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1-6. 세 사람

1-6. 세 사람

건안6년 봄 3월, 허도에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진궁이 거처를 옮기는 절차는 신속하고 기계적이면서 굴욕적이었다. 짐을 쌀 것도 없었다. 간단한 몸수색1 후 얼굴이 천으로 가려진 채로2 업혀 가서 수레에 앉혀지고 등 뒤로 양손이 묶인다.3 수레의 사면을 막고 밖에서 봉인하고 나면 곧 출발한다.

가는 길에 평소에 못 듣던 소리를 듣는 것만은 즐겁다. 하나하나를 판별하기 어려운 웅성거림의 덩어리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운다. 이 즐거움은 대개 오래 못 간다. 성을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때가 있다. 봉인된 수레의 정체가 거리에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수레가 멈추고 다시 업혀서 새로운 집이나 막사에 들어오고 나면 그를 호송해 온 병사들이 손목을 묶은 밧줄을 풀고 머리에 씌운 두건을 벗긴 뒤 그의 소유물의 전부인 지팡이 두 짝을 놓고 서둘러 나간다. 어쨌든 다른 인간의 체온을 잠시라도 느낄 유일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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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의 손길은 여느 때와 달리 부드럽고 세심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그를 거칠게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이렇게 정중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일을 다 마치고 인사까지 한 적은 없었다.

“료가 모주謀主,4 아니, 선생5을 모시고 허도許都로 왔습니다.”

진궁은 장료를 한참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돼 버린 걸 보이고 말았네.”

표정을 바꾸고 말을 이었다.

“부군府君6……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지. 지금은 무슨 직위에 있으신가?”

등 뒤에서 누군가가 대신 대답했다.

“비장군裨將軍7에 관내후關內侯.”

“깜짝이야.”

순욱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진궁은 놀라서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다른 사람이 더 없는지 살폈다.

“이렇게 둘이 온 거야? 편지로는 부족했나 보네?”

순욱이 시인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러 왔어.”

“족하足下8가 형여刑餘의 인간하고 동석하는 치욕을 감수하겠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어.”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진궁이 먼저 장료에게 말을 걸었다.

“조 공이 나를 죽여 줄지 말지가 후9의 입에 달려 있겠지.”

순욱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것도 족하足下의 발상인가?”

순욱은 대답하지 않고 장료에게 눈짓했다. 장료가 어렵게 입을 뗐다.

“료가 감히 여쭈자면…… 선생께선 앞으로 어쩌실 생각입니까?”

“아무 생각도 없는데?”

순욱이 끼어들었다.

“공대.”

진궁은 성가시다는 듯이 순욱에게 한 번 찡그리고 대답했다.

“자살을 해서 체면을 살릴 수 있는 때는 지나 버렸다고 생각해.”

장료는 안도해도 되는지 머뭇거렸다.

“그러면 살 마음이 있다는 말씀이 맞습니까?”

“후가 조 공 밑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들어 보고 결정하지.”

“……”

“얘기해 봐. 안 되겠다 싶으면 문약이 알아서 끊을 테니까.”

순욱이 부드럽게 거들었다.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장료는 더욱 긴장해서 말했다.

“조 공은 선생께서 여봉선의 군영에서 말씀하시던 것과는10 다른 분이셨습니다.”

진궁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썼지만 잘 안 되는 듯했다.

“그래서?”

“료는 선생께서 조 공을 위해서 일하시면 좋겠습니다.”

결국 진궁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웃었다.

“야, 그건 너무 나갔다. 조 공이 아무리 욕심이 많아도 거기까진 안 바랄 거야.”

장료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진궁은 장료를 달래듯이 놀렸다.

“괜찮아, 이런 소리 했다고 날 죽여 주진 않을 거니까. 내가 조 공이 욕심 많고 잔인한 인간이라고 말했다고 꼭 전해야 해.”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순욱에게 말했다.

“차마 문원을 난처하게는 못 만들겠다. 족하足下를 난처하게 만드는 건 양심의 가책이 안 드는데.”

순욱은 책망하듯이 물었다.

“설마 생각이 바뀐 건가?”

“문원이 너무 귀엽잖아. 조 공한테 내가 저렇게 보인단 말이야? 그러니까……”

진궁은 장료 몰래 순욱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원이 전장에서 활약하는 걸 보고 싶어한다고 말씀드려.”

이 말을 듣고 장료는 기뻐했다. 순욱은 더욱 만족했다.


  1. 《한서》 〈소망지전〉. 

  2. 《후한서》 〈당고열전〉. 

  3. 범인을 연행할 때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포박 방법. 반접反接이라고 합니다. 

  4. 이른바 ‘책사’에 해당하는 《삼국지》의 용어. 호칭으로 쓰인 예는 없지만 좋아하는 말이라서 넣었습니다. 

  5. 《삼국지》에서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에게 쓸 수 있는 존칭. 책사를 가리킬 때는 오히려 잘 쓰지 않습니다. 

  6. 태수에 대한 호칭. 장료는 여포의 휘하에서 태수로 있었습니다. 

  7. 장료는 처음에 조조에게 투항하고 중랑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그 후 공을 세우고 승진하여 관도대전 직후의 시점에서는 비장군의 직위에 있었습니다. 

  8. 대등한 사이에서 사용하는 호칭. 친한 사이에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진궁이 순욱에게 쓰는 것은 친밀감의 표현이 아니라 야유에 가깝지만요. 

  9. 관내후를 이렇게 부르는 용례는 보지 못했지만, 진궁이 조조에게 작위를 받은 장료를 가볍게 놀리는 분위기로 써 보았습니다. 

  10. 《삼국지·위서》 〈여포전〉. 진궁이 “역적 조조가 무슨 명공입니까!” 하고 버럭대는 장면을 매우 좋아합니다. 

此篇为韩文版。👉 查看中文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