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한나라의 황후들

한나라의 황후들

황후와 외척의 탄생 및 시행착오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다들 알고 계시듯이 황후皇后는 황제皇帝의 정실부인을 말합니다. 하지만 황제라는 지위가 생겨났을 때부터 바로 황후가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황제는 진 시황이지만, 그의 부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진의 2세 황제 호해, 3세 황제 자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후가 되는 것은 한 태조 고제 유방의 정실부인 여씨입니다. 즉, 서한은 중국에서 황후가 존재했던 첫 번째 왕조입니다.

물론 황후가 완전히 새로 생겨난 개념은 아닙니다. 황제에 대응하는 천자는 주나라 때에도 존재했고, 주나라의 왕들에게는 왕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나라의 왕후와 한나라의 황후가 어떻게 달랐을까요? 봉건제를 실시한 주나라에서는 왕이 봉건 제후의 딸을 왕후로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외척’이 존재했다고 해도 주나라 직할지가 아닌 ‘외국’에 있었습니다. 반면, 한나라에서는 ‘토사구팽’과 오·초 7국의 난 이후로 중국 전역을 황제가 직접 다스렸으므로 중국 내에서는 ‘외국’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오랑캐’의 땅에서 임금의 부인을 데려왔을 리도 없으니, 황후는 왕후와 달리 국내에서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후의 가문이 황제의 중앙 통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내의 외척이 된 것입니다.

외척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 채로 황후 제도를 시작하게 된 서한에서는 그만큼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서한의 황후들은 대부분 끝이 안 좋습니다. 아래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한에서 살해·폐위·멸족을 면한 황후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황제 황후 외척 출신
고제 고후 여아후 최초의 황후.
혜제 장씨(혜제 사후 폐위, 멸족) 고후 여씨 가문.
소제들 여씨(문제 즉위 후 폐위, 멸족) 고후 여씨 가문.
문제 효문황후 두씨  
경제 박씨(폐위) 효문태후 박씨 가문.
  효경황후 왕씨  
무제 진씨(폐위) 장공주 유표의 딸.
  무사황후 위자부(폐위, 멸족)  
소제 효소황후 상관씨(멸족)  
선제 공애황후 허평군(독살)  
  곽성군(폐위, 멸족) 효소황후 상관씨의 이모. 대사마대장군 곽광의 딸.
  공성태후 왕씨  
원제 효원황후 왕정군  
성제 허씨(폐위) 효선공애황후 허씨 가문.
  조비연(성제 사후 폐위)  
애제 부씨(애제 사후 폐위) 효원소의 부씨 가문.
평제 왕씨(서한 멸망) 효원황후 왕씨 가문. 안한공 왕망의 딸.


표를 자세히 보면, 황후 중 절반가량이 기존의 외척 가문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외척은 현재 황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외척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권세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는 다음 황제와도 혼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태후나 공주가 자기 가문의 여성을 황태자와 정략결혼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표를 좀 더 자세히 보면, 외척 출신의 황후는 모두 폐위되는 결말에 이르렀습니다. 황태자가 황제로 즉위해서 자기 세력이 생기고 나서는 억지로 맺어진 황후를 내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금옥장교’ 고사로 잘 알려진 무제의 첫 황후 진씨입니다. 진씨는 무제의 고모인 장공주 유표의 딸이었으므로 무제의 사촌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장남도 아니었던 무제가 황태자로 옹립될 수 있었던 것부터가 장공주 유표의 지원 덕분이었으나, 무제는 황제가 된 뒤 가희 출신인 위자부에게 반해서 황후 진씨를 폐위시키고 말았습니다. 무제의 고모이자 장모인 장공주는 황제가 자기 은혜를 저버렸다고 분노하지만 황제의 결정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천한 집안의 새 황후는 끝까지 잘 되었을까요? 진 황후가 폐위되고 나서 새로 황후가 된 위자부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위자부는 무제의 장남을 낳고 동생 위청과 조카 곽거병이 흉노 공격에 큰 공을 세우면서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위청이 죽고 나서는 무고의 화를 겪고 본인과 아들이 자살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 전체가 멸족당했습니다. 결국은 원래 가문이 어떠했든지 해를 입는 결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살해·폐위·멸족을 면한 황후라고 해도 완전히 편안할 수는 없었습니다. 효문황후 두씨는 조카 두영이 살해당했고, 효경황후 왕씨는 오빠 전분의 작위가 끊겼으며, 효원황후 왕씨는 조카가 왕망이었습니다. 유일하게 화를 입지 않은 공성태후 왕씨의 경우 애초에 가문이 권력을 잡지 못했습니다. 서한에서 외척이 되어서 특별히 좋을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편이 너무 암울하게 끝나버렸어요! 2편에서는 후한의 황후와 외척들에 대해 간략하게 다루고, 3편에서부터 좀 더 구체적인 개인의 이야기나 상세한 제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