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현대AU. 비싼 술의 가치

세 사람, 20세기 버전.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순욱은 장교가 휠체어에서 포로를 안아 들고 침대로 옮겨 앉히는 동안 테이블에 놓인 술병을 연다. 임무를 마친 장교가 문 옆으로 물러나자 순욱은 침대로 다가가서 포로의 머리에 눌러 씌운 두건을 벗긴다.

❊✬✬

포로 진궁은 숨을 들이쉬자마자 강한 향기에 아찔해졌다.

“……순욱? 순 실장 맞나?”

이 향의 주인이 세상에 둘일 수 없으니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아니, 뭐 하러 왔어?”

순욱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술을 좀 먹이려고.”

진궁은 의아해했다.

“보통은 같이 마시자고 하지 않나?”

“아니, 진짜로 먹일 거야.”

순욱은 술을 담은 종이컵을 진궁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진궁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당황했다.

“잠깐만, 총통이 이 귀한 걸 따게 해 줬어?”

“귀한 줄 알면 어서 마셔.”

등 뒤로 수갑을 찬 진궁은 저항하지 못하고 순욱이 입에 부어주는 대로 꿀꺽꿀꺽 받아 마시는 수밖에 없었다. 순욱은 한 컵을 다 비우고 문간을 향해 말했다.

“장료 중령도 한 잔 들어요.”

그 순간 진궁은 아직 덜 삼킨 술을 뿜을 뻔했다. 순욱은 진궁을 놀라게 하는 데 성공해서 뿌듯했다.

“나하고 같이 왔어.”

“순 실장이 조 총통을 얼마나 구워삶았기에 그 양반이 이 정도로 인심을 썼지?”

진궁은 순욱과 장료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근데…… 사실 저쪽하고 나하고, 별로 안 친했어. 맞잖아?“

그리고 장료가 대답하기 전에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그렇다고 안 반갑단 건 아니고. 이런 꼴을 보이게 된 건 민망하지만.”

진궁은 다시 순욱에게 말했다.

“순 실장, 당신 안경 좀 빌려줘.”

“안 돼.”

“잠시만. 장교님 얼굴 좀 제대로 보자.”

“안 돼.”

“왜? 당신 물건 내가 만지면 부정 타?”

“그렇다고 치지.”

장료가 용기를 내어 나섰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순욱은 즉시 손을 들어 장료를 막았다. 진궁은 투덜거렸다.

“야박하네.”

“장 중령, 대화는 자유롭게 해도 괜찮습니다.”

순욱은 침대 옆 식탁에 앉아서 노트를 펼치고 펜을 꺼내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다.

“일단 저도 한 잔 마시겠습니다.”

비싼 술이라지만 장료에게는 쓰기만 했다. 장료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참모장께선—“

진궁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게 부르면 큰일 나.”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순 실장한테 물어 보자.”

순욱은 들은 체도 안 하고 펜을 잡은 손놀림만 빨리했다. 장료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궁리해야 했다.

“……선생님은 앞으로 어쩌실 작정입니까?”

“왜 다들 나한테 결정할 권한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

“선생님의 의사가 중요하니까요.”

“안 중요해.”

“가족분들도—”

사슬이 철컥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안 들려. 다른 얘기 해.”

어느새 순욱도 손을 멈추었다. 오랜 정적이 흘렀다.

한참 뒤에 진궁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물을게.“

“예.”

”장교님은 내가 어쩌기를 바라는데?”

“총통께 투항하시고 지금 정부에서 일하시는 겁니다.”

장료는 심각했지만 진궁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왜?”

장료는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보기에 총통께선 훌륭한 지도자십니다!”

진궁은 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 다 좋은데… 내가 지금 법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던가?”

장료는 우물쭈물했다.

“이따가 순 실장한테 얼마나 혼날 참이야. 내가 다 안쓰럽네.”

진궁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아무튼 총통한테 가서 보고할 건 있어야겠지? 긴 말은 안 할게. 장교님이 군복 입은 거 다시 보니까 좋다. 또 보고 싶어. 정말로.”

진궁에게는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지만 장료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진궁에게 거수경례를 해 버렸다.

❊✬✬

장료가 나간 후 진궁은 순욱을 쏘아보았다.

“야, 나 술값 했다?”

“잘 했어.”

“좀 더 세게 말할 걸 그랬나?”

“감 떨어진 척하지 마. 총통을 움직이려면 이 정도가 딱 적절한 거 알잖아.”

“그럼 술 한 잔 더 줘.”

“안 돼.”

순욱은 유리잔에 술을 따라서 자기가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