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장익덕, 상산 조자룡… 그리고 하동 관운장?
《삼국연의》 호칭어 노트 04
《삼국지》에서는, 좀 더 일반적으로는 한나라 때까지는, 자기 자신을 자字로 칭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유일하다시피 한 사례가 장판파에서 장비가 조조군에게 일갈할 때였습니다(《삼국지포켓북1: 호칭어 가이드》).
이 몸이 장익덕이다. 너 죽고 나 죽자! [身是張益德也,可來共決死!]
이 명대사를 버릴 수 없으니, 나본도 장비가 자기를 자로 부른다는 설정을 《삼국연의》에 가져옵니다. 말이 조금 더 길어지지만요.
내가 연인 장익덕이다! 누가 감히 목숨을 걸고 나와 싸워 보겠느냐? [我乃燕人張翼德也!誰敢與我決一死戰?]
자세히 보면 ‘장익덕’ 앞에 ‘연인’이 새로 붙었습니다. 장비의 고향 탁군이 춘추·전국 시대부터 연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장비가 자기를 ‘연 사람’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연나라는 중국 북쪽에 위치하여 흉노와 국경을 맞대고 전투를 벌인 역사가 길어서, 사람들이 싸움에 익숙하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장비의 캐릭터와 잘 맞습니다. ‘연인 장익덕’이라는 칭호의 효과가 좋았는지, 《삼국연의》에서 장비는 이후로도 자기를 여러 번 이렇게 소개합니다.
‘연인 장익덕’만큼 익숙한 것이 조운을 가리키는 ‘상산 조자룡’입니다. 연燕에만 인人이 붙은 이유는 아마도 그냥 2음절을 맞추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삼국지》에서는 조운이 자기를 자로 칭하거나 출신지를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일이 없었지만, 나본 양반은 소설에서 창작한 ‘상산 조자룡’을 반복해서 써 먹으면서 조운에게 장비와 같은 용맹한 무장이라는 캐릭터성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장비와 조운이 나왔으니 관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출신지+성+자} 템플릿을 따르자면 ‘하동 관운장’이 될 텐데… 이 말은 왠지 ‘연인 장익덕’이나 ‘상산 조자룡’만큼 친숙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삼국연의》에서 검색한 결과도 0건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위의 템플릿에서 출신지를 떼면, 관우가 자기를 {성+자}로 칭하는 사례는 《삼국연의》에서 세 건 나옵니다. 장비와 조운에 비하면 적은 횟수니까 세 건을 다 살펴봅시다.
여포는 거기 서라! 관운장이 여기 있다!
관운장이 여기 있는데 방덕은 왜 빨리 와서 목을 내놓지 않느냐!
내가 살아서 네 살을 씹지 못했으니 죽어서는 여몽의 혼을 쫓아갈 것이다! 나는 한수정후 관운장이다. (관우의 영혼이 한 말)
상대를 명확하게 지명하고 있으며, 상대가 하나같이 유명한 장수입니다. 장비가 장판파에서 많은 병력과 대치할 때 쓰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아무에게나 쓰지 않고 좀 더 위엄과 품위를 갖추었달까요. 나본에게는 ‘관우’가 아니라 ‘관 공’이니까요. 장비와 조운도 훌륭한 장수지만 관 공과 동격일 수는 없다는 것 같습니다. (무장에게 하동이라는 고향은 연이나 상산만큼의 폼이 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서한의 명장 위청과 곽거병도 호적상으로는 하동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연의에서 장비, 조운, 관 공까지 등장하고 나면 오호대장五虎大將의 나머지 두 명, 마초와 황충의 경우도 궁금해집니다. 검색해 보면 마맹기馬孟起와 황한승黃漢升 모두 자기 자신을 가리킬 때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본 양반이 오호대장을 (1) 관 공 (2) 장비·조운 (3) 마초·황충 세 티어로 보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