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이야기를 합니다.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3-6. 매뉴얼 작성자의 정체와 색다른 제안

건안12년 가을 8월, 업에서.

주아
주아 《한서》 파는 사람

진궁이 화분에 심은 호유胡荽1의 잎을 뜯고 자투리 천으로 싸서 품에 넣는 것을 시자가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들이닥쳐 몸수색을 벌였다. 진궁의 겉옷을 풀어 헤치자 곧 풀을 싼 천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포박해서 당 아래에 꿇어앉혔다.

돌로 된 바닥 위로 눌린 진궁의 다리가 저리다 못해 경련을 일으킬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사공부 별채의 문이 열리고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진궁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조조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었다. 진궁은 상대의 얼굴을 잠깐 볼 생각으로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정중덕? 군이 여기서 왜 나와요?”

정욱은 자기 신분을 밝혔다.

“이 집의 가령家令2이니까.”

진궁은 놀라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해서 얼마나 좌천을 당했기에 여기까지 와요?”

“무슨 소리야. 자아실현을 위한 부업으로 겸하고 있는 거야.”

“포로를 통제하는 것으로 실현되는 자아라니.”

정욱은 자신만만하게 되물었다.

“좀 지났지만 오랜만에 고향에서 하룻밤을 보낸3 소감은 어때?”

“그것도 군이 짠 루트였어요?”

“특별히 하수河水를 건너는 지점은 창정진으로 정했지. 옛날에 길을 막았던 게 미안해서 이번에라도 지나가 보라고.”

13년 전 진궁이 동군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정욱은 창정진을 끊어 그가 하수를 건너 진군하는 것을 막았었다.4

“그동안 이 모든 걸 누가 기획했는지는 몰라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육형을 받은 포로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간순간마다 철저하게 깨닫게 해 줘서.”

“알아줘서 고마워.”

정욱은 흐뭇한 얼굴로 진궁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신문을 시작했다.

“아무튼 여기 온 목적으로 들어가자. 궁5은 포로 주제에 왜 풀을 몰래 숨겼나?”

“딱히 숨긴 건 아니에요.”

“숨길 게 아니면 왜 가슴에 넣고 있었는데?”

진궁은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여기서 궁의 손으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거라서.”

정욱은 과장된 어조로 음절마다 힘을 주며 물었다.

“그래서 소중하게 품고 있었어?”

진궁은 체념한 듯 내뱉었다.

“그래요.”

정욱은 비웃었다.

“아궁阿宮6한테도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었네. 그러니까 조 공도 애로 보시지.”

진궁은 정신을 주워 모아 항변했다.

“포로는 지금까지 옷 속에 물건을 넣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요. 금지하지도 않은 일이 죄가 되나요?”

“그걸 지시를 해야 알아? 몸수색 받은 게 한두 번도 아닌데 모를 수가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처럼 똑똑한 애가.”

“그렇게 애매한 일로 꼬투리를 잡으려고 작정했다면 포로가 무슨 수로 피하겠어요. 그래서 벌은 뭔가요?”

정욱은 진궁을 달랬다.

“있어 봐, 주어진 상황을 잘 활용해서 원하는 걸 얻을 궁리를 해 보자고.”

“누가 원하는 걸 말하는 거예요?“

“우리도 원하고 너도 원하는 거야. 네가 공을 해치려고 모의했다는 죄를 자백하면 돼.”

진궁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호유 잎을 가지고 무슨 수로 사람을 해쳐요?”

“아까 네가 말했잖아. 작정하면 못 할 게 없어. 게다가 이번 건은 합리적인 의심에서 나온 거야.”

정욱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네가 가지고 있던 책에 적혀 있는데 못 읽었어? 8월에 호유를 먹으면 사람의 정신을 상하게 한다고.7 마침 지금이 8월이네.”

“그건 그냥 사소한 금기일 뿐이에요.”

“화초나 의학서나 네가 공께 집요하게 부탁해서 얻어 낸 거지. 공을 해치려고 몇 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의 일환으로.”

“그런 목적은 절대 아니었어요.”

“무슨 상관이야? 목적이야 어쨌건 정확하게 원하던 결과잖아, 조 공이 명령해서 처형되는 거.”

진궁이 바로 대답을 못 하자 정욱은 미끼를 더 던졌다.

“옛날 딸 걱정은 안 해도 돼. 어차피 연좌는 사람끼리 하는 거니까.”

지금까지 여러 모주가 제안한 방법 중에서 가장 원하는 데 근접하고 실현 가능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마침내 진궁은 대답했다.

“싫어요.”

“왜?”

“사실이 아니니까.”

정욱은 욕을 퍼부었다.

“더벅머리 새끼,8 그게 너 궁이 할 소리야? 연주에서 우리를 그렇게 거하게 속여 놓고?”

진궁은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

“군이 뭐라고 보고하든 궁은 끝까지 부인할 거예요. 조 공이 궁의 말을 안 믿어 주고 사형을 내리면 그땐 죽죠.”

“포로 놈이 아직 자존심이 남아서 고집불통이군.”

진궁이 진술을 맞추어 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으니 일단은 중단해야 했다.

그래도 정욱은 마지막까지 가령의 임무를 다했다.

“아무튼 화분하고 책은 이번 일로 위험한 물건인 게 확인됐으니까 다 압수해야겠어.”

“저기요.”

“포로한테 가당찮은 자존심이 남은 걸 확인했으니까 그것도 관리에 들어가야겠고.”

진궁도 정욱의 고집은 꺾지 못할 것을 알았다. 화분과 책은 오환 정벌에 나간 조조9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서 새로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남은 날을 지내기는 수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화분을 받치고 있던 헝겊도 어제까지는 없던 물건이었다.


  1. 고수. 실란트로. 

  2. 저택의 사무를 관리하는 직책. 

  3. 3-5 〈모주의 마지막 식사와 마지막 계책〉 참조. 

  4. 삼국지 위서 정욱전. 

  5. 상대를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은 고유명사를 쓰는 것 중 가장 심한 하대입니다. 

  6. 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쓰는 말이고, 성인에게 쓸 때는 얕보는 의미가 강합니다. 이 세계에서 성인을 아동으로 취급하는 것은 상당한 비하였습니다. 

  7. 금궤요략金匱要略 과실채곡금기병치果實菜穀禁忌并治. 후한 때의 의학서입니다. https://ctext.org/jinkui-yaolue/25#n648376 

  8. 원문은 수자豎子입니다. 머리를 풀어 해친 놈이라는 것은 관을 쓸 자격이 없다는 모욕이 아닐까요? 

  9. 삼국지 위서 무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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