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삼국지 정사와 연의의 삼고초려 비교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7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나본이 역사책 《삼국지》를 소설 《삼국지통속연의》로 개작할 때 특히 많이 각색된 인물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제갈량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제갈량 vs. 주유, 누가 깃털 부채의 원조인가?〉라는 포스트에서 언급했듯이, 제갈량의 전형적인 아이템으로 통하는 윤건(綸巾)과 우선(羽扇)부터가 연의의 시대에 부여된 설정입니다.

이런 각색은 연의에서 제갈량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삼고초려 이벤트에서도 나타납니다. 보통 삼고초려라고 하면 유비가 제갈량을 극진히 받들어 모시는 모습을 상상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미지가 연의에서 창조된 것입니다. 《삼국지통속연의》 제38회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어렵게 대면하고 처음으로 꺼낸 말을 들어 봅시다.

한나라 황실의 끄트머리에 속한 탁군 출신의 어리석은 남자가 오래 전부터 선생의 고명하신 존함을 듣고 천둥 소리처럼 귀가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漢室末冑、涿郡愚夫,久聞先生大名,如雷貫耳。]

유비는 첫 만남부터 자기를 “탁군 출신의 어리석은 남자”로 낮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대화 내내 자신을 이름으로 칭해서 낮추고 제갈량을 “선생”이라고 높여 부릅니다.

그렇다면 정사에서는 유비가 제갈량을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호칭어를 썼을까요? 《삼국지》 촉지5 〈제갈량전〉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고(孤)가 품성과 능력을 헤아려 보지도 않고 천하에 대의를 약속하고자 했는데 지혜가 얕고 책략이 모자란 탓에 결국 실패해서 오늘에 이르렀소. 하지만 마음에 품은 뜻이 아직 남아 있으니, 군(君)께서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 주시겠소? [不度德量力,欲信大義於天下,而智術淺短,遂用猖獗,至于今日。然志猶未已,謂計將安出?]

정사의 유비 역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처음 만난 젊은 일반인에게 “군”이라는 존칭을 쓰는 등 상당히 정중한 태도를 취했지만, 연의와 달리 1인칭으로 “고”를 써서 자신이 군주의 위치에 있음을 분명히 못박았습니다. 제갈량을 스승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신하로서 예우한 것입니다.

사실 제갈량이 유비를 찾아가지 않고 도리어 유비에게 자신을 찾아오게 만든 것만 하더라도 상당히 도도한 태도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서》 〈주박전〉에 나오는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전한시대 말 주박이 낭야군 태수로 처음 부임하자 하급 관리들은 아무도 관청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낭야군은 원래 향토 유교맨들의 입김이 센 지역으로, 아전들은 새로운 태수가 지식인인 자기를 몸소 찾아와서 일을 해 달라고 청해야 출사하는 관행이 있었습니다. 유학을 싫어한 주박은 이 관행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이 기회로 유교맨들을 다 해고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갈량의 고향도 낭야군입니다. 아무래도 낭야군 출신 지식인들에게는 어떤 “곤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 년도 더 지난 후세 사람인 나본은 이런 곤조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군주가 (예비)신하를 찾아와서 예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어차피 픽션을 쓴다면 군주가 군주의 지위를 버리고 지식인을 스승으로 떠받드는 정도는 되어야 성에 찼나 봅니다. 한나라 사람 제갈량에게는 실제로 유비가 찾아왔지만, 원나라에서 몽골의 지배를 받던 한족 지식인에게 칸이 방문할 리는 만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시험에도 불합격해서 등용될 기회를 잃은 나본이 자신의 사심을 가득 담아 삼고초려의 장면을 과장하고 로망을 펼쳤던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