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관도
건안5년 가을 8월, 관도에서.
허도에서 순욱이 보낸 답장이 왔다.
‘공의 역량은 원소보다 뛰어나므로 해내실 수 있습니다.’1
전황이 안 좋고 군량이 부족하지만 관도에서 결전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위험하니까 공대는 허도로 보내야겠어.’
조조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편지를 끝까지 펼쳐 보자 죽간이 한 권 더 말려 있었다.
조조는 진궁을 찾아가서 죽간을 내밀었다.
“신작이에요?”2
“자세히 봐.”
겉면에 붙은 목판3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진공대에게. 순문약.4
“이번만이야.”
진궁은 말없이 죽간을 받았다.
‘거의 2년 만에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되어서 감격한 모양이군.’
조조는 생색을 더 내었다.
“봉인도 안 뜯었어.”
죽간을 묶은 끈의 매듭을 봉한 진흙에는 순욱의 이름을 새긴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5 진궁이 끈을 잡아당기자 굳은 진흙 덩어리가 둘로 갈라졌다.
“……”
진궁은 짧은 편지를 금방 다 읽고 피식거렸다.
“공이 나를 허도로 돌려보내려고 하면 사양하고 관도에 남아 있으라고 하네요. 나한테 거절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써 놓았네.”
순욱이라면 조조의 생각을 읽을 만도 했다. 조조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왜 나한테 바로 말하지 않고 공대에게 따로 편지를 쓴 거지?’
조조의 얼굴이 굳어지거나 말거나 진궁은 짖궂게 물었다.
“싸움도 못 하는 내 입에 들어가는 군량이 아까워요?”
“여기는 이제 위험할 것 같아서.”
진궁은 웃음을 터뜨렸다. 조조는 당황했다. 진궁이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 이렇게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웃어? 공대의 의견은 어때?”
“관도에 계속 있죠. 나를 집어넣으려고 이 집 담장도 높여서 새로 지은 것 같은데 공사한 게 아깝잖아요.”
‘편지 하나를 받았다고 저렇게 흥분한 건가?’
“진짜 이유는 뭔데?”
“여기 있으니까 좋아요.”
조조는 더욱 놀라서 귀를 의심했다. 진궁에게 좋다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마냥 기뻐하기에는 뭔가 수상쩍었다.
“뭐가 좋아?”
진궁은 아이처럼 들떠서 대답했다.
“저 담장을 넘어서까지 들어오는 전쟁 분위기가요.”
조조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안 되겠네. 정말 보내야겠어.”
“우리 순문약이 남으라잖아요. 모주謀主6가 의견을 내면 좀 들어요.7”
조조는 애써 태연한 척 농담을 걸었다.
“그렇게까지 내 곁에 있고 싶어 할 줄은 몰랐는데.”
진궁은 또 웃기만 했다. 조조는 불안한 기색을 숨기면서 일어났다.
“고孤가 전쟁에서 꼭 이겨야겠네. 진공대를 두 번씩이나 포로로 만들 수는 없지.”
“아, 네, 힘내세요.”
조조는 대문 밖에서 손수 빗장을 채우면서 생각했다.
‘공대를 살려서 내 손 안에 둘 수 있다는 것이 착각이었을까?’
진궁을 다시 포로로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다만 더 쉬운 방법이 있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는 방법이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의심이 들었다. 진궁은 어디까지 진심이었을까. 아까 보인 모습이 이래도 나를 살려 두겠느냐는 시위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지는 것이었다.
순욱은 조조에게 이번 전쟁이 끝나기 전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
《삼국지·위서》 〈무제기〉에 나오는 실제 편지 본문은 더합니다. 조조에게 신무명철神武明哲이래요… ↩
-
조조는 문학가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진궁에게 보여주었다고 설정해 보았습니다. ↩
-
이 트윗을 참조하십시오. 이 트윗에 인용된 것은 공문서이지만 사적인 편지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가정했습니다. ↩
-
다른 사람을 방문하면서 보내는 명함 끝에 자기의 성과 자로 서명하는 예가 있습니다. 편지에서도 비슷한 서식을 쓰리라고 가정했습니다. ↩
-
순욱의 개인 도장을 사용한 것은 사적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용건이었다면 상서령의 인장을 찍었을 것입니다. ↩
-
모주謀主는 이른바 ‘책사’에 해당하는 《삼국지》 본문의 용어입니다. 《삼국연의》에서는 모사謀士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책사’라는 말은 《삼국지》에도 《삼국연의》에도 나오지 않는 표현입니다. ↩
-
《삼국지·위서》 〈장막전〉 주석 《전략》에서 진궁은 여포가 자기 말을 들었다면 사로잡히지 않았으리라고 말합니다. ↩
此篇为韩文版。👉 查看中文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