럽고 치사한 놈”이라는 식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사마천이 겪은 고통을 왜곡하는 것이자 전한시대 형벌에 대한 인식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서》 〈사마천전〉에 나오는 〈보임소경서〉를 비롯해서 《한서》의 곳곳에 드러나는 사실을 짚어 보겠습니다.
〈보임소경서〉에 묘사된 궁형의 치욕
사마천이 궁형을 사형보다 치욕스럽게 여겼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열에 아홉쯤은 그냥 남자로서 당연히 그랬으리라는 상식(?)에 기대고 있습니다. 열에 하나쯤 근거를 댄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보임소경서〉일 것입니다. 아래 댓글에서 말하는 “사마천이 친구한테 쓴 편지”가 바로 〈보임소경서〉입니다.
〈보임소경서〉란 “임소경에게 보낸 답장”이라는 뜻입니다. 《한서》 〈사마천전〉에 포함되어 있고, 이후 《문선》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렇다면 〈보임소경서〉에 궁형이 사형보다 더 수치스러운 형벌이라는 말이 나올까요? 놀랍게도 그런 말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사마천은 궁형과 사형을 비교하지 않았다
실제로 〈보임소경서〉에서 궁형을 평가한 내용을 확인해 보고 판단합시다.
우선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것보다 중대한 수치가 없다고 말하기는 했습니다. 이 말의 맥락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러므로 재앙은 이익을 바라는 것보다 참혹한 것이 없고, 슬픔은 마음이 상하는 것보다 애통한 것이 없고, 행실은 선조를 욕되게 하는 것보다 추악한 것이 없고, 수치는 궁형을 당하는 것보다 중대한 것이 없습니다.1
여기서 궁형을 당하는 수치는 이익을 바라는 재앙, 마음이 상하는 슬픔, 선조를 욕되게 하는 행실과 함께 나열되었습니다. 이 네 가지의 공통점은 살아서 겪을 수 있는 사고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마천이 온갖 치욕적인 형벌을 나열하면서 “그중 최악이 궁형”이라고 말한 적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이 글을 진짜로 읽어 보았다면, 그리고 지성이 있다면, 그 형벌의 목록에 사형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기는 어렵습니다.
최선은 조상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 그 다음은 자기 몸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 [중략] 그 다음은 몸이 쫓겨나는 욕을 보는 것, 그 다음은 옷이 바뀌는 욕을 보는 것, 그 다음은 형구를 차고 매를 맞는 욕을 보는 것, 그 다음은 머리가 깎이고 쇠고랑을 차는 욕을 보는 것, 그 다음은 피부가 훼손되고 몸이 잘리는 욕을 보는 것, 최악이 부형(=궁형)이라는 극단적 상황입니다.2
이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여섯 단계의 치욕입니다.
- 파면: 몸이 쫓겨나는 치욕
- 수감: 옷이 (죄수복으로) 바뀌는 치욕
- 태형: 형구를 차고 매를 맞는 치욕
- 징역형: (곤겸성단형을 받아) 머리가 깎이고 쇠고랑을 차는 치욕
- 육형: (문신이 새겨져서) 피부가 훼손되고 몸이 잘리는 치욕
- 궁형: 부형이라는 극단적 상황
여기에서 사형을 찾을 수 있나요? 아는 못 찾았습니다. 혹시 찾으신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가 읽기에 사마천이 말하고자 한 내용은 궁형이 살아서 받을 수 있는 형벌 중 가장 큰 치욕이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사마천은 궁형이 얼마나 욕된 일인지를 강조했으되 사형과 비교한 적은 없습니다.
사형은 절대로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었다
고우영은 《십팔사략》에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궁형” 신화를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두 페이지에 걸쳐 세 개나 되는 일화를 지어냈습니다. 명성을 누리던 학자가 궁형을 받고 몰락했다는 에피소드에 한 페이지를 통째로 들였고, 심지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가 궁형을 거부하고 오히려 명예롭게 죽었다는 에피소드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세 번째 칸을 보면 사형수가 참수형을 당하는 장면에서 한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멋있어” 하고, 한 남자는 “역시 싸나이야!” 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고우영의 신묘한 스토리텔링은 정말 설득력이 있습니다. 고추가 잘리느니 목이 잘리는 쪽을 택하는 것이 명예로울 수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에게는 말입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참수형을 당할 위험이 없는 덕에 사형의 고통과 치욕을 쉽게 깎아내리는 것이 아닐까요?
궁형의 치욕을 말할 때 흔히 신체가 훼손된다는 점을 들기도 합니다. 신체가 훼손되는 것은 고대 중국 사람들의 관념에서 부모에 대한 불효라는 것입니다.
신체와 모발과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하지 않음이 효의 시작이다.3
《효경》 〈개종명의〉
특히 사마천과 같은 사대부들은 부모에 대한 불효를 더욱 큰 죄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형이 사형보다 치욕스러웠다고—더 나아가서 궁형에 비하면 사형은 명예로운 죽음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목이 잘리는 것 또한 신체가 훼손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고대 중국에서는 온전한 몸으로 죽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유교맨들의 예법에 따르면 전쟁터에서 죽은 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묻힐 수 없었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자는 조역(묘지가 있는 곳)에 들어갈 수 없다.4
《주례》 〈춘관종백〉
이렇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로자들이라고 해도 신체가 병기로 훼손된 이상 일반인들과 같은 묘지에 들어갈 자격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공로는커녕 범죄를 저질러서 사형을 당한 경우는 더욱 불명예스러운 죽음으로 취급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고우영의 작품에서 살인범이 궁형을 거부하고 사형을 당하는 선택을 멋있게 묘사한 것은 현대 한국의 고추 애호가 “싸나이”들의 심금을 울릴지언정 고대 중국 사람들의 관념을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마천은 자살을 단념하고 궁형을 택했다
지금까지 사마천과 그의 동시대 사람들이 사형보다 궁형을 치욕스럽게, 궁형에 비하면 사형을 차라리 영예롭게 여겼다는 인식이 허구임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한나라, 특히 전한시대 사대부라면 기본적으로 궁형보다 죽음을 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사형이 아니라 자살입니다.
사형과 자살의 차이는 사소하지 않습니다. 사형은 확실히 치욕스러운 죽음이지만, 자살은 치욕을 피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사마천은 〈보임소경서〉에서 포승으로 묶이는 치욕을 이미 받고 나서 자살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사람이 포승에 묶이기 전에 미리 자살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채찍으로 맞게 되어서야 절개를 지키겠다며 자결을 원하는 것도 아득한 일이 아니겠습니까!5
이것은 사마천 본인이 체포된 후에 자살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변명이기도 합니다. 〈보임소경서〉에서 사마천은 자기가 죽지 않고 궁형을 받은 까닭을 구구절절 늘어놓았습니다. 궁형을 받고 살아남기를 택한 까닭은 물론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사마천은 자기가 목숨이 아까워서 자살을 못한 사람이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저 사내종·계집종들도 자결을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제가 못했겠습니까!6
이 구절은 볼 때마다 왠지 사마천 자신이 자살을 포기했기 때문에 일부러 ‘자살이란 원래 천한 자들도 할 수 있는 일이야!’ 하고 깎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궁형이 치욕스러운 까닭은 따로 존재한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궁형을 받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하지만 그 치욕의 원인은 현대인, 특히 고추가 달린 남자들이 뻔히 상상하는 것과 다릅니다. 〈보임소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아도 ‘남성의 상징’을 상실했다거나, 혹은 대를 잇지 못하게 되었다거나 하는 언급은 찾을 수 없습니다. 편지에 명시된 자괴감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선조의 무덤에 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말을 잘못한 탓에 이런 재앙을 맞아 거듭해서 고향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선친을 욕되게 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다시 부모님의 묘소를 찾겠습니까? 백 세대가 지나더라도 더러움은 심해질 뿐입니다!7
이로 인해 창자가 매일 아홉 번씩 꼬일 지경으로, 집에서는 정신이 나간 듯이 멍하고 밖에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치욕을 떠올릴 때마다 늘 등에서 땀이 흘러 옷을 흥건히 적십니다.8
사마천은 단순히 개인적인 부끄러움 때문에 성묘를 자제한 것이 아닙니다. 한나라에서 한번 형벌을 받으면 다시는 참배와 제사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후한시대 학자 왕충이 한나라 민간의 4대 금기로 꼽을 정도로 강력한 사회 규범이었습니다.
두 번째 금기: 형벌을 받은 죄수 출신은 묘소에 참배할 수 없다.9
(중략) 그 까닭은 자손이 형벌을 받은 것을 보면 선조의 마음이 너무나도 슬퍼서 제사에 강림하기를 꺼리고 차마 흠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덤에 참배하지 않는 것이다.10
《논형》 〈사휘〉
현대인으로서는 선뜻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나라 사대부에게 있어서는 조상의 제사에 참여할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큰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아는 바로 여기에 사마천의 비범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을 받아 역사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년 동안 저술을 진행해 오다가 궁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사마천은 아버지의 제사를 모실 자격을 버리고, 대신 아버지의 사명을 잇기를 택했습니다.
〈보임소경서〉에서 사마천은 스스로 《사기》를 저술한 목표로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究天人之際]
- 옛날과 지금의 변화에 통달하는 것[通古今之變]
- 일가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成一家之言]
주목할 것은 세 번째인 ‘성일가지언’, 즉 일가의 이야기를 완성한다는 목표가 앞 두 개의 거창한 목표와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당시에 무엇보다 중요했던 제사와 맞바꾼 효의 실천입니다.
《한서》 곳곳에 서술된 궁형의 위상
지금까지 〈보임소경서〉를 통해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것의 의의를 새롭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궁형이 한나라의 형벌 체계와 인식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를 《한서》 전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어떤 형벌이든 피하려고 자살했다
앞에서 전한시대 사대부들이 궁형보다 죽음을 택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궁형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모든 형벌에 해당했습니다. 목이나 허리가 잘리는 사형도, 머리를 깎이고 쇠고랑을 차고 노역에 처해지는 곤겸성단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대부로서 사마천의 의무도 ‘궁형을 받느니 차라리 사형을 받기’가 아니라 ‘무슨 형태로든 형벌을 받느니 차라리 자살하기’라고 보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한나라의 관리들은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형벌을 받지 않고 자살할 의무이자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런 풍조는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 때도 이미 존재했지만, 전한시대 초 가의라는 인물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욱 강력한 규범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소재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쓰겠습니다.
사형을 궁형으로 대체하는 것은 특혜였다
한편 《한서》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궁형을 받은 관리는 사마천 한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사마천과 같이 대단한 사명감을 지녀 치욕을 무릅쓴 것이 아니었고, 살고 싶다는 당연한 욕망을 가지고 궁형을 자청했으며, 궁형을 받은 뒤에는 환관으로 채용되어 원래 있던 가족과 함께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했습니다.
《고우영의 십팔사략》에서 나온 오리지널 에피소드와는 달리, 전한시대에 궁형으로 사형을 대체할 기회가 언제 어디서나 흔하게 찾아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서》에서 사형 대신 궁형을 받은 관리들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모두 황제가 특별히 허락했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일화를 살펴봅시다.
첫 번째 사례는 《한서》 〈장탕전〉에 나오는 장하입니다. 장하는 무제의 장남 위태자의 총애를 받았는데, 위태자가 무고의 화로 인해 반란을 일으키면서 장하도 여기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장하의 동생 장안세가 황제에게 글을 올려 장하는 사형을 면하고 궁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得下蠶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하·장안세 형제가 평범한 가문 출신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아버지는 무제 시절 승상을 능가하는 권세를 휘두르던 어사대부 장탕이었습니다. 장탕은 말년에 승상의 부하들에게 모함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명예를 지켰습니다. 궁형이 정말로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다면, 이런 가문의 일원인 장하는 당당히 사형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장안세는 도리어 황제에게 청원해서 형이 궁형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설마, 장안세가 형을 미워해서 치욕을 주려고 청원을 올리지는 않았겠지요?
두 번째 사례는 《한서》 〈외척전〉에 나오는 허광한입니다. 무제 시기 제후국이었던 창읍국에서 벼슬을 하던 허광한은 작은 실수를 저질렀는데, 하필이면 황제의 행차라는 큰 행사와 맞물리면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때마침 무제가 조서를 내려 사형 대신 궁형을 받을 사람들을 모집했고, 허광한은 여기에 응모해서 궁형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형을 선고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궁형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궁형을 받는 것도 황제가 기회를 주어야만 가능했던 일인 것입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사형을 궁형으로 대체할 수 있으려면 상당한 특권이나 행운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과연 사형을 선고받았을까?
마지막으로 짚고 갈 것은 사마천이 원래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궁형을 받겠다고 자청해서 목숨을 건졌다는 “상식”입니다. 뜻밖에도 이 상식 또한 《사기》와 《한서》로 뒷받침하기 어렵습니다.
사마천은 《사기》 〈태사공자서〉에서 자신이 이릉의 화를 만나 감옥에 갇혔다고만[幽於縲紲] 고풍스럽게 썼고, 어떤 형벌을 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좀 더 상세한 상황은 《한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마천전〉에서 사마천은 궁형을 집행하는 잠실에 들어갔으며, 〈이릉전〉에서 무제는 사마천을 부형(=궁형)에 처했습니다. 《한서》에서 사마천이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즉, 사마천은 처음부터 사형이 아닌 궁형을 선고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치욕은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이 글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마천은 사형 대신 궁형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궁형을 받을 상황에서 자살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특정 성별의 한계를 넘어
지금까지 《한서》 〈사마천전〉 등의 자료를 통해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전한시대에 궁형을 받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은 어땠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궁형이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을까요? 맞습니다. 단, 어디까지나 목숨보다 고추가 중요하다고 믿는 자들의 세계관 속에서만요.
아가 생각하기에 “사형보다 치욕스러운 궁형” 인식은 특정한 신앙에 근거한 신화에 불과하고, 기원전 1세기의 역사적 상황보다는 20세기 남자들의 인식에 기반을 둔 해석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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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禍莫憯於欲利,悲莫痛於傷心,行莫醜於辱先,而詬莫大於宮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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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上不辱先,其次不辱身,其次不辱理色,其次不辱辭令,其次詘體受辱,其次易服受辱,其次關木索被箠楚受辱,其次鬄毛髮嬰金鐵受辱,其次毀肌膚斷支體受辱,最下腐刑,極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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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毀傷,孝之始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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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死於兵者,不入兆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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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人不能蚤自財繩墨之外,已稍陵夷至於鞭箠之間,乃欲引節,斯不亦遠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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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夫臧獲婢妾猶能引決,況若僕之不得已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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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以口語遇遭此禍,重為鄉黨戮笑,汙辱先人,亦何面目復上父母之丘墓乎?雖累百世,垢彌甚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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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以腸一日而九回,居則忽忽若有所亡,出則不知所如往。每念斯恥,汗未嘗不發背霑衣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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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曰諱被刑為徒不上丘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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緣先祖之意,見子孫被刑,惻怛憯傷,恐其臨祀,不忍歆享,故不上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