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1-8. 선조에게 지내는 제사

건안7년 봄 정월, 허도에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조조는 새해에 치러야 할 공무와 사무를 다 치르고 마침내 진궁을 찾아가서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어느 쪽이야?”

진궁은 즉시 대답했다.

“두 번째.”

조조는 말문이 막혔다. 진궁이 충분한 고민 끝에 첫 번째를 택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진궁은 분명하게 말했다.

“장문원을 불러서 내 목을 치라고 하세요.”

조조는 분노로 몸을 떨고 진궁을 노려보면서 간신히 말했다.

“그래. 마침 지금 허도에 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릴 거야.”

진궁이 자기를 버리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죽음을 괴롭게 만들어 주기라도 해야 했다.

조조는 먼저 병사들을 시켜 진궁을 뜰로 끌어내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눈을 천으로 가리고 몸을 밧줄로 묶게 했다. 진궁이 목소리로든 눈짓으로든 몸짓으로든 장료에게 신호를 보내면 곤란했다.

부름을 받고 들어온 장료는 진궁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감히 사정을 먼저 묻지 못하고 조조의 설명을 기다렸다.

“진궁이 꼭 경의 손에 죽고 싶다고 해서 그 소원을 이뤄 주려고 경을 불렀어. 목을 베어 줘.”

이렇게 말하고 조조는 진궁의 등을 무릎으로 찍고 풀어 헤친 머리카락을 힘껏 꼬아 돌려서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했다.

장료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료가 죽음을 무릅쓰고1 청합니다. 말씀하신 것을 이 사람의 입으로 직접 듣도록 허락받을 수 있겠습니까?”

조조는 웃으면서 되물었다.

“고를 의심하나?”

“당치도 않습니다.”

죽기를 자처해서 반항하지 않을 사람을 이렇게 단단히 포박해 놓은 것이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장료는 주인 앞에서 그렇게 눈치를 굴리고 의심을 품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진궁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소망도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의무 앞에서는 누를 수 있었다.

“명공明公2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조조는 좀 아쉬웠다. 장료가 요란하게 의심하고 항의해서 진궁을 괴롭게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그를 괴롭히는 데는 지금의 침통한 목소리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몰랐다. 장료가 주인의 명령에 감히 한 번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이 이미 대단한 갈등을 겪고 나온 일탈이라는 사실은 아직 진궁만 헤아릴 수 있었다.

어쨌든 조조도 장료가 반드시 명령을 따르리라는 것은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이대로 끝내기는 심심하니까 구경거리라도 더 만들어 보자는 충동이 들었다. 진궁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 주고 그의 턱을 붙잡아 장료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문원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진궁의 입에서 나온 것은 조조도 놀랄 만한 거짓말이었다.

“조 공이 거짓말을 하진 않았어. 그러니까 조 공을 의심하지 마.”

진궁은 한숨을 쉬고 덧붙였다.

“그냥 내가 잠시 어떻게 됐었나 봐. 놀라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조조에게 말했다.

“첫 번째로 바꿀게요.”

조조는 반색했다. 즉시 눈가리개와 밧줄을 끊어 주고 진궁을 일으켜 앉혔다. 장료는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해서 감사를 표하고 물러났다.

“어서 들어가자.”

진궁을 부축해서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조조는 진궁을 마루에 내려놓고 숨을 헐떡이며 감격했다.

“고가 문원을 잃을까 봐 걱정해 줄 줄은 몰랐네.”

“……”

진궁의 옆에 바싹 다가가서 앉으며 말했다.

“지팡이는 더 좋은 거로 새로 해 줄게.”

“……”

원래 쓰던 지팡이를 보관해 두고 가끔 만지작거린다는 것은 비밀이었다.

“그리고 약속을 했으니까, 원하는 거 하나 말해 봐.”

진궁의 얼굴은 죽은 사람 같았다. 조조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쉰 목소리를 간신히 짜내어 대답했다.

“……오늘은 피곤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네요. 다음번에 뵙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조조는 자상하게 물었다.

“그럼 방에 들어가서 누울래?”

“먼저 뜨거운 물로 목욕 좀 하고요.”

역시 이대로 떠나기는 아까웠다.

❊✬✬

사흘 후 순욱은 초에 군대를 파견하기 위한3 준비 상황을 보고하고 나서 조조에게 말했다.

“진궁을 살려 두시겠다면 이제부터라도 예와 인으로 대하십시오.”

조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는데? 안 그래도 그날부터 쭉 식사를 안 했다기에 굶어 죽을 거 같아서, 오늘 아침에 병사들을 시켜서 죽이라도 넘기게 해 주라고 했어.”

순욱은 죽기를 포기한 진궁이 조조에게 원한을 쌓을 것이 더욱 걱정되었다.

“진궁이 원망할 일은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조조는 억울했다.

“내가 그럴 짓을 할 사람처럼 말하지 마. 지금도 그 귀엽고 까다로운 아기4를 달래고 비위를 맞춰 주느라 애쓰고 있단 말이야.”

진궁이 순욱보다도 나이가 많다는5 사실을 지적해 보았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이 건에 관한 한 조조를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듯했다. 순욱은 속으로 진궁을 만날 기회를 한 번 더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강제로 음식을 먹인 보람이 있었는지, 조조가 닷새를 채운 뒤 다시 찾아갔을 때 진궁은 혈색이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얼굴이 좀 나아져서 다행이야. 조건은 정했어?”

진궁은 바로 대답했다.

“뜰에 나무 한 그루 심어 주세요.”

조조는 잠시 생각하다가 거절했다.

“안 돼. 공대가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서 다치면 어떡해?”

조조의 걱정은 진심이었는데 뜻밖에 진궁은 웃었다. 조조가 회의나 연회 때 농담을 시도할 때마다 좌중에서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과 똑같았다. 조조는 생각했다.

‘정말 재미있는 말이었나 보군.’

다 웃은 진궁은 유순하게 부탁했다.

“나무가 안 되면 화초라도요.”

“왜?”

“살아 있으려니까 마음 붙일 것이 필요해서요.”

살아 있겠다는 말을 진궁의 입으로 들은 것이 기쁘면서도 조조는 약간 질투가 났다.

“마음은 고한테 붙여.”

진궁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공이 날마다 오시지는 못하니까요.”

얼굴을 붉히고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공이 주시는 거니까 보면서 공을 생각할게요.”

진궁이 이렇게까지 귀여웠던 적이 없었다. 조조는 가만히 보고만 있기 힘들었다.

진궁을 인으로 대하라는 순욱의 말이 떠오른 조조는 자기의 어진 처사에 진궁이 감동하기를 바라면서 품에서 죽간을 꺼내어 내밀었다.

“이거 한 번 보지.”

진궁은 죽간을 펼쳐서 첫 줄을 보자마자 도로 말아서 돌려주었다.

“공이 쓴 시는 아닌 것 같은데요. 다른 죽간하고 바뀐 거 아니에요?”

“이번에 초에 가서 낼 포고문6인데, 한 번 읽어 봐.”

진궁은 시키는 대로 소리 내 읽었다.

“나는 의병을 일으켜 천하를 위하여 폭거와 변란을 평정하였다. 그동안 고향의 인민이 대부분 죽어서 이 땅을 종일 다녀도 아는 이를 볼 수 없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의병을 일으킨 이래 후사가 끊어진 장병들은 친척을 찾아 후사를 잇게 하되 그들에게 좋은 밭을 주고 농사를 지을 소를 관에서 공급하며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두어 교육하라.”7

‘아차.’

여기까지 듣고 나니 조조는 뒤늦게 다음 문장이 걱정되었다.

“(8) 후사가 남은 이를 위해서는 사당을 세워서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게 할 것이니, 혼이 있고 령이 있다면 우리가 백 년 뒤에도 무엇을 안타까워하겠는가!”8

진궁은 뜻밖에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게 할 것이니’에서 머뭇거리거나 울컥하지 않았다. 적어도 조조가 듣기에는 그랬다. 조조는 크게 안심했다.


  1. 무척 비장해 보이지만 (그리고 비장하지만) 높은 사람에게 말할 때 쓰는 관용어(매사[昧死])입니다. 사실은 황제에게 말할 때 써야 하지만 너무 쓰고 싶었습니다. 

  2. 진궁이 명을 안 붙이고 공이라고만 하는 것과 대조됩니다. 

  3. 《삼국지·위서》 〈무제기〉 건안7년 정월의 기사. 

  4. 《삼국지·위서》 〈여포전〉. “조씨가 공대를 갓난아기처럼 대했는데도… (후략)” 

  5. 진궁의 연령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162년생으로 설정했습니다. 조조보다 일곱 살 적고 순욱보다 한 살 많은 나이입니다. 

  6. 《삼국지·위서》 〈무제기〉 건안7년 정월의 기사. 사실은 초에 가서 썼겠죠. 

  7. 吾起義兵,為天下除暴亂。舊土人民,死喪略盡,國中終日行,不見所識,使吾悽愴傷懷。其舉義兵已來,將士絕無後者,求其親戚以後之,授上田,官給耕牛,置學師以教之。 

  8. 為存者立廟,使祀其先人,魂而有靈,吾百年之後何恨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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