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는 그 술

구온춘주에 관하여 한국어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오타쿠의 망상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1. 삼국지 아이템으로서의 구온춘주와 그 출처

구온춘주九醞春酒는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술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지 팬덤 내에서 꽤 알려져 있고,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도 종종 활용되는 아이템입니다.

그런데, 이 술의 이름을 《후한서》나 《삼국지》 같은 역사서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구온춘주’라는 네 글자는 6세기의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 권7 제66 〈분국병주笨麴并酒〉에 소개되었고, 《전삼국문全三國文》에 〈주상구온주법奏上九醞酒法〉(구온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상주문)이라는 제목의 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화서국 2020년판 《조조집》에도 나옵니다.

臣縣故令南陽郭芝,有九醞春酒。法用面三十斤,流水五石,臘月二日清麴,正月凍解,用好稻米,漉去曲滓,便釀法飲。曰譬諸蟲,雖久多完,三日一釀,滿九斛米止。臣得法釀之,常善;其上清滓亦可飲。若以九醞苦難飲;增為十釀,差甘易飲,不病。今謹上獻。

가 최근에 《조조집》을 산 김에 이 글을 찾아서 한국어로 옮겨 보았습니다. 문맥상 추가한 내용은 대괄호 안에 넣었고, 후술할 내용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별도의 색깔로 표시했습니다.

신의 고향에서 현령을 지낸 남양 사람 곽지에게 구온춘주가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쌀가루 30근과 흐르는 물 5석으로 납월(섣달, 음력 12월) 2일에 누룩을 담가 정월(음력 1월)에 해동하고, 질 좋은 볍쌀을 쓰고 누룩 찌꺼기를 걸러내어 [밑술을] 빚어, 법도에 따라 마시는 것입니다. 벌레에 비유하자면 오래 걸리더라도 끝을 보는 것으로, 사흘에 한 번 [쌀 1곡을 넣어] [덧술을] 빚기를 쌀 9곡을 채울 때까지 반복합니다. 신이 이 방법으로 술을 빚어서 항상 성공했는데, 윗부분은 맑고 [바닥에 가라앉은] 지게미도 맛있습니다. 만약 아홉 번 담갔을 때 맛이 써서 마시기 어렵다면, 양조 횟수를 열 번으로 늘렸을 때 어느 정도 달아지고 마시기 쉬워지며 병에 걸리지 않게 해 줍니다. 지금 삼가 바칩니다.

(오역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드립니다. 특히 ‘曰譬諸蟲,雖久多完’의 의미를 해독하기 어려웠어요… 벌레가 야금야금 먹어들어가는 것으로 상상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벌레를 제거해야 한다는 해석도 보았는데, 그 해석을 따르자니 譬와 雖가 마음에 걸립니다.)

2. 소소하게 와전된 사실

한국어 웹에서 구온춘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구글에서 ‘구온춘주’를 검색하면 나무위키 문서가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것은 놀라울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문서를 클릭해서 읽어 보면, 2021년 9월 3일 r18 기준으로 틀린 사실이 몇 군데 나옵니다. 사실 이것도 놀라울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놀라지 않았더라도 놀란 척해야 합니다.

2.1. 조조의 고향

먼저 나무위키 문서의 2장 첫 번째 문단을 살펴봅시다.

조조가 헌제에게 바쳤다고 알려진 술로 제민요술이라는 책에 따르면 건안 연간에 헌제에게 이 술을 바치면서 만드는 법을 아뢰었는데, 그 내용은 자신의 고향인 남양에서 곽지가 만들었다고 하면서 술을 만드는 법이 나와있다. https://namu.wiki/w/%EA%B5%AC%EC%98%A8%EC%B6%98%EC%A3%BC?rev=18

가장 명백한 오류는 리그베다 위키에서 2013년 2월 18일에 생성된 r1판에서부터 이어지는 “자신의 고향인 남양에서 곽지가 만들었다고 하면서”입니다. 이 문장은 8년이 더 지난 현재까지 수많은 편집자를 거치면서 한 번도 수정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가 알기로는 ‘臣縣故令南陽郭芝’에서 ‘縣’과 ‘故’의 순서를 바꾸고 그 뒤에 나오는 ‘令’을 지워야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臣縣故令’는 ‘신의 고향 현의 옛 [현]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조의 고향이 남양이라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삼국지》에서 조조의 일대기를 담고 있는 위지1 〈무제기〉는 “태조 무황제는 패국 초현 사람이다.”로 시작합니다. 《후한서》 〈군국지〉에 따르면 패국은 예주에 속한 제후국입니다. 그러나 남양군은 형주 소속이므로, 조조가 한 사람이고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면 남양 사람이 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조조가 남양으로 이주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南陽郭芝’는 ‘남양 사람 곽지’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양은 초현에서 현령을 지낸 곽지의 고향일 뿐이고 조조의 고향에서 만드는 구온춘주와는 무관할까요? 이 점에 대해서는 나무위키 문서의 작은 오류를 살펴보고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2.2. 구온춘주 빚는 방법

두 번째 문단은 구온춘주를 빚는 방법입니다.

만들 때 누룩 20근을 흐르는 물 5섬에 쓰고 섣달 2일에 누룩을 담궜다가 정월에 해동하며, 좋은 쌀을 쓰고 누룩 찌꺼기에 잘 걸러낸다. 3일에 한 번씩 술밥을 넣으면서 아홉 번이 되면 그친다. https://namu.wiki/w/%EA%B5%AC%EC%98%A8%EC%B6%98%EC%A3%BC?rev=18

첫 번째 문제는 ‘누룩 20근’입니다. 나무위키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어 웹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온춘주 관련 문서의 상당수가 누룩의 양을 20근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민요술》과 《전삼국문》에는 모두 ‘三十斤’으로 나옵니다. 판본의 차이일 수도 있으나 양조법에서 재료의 분량은 매우 중요하므로 특히 필사에 신경을 썼을 것이고, 적어도 아가 찾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二十斤’이라고 적힌 문헌이 없었습니다. 20근은 아마 바이두 백과의 九酝春酒 문서에서부터 잘못 퍼진 것 같습니다. 나무위키 문서의 첫 번째 문단에 “제민요술이라는 책에 따르면”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제민요술》 본문을 확인하고 쓴 것은 아닌 듯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아홉 번이 되면 그친다’입니다. 구온춘추가 아홉 번 덧술해서 만들어지는 술이라는 것은 사실이나, 《제민요술》 원문에서 해당하는 부분은 ‘쌀 9석을 채우면 그친다’입니다. 나무위키 편집자들이 재료의 분량을 누락시켰습니다.

2.3. 구온춘주와 구징궁주의 관계

나무위키 문서의 이하 문단에서는 구온춘주에 대한 서술과 구징궁주古井贡酒에 대한 서술을 혼합하고 있는데, 구징궁주는 근세 이래의 증류주이므로 이 포스트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3. 구온춘주 진상의 의의

지금까지 나무위키 문서의 구온춘주 문서에서 잘못된 내용을 《제민요술》 〈분국병주〉의 해당 부분과 대조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아가 고의로 숨긴 사실이 있습니다. 구온춘주와 연관된 내용이 조조의 〈주상구온주법〉 외의 다른 시대의 기록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다른 시대의 기록이라면 삼국지 팬에게는 관심이 덜 갈 수 있겠지만, 이 기록을 통해 조조가 헌제에게 구온춘주를 진상한 배경을 더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영업해 보겠습니다.

3.1. 구온춘주가 조조의 고향의 술일까?

나무위키 문서의 네 번째 문단에서는 흥미로운 주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각에는 조조가 좋은 술로 황제를 홀렸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고장 사람들은 조조가 천자의 권세를 남용할 만큼 입지가 튼튼했기에 굳이 그럴 이유는 없으며, 단지 고향의 술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고 주장한다. 사실 정사를 살펴보면 조조는 이미 하늘을 찌르는 권력의 소유자였기에 굳이 황제에게 술로 호감을 살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즉 역사상 뛰어난 시인으로서 면모나 손자병법의 주석을 다는등 병법가로서도 유명했던 조조의 다재다능함이 술 빚기까지 미쳤던 것뿐. https://namu.wiki/w/%EA%B5%AC%EC%98%A8%EC%B6%98%EC%A3%BC?rev=18

과연 조조가 자기 고향의 술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황제에게까지 권한 것일까요? 다른 기록을 더 찾아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선, 구온九醞이라는 술 이름은, 조조보다 앞서 살았던 동한 중기의 사람 장형이 쓴 〈남도부〉에도 나옵니다. ‘구온’과 ‘구온춘’이 서로 별개의 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전삼국문》의 편찬자들이 조조가 ‘구온춘주’를 올리는 글의 제목을 〈주상구온주법〉이라고 지어 ‘춘’을 생략한 것을 보면 두 이름이 같은 술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더라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남도부〉에서 다루는 ‘남도’가 남양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양의 화려함과 번성함을 찬양하는 작품에서 ‘구온’이 쓰인 만큼, 동한 중기에 구온주가 남양을 대표하는 명주였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남양군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조에게 구온춘주 양조법을 전수한 구 초현 현령 곽지의 고향입니다. 자기 고향의 술에 대한 애정이 깊어서 남에게 영업한 인물은 조조보다는 곽지가 아니었을까요?

3.2. 조조가 구온춘주를 진상한 이유

그렇다면 조조는 도대체 왜 헌제에게 구온춘추를 올렸을까요? 아가 추측하기로 이 이유는 《서경잡기》에 구온九醞이 언급되었다는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서경잡기》는 서한의 수도 장안의 풍속을 다루는 책입니다. 실제로는 서한보다 후대에 나온 책일 가능성이 높지만 서한 시대의 사료로 많이 이용됩니다. (어차피 《제민요술》도 조조의 시대보다 후대에 나온 책이므로 비슷한 것으로 치고 넘어갑시다.)

《서경잡기》에서 소개한 서한의 제도에 따르면 황제가 8월에 종묘에 몸소 제사를 올릴 때에 구온주를 쓴다고 합니다. 이 구온주는 정월 초하루에 빚어서 8월 8일까지 숙성시킵니다. 조조가 전수한 구온춘주가 정월에 해동하여 덧술을 시작하는 것과 만드는 시기가 비슷합니다. 두 술의 기원이 같다면, 동한보다 앞선 서한 시대에 구온주는 황제가 지내는 제사에 쓰이는 술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조는 한나라 황실의 아이템으로서 구온춘주를 황제에게 바친 것이 아닐까요?

이 추측을 뒷받침할 근거는 《조조집》의 다른 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온춘주가 나오는 〈주상구온주법〉은 《조조집》에서 〈상기물표〉와 〈상잡물소〉 사이에 배치되었습니다. 즉, 앞뒤의 두 글 모두 조조가 헌제에게 어물御物, 즉 황제 전용 물건을 바치는 내용입니다. 이 맥락에서 구온춘주 역시 어물의 일종으로 분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구온춘주를 바친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뒤에 나오는 〈상잡물소〉의 경우 위의 궁에서 나온 물건을 바친다고 명시하고 있으므로 건안 18년 조조가 위공으로 즉위한 후의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구온춘주를 이 기물들과 함께 바쳤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조조가 구온춘주를 바친 구체적인 동기를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구온주 만드는 방법이 전란 중에 실전되었지만 내가 알고 있다!’ 하는 과시일 수도 있겠네요. 자기가 없으면 황제는 종묘에 제사를 올릴 수도 없다는 으름장이라고 상상하면 너무 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