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승상부 사람들

승상부 사람들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 질문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답변

1. 삼국시대 승상의 가족은 승상부에 거주했나요?

음… 대략 6년 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1)〉이라는 글을 썼을 때는 전한 시대 기준으로 승상의 가족이 당연히 승상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고, 연구자마다 의견이 달라서 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근거가 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찾아봅시다.

안전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승상과 가족들은 승상의 집, 즉 “”에 살았습니다. 문제는 승상부승상사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입니다. 가 찾기로는 승상사가 승상부 내부에 있었다는 주장외부에 따로 있었다는 주장이 모두 존재합니다.

  • 승상사가 승상부 안에 있었다는 주요 근거(宋杰 2010): 《한서》 〈조광한전〉에서 조광한은 승상부에 쳐들어가서 승상의 부인을 취조했습니다.
  • 승상사가 승상부 밖에 있었다는 주요 근거(王培华·戴国庆 2019): 《사기》에서 소하는 상국부가 있었음에도 자기의 개인 저택을 (일부러)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승상직이 폐지된 후한 시대를 지나서 승상직이 부활된 후한 말과 삼국 시대로 와도 여전히 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대체로 “승상부”라고 하면 승상의 관청을 가리키지만, 어느 나라든 승상의 사적인 가족사에 관한 언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 승상부에 살았다는 근거도 살지 않았다는 근거도 찾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국지》 전체에서 “府”(부)와 “舍”(사)를 각각 검색해서 삼공에 관한 용례까지 검토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변별이 될 만한 사례가 하나 있었습니다. 위지5 〈문소견황후전〉 주석의 《위략》에 따르면 조비가 원소의 집[舍]에 들어가서 원희의 부인이었던 견후를 만났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나오는 주석의 《세어》에서는 조비가 원상의 에 들어가서 견후를 발견합니다. 이 두 기록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조비가 견후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면, 부 안에 사가 있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략》과 《세어》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뭔가 찜찜하지요……

이 찜찜함을 뒤로 하고 다른 단서를 쥐어짜 봅시다. 촉지5 〈제갈량전〉에서는 제갈량이 유선에게 올렸던 표문으로 “성도에 뽕나무 800그루와 밭 15이랑이 있어서 남은 가족들이 넉넉하게 먹고 살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집은?’이었습니다. 제갈량이 “자택 한 채”라는 네 글자만 덧붙여 주었어도 가족들이 승상부 밖의 자택에 살았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을 텐데, 집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해서 바로 사택 없이 승상부 안에 살았다고 추측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안타깝습니다.

2. 승상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승상의 가족들이 살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승상부 속관들과 노비들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한 시대 승상부 속관 인원

한관구의》에 따르면 전한 시대 승상부 소속 관리는 무제 원수 6년 기준으로 총 382명입니다.

후한 시대 삼공부 속관 인원

《후한서》 〈백관지〉에서 규정하고 있는 삼공부 소속 관리는 삼공 본인들을 제외하고 총 188명입니다.

  • 태위
    • 장사 1인
    • 연· 24인
    • 영사~어속 23인
  • 사도
    • 장사 1인
    • 연· 31인
    • 영사~어속 36인
  • 사공
    • 장사 1인
    • 연· 29인
    • 영사~어속 42인

단, 조조와 제갈량의 경우는 승상이 전쟁에 출진했기 때문에 더 많은 속관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가령 승상의 비서실장격인 장사는 원래 1명이 원칙이었지만, 승상을 따라 전장에 나가는 장사 외에도 수도의 승상부에 남아서 업무를 수행하는 유부장사를 따로 두었습니다.

3. 기타: 승상부의 규율

전한 시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한구의》에 승상부의 규율에 관한 내용이 어느 정도 나옵니다. 예전에 〈승상부와 어사부의 생활 (2)〉에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 승상의 수레는 양쪽 바람막이를 검게 칠하고, 말을 타고 시종하는 자들은 붉은 비단옷을 입는다.
  • 승상이 출입할 때 ·는 사제 관계와 같은 예로 뵙는다. 군신 관계가 아님을 보이는 것이다.
  • 승상이 업무 보고를 받는 곳을 황각이라고 한다. 황각에는 종과 방울을 달지 않는다.
  • 이 사무로 승상을 접견해야 하는 경우, 공문[傳]을 발송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부가 해당 부서에 데리러 온다. 연이 승상을 뵐 때는 신발을 벗고, 승상이 자리에 앉은 뒤 절을 한다.
  • 승상부 대문에는 행랑이 없다. 산두릅나무판으로 둘레 3척짜리 현판을 만드는데, 백토를 바르거나[不堊色] 테를 두르지 않는다[不郭邑??]. 현판에는 승상부라고 쓴다.
  • 승상부 관노비는 물시계로 기상·취침 시각을 확인하고, 시간을 알리는 북을 치지는 않는다.
  • 관리들은 조회를 열지 않고, 아침에 출근 기록만 하면 된다.
  • 관리가 처음 임명되어 사무를 볼 때, 문에서 방문객을 맞는 종의 이름을 묻고, 둘레 1척짜리 목판으로 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종의 이름을 불러서 용건을 말한다.

참고 문헌


이 게시물은 《창작자와 오타쿠를 위한 삼국지 100문 100답》에 응모된 질문에 대한 답변 예시로 작성했습니다. 평소에 삼국지 썰을 풀다가 궁금하셨던 점이 있으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여 질문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