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시대 고증은 창작물의 윤리성을 훼손하는가?
어처구니없게도 “고증”을 빌미로 삼아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창작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창작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고증을 무시/파괴”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도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자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즉, 정말로 온전한 시대 고증을 위해서는 소수자에게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중시한다면 (그리고 작품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이 적당히 합의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반드시 시대 고증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할까요?
여성 차별을 묘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 고증의 일부를 무시해야 한다는 말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이 말은 시대 고증을 준수하면 여성 차별을 묘사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의미가 같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고증의 대상이 되는 옛날에 여성 차별이 지금보다 더 많이 존재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지금보다 옛날에 여성 차별이 더 심했다는 말은 참일까요? 종합적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일단 매길 수 있다고 치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옛날의 여성 차별이 모든 측면에서 빠짐없이 지금보다 심했다는 말과는 다릅니다. 아(雅)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우선 성차별은 신분, 지역, 민족, 장애 여부, 빈부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한 차별과 교차합니다. 옛날에 더 심했던 것은 성차별뿐만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옛날에는 여성이라는 집단 안에서 개개인이 각자 처한 상황의 차이가 지금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일부 여성 개인의 지위는 다른 여자들과 남자들보다 훨씬 높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과 실제 사례를 무시하고 모든 여성을 노예처럼 묘사하고 마음껏 폭력을 가하는 것이야말로 “고증오류”입니다.
2.
더 강조하고 싶은 점은 시대마다 중점적인 차별과 폭력의 양상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21세기 사람이 주로 상상하는 노예제의 폭력에 관한 이미지는 노동 현장의 채찍질과 같이 노예주나 관리자가 직접적으로 가하는 폭행입니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 진나라 판례집에 등장하는 주인은 복종하지 않는 노예를 손수 때리기보다 관청에 되팔면서 다리를 자르고 유배를 보내 달라고 신고하고, 이 신고는 합법적인 절차로 인정받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인이 상상 가능한 방향으로 차별과 폭력의 양을 과감하게 늘린다고 해서 그것이 과거의 모습에 반드시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3.
이뿐만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차별과 폭력이 일방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가령 중국에서 전족이라는 악습은 대략 송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이전의 한나라 여자들은 겪지 않았던 종류의 폭력을 이후의 명나라 여자들이 새로 겪게 된 것입니다. 즉, 과거에 존재했던 차별이나 폭력이 현재에 없어지거나 약해진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현재에 존재하는 차별이나 폭력이 과거에 없었거나 약했을 경우도 가능합니다.
결론
세 가지 논점을 종합하면, 웬만해서는 배경으로 삼고자 하는 시대의 차별과 폭력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한 지점을 찾아서 공략하는 방식으로 “고증오류”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상상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지금보다 극심하게 나쁜 시대도 물론 존재했거나 상상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창작물에 중요하게 등장할 만한 인물이라면 그 모든 억압에 시종일관 진심으로 굴복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부언
우리가 현대인인 이상 현대의 윤리로 고대를 비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필요한 작업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현대인이기 때문에 현대의 윤리 자체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배경으로 할 때 모든 인물이 현대인과 같은 윤리관을 가지게 만든다고 해서 윤리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인이 보기에 거슬리지 않는 것과 윤리적인 것은 다릅니다. 현재를 과거의 대안으로 삼는 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차별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차별도 간과해 버리는 처사입니다. “빻은” 것을 다루기 싫어서 시야에서 치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윤리적인 측면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과거와 현재를 모두 비판적으로 관찰하고 차별이 어떤 맥락에서 구성되는지 알아보는 것을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