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제갈량 vs. 주유, 깃털 부채의 원조는?

동진 《어림》, 북송 《적벽회고》, 원대 《격강투지》의 기록을 종합하여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서론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충성스러운 관료로 나왔다면, 《삼국연의》에서는 제갈량에게 어느 정도 세속을 초월한 신선스러운 이미지를 덧붙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런 면모는 사륜거, 학창의, 윤건, 백우선과 같이 범상치 않은 아이템에서도 드러납니다. 이것들은 《삼국지》에 나온 것이 아니고, 《삼국연의》에서 등장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삼국연의》가 최초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제갈량 하면 떠오르는 깃털 부채가 원래 주유의 아이템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설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삼국연의》 이전에 제갈량이나 주유의 깃털 부채를 묘사한 기록이 담긴 문헌을 찾아보고, 각 문헌의 기록이 《삼국연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측하고자 합니다.

《어림》, 동진의 야사: 명사의 필수품이 된 깃털 부채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림》이라는 책에서 제갈량이 깃털 부채를 가지고 등장하는 것이 현재 찾을 수 있는 가장 이른 기록입니다. 해당 본문을 살펴봅시다.

《어림》에서 인용. 제갈무후와 선황이 위수 강변에서 전투를 벌이고자 할 때였다. 군복을 입고 사무를 보던 선황은 사람을 시켜 무후의 모습을 정찰하게 했다. 무후는 흰 수레를 타고 갈건과 깃털 부채 차림으로 전군을 지휘했고, 모두가 그의 명령을 따랐다. 선황이 이를 전해 듣고 감탄하였다. “명사라고 할 만하구나!”
《語林》曰:諸葛武侯與宣皇,在渭濱,將戰,宣皇戎服蒞事,使人視武侯,乘素輿,葛巾毛扇,指麾三軍,皆隨其進止。宣皇聞而歎曰:可謂名士矣。

위수 강변에서 전투를 벌이고 사마의가 제갈량을 정찰했다면 오장원에서의 일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그렇다면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인 셈입니다. 북벌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무장을 하지 않았다니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마의가 ‘명사’라고 감탄한 것을 보면, 《삼국지》의 세계에서 명사들은 군복을 입고 무장을 갖추면 품격이 떨어진다고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원소가 위험한 전장에서 투구를 안 썼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여기서 부채는 명사의 ‘가오’를 위한 아이템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어림》은 삼국 시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진 때의 책이라고 알려져 있고, 《수서》 〈경적지〉에 따르면 총 20권짜리 책이었다고 합니다. 원본이 이미 소실되어 현재 남은 것이 위작일 가능성을 의심할 수도 있지만, 이 일화는 당나라 때 편찬된 《예문유취》에 인용되었으니 아래에서 살펴볼 북송 때보다는 명백하게 이른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제갈량이 주유보다 깃털 부채를 먼저 들었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결론을 내리자면… 잠깐, 이렇게 명백한 근거가 있는데 주유는 도대체 어쩌다가 부채 주인의 후보에 올랐을까요? 그것은 ‘소동파’로 잘 알려진 북송대의 문인 소식의 작품에서 비롯했습니다.

《적벽회고》, 북송의 노래: 윤건과 한 세트를 이루는 깃털 부채

앞서 《어림》에서는 깃털 부채를 든 제갈량이 갈건을 썼었는데, 소식의 〈적벽회고: ‘염노교’ 곡조에 따라〉[念奴嬌赤壁懷古]에서는 주유가 깃털 부채를 들고 윤건을 쓴 채로 등장합니다.

아득히 생각하니 그 해에 공근은 소교가 갓 시집왔고 영웅의 풍모 드날렸겠네. 깃털 부채 윤건 쓰고 담소하는 사이에 돛대도 적병도 연기가 되어 사라지누나.
遙想公瑾當年,小喬初嫁了,雄姿英發。羽扇綸巾,談笑間、檣虜灰飛煙滅。

여기에서 깃털 부채와 윤건이 결합했다는 점에 주목해 봅시다. 이것은 《삼국연의》에서 제갈량의 모습을 묘사하는 상용구와 일치합니다. 즉, 《삼국연의》의 ‘우선윤건’은 《어림》의 기록보다는 〈적벽회고〉의 묘사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삼국연의》에서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은 〈적벽회고〉의 이미지일 수도 있습니다.

‘우선윤건’으로 주유를 묘사한 작품은 〈적벽회고〉 이외에도 존재합니다. 〈적벽회고〉가 실린 《전송사》 전문에서 검색해 보면, 주유를 가리키는 단서가 명백하게 주어진 경우가 적어도 두 건 있습니다.

為大喬、能撥春風,小喬妙移箏,雁啼秋水。柳怯雲松,更何必、十發梳洗。道羽扇,那日隔簾,半面曾記。

應自笑,周郎少日,風流羽扇綸巾

이외에도 장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주유를 가리키는 듯한 표현이 더 있었지만, 송사를 정확하게 해독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서 ‘소교’, ‘주랑’ 등 누가 보아도 확실한 것만 세었습니다. 반면, 제갈량을 가리킨다고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제가 못 찾은 단서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까지 보면 송대에 주유의 캐릭터와 깃털 부채라는 아이템이 결합했다고 상상해도 큰 오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 ‘우선윤건’이 주유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신선의 풍모를 나타내기 위한 아이템으로 자주 나오고, 주로 문인들끼리의 자기모에화에 쓰입니다. 누구의 물건인지를 잠시 접어두고 깃털 부채 자체의 이미지만 놓고 보면 송대의 가사들이 《삼국연의》와 더 비슷해 보입니다. 연의의 제갈량은 사교계의 명사라기보다는 인간을 초월한 신선 같은 면이 있지요.

정리하면, 송대에 형성된 ‘윤건을 쓰고 깃털 부채를 들고 담소하는 미모의 모사’ 이미지는 삼국지 이야기에서 주유의 캐디에 활용되었습니다. 《삼국연의》에서 차용하고자 했던 캐릭터의 모습도 이런 이미지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해서 주유에서 제갈량에게로 옮겨지게 되었을까요?

《격강투지》, 원대의 희곡: 제갈량의 아이템으로 바뀐 깃털 부채

나본의 《삼국연의》는 소설 《전상평화삼국지》(삼국지평화)와 희곡 《격강투지》 두 작품을 기반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선 원대에 정립된 《전상평화삼국지 지치신간》에는 부채[扇]나 건[巾]이라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았으므로, 《양군사격강투지(두 군사가 장강을 사이에 두고 지혜를 다투다)》[兩軍師隔江鬥智]가 수록된 《전원곡》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검색해 보니 깃털 부채 및 윤건이 나온 것은 《격강투지》 한 작품뿐이고, 여기서는 명백하게 제갈량의 아이템이었습니다.

깃털 부채에 윤건을 착용한 이가 있으니 곧 공명이라.
羽扇綸巾孔明

군중에서 산가지를 가지고 책략을 세우고 항상 깃털 부채에 윤건을 착용하였다. (제갈량이 자기를 소개하는 대사)
在軍中運籌決策,長則是羽扇綸巾。(제갈량의 대사)

‘우선윤건’의 이미지는 그대로인데, 해당하는 인물이 주유에서 제갈량으로 바뀐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격강투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 이 작품에서는 주유를 철저하게 폄하하고 있습니다. 주유가 제갈량의 상대도 못 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장비의 계략에도 넘어가서 분을 참지 못하고 화살 맞은 상처가 터져서 중태에 빠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면은 손 부인이(!) 곧 죽게 될 주유를 조롱하는 노래로 끝나기까지 합니다. 《삼국연의》의 ‘기생유 하생량’이 점잖아 보일 지경입니다.

《격강투지》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주유를 깎아내리고 그만큼 제갈량을 추어올리는 것을 이 작품의 주요 설정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우선윤건’을 난데없이 빼앗아서 제갈량에게 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삼국연의》는 《격강투지》를 참고하면서 이런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했고요.

결론

결국 기록을 놓고 보면 제갈량과 주유 두 사람 중에서 깃털 부채를 먼저 들고 나오는 사람은 제갈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문학 작품에서는 깃털 부채와 윤건이 한 세트를 이루어 주유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속세인을 초월한 고고한 이미지는 주유의 것이었는데, 《격강투지》에서는 이 이미지를 제갈량에게 옮겨 씌웠습니다. 그리고 이 묘사가 《삼국연의》의 제갈량 묘사에 영향을 직접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