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궁항아’의 이름에 얽힌 수수께끼
‘항아’는 과연 피휘 때문에 ‘상아’가 되었나?
‘항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월궁항아’는 서브컬처에서도 곧잘 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항아’는 달에 산다는 여신, 혹은 선녀를 가리킵니다.
이 ‘항아’ 전설의 기원은 한나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전한시대 초기의 제후왕 유안이 문하의 문인들과 함께 편찬한 《회남자》에, 항아가 예의 불사약을 훔쳐서 달로 달아났다는 일화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금 알려진 것 중 가장 오래된 항아 이야기입니다.
현대한국어를 쓰는 우리는 이 달의 여신을 ‘항아’라고 부릅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극에서도 항아의 이름을 들을 수 있습니다. 특히 궁 밖의 일반인들이 궁녀들을 ‘항아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항아는 고향인 중국에서 달을 대표하는 존재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에서 개발한 달 탐사 위성의 이름도 창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자가 다릅니다. 한국어에서는 항아인데, 중국어에서는 상아인 것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가장 흔한 설명은 피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달의 여신의 원래 이름은 항아였는데, ‘항’이 전한 문제 유항의 이름 ‘항’과 발음이 같은 탓에 상아로 바뀌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위키 등지에서도 이 설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의 5대 명산인 오악에 속하는 항산의 이름이 문제의 피휘로 인해 상산으로 바뀐 예가 있으므로, 이 설명은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 소설 《삼국연의》에서 조운이 ‘항산 조자룡’을 칭하지 않고 ‘상산 조자룡’을 칭한 것도 이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아’가 피휘로 인해 ‘상아’로 바뀌었다는 설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아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항아/상아가 최초로 등장한 《회남자》에서 ‘항아’라는 이름을 썼다는 사실을 피휘설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회남자》를 편찬한 유안은 문제의 조카로 문제에 의해 회남왕으로 봉해졌습니다. 문제의 이름을 피휘하기 위해 ‘상아’가 나왔다면, 유안이야말로 ‘상아’를 가장 먼저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확인할 수 있는 《회남자》의 본문에는 ‘상아’가 아닌 ‘항아’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론 후대의 편집 과정에서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유안이 ‘상아’를 썼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상 피휘설은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이뿐만 아니라, 피휘설을 반박한 吴晓东(2021)의 연구에서는 역사음운론을 근거로 삼아 상과 항의 어원이 아예 달랐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피휘설의 전제, 즉 한나라 이후에 ‘항아’가 사라지고 모두 ‘상아’로 바뀌었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확인하기 위해 Chinese Text Project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우선 당나라 때 편찬된 백과사전 《예문유취》에서 상아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항아는 위진남북조 문인들의 글 위주로 열세 번 쓰였습니다. 송나라 때 편찬된 백과사전 《태평어람》에도 상아는 송나라 사람 안연지의 시에 한 번 나온 것이 전부입니다. 즉, ‘항아’는 송나라 때까지 여전히 쓰이고 있었습니다.
| 조대 | 백과사전 | 항아 | 상아 |
|---|---|---|---|
| 당 | 《예문유취》 | 13 | 0 |
| 송 | 《태평어람》 | 9 | 1 |
그렇다고 해서 당송시대에 ‘상아’가 아예 안 쓰인 것은 아닙니다. 시문을 실은 《전당시》와 《전송사》를 보면 항아와 상아를 모두 수십 건씩 찾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당나라 사람 이백은 자신의 시에서 항아도 쓰고 상아도 썼습니다.
| 조대 | 문집 | 항아 | 상아 |
|---|---|---|---|
| 당 | 《전당시》 | 38 | 50 |
| 송 | 《전송사》 | 54 | 38 |
그런데 명청시대의 소설을 보면 항아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유기》에 두 번 나오기는 하지만, 달의 여신 항아가 아니라 항아선자라는 인물을 가리킨 것이고, 달에 사는 여신은 일관되게 상아로 지칭되었습니다. 그 외에 《봉신연의》와 《홍루몽》에서는 상아라는 이름만 나옵니다.
| 조대 | 소설 | 항아 | 상아 |
|---|---|---|---|
| 명 | 《서유기》 | 2 | 11 |
| 명 | 《봉신연의》 | 0 | 8 |
| 청 | 《홍루몽》 | 0 | 9 |
즉, ‘항아’가 ‘상아’로 바뀌어 굳어진 것은 위진남북조와 당송시기가 아니라 명청시기의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현상입니다. 항아/상아 이야기가 ‘항아’로서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아마 그 이전의 일이겠지요.
여담
한반도에서 항아/상아에 대한 기록은 신라시대에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최치원의 〈쌍녀분전기〉에서는 매번 ‘상아의 꾀 많음을 선망하여[每羨嫦娥多計校]’라고 했고, 《삼국유사》 권제5 감통제7 〈월명사도솔가 찬〉에서는 ‘피리 소리 달빛을 흔들어 항아가 멈추네[笛摇明月住姮娥]’라고 했습니다.
참고 문헌
📝 吴晓东, 〈月亮里有兔、蟾蜍、桂而太阳里有乌的神话起源〉, 《中原文化研究》 2021(2), 1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