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3-3. 흰머리가 없는 까닭

건안11년 가을 8월, 순우에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조조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공대, 경이 올해 몇 살이더라?”

진궁은 잠시 계산해 보고 대답했다.

“마흔다섯이요.”

조조는 투덜거렸다.

“그런데 왜 경은 흰머리 하나 안 나는 거야? 내가 그 나이였을 땐 꽤 있었는데.”

진궁을 포로로 잡았을 때 조조는 마흔네 살이었다. 지금 진궁이 그때의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니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진궁은 실없는 소리를 했다.

“공이 무서워서 흰머리도 감히 못 나오고 있나 봐요.”

“그럼 이 검은 머리는 다 고를 안 무서워하는 놈들이란 말이지?”

조조는 진궁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마구 헝클었다. 진궁은 저항하지 않았다. 조조가 실컷 가지고 놀다가 제풀에 지쳐서 손을 놓은 뒤에야 머리를 정돈하면서 물었다.

“내가 공을 무서워하면 좋겠어요?”

“고가 얼마나 여리고 섬세한 사람인데. 고가 잘 보살펴 주니까 공대가 여태 흰머리도 안 나잖아.”

말이 나온 김에 조조는 포로에게 양질의 문화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신작 죽간을 꺼냈다. 유명한 만가 〈호리蒿里〉에 조조가 새로 붙인 가사였다.1

들판에는 해골이 널려 있고 [白骨露於野]
천 리에 닭 한 마리 울지 않네 [千里無雞鳴]
살아남은 백성은 백에 하나 [生民百遺一]
생각한즉 창자가 끊어진다 [念之斷人腸]

진궁은 진심으로 감탄한 기색이었다.

“대단하네요.”

“이 정도쯤이야.”

“그러니까 공한테는 백 명 중의 한 명씩이나 살아남은 게 창자가 끊어질 만큼 울분이 솟는 일이란 말이죠?”

“그렇지. ……아니, 뭐라고?”

“공은 백 명 중의 한 명도 안 남기고 다 죽여버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사람이잖아요?”

조조는 진궁의 뜬금없는 감상에 당황했다.

“그거야…… 자꾸 왜 그래? 고는 경도 살려줬는데?”

진궁은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살려달라고 했으면 죽였을 거면서.”

“우리 공대가 그랬을 리가 없지.”

조조는 자기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화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새 계속 의학서하고 양생서를 뒤적거리는 거로 봐선 공대도 오래 살고 싶은 모양인데?”

그러나 진궁은 오늘따라 자꾸 이상한 질문만 했다.

“공은 공하고 나 중에서 누가 더 오래 살면 좋겠어요?”

“고는 공대가 죽는 걸 보기 싫은데.”

“그럼 공의 백 년 뒤2에는 나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땐 자살해도 괜찮아.”

조조는 진궁의 표정을 보고는 달래야겠다 싶어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선심을 썼다.

“고가 살아 있는 동안 예쁘게 굴면 나중에 유언으로 밖에서 살게 해 줄지도 모르지.”

큰 미끼를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진궁은 도리어 인상을 썼다. 조조는 솔깃하게 들릴 만한 조건을 덧붙였다.

“발은 뭐, 전장에서 다쳤다고 치고. 여생을 넉넉하게 먹고 살 만큼 재산도 줄게.”

그래도 진궁의 반응이 시원찮아서 조조는 더욱 능글거리며 쿡쿡 찔렀다.

“그때까지 기운이 남아 있으면 첩을 들여서 늦둥이 아들이라도 보든가.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네, 갑자기 메스껍네요.”

진궁은 결국 방금 먹은 저녁을 게우고야 말았다. 조조는 걱정스러웠다. 같이 먹은 자기는 탈이 없었으니 진궁의 위장이 예민한 탓일 것이다. 해산물3이 안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진궁에게 양생서를 더 열심히 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2019.10.27 21:59

  1. 《조조집》에 나옵니다. 조조의 뻔뻔스러움을 잘 알 수 있읍니다. 

  2. 한나라 사람들이 “죽은 뒤”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3. 《삼국지·위서》 〈무제기〉 건안11년 8월. 조조는 해적을 토벌하기 위해 순우淳于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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