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현대인의 렌즈에서는 난초와 먹 냄새가 나지요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순욱이 머문 곳에서 향기가 났다는 《양양기》의 일화는 언제나 사람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향을 상상해 봅니다. 이 상상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난초와 먹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가지 소재는 고고하고 단아한 고대중남 지식인의 모습을 들여다볼 때 끼는 현대인의 렌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은 당연히 현대인의 렌즈를 끼기 마련입니다. 현대인이 현대인의 렌즈를 끼는 것은 해로운 일도 아니고, 당연히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내가 렌즈를 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이 어떤 렌즈인지를 알아보면 일단 그 자체로 즐겁습니다. 또한 새로운 렌즈로 갈아 끼워 볼 수 있는 계기도 됩니다.

왜 난초와 먹의 향기를 현대인의 렌즈라고 할까요?

우선 난초의 경우, 적어도 아(雅)는 난초 향기를 글로 배웠습니다. 즉, 난초 향기를 맡아 본 경험보다 난초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는 글을 읽어 본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난초 재배에 종사하지 않는 한, 현대인이 난초의 향기를 장미 향기처럼 일상의 감각으로 갖고 있는 일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짜장면을 먹을 때 단무지를 곁들이고 식전빵을 먹을 때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곁들이듯 동아시아 고전을 먹을 때 난초라는 아이템의 존재를 곁들일 수 있도록 머릿속 식탁에 준비해 놓는 것에 가까울 듯합니다.

먹의 향기는 어떨까요? 일단 먹 냄새는 난초 냄새보다 현대인이 맡아보기 쉽고 초등학교 때 서예로 접한 기억도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먹을 방향제로 사용한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현대인의 렌즈 같습니다. 고대인이 먹의 냄새를 감각적인 향으로 활용하는 것은, 마치 현대인이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감각적인 리듬으로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끼고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해당 세계관에서 각기 향과 음악의 전형적인 소재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습니다. 일상의 소재니까요.

여기에서 의문이 생겨서 검색해 본 것이 묵향(墨香)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소설 제목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전통”을 소재로 하는 전시회 제목이나 광고 문건에도 애용됩니다. 일단 “묵향”이라는 단어가 묘사에 나온다면 동아시아 고전에 관한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 자체는 고대의 고전에 쓰이지 않았습니다. Chinese Text Project와 Scripta Sinica에서 전근대 중국 문헌을 검색해 보면 이 한자 조합이 청나라 시기가 되어서야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중세인들이 먹을 만들 때 방향제를 넣거나 방향제를 만들 때 먹을 넣은 사례도 있으나, 묵(墨) 자체에 향(香)이라는 속성을 부여해서 즐기는 것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전근대를 향유하는 용법입니다.

그러니 현대인이 순욱 컨셉의 니치 향수를 만들 때 난초와 먹 냄새를 주문하는 것은 현대인의 쾌락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더없이 자연스럽지만, 그럴수록 고대에 실존한 인물 순욱이 실제로 방향의 목적으로 사용했을 냄새와는 멀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나쁜 일이 아니고 멀어져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마침 21세기 사람은 전자뿐만 아니라 후자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환경에 있습니다. 순령십리향을 자꾸 나눔하는 이유는 후자의 렌즈로 볼 수 있는 광경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2세기 사람의 향기를 11세기 사람이 구현했다고 하면 일단 궁금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