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원소와 세력을 다투기 전에 먼저 여포부터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조조를 설득했을 때부터1 이런 결말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어쩌면 그에 앞서 도겸이 죽은 뒤 서주를 세 번째로 공격하려던 조조를 막고 진궁이 이끄는 반란군을 토벌하는 일이 급하다고 진언했을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2 진궁이 조조의 적이 된 뒤로 줄곧 그를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해 왔다.

순욱은 한 해가 다 가도록 허도를 지키며 기다린 끝에 하비에서 승전의 증거로 보낸 여포와 진궁과 고순의 목을 받았다. 조조가 동봉한 편지에서는 진궁이 형장으로 가는 동안 자기를 한 번도 돌아보아 주지 않았다며 서러움을 토로하는 한편 진궁의 가족들을 어떻게 대우할지까지도 상세히 지시했다.

순욱은 한숨을 쉬며 상자 뚜껑으로 손을 뻗다가 이내 거두었다. 겨울이라서3 덜 부패하고 조조가 급하게 보내어 보존 상태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그의 기호에 맞는 물건은 아니었다. 굳이 상자를 열어서 적장들의 잘린 목을 자기 눈으로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조조의 명령대로 허도의 시장에 내걸게 하면 그만이었다.

마침내 자신의 주장대로 진궁이 제거되었지만 그의 몰락을 요란스럽게 축하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조조가 처음 세력을 일으켰을 때부터 함께했던 동료였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시절에도 그와 사적인 친분은 맺지 않았다. 성격과 취향도 서로 어긋났고, 둘이서 따로 만나 술 한 잔 기울였던 적도 없었다.4 순욱이 유행시킨 새로운 머릿수건 모양이나,5 서역과 남월에서 온 특이한 향 냄새도6 그의 마음에 썩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효수 마지막 날에 순욱의 발걸음을 끝끝내 시장으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순욱은 늘 들고 다니는 향주머니를 코에 갖다 대고 구토를 참았다. 전장에 나가던 시절에는 더 참혹한 광경도 익숙하게 보았지만 이 평화로운 허도에서는 일상의 안온함을 깨뜨리는 흉물이었다. 새해부터 보기에는 더욱 부적절한 장면이었다.

문득 순욱은 자기 주변에 몇 사람밖에 남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모두 소복을 입고 있었다. 그 중 한 아이는 서툴게 만든 복숭아나무 부적을 손에 들고 있었다.78 진궁의 딸인 듯했다.

순욱은 여분의 향료를 담고 다니던 작은 병을 주머니에서 꺼내고 머리에 꽂은 붓을 뽑아서9 병 표면에 글을 썼다. 늘 미신이라고 배척하던 문장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올 재앙을 모두 망자에게 돌리되 망자가 지은 죄보다 심한 벌을 받게 하지는 마시고9

손에 힘을 주어 마지막 세 단어를 썼다.

율령과 같이 처리하소서[如律令].10

진묘병11을 진궁의 딸에게 쥐여 주고 순욱은 안심했다. 이제 조조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삼국연의》에서는 순욱이 하비 공방전에 참전했다고 나오지만, 《후한서》와 《삼국지》에서는 참전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순욱이 조조에게 인재들을 추천한 뒤로 자신은 허도에 남아 일을 처리했다고 한 것을 보면 아마도 참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조조가 하비에서 산 진궁을 보내 주고 순욱이 허도에서 죽은 진궁을 보내 준다고 설정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삼국지》 〈무제기〉에서 조조가 하비 점령 후 곧바로 허도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1. 《삼국지》 〈순욱전〉. 「不先取呂布,河北亦未易圖也。」 

  2. 《후한서》 〈순욱전〉. 「宜急分討陳宮,使虜不得西顧,乘其閒而收熟麥,約食蓄穀,以資一舉,則呂布不足破也。」 

  3. 《후한서》 〈효헌제기〉에 따르면 여포와 진궁은 음력 12월 계유일(24일)에 처형당했습니다. 

  4. 《한서》 〈사마천전〉에서 사마천이 자신과 이릉의 관계를 서술하는 데 사용한 표현을 참조했습니다. 

  5. 《국역 중국정사 여복지 (상)》(소종 외 옮김, 민속원, 2014) 64면에 수록된 《진서》 〈여복지〉 번역문. “속설에 흡㡊은 원래 갈라진 곳이 없었는데 순욱荀彧의 건이 길을 가다가 나무 가지에 닿아 갈라졌는데, 사람들이 좋다 하여 고치지 않았다.” 

  6. 《향승》에 나오는 “순령십리향”의 조제법에는 서역에서 온 회향 등이 재료로 들어갑니다. 

  7. 《돌, 영원을 기록하다》(홍승현 외, 경북대학교출판부, 2018) 80면. “여기에는 커다란 복숭아나무가 재앙을 물리치는 압진물로 등장하고 있다.” 후한 때 무덤에 복숭아나무를 넣는 풍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 人面桃符. 거연한간 컬렉션, 대만 중앙연구원 역사어언연구소 역사문물진열관 소장. http://museum.sinica.edu.tw/collection/20/item/36/ 아래 사진 참조. 

  9. 《또 하나의 돈황》(세키오 시로 저, 최재영, 이담, 2015). 후한 때는 장례를 치르면서 무덤에 병을 넣었는데, 이 병 표면에 쓰는 글(진묘문)입니다.  2

  10. 《돌, 영원을 기록하다》 95면. 진묘문의 전형적인 종결어입니다. 

  11. 《돌, 영원을 기록하다》 70면. “항아리의 모양에 따라 관 또는 병으로 불리는데, […] 몸통에 붉은색 글씨로 진묘문이 쓰여 있기 때문에 흔히 ‘진묘관’, ‘진묘병’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