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연의》에서 살펴본 향의 기능
《삼국연의》를 읽다가 놀란 점은 사람들이 향을 자주 피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중국의 향 문화는 북송 시기에 대폭발하고 이후로 일상에 스며들어 이어졌으므로, 3세기 사람 진수의 《삼국지》에 아주 드물게 나오던 향이 14세기 사람 나본의 《삼국연의》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삼국지》에서 향을 피우는 행위에 대한 언급은 《오지》에만 나옵니다. 순욱이 머물던 곳에 사흘 동안 향기가 난다는 일화가 유명하지만, 이 이야기의 출처는 《삼국지》 본문이나 주석이 아니라 《세설신어》 주석에서 인용한 《양양기》입니다. 이 일화를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삼국지》의 세계에서 향은 황족·귀족·고관의 전유물로 레어한 아이템이었습니다.
반면, 《삼국연의》에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반인들도 향을 피웁니다. 단, 사대부의 세속적인 ‘풍류’와는 거리가 있었는지, 향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뚜렷한 기능과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며, 상당수의 기능이 오컬트와 연관이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연의에서 향이 활용된 사례를 기능에 따라 여섯 가지로 분류하고, 연의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향이 비유적으로 쓰인 표현은 제외했습니다.
1. 엄숙한 맹약
제일 처음 나오는 것은 맹약입니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맹약 의식으로 가장 강력한 인상을 주는 것은 동물의 피를 입에 바르는 삽혈이겠지만, 연의 도입부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도원결의와 반동탁연합 결성을 묘사한 장면을 살펴보면 삽혈에 앞서 향부터 피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 향을 태우고 (2) 절을 두 번 한 뒤 (3) 맹세의 말을 읊습니다.
- 1회. 도원결의.
- 5회. 반동탁연합.
2. 죽은 자의 장사
향은 피우는 것 외에도 다른 용도가 있었습니다. 목만 남기고 죽은 사람을 성대하게 장사지낼 때 향으로 몸을 만들어서 목과 함께 관에 넣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동탁과 관 공입니다. 한편, 미방의 항복과 함께 장비의 목을 받은 손권은 목을 다시 유비에게 돌려주었는데, 그냥 목만 보내면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 특별히 침향목에 넣어서 공경하는 뜻을 강조했습니다.
- 10회. 이각과 곽사가 향목으로 동탁의 몸을 만들어 장사를 지냅니다.
- 77회. 조조가 관우의 목을 받고 침향목으로 몸을 만들어 장사를 지냅니다.
- 83회. 손권이 장비의 목을 침향목으로 된 상자에 담아서 유비에게 보냅니다.
3. 사당 참배
죽은 사람을 기리는 다른 방식으로, 죽은 사람의 혼령을 모시는 사당에 참배할 때도 의례적으로 향을 피웠습니다.
- 15회. 손책이 사당에 참배할 때 향을 피웁니다.
- 18회. 조조가 전위의 혼령을 위로할 때 향을 피웁니다.
- 20회. 헌제가 동승을 데리고 태묘에 가서 공신각에 올라 향을 피웁니다.
4. 산 자에 대한 공경
이미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공경할 때에도 향을 사용했습니다. 우길의 사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점령군에 대한 호의를 드러내는 수단이네요. 성도에서는 향과 함께 꽃을 사용한 것도 눈에 띕니다.
- 20회. 조조가 하비를 함락하고 여포를 죽인 뒤에 서주의 민중이 향을 피우며 길을 메우고 유비를 서주목으로 삼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 29회. 민중이 우길을 맞이하며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립니다. 👈 정사에 나오는 이야기 (1)
- 41회. 조조가 양양에 입성하자 채모와 장윤이 민중을 거느리고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립니다.
- 52회. 조운이 계양에 입성하자 민중이 길에서 향을 들고 절을 올립니다.
- 60회. 유비가 익주에 원군을 이끌고 오자 민중이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립니다.
- 65회. 유비가 성도에 입성하자 민중이 향과 꽃과 등불을 들고 문 앞에 나와 영접합니다.
- 118회. 등애가 성도에 입성하자 사람들이 향과 꽃을 들고 환영합니다.
5. 일상 생활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지배 계급이 취미로 향을 피우는 장면도 나옵니다. 서씨와 제갈량의 경우 계략의 일환으로 향을 피운 것이기는 하지만, 평온하고 안락한 상태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을 주목할 만합니다. 한편 조조가 여러 첩에게 향을 나누어 준 이야기는 이미 서진 사람 육기의 〈조위무제문〉에도 나와 있는데, “평소에 소장하고 있던 명향”이라는 것은 연의에서 덧붙인 설정입니다. 연의 바깥의 조조 캐릭터도 평소에 좋은 향을 골라서 비장하고 있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 38회. 손익의 처 서씨가 향을 피우고 목욕을 합니다. 👈 정사에 나오는 이야기 (2)
- 78회. 조조가 죽으면서 평소에 소장하고 있던 명향을 가져오게 해서 시첩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 95회. 제갈량이 사마의를 속일 공성계를 실행하면서 향을 피우고 금을 연주합니다.
6.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기원
지금까지 살펴본 활용 사례는 나본 양반의 시대에 실제로 향이 쓰인 양상에 포함된 것 같습니다. 반면 판타지 같은 설정도 있습니다. 칠성단과 오장원 등 제갈량의 신비함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꼭 향이 쓰이고 있습니다.
- 49회. 제갈량이 동남풍을 부르기 위해 칠성단을 쌓고 향로에 향을 피웁니다.
- 89회. 제갈량이 남만에서 물을 얻기 위해 향을 피우며 하늘에 빕니다.
- 103회.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수명을 늘리는 기도를 하면서 장막 속에 향과 꽃과 제물을 갖추어 놓습니다.
- 116회. 후주 유선이 황호의 말을 따라 도사를 궁에 불러와서 향을 피우는 예식을 치릅니다.
결론
《삼국연의》에서 향香을 검색하여 실제로 향을 활용한 사건에 해당하는 문맥을 모두 찾아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중에서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에 나오는 것은 둘밖에 없고, 나머지 스무 개는 모두 후대의 창작입니다. 그런 점에서 향이라는 아이템을 연의의 특징을 보여주는 요소로 뽑아도 손색이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