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포도’를 한자로 쓰는 여러 가지 방법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 ‘포도’라는 한자어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어 ‘포도’는 고유어가 아니라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그 한자는 葡(포도 )와 萄(포도 )입니다. 이 두 한자는 오직 포도를 나타내는 데만 쓰입니다. 포도 전용 한자는 대체 어쩌다가 생겨난 것일까요?

사실 한자 과일이에요. 사과, 포도, 석류, 귤.

💜 포도 한자 표기의 변천

포도가 처음부터 포도 전용 한자인 葡와 萄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고전 한문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포도의 한자 표기로는 최소한 네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1. /

이 네 가지 표기가 시대에 따라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펴봅시다.

1️⃣ 蒲陶: 한나라의 외래어

포도의 한자 표기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것은 《사기》와 《한서》에 나오는1 蒲陶입니다. 蒲(부들 )와 陶(질그릇 ). 그런데 이상하죠? 부들이라는 풀은 포도 덩굴과 닮지 않았고, 질그릇은 포도 열매와 상관이 없습니다.

Typha latifolia
큰부들

왜 이렇게 엉뚱한 한자를 썼을까요? 뜻을 고려하지 않고 소리만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현대한국어에서 영어 ‘pineapple’을 소리나는 대로 한글 ‘파인애플’이라고 적듯이, 고대중국어에서는 서역의 낯선 과일 명칭을 소리나는 대로 한자 ‘蒲陶’로 적은 것입니다. 이 낯선 과일 명칭의 어원은 고대이란어 *budāwa로 알려져 있습니다.2 상고한어(고대중국어) 발음으로 蒲는 [bu], 陶는 [dɑu]인 만큼,3 가능한 한 비슷한 소리로 옮기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 포도가 처음 들어온 것은 전한시대 무제 시기였습니다. 중국 서북쪽의 흉노를 공격하고 싶었던 무제는, 먼 서쪽에 흉노를 적대하는 월지라는 나라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무제는 월지와 연합해서 양쪽에서 흉노를 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고, 이를 위해 장건을 사자로 보내 월지와 동맹을 맺고자 했습니다. 장건은 흉노에 붙잡히는 등 온갖 고생을 했고 월지의 정세가 바뀐 탓에 동맹을 맺지 못했지만, 대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관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이 정보에 포도라는 과일의 존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무제는 대완에 있다는 한혈마라는 좋은 말을 얻기 위해 대완을 침공해서 한혈마와 함께 포도 씨앗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중국에 포도가 전해진 것입니다.

2️⃣ 蒲萄·蒲桃: 포도의 토착화

·

무제의 바람대로 포도는 중국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포도가 중국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한자 표기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蒲(부들 )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두 번째 글자가 바뀐 새로운 버전이 나타났습니다. 《후한서》에서는 蒲萄, 《삼국지》에서는 蒲桃를 씁니다.4

이 변화가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요? 가 생각하기로는 포도가 외래 과일이라는 인식이 점차 약해진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 陶(질그릇 )는 오로지 *budāwa에 상응하는 단어 두 번째 음절의 소리를 표시하기 위해 이용된 글자였습니다. 하지만 ‘포도’라는 단어가 중국어에서 자리를 잡아갈수록 중세중국어 사용자들은 어원을 잊어버리고 포도를 고유어처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마치 현대한국어 사용자들이 포도를 고유어로 인지해서, 葡萄라는 한자어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것처럼요). 그러다 보니 ‘과일 이름에 왜 질그릇이 들어있지?’ 하는 의문과 거슬림을 느끼고 더 과일다운 표기를 찾고자 했겠지요.

🌿 蒲萄: 초두머리의 재구조화

1️⃣蒲陶에서 陶(질그릇 )의 의미를 의식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蒲(부들 )의 초두머리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蒲(포) 역시 원래는 陶(도)와 마찬가지로 의미 없이 소리만 표시하기 위해 이용된 글자였지만, 중세중국어 사용자들은 포도가 덩굴식물이기 때문에 풀을 가리키는 부수가 들어갔다고 유추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陶(질그릇 )의 부수를 바꾸어 좌부변을 떼고 초두머리를 붙여서 萄(포도 )라는 새로운 한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것이 포도 전용 글자의 시작입니다.

이 蒲萄는 당나라의 백과사전 《예문유취》와 북송시대의 백과사전 《태평어람》의 포도 파트에서 표제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심지어 송나라 이후 원나라 때까지도 쓰여서, 《고려사》에 기재된 포도 6건 중 5건이 이 蒲萄입니다.56

🍑 蒲桃: 접사 의 생산성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들은 1️⃣蒲陶의 어색함을 해결하기 위해 陶(질그릇 )를 발음이 같은 桃(복숭아 )로 바꾸어 쓰기도 했습니다. 桃()는 기본적으로 복숭아라는 구체적인 과일을 가리키는 한자지만, 과일 일반을 뜻하는 접미사로도 쓰였습니다. 한국어 앵두(<앵도), 자두(<자도), 호두(<호도) 등에도 桃()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중국어의 시기에 전한시대 사람 사마상여는 〈상림부〉에서 ‘앵도포도’로 두 ‘도’를 구별했었습니다. 하지만 중세중국어를 쓰는 사람들은 ‘포도’의 ‘도’를 ‘앵두’와 같은 접미사로 바꾸어서 포도의 과일 됨을 확실히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참고로, 유럽어에서는 복숭아 대신 사과가 과일의 대표로 활용되어 새로운 과일의 명칭에 들어간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 🍍 영어 pineapple: 소나무 사과
  • 🥔 프랑스어 pomme de terre: 땅에서 난 사과
  • 🍅 이탈리아어 pomodoro: 금빛 사과

3️⃣ 葡萄: 자형 동화

포도라는 과일이 중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소리만 살려서 1️⃣蒲陶로 표기했고, 포도가 정착된 후에는 뜻을 고려해서 2️⃣蒲萄·蒲桃로 표기했습니다. 이제 소리와 뜻이 모두 반영되었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명청시대 사람들은 초두머리가 통일된 2️⃣蒲萄에 만족하지 못하고, 초두머리 아래에 있는 글자의 모양까지 닮게 만들었습니다. 浦에서 삼수변을 떼고 음을 표시하는 甫를 꺼내 쌀포몸 안에 집어넣어 匍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 초두머리를 붙임으로써 포도 전용 글자가 葡(포도 )까지 완성됩니다. 이제 포도는 명나라 소설 《서유기》 및 《금병매》, 청나라 소설 《홍루몽》에서 모두 3️⃣葡萄로만 등장합니다.

도대체 왜 멀쩡한(?) 蒲(부들 )를 葡(포도 )로 바꾸었을까요? 시각적인 효과를 의도했을수도 있고, 의미상 창포 등에 사용되는 蒲(부들 )와 구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양이든 의미든, 어떤 규칙적인 패턴을 만드는 데서 쾌감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1️⃣蒲陶 → 2️⃣蒲萄 → 3️⃣葡萄 두 글자는 마치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서로 닮아 버린 부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가 3️⃣葡萄를 한자로 쓰려다가 甫(클 )와 缶(장구 )의 모양을 잊어버렸을 때도, 초두머리 아래 쌀포몸 안에 뭔가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 들어 있다는 것은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艹⿹勹포’와 ‘⿱艹⿹勹도’로 그렸습니다. 뜻밖에도 아래 사진이 널리 퍼졌고, 한중일 3국에서 모두 재미있게 즐긴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1. Scripta Sinica에서 중국 정사 본문에 등장한 ‘포도’를 세어 본 결과는 아래 표와 같습니다.

    역사책 蒲陶 蒲萄 蒲桃 葡萄
    사기 5 1 0 0
    한서 9 0 0 0
    후한서 0 3 0 0
    삼국지 0 0 1 0
    진서 4 0 2 0
    송서 1 0 0 0
    남제서 1 0 0 0
    양서 2 0 0 0
    위서 2 0 0 0
    북제서 0 0 5 0
    주서 0 0 1 0
    남사 0 0 3 0
    북사 0 0 7 0
    수서 2 0 0 0
    구당서 0 7 0 0
    신당서 8 4 0 0
    구오대사 0 1 0 1
    신오대사 0 0 1 0
    송사 3 3 2 0
    요사 0 0 0 2
    원사 0 29 1 4
    명사 0 2 0 6
    청사고 0 0 0 34

  2. Laufer, B. (1919). Sino-Iranica. Chicago. 225. 

  3. 王力. (1999). 《漢字古今音表》(修訂本). 北京:中華書局. 李珍華、周長楫編撰. 《漢典》 桃的音韻方言에서 재인용. 

  4. 위키백과 한국어 ‘포도’ 문서에서는 2️⃣蒲萄가 《사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Chinese Text Project 라이브러리에서 볼 수 있는 《사기》의 17개 판본 중 오직 두 개7 버전에만 萄(포도 )가 쓰였고, 《흠정사고전서》 등 다른 버전에서는 陶(질그릇 )만 쓰였습니다. 그래서 아(雅)는 CTP에서 검색된 《사기》의 萄의 경우 후대의 필사·편집 과정에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5. 《고려사》에서는 포도가 여섯 번 언급되었습니다.

    권30 충렬왕 11년(1285) 8월 帝賜王蒲萄酒
    권31 충렬왕 22년(1296) 3월 太后賜蒲萄酒二器
    권31 충렬왕 23년(1297) 3월 帝賜蒲萄酒
    권31 충렬왕 24년(1298) 9월 帝賜王蒲萄酒
    권32 충렬왕 28년(1302) 2월 帝賜王葡萄酒
    권32 충렬왕 34년(1308) 2월 帝賜王蒲萄酒

  6. 나무위키 ‘포도’ 문서에서는 “포도를 표기하는 한자가 ‘葡萄 (중고한어 발음으로 /*buo dau/)’로 통일되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에 전파되었다”라고 하였으나, 2️⃣蒲萄 표기를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이 서술은 틀렸습니다. 

  7. 顧頡剛領銜點校本 1959年中華書局出版, 《武英殿二十四史》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