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2-6. 포상

2-6. 포상

건안9년 봄 1월, 허도에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진궁이 조조와 바둑을 두어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닌 체력 덕이었다. 그는 조조보다 젊었고1 각종 사무로 기력을 빼앗길 일이 없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유리했다.

그가 상으로 요구한 것은 ‘조 공 이외의 사람과 대화할 기회’였다. 조조는 뜻밖에도 승낙했다. 어차피 그의 언변에 현혹될 위험이 없이 믿고 보낼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조는 심술부리기를 잊지 않았고 포상의 이행은 한참 시간을 끌었다. 조조가 하북으로 원정을 떠나서 새 거처를 만드는 동안 진궁은 추위에 시들어가는 화초를 어루만지며 허도에서 겨우내 기다렸다.

새해가 되어서야 찾아온 순욱 앞에서 진궁은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바닥에 손을 짚은 채 물었다.

“혹시 그동안 승진하셨나요?”

“아니.”

“그러면…… 령군令君.2 령군令君을 복3의 앞에 모시는 것만으로도 령군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서 큰 죄를 짓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복이 죄짓는 걸 두려워하던 때는 지나 버려서.”

진궁이 싱글거렸지만 순욱은 차갑게 말했다.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스스로 착실하게 목숨을 연장하고 있지.”

“‘스스로’라고요? 복이 아둔해서 령군令君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공께 고분고분하기만 했다면 공께서는 진작에 질려서 버리셨겠지. 반대로 매번 철저하게 저항했다면 공께서도 단념하고 목숨을 거두어 주셨을 테고. 지금은 반항을 하면서도 말을 들을 건 착실히 들으니까 공께서 미련을 못 버리시잖아.”

결국 진궁도 정색을 했다.

“복은 그저 제대로 죽기 위해 매 순간을 버티고 있는 것뿐이고요, 조 공의 앞에서 그런 계산을 할 여력이 없어요. 령군令君께서는 안 겪어 봐서 모르시겠지만.”

“나는 알 일이 없지. 그런 일을 겪기 전에 스스로 결단하는 게 마땅하니까.”

“겪어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령군令君께서 나서 주셨는데도 안 됐잖아요.”

순욱은 진궁의 마지막 말에 잠시 인상을 쓰고 대꾸했다.

“내가 부족했다면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어. 내 조카 공달이 조 공을 모시고 있으니까 공달한테 말해 두지.”

“아니, 그러지 마세요.”

“어디서 형여刑餘의 인간이 대부大夫의 말에 끼어들어?”

진궁이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순욱은 진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한테 대등하게 대접받을 자격은 네가 스스로 버린 거야.”

진궁은 비식대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차라리 후련하네요.”

“정말 염치를 잃어도 단단히 잃었군.”

이렇게까지 모욕했으면4 진궁도 더 살 마음을 버릴 것 같았다. 혹시 아니더라도 순유가 잘해 줄 것이다. 순유는 제거해야 할 것을 제거하는 데 아주 철저한 사람이었다.5

진궁은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조조가 마련한 새 거처에 도착했다. 운반되어 오는 길에 관사 여러 곳에서 수모를 겪었고 그나마 순욱의 배려로 배에서 하수河水6를 볼 수 있었다.

조조는 진궁을 만나자마자 언제나처럼 생색부터 내었다.

“상은 잘 받았어?”

“네, 아주 짜릿했어요.”

“설마 둘이서 또 불손한 모의를 벌인 건 아니지?”

진궁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모의를 벌였더라도 벌였다고 대답할 리가 없겠지만 조조는 만족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바둑은 다시 결판을 내자. 이번에는 시간제한을 걸고.”

“못 두겠어요.”

진궁은 배시시 웃으면서 덧붙였다.

“아무래도 궁이 실수로 바둑알을 삼켜 버릴 것 같아요.”


  1. 여기에서 진궁은 조조보다 일곱 살 어리다는 설정입니다. 

  2. 상서령尚書令이라서 령군令君입니다. 

  3. 주로 문어체에서 자기를 하인이나 마부에 빗대어 낮추는 말입니다. 진궁이 신분이 낮은 척을 해도 배운 티를 못 버리네요. 

  4. 《문선》에서 순욱의 명의로 (진림이) 쓴 편지를 보면 순욱도 어그로를 잘 끕니다. 

  5. 삼국지 위서 순유전. 조조는 순욱은 선을 행하는 데 꾸준하고 순유는 악을 제거하는 데 철저하다고 평가했습니다. 

  6. 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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