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역사/시대 고증의 목적은 과거의 한 장면을 재연하는 것인가?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장르”나 “서사” 등 여러 용어가 “오타쿠” 사이에서 고유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고증”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현실 고증”이나 “원작 고증” 같은 말이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때, 고증의 핵심은 원본의 설정이나 장면을 재연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고증”의 사전적 의미는 “예전에 있던 사물들의 시대, 가치, 내용 따위를 옛 문헌이나 물건에 기초하여 증거를 세워 이론적으로 밝힘”(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이 풀이를 따른다면, “예전에 있던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현실과 원작은 애초에 고증의 대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규범적으로 따르지 않더라도, “현실 고증”과 “원작 고증”은 여전히 ”시대 고증“과 함께 묶기 어렵습니다. 현실과 원작은 향유자가 직접 접근해서 작품에 반영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옛 시대의 사물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대 고증에서는 원본의 모습을 재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옛것은 현실과 달리 직접 체험할 수 없고, 문헌이나 문물 증거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또 옛것은 원작과 달리 온전히 파악할 수 없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증거를 바탕으로 부분적인 정보만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한 기록이나 유물이 남아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양심적이고 유능한 기록자라도 사건의 전모를 모든 측면에서 빠짐없이 포착할 수는 없고, 실제로 사용된 물건이라도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쓰였는지에 대한 정보는 물리적으로 남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사책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쓰거나 유물을 실물 그대로 섬세하게 그려 넣는다고 하더라도 고증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증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고증의 목적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증을 왜 할까요? 물론 옛것을 드러내고 알리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때도 있습니다. 아(雅)도 한나라 이야기로 주석을 주렁주렁 달고 싶어서 《자살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려서》의 소설 본문을 억지로 짜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인물 묘사나 세계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를 더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고증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에 맞게 작품 자체의 그럴듯한 수준을 높여야 고증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전쟁과 인연이 없던 청소년이 갑자기 군대에 들어가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발휘하는 내용이 소설에 들어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청소년의 이름을 곽거병이나 잔 다르크라고 붙이면 고증이 저절로 완성될까요? 역사적 인물의 역사적 전투 장면을 역사책에 근거하여 사실적으로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곽거병이나 잔 다르크가 실제로 전투를 지휘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는다면 소설에서는 그냥 개연성 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고증한 내용이 작품의 다른 요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비로소 고증의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