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삼국지의 바탕, 후한 황실의 향

환제의 계설향, 영제의 한건녕궁중향, 헌제의 황금향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삼국지’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요? 전란의 시대인 만큼 피와 땀이 가득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높으신 분들은 인민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궁중에서 아름다운 향을 즐겼습니다.

농민들이 노란 두건을 두르고 무장 봉기를 일으키게 될 만큼(184년 황건기의)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흔히 ‘환령지말’이라고 부릅니다. ‘환령’이란 ’환제’와 ‘영제’를 가리킵니다. 후한 왕조의 마지막 세 황제가 환제(재위 132-168), 영제(재위 168-189), 그리고 헌제(재위 189-220)입니다. 공교롭게도 세 황제 모두 향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나씩 알아봅시다.

계설향: 환제, 조조와 제갈량

《한관의》에 따르면 신하가 황제에게 말을 할 때는 입냄새가 나지 않도록 입에 계설향을 넣어야 한다고 합니다. 계설향은 오늘날의 정향입니다. 대형마트나 중국 식품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고, 소위 ‘치과 냄새’라고 하는 싸하고 아린 맛이 특징입니다. 바로 이 계설향의 규칙이 환제에게서 비롯했습니다.

환제에게는 내존이라는 시중이 있었는데, 내존이 나이가 많아서 입냄새가 심하게 나자 이를 견디지 못한 환제는 내존에게 계설향을 주면서 입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내존은 이것을 독약으로 착각하고 황제에게 자살을 명령받았다고 생각하여 집에 가서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는데… 친지들이 자세한 사정을 물어 보니 입안에 든 것이 계설향인 것이 밝혀져서 오해가 풀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사건을 계기로 상서랑은 입안에 계설향을 물게 되었고, 상서령을 지낸 순욱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으로 조조가 제갈량에게 계설향 다섯 근을 보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 일화의 출처는 송대의 필기소설 《오색선》입니다. 상서랑의 필수품인 계설향을 보낸 것은 자기에게 와서 황제를 모시라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이것이 정사는 아니지만, 연의보다 이른 시대의 전승이라는 것을 주목할 만합니다.

한건녕궁중향: 최초의 조향 레시피

명대의 《향승》이라는 책에는 ‘한건녕궁중향’이라는 향을 만드는 방법이 나옵니다. ‘건녕’은 영제의 연호이므로, 영제가 황제로 있을 때 궁에서 사용한 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료를 살펴봅시다. 대체로 약재가 많이 들어가서 약 냄새가 강합니다.

  • 황숙향黃熟香 4근(64냥)
  • 향부자香附子 2근(32냥)
  • 정향피丁香皮 5냥
  • 곽향엽藿香葉 4냥
  • 영릉향零陵香 4냥
  • 단향檀香 4냥
  • 백지白芷 4냥
  • 모향茅香 2근(32냥)
  • 회향茴香 2냥
  • 감송甘松 반근(8냥)
  • 유향乳香 1냥
  • 침향沉香 4냥
  • 대추 반근(8냥)

이 정도 배합이면 《향승》에서도 매우 호화스러운 향에 속합니다. 저도 재료를 구해서 손수 만들어 보고자 했는데… 황건기의를 전적으로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황제가 이런 사치를 부리니까 농민들이 들고일어나지!

물론 《향승》은 명나라 때의 책인 만큼, 이 레시피가 실제로 후한 말에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건녕궁중향’이라는 이름이 전해졌다는 데서 영제가 호화스럽게 향을 피우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황금 향로: 조조가 헌제에게 준 선물

당대의 백과사전의 일종인 《예문유취》에 《상물잡소》라는 제목으로 조조가 헌제에게 바친 향로의 목록이 나옵니다. 궁에서 다양한 신분의 황족들이 각기 자기 향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황제: 순금향로 1개 (쟁반 포함)
  • 귀인, 공주: 순은향로 4개
  • 황태자: 순은향로 4개
  • 서원귀인: 동향로 30개

그리고 송대의 백과사전 《태평어람》에 수록된 조조의 《위무령》에 따르면, 조조가 평소에 집에서 향 피우기를 금지했는데 딸들이 헌제와 결혼할 때 향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황궁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필수적인 의례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여담

《삼국지》에서 향으로 유명한 사람은 역시 순욱이지요. ‘순 령군’이 앉은 자리에는 사흘 동안 향이 남았다는 이야기가 동진 때의 《세설신어》에 나오고, 당대의 시에는 순욱이 지나가면 10리에 향이 풍긴다는 묘사가 나오며, 좀 후대로 가면 송대의 《진씨향보》라는 책에서 ‘순령십리향’이라는 향이 나옵니다.

조비가 황제가 된 뒤 손권에게 요구한 공물 중에 작두향이 있다는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작두향은 향부자로, 위에서 살펴본 한건녕궁중향의 재료입니다. 조비도 황궁에서 피울 향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